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만세 만세 만만세(5)
육조거리는 아주 뜨거웠다.
윤휴가 분신술을 사용해서 돌아다닌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이토록 놀라운 일이 발생한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드디어 날것 그대로의 안건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무려 송자인 내가 강림하였거늘 미처 신경 쓰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기다리던 시간이었기에 너무나도 뿌듯했다.
주목할 만한 대화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가장 먼저 내 심장을 흐뭇하게 한 건 상인과 관리의 대화였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청국 사신단이 이대로 귀국하다니요?!”
“자네 기어이 실성했나? 감히 지엄하신 전하의 어명을 말이 안 된다고 했나?”
“소, 소인이 언제 그랬습니까?”
“지금.”
“하지만, 연좌에서는 조정의 시책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지. 그러나 발언의 수위는 조심해야 할 것이네.”
어디에도 ‘감히’ 상인이 ‘연좌’를 운운하느냐는 말은 없었다.
연좌라는 성스러운 행위의 가치가 언급되었을 뿐. 주체의 자격은 전혀 문제가 되고 있지 않았다.
사실상 관복을 입은 사대부와 상인이 동률에서 ‘토론’하는 아고라가 탄생한 것이다.
경직되었던 조선에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현상이 백주에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거나 공식적인 절차는 모두 마무리되었네. 이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또 무슨 말인가? 이미 어명이 내려졌으며, 청국 사신단은 귀국을 준비하고 있거늘.”
“아직 소식을 접하지 못하셨습니까? 역관 변승업이 어선의 출항을 거부했습니다.”
“뭐라……?”
상인의 말대로였다.
뇌호가 울부짖을 때 난입하듯 달려온 관리가 전한 소식은 바로 변승업의 ‘파업’이었다.
“자네들, 지금 무슨 말인가?”
강 건너 불구경하며 승려만 견제하던 사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끼어들었다.
나는 저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대청 협상을 진행할 때 사족이 분연히 일어나 전면적인 연좌로 승리를 도출했네. 한데, 어선 출항을 포기하다니?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서원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보수의 화신 ‘무당파’가 탄생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저들은 대청 외교를 승리로 일군 일등 공신이었다.
그 위대한 승리의 최대 성과가 바로 어업 협정인데, 총파업 소식에 어찌 예민하지 않겠는가.
“선생. 어획량의 5할을 가져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목숨을 걸고 청국 바다까지 가겠습니까.”
“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도다. 조정의 대신과 사대부가 절치부심하여 외교를 승리로 이끌면 무엇을 하는가? 결국 무엇 하나 제대로 집행조차 될 수가 없는데 말이다.”
“아니, 선생. 결과가 너무 누더기였습니다.”
“뭐라!”
“감히!”
관리와 사족이 동시에 노발대발했다.
막상 이리되자 상인들은 움찔했다.
“모두 틀리셨습니다.”
젊고 낭랑한 목소리였다.
이번에는 서얼이 등판했다.
“청사가 이대로 귀국하면 조선도 이로울 게 없다는 걸 어찌 모르십니까.”
“무슨 말인가.”
“결국 황제의 황명입니다. 조선이 어선을 출항하지 않는다는 건 황명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를 감당할 수 있습니까?”
다소 격해지던 논쟁은 서얼의 개입으로 이성을 되찾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결국 현실이었다.
“참으로 옳은 의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할 때 청국 사신이 귀국하면 후일은 걷잡을 수가 없을 겁니다.”
“……사찰에만 계셨을 분들이 참으로 생각이 깊습니다?”
“결국, 출사하여 왕실과 조정에 복무할 것인데 어찌 나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체 언제부터 이토록 속세에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서얼과 승려의 신경전이 예사롭지 않았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저들의 논쟁을 더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나 워낙 공사다망한 입장인지라 더는 곤란했다.
엷게 웃으며 손을 털며 등을 돌렸다.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정사에 기록되고 남을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신분을 넘어선 토론의 장이 이뤄진 것만이 아니었다.
핵심 화두가 상인의 이권이었기에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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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호는 속이 쓰렸다.
설마 이대로 귀국하게 될 줄은 아예 예상하지 못했다.
절차상으로는 아무런 탈은 없었다.
일정 내내 성대한 대우를 받았고, 황명을 전했다.
설령 이후 조선이 황명을 수행하지 않더라도 자신으로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조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책임이 주어질 수도 있었다.
혹은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외교를 다시 진행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그런 사신단의 정사로 임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난 외교를 거치면서 종래 사신단과는 아예 결이 다른 위상을 확보했다.
조선의 조정을 쥐락펴락하는 재상을 친청파의 거두로 세웠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황명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면 어찌 되겠는가.
“현재 나는 조선의 정치 지형에 따라서 황상의 신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조선왕이 어명을 내린 마당에 더 잔류할 방법이 없었다.
아직은 황명을 어긴 것이 아니기에 명분도 없지 않은가.
머리가 지끈거렸고 속이 새카맣게 탔다.
“대인…….”
참 듣기 싫은 목소리였다.
이마를 지탱하던 손을 내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어렵사리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낸 이일선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뭔가?”
“소인에게 방책이 있습니다.”
“하하하. 방책……?”
“그렇습니다. 대인.”
