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194화 (194/298)

194화 만세 만세 만만세(2)

감찰(監察).

쉽게 정의 내리면 누군가의 뒤를 파헤치는 것이다.

조선에서 감찰이라는 건 관리의 비리를 파악하여 ‘탄핵’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니까 종래 조선은 이러했다.

그런데 고도로 관료제가 발달한 조선에서 사헌부가 작은 먼지도 용납하지 않으면 과연 어찌 될까?

가끔 궁금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 아니.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소이까.

-그, 그렇소. 어찌 이리도 야박하시오?

원래도 두려운 감찰이었다.

이를 누가 휘두르냐에 따라서 위력은 너무나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송준길이 진두지휘하는 사헌부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 나는 기억이 나지 않소이다!

-그, 그건 고의가 아니었소!

-이, 일단 내 말을 들어보시오.

상당한 소란이었다.

사헌부의 감찰(監察)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도성 전체를 휘저었다.

그랬다.

그동안 축적한 방대한 양의 비리 자료가 한 번에 공개됐다.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뇌호는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숨기지 못하는 듯했다.

아마 속내는 이런 게 아닐까?

-대체 이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조선이라는 나라는 뭐 이런 식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관심법을 사용할 수는 없으나 머리부터 발끝에서 전해지는 기운은 분명 이러할 것이다.

내 손모가지를 걸고 확신할 수 있었다.

“대국의 사신이 오면 내부 문제는 덮지 않소?”

과연 나는 탁월했다.

수염을 한 가닥 잡으면서 익살스럽게 웃었다.

“통상 그리하긴 합니다. 괜한 트집이라도 잡히면 상당히 피곤해지니 말입니다.”

“……내가 그 대국의 사신이오만?”

“어찌 모르겠습니까.”

“허. 이보시오. 너무 태연하고 뻔뻔하게 답변하는 게 아니오? 약간이라도 고민하는 기미가 보였다면 덜 당혹스러울 것 같소만?”

“허. 대인. ‘우리’ 사이에 어찌 이러십니까? 소인은 이미 ‘우리’가 작은 허물 정도는 보일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군요. 참으로 서운합니다.”

“참으로 말문이 막히게 하는 능글거림이오?”

“아니, 지금 소인 앞에서 청산유수로 말씀하시는 분은 정녕 누구십니까.”

“…….”

뇌호의 볼이 미세하게 씰룩였다.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 게 보였다.

숨기지도 않는다.

물론, 그동안 쌓은 정이 있으니 대놓고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나 언짢은 건 확실했다.

이럴 때 벗이라면 응당 기분이 풀리게 해줄 의무가 있지 않겠나?

양손을 깍지 끼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대인. 도성의 소란이 절대 손해는 아닐 겁니다.”

“실익을 따질 일이 아니오. 경우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오.”

“사헌부의 감찰 대상은 모두 친명 인사입니다.”

내 말과 동시에 뇌호가 손바닥을 펼치며 턱을 내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이제 말하니 참으로 서운하오.”

“이런. 소인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세세한 내용을 언급하면 실수가 없었던 일이 될 것 같소만.”

“지난번 대인께서 귀국하신 이후, 우리 조선은 지속하여 사상의 변화를 꾀하였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였지요.”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성전(聖戰)이었지요.”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오.”

“예. 하늘 아래 유일 성현이신 ‘송자’를 탄생시킨 위대한 승리로 귀결되었지요.”

“또 왜 이러시오?”

“그러나 위대하였을 뿐입니다.”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뇌호의 몸은 다시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몸을 더 내밀었다.

깍지 낀 손에 더 힘을 꽉 주었다.

“아무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

“인적 청산이 없는 개혁은 의미가 크게 퇴색할 수밖에 없는 법이지요.”

“내부 사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소. 그러나 내가 밖에서 보더라도 전광석화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소. 이는 이미 칼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소만.”

“예.”

“지금 도모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대인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오.”

“대인께서 주도하신 겁니다.”

“뭐요……?”

“대인께서 조선의 친명파를 숙청하신 것이지요.”

뇌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볼은 미친 듯이 씰룩였다.

입술은 기괴하게 뒤틀렸다.

그의 손가락이 쉬지 않고 꿈틀거렸다.

고스톱을 짜고 치고 싶다는 욕구를 여과 없이 표출한 것이다.

나는 상체를 일으키며 깍지를 풀었다.

“명나라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어떤 사신단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바로 조선의 내정에 관여하여 반대파를 밀어내는 것 말입니다. 이를 대인께서 하시는 겁니다.”

“내가 조선 조정을 좌지우지한다?”

“그렇습니다. 조선은 대인의 말이 곧 황명이지요.”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이토록 충심을 보였으니 하해와 같은 황은이 조선 전역에 넘실거리길 바랍니다.”

“5할이 과하다는 것이오?”

“기근을 대비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러한데 절반을 바쳐야 한다면 어찌 숨통이 트이겠습니까. 만일, 하해와 같은 황은이 내려진다면 어찌 섬김에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인적 청산을 단행하여 명실상부한 대청의 번국으로 탈바꿈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뇌호의 눈동자에서 진한 갈등을 포착했다.

나는 협상력을 더 올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대인께서 거절하시더라도 강행할 것입니다.”

“진심이오?”

“한 치의 불순함이 없는 충심입니다. 우리 조선은 이를 기어이 입증할 것입니다.”

“…….”

