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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04화 (204/298)

204화 만세 만세 만만세(10)

아침 댓바람부터 더웠다.

무슨 말로 어찌 표현해야 할지 고민될 정도의 더위였다.

손으로 부채질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숨이 턱턱 막혔다.

하늘 아래 이토록 기이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윤휴밖에 없었다.

그는 오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더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동이 트자마자 대뜸 방문하더니, 장고가 너무 길지 않나? 그러니 이만하면 용건을 꺼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네만.”

그 순간, 거짓말처럼 더위가 사라졌다.

정말이지 과장하나 안 보태고 숨통이 탁 트이는 것만 같았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윤휴를 쳐다봤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입술을 살짝 뒤틀며 말을 꺼냈다.

“일전에 하신 말씀을 계속 생각해 봤습니다.”

“나의 말은 청자가 늘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

“그래서 내가 살아 있는 유일 성현이 아니겠는가?”

“제발 누구의 동의도 받을 수 없는 괴이한 발언을 멈추시지요.”

“하면, 듣지 말게. 나는 말할 테니까.”

“…….”

어느새 부채질하던 손을 편히 내릴 수 있게 됐다.

반면, 윤휴는 더운지 얼굴이 상당히 빨개졌다.

하지만, 내가 어찌해줄 방법은 없었다.

성현 체면에 부채질을 해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쉬지 않고 생각했습니다.”

“치열한 고민을 거쳤으니 결과가 나쁘지 않겠군.”

“소생은 사대부 외 다른 세력을 조선의 위정자로 용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당히 아쉬운 결론이로군. 하지만, 존중하겠네. 어찌 모든 이의 생각이 같을 수가 있겠는가. 다만, 자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책임져야 할 것이네.”

대충 미지근하게 반응하다가 마지막에 힘을 주었다.

그래서일까?

점차 윤휴의 열기가 강렬해졌다.

마주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불꽃 남자의 포스였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감께서는 뜻이 다릅니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듣던 중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군. 자네가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니 말일세. 혹시 자네도 사대부가 물러나면 조선의 역사가 무너질 것이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나?”

“되돌아봅니다. 진골 귀족이 지배하던 신라를 호족이 무너뜨리고 고려를 세웠습니다. 그 뒤 그들은 문벌 귀족이 되었고, 무신에게 몰락했습니다. 직후 권문세족이 고려를 통치했습니다. 그 지옥을 무너뜨린 게 우리의 선대였던 사대부였습니다.”

“참으로 적절한 예시로군. 위정자의 교체가 국운과 직결되는 건 아닐세.”

“무려 200년이었습니다. 전조 고려의 통치 세력과 비교할 때, 참으로 긴 시간 우리 사대부는 조선을 이끌어 왔습니다.”

“도무지 모르겠군. 해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대부라고 말하려는 건가?”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대부는 전조 고려의 무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쉬지 않는 혁신과 경장을 도모했기에 200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사대부도 누군가에게 밀려날 것입니다. 이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윤휴는 주먹까지 꽉 쥐고 있었다.

단단하고 거대한 바위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오직 사대부여야만 한다는 오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작금의 조선을 통치할 수 있는 건 사대부밖에 없습니다. 당장 통치 권력을 누군가에 넘긴다는 건 무책임한 행위에 불과합니다. 누구도 ‘지금’ 사대부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

“사대부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대부의 경론을 가진 이들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보다 통치를 고민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이를 내려놓는다는 건 반역입니다.”

꽉 쥐어진 윤휴의 두 손은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화를 참지 못하거나 흥분한 게 아니라 진심을 피력하며 발생한 현상일 것이다.

시선을 거두려고 할 때 서서히 그의 손이 펼쳐졌다.

조금 전까지 창백하던 손등에 피가 혈관을 통하여 붉어지는 게 보였다.

“대감. 이 싸움은 사대부가 이겨야겠습니다.”

“자네의 최종 결론이 그러한가?”

“최선을 다하는 사대부와 대립했다는 것 자체로 승려들은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다른 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결국, 자네는 내 의견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군.”

“끝에는 만나겠지요. 그저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윤휴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니 붕당이 대립하듯 대감께서도 최선을 다해서 이 싸움에 임해주십시오.”

나는 피식 웃었다.

수염을 몇 가닥 잡으면서 말했다.

“그리하지. 나 역시 최선을 다하겠네. 대신…….”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더는 상의하지 않겠네.”

“소생은 조선의 위정자가 사대부라는 걸 명확하게 할 뿐입니다.”

“그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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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의 신거주지에서 여러 인부가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진땀이 그들의 이마에서 턱까지 흘렀다.

턱까지 이른 땀줄기는 흔들리다가 바닥으로 향하거나 길을 찾아 목으로 흐르기도 했다.

그들의 손에는 거름화를 끝낸 분뇨가 담긴 통이 들려 있었다.