“뒤로 수작질하여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자 한 행동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데, 지금 방책이라고 했나?”
뇌호는 손에 잡히는 물건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집어 던지고 싶었다.
눈을 부라리며 짜증을 잔뜩 담아서 손을 내저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으나 이일선은 쭈뼛거리며 물러나지 않았다.
“소인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들어만 주십시오.”
“하.”
“어떤 기회를 청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인께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나선 것입니다.”
“…….”
“소인이 살펴보니 육조거리에서 여러 세력이 연좌하고 있습니다. 그중 상단은 짙은 친청의 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작 상단의 무리에 불과하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이번 황명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건 바로 그들입니다.”
“해서?”
“대인께서 친히 그들을 포섭하신다면 조선왕이 어쩔 도리가 없을 겁니다.”
“포섭? 내가 그들을 어찌 포섭한단 말인가.”
“상단의 무리가 원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무역입니다.”
“…….”
“만일 대인께서 직접 나서기 어려우시다면…….”
“이일선.”
“예……?”
“조선은 중농억상(重農抑商)의 기조를 가진 나라다.”
“무, 물론입니다.”
“한데, 그따위 말을 계책이라고 꺼낸 것인가? 또한, 내가 상단을 꾀어내더라도 조선 조정을 설득해야 한다. 이 절차를 감내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일선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기서 말을 더 보태면 아주 곤란한 입장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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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업은 피가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송시열의 말대로 출항 거부를 선언했다.
이후 청사가 어떤 말을 할 수도 있고, 황제가 노발대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조정의 영역이었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잘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경우였다.
“출항을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떤가?”
“자네의 판단이 조정을 곤혹스럽게 할 수가 있네.”
“물론 당장 5할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조정이 어찌 계속 지켜만 보겠는가.”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한 일일세.”
사족과 관리가 사가로 대거 몰려오더니 방침의 재고를 권하고 있지 않은가.
난처하고 놀라운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성심껏 응대해야 했다.
상대는 ‘양반’이니 말이다.
“무슨 말씀인지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소인도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바닷길이 험하다.
어획량의 5할을 낸다면 갈 이유가 없다.
조선의 바다에도 어류가 많다.
지극히 합당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뻔한 말은 아무런 힘을 낼 수 없다.
변승업은 최대한 자세를 공손하게 잡았다.
그러면서도 사대부들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한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소인은 역관이자 상인입니다. 어민이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을 먼저 언급했다.
“이번에 어선을 대량으로 건조한 건, 청국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기에 행한 일에 불과합니다. 소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누구라도 가고자 한다면 갈 것입니다. 하지만 소인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접한 결과는 감당하기가 너무나도 버거웠습니다. 해서, 포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변승업은 몸을 슬쩍 뒤로 빼면서 말을 이었다.
“선생들께서 여러 좋은 말씀을 하셨으나 애석하게도 소인이 할 수 있는 건 없는 듯합니다.”
“…….”
“하면,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변승업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송구함을 표현했다.
사족과 관리는 미련이 남은 듯 손을 뻗으며 입을 껌뻑였다.
하지만, 무슨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객을 모두 물린 변승업은 잠시 숨을 돌린 뒤 냉큼 사랑방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분명 제집이었으나 공손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몸을 낮추며 앉았다.
그리고 턱을 괸 채로 쳐다보는 송시열과 시선을 맞췄다.
“모두 물러갔습니다.”
“고생했네. 그나저나 어떻던가?”
“……솔직히 소인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떠냐고 물었는데 이해할 수 없다니? 내가 더 이해할 수 없네만.”
“늘 상단의 정치세력화를 경계하셨습니다. 한데, 소인이 아무리 살펴도 이를 유도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송시열의 눈동자는 움직임이 없었다.
여전히 자세를 낮춘 변승업의 손바닥에는 진땀이 고였다.
미끄러울 정도였기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계속 말해보게.”
“많은 관리와 사족이 소인에게 출항 금지를 철회해달라고 청을 했습니다. 전이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심지어 소인이 거절하였는데도 말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그간 중대본이 기근을 방비하는 여러 정책에 소인의 공이 컸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기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어선의 건조에도 소인의 재력이 전부였다는 것 역시 좌우되었겠지요.”
“그들도 세상 돌아가는 건 알고 있는 거겠지.”
“결과 어명과 중대본의 방침이 아니면 소인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가? 한데,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겠지. 당사자가 제일 잘 알지 않겠나?”
“……소인이 평생 처세하며 살아왔습니다. 그저 가문을 건사하고 상단을 확대하고자 부지런히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소인이 양반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요. 대체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말하였네. 어떠했느냐고.”
구체적인 주어가 없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세 치 혀로 관리에게 축객령을 내린 상황 자체를 묻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감정을 묻는 것일 수도 있었다.
변승업은 허리를 펴며 자세를 바로 했다.
여전히 턱을 괴고 있는 송시열을 바라봤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정말 의외의 답변이군.”
“그렇습니까?”
“해서, 하는 말일세.”
송시열도 허리를 펼쳤다.
턱을 지탱하던 손은 다른 손을 맞잡았더니 깍지를 끼었다.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대청 전면 무역.”
변승업의 눈동자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자네가 뇌호를 설득하게.”
“예……?”
“더는 말하지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