어차피 진행될 일이다.

여기에 숟가락만 올리면 된다.

이를 거절하는 건 우매한 짓이다.

과연 뇌호는 갈등을 끝냈는지 목을 슬쩍 뒤틀었다.

“확답을 할 수는 없소.”

“물론이지요. 황명을 어찌 임의로 손볼 수 있겠습니까. 소인은 그저 늦게라도 황상께서 베풀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좋소. 귀공의 제안을 받겠소.”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환하게 웃었다.

또, 속으로 비웃었다.

뇌호는 지금 덫에 들어온 것이다.

오늘부터 오직 조선의 국익에 최선을 다해야 할 운명이라는 덫 말이다.

이제 진짜 성전이다.

-----

송준길은 크고 작은 부정(不正)으로 잡혀 온 이들을 지그시 쳐다봤다.

이들 중 관복을 벗어야 할 중죄인도 있었고, 문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사안에 그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간 사헌부가 축적한 문서에 이름이 적혔기에 송준길의 앞에 있게 된 것이다.

“억울한 사람은 지금 말하라.”

섣불리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거나 부정은 부정이니 말이다.

그때 밖에서 소란이 들렸다.

모습을 보인 이들을 곁눈으로 본 관리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대, 대감. 소인들을 어찌…….”

저들은 시전 상인과 방납을 담당한 부상대고들이었다.

관리를 감찰하는 사헌부에서 민간의 상인까지 손을 뻗친 것이었다.

몇 명의 관리들은 오늘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또 다른 관리는 안색이 흙빛처럼 어두워졌다.

“그간 사헌부는 관원은 물론이거니와 상인까지 꾸준하게 감찰했다. 이 자리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면 반드시 부정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억울한 사연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강력한 선언이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송준길의 눈치를 살피는 것뿐이었다.

“또한, 이미 안면이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

“그렇다는 건 관복을 입은 사대부가 상단과 야합하여 모종의 이익을 취했다는 걸 의미하겠지. 과거에 그러했을 수도 있고, 오늘 그러할 수도 있으며, 내일부터 약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다수였다.

하지만 송준길의 시선은 그들을 향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을 모두 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나라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녹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관리의 기백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한데, 이제 알고 보니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었다.”

“대, 대감. 소직은 아닙니다. 비록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상인으로부터 사사로운 이익을 취한 적은 없습니다.”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녹봉을 반납하겠다는 선언의 진실함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진정 모르는가?”

“…….”

“개탄스러운 건, 너희는 고작 오늘 잡혀 온 이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 문서에 적힌 이름은 끝도 없으니까.”

“대감…….”

“법도에 따라서 처리할 것이네.”

상인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상황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하지만 감히 송준길에게 따질 수는 없었다.

아무리 원통할지라도 항변할 수 있는 상대가 있고 그럴 수 없는 이가 있었다.

송준길은 명백하게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모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하나 사대부로서 처벌보다 교화가 먼저라는 걸 알고 있네.”

송준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어떤가. 나의 제안을 수락할 것인가?”

동시에 뒷짐을 쥐며 천장을 바라봤다.

“거부하면 패가망신이 어떤 건지 보여줄 것이네.”

보태듯 말했다.

“하루면 충분하네.”

-----

싱긋 웃으면서 처능을 바라봤다.

나는 좋아서 눈을 마주치고 싶었으나 그는 계속 피했다.

참으로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 계속 이럴 생각인가?”

“소승은 그저 피하는 것이 유일한 저항입니다. 어찌 이조차 탓을 하십니까.”

“허. 왜 이러나? 아직 과거에 응시한 승려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소승은 오늘의 만남이 참으로 불안합니다.”

“음. 세간의 말이 사실인가 보군.”

“무슨 말씀입니까.”

물음과 동시에 처능은 눈을 감더니 염주를 꽉 잡았다.

내가 마구니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해야 할 일은 해야지.

“고승은 법력이 있어서 예지력이 있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딱 그렇군.”

처능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손을 뻗어서 염주를 잡았다.

처능이 눈을 떴다.

눈동자에서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나는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차로 환속할 승려의 명단을 준비하시게.”

“!!!”

염주를 든 손이 격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의 떨림을 달래듯 손에 힘을 주었다.

“며칠 말미를 줄 것이네.”

“아, 아직 잡과가 열리지도 않았습니다.”

“허. 왜 이러시는가? 아무리 잡과라고 할지라도 엄연히 과거일세.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어찌 성과를 낼 수 있겠는가. 내가 적당하게 자리를 마련할 것이네.”

“사찰에서 따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

“괜찮으니 내 성의를 거절하지 말게.”

“…….”

처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친절하고 세세하게 잘 설명할 것이니 아무런 우려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네.”

-----

그야말로 최고의 성과가 예정된 상태였다.

물론, 조선의 충심에 황제가 어찌 반응할지는 가늠할 수 없다.

황명에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을 향한 실질적인 정책의 변화를 떠나서 무조건 긍정적인 화답이 내려올 것이다.

크게 치하할 것이니 어찌 내일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일이었기에 뇌호는 숨 쉬는 것도 즐거웠다.

벅차오르는 심장의 거세 활동을 감당하기 어려워 산책하며 육조거리에 이르렀다.

그런데

“…….”

뇌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목울대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양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끔찍했던 과거의 어떤 일이 머릿속을 무참하게 어지럽혔다.

그리고 쥐어짜듯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연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