모두 악취를 참듯 인상을 쓰면서 발을 움직였다.

바라만 봐도 고됨이 느껴졌다.

그들 중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이가 있었다.

“조금도 흘리지 말게. 모두 풍년을 일궈낼 거름일세. 그러나 여기에 흘린다면 치워야 할 오물에 불과하다네. 그러니 신경을 집중해서 조심히 옮기게.”

양팔을 걷어 올리며 인부들을 진두지휘하는 이는 바로 유형원이었다.

그의 옷에는 분뇨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또한, 인부들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있지도 않았다.

악취를 느끼지 못할 리가 없는데 유형원은 평소와 다름이 없는 안색이었다.

유형원은 오른손을 움직여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러자 이마에는 분뇨의 흔적이 진하게 남았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바로 오만상을 찌푸릴 만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를 쳐다보고 있던 서얼 몇 명이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어찌 나를 찾아오셨는가.”

때마침 유형원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상당한 결례를 범할 뻔했을 정도였다.

이성의 영역이 아닌 본능의 영역에서 말이다.

분위기가 더 어색해지기 전에 한 명이 서둘러 나섰다.

“선생께 지혜를 빌리고자 왔습니다.”

“빌리지 말고 대가로 가져갈 생각은 없나?”

“예……?”

유형원은 재차 이마의 땀을 닦았다.

조선 최고의 천재로 추앙(推仰)받는 학자의 이마는 어느새 분뇨의 흔적이 지배했다.

서얼들의 눈동자는 거세게 흔들렸다.

“분뇨로 거름을 만들었네. 이를 옮기고 있다네. 혹시 알고 있는 바가 있는가?”

“……대강의 사정은 들었습니다.”

“최근 기호 지역에도 대량 공급해야 하기에 일손이 크게 부족한 상황일세.”

“…….”

“역관 변승업이 많은 재원을 투입하여 거들었네. 큰 도움이 되었으나, 원하는 이가 많으니 어찌 상황이 넉넉할 수만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나도 이렇게 나서게 되었네.”

아무리 아둔할지라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청난 악취를 동반하는 데다 한눈에 봐도 고된 일이었기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유형원은 빤히 쳐다보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소 큰 목소리로 들으라는 듯 말했다.

“양지를 차지할 수 있는 이는 태양이 아니라 길을 따라 걷는 걸세.”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행동에 따라서 축객령이 될 수도 있었다.

결국, 서얼들은 엉거주춤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평소 일이라고는 제대로 해보지 않은 이들이었기에 도움이 되기는 어려웠다.

통을 엎어버리는 게 십상이었고, 점차 인부들이 눈을 부라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씩씩거리면서 서얼들을 밀치며 통을 뺏기도 했다.

어쩌면 상당히 불쾌한 상황일지도 있었다.

하지만 서얼 중 누구도 딱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게다가 유형원이 버젓이 보고 있는데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십수 명의 서얼은 바닥에 쏟은 거름이나 치우게 되었다.

악취를 겨우 참으며 눈치껏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유형원이 몸을 낮추면서 말했다.

“승려가 사대부에게 해를 끼친 일로 도성이 시끄럽더군.”

“실은 그 일로 선생께 조언을 구하고자 왔습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세.”

“그렇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니, 자네들의 행동이 괴이하다는 걸세.”

“예……?”

유형원은 몸을 일으키며 허리를 폈다.

의아함이 가득한 서얼들의 시선이 대번에 꽂혔다.

“서자와 얼자가 왜 적자에게 힘이 되려고 하나?”

“선생……?”

이토록 노골적인 말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냥 말문을 막아버리는 차가운 일침이었다.

“첩을 들이니 자녀가 태어날 수밖에 없네. 그런데 그 많은 자녀에게 수저를 잘 나누려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닐세. 왜? 애초 자녀가 목적이 아니라, 적자들이 제 욕망을 채우고자 했을 뿐이니까. 그 과정에서 자네들이 태어났을 뿐일세. 가문의 역사를 이어갈 적자가 아닌 자녀는 그저 변수에 불과하니 말일세.”

“…….”

“그런데 적자들은 욕망을 참고 싶지는 않았네. 물론, 수저를 나눌 생각도 없고. 해서, 서얼이라는 계층이 탄생할 것에 불과하네.”

“선생. 어찌 그토록 참담한 말씀을 하십니까.”

“뭐가 참담한가? 이는 지극한 사실인데 어찌하여 참담한가?”

“…….”

“아직도 모르겠나? 자네들의 부친이 사대부라서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닐세. 조선이라서 고작 그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이네. 자네들은 이 나라 조선에서 고작 존재하는 게 전부라는 걸 어찌하여 회피하는가?”

존재를 짓밟힌다고 여겨질 정도로 신랄하고 묵직한 말이었다.

서얼들의 안색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확연하게 보일 정도로 균열이 일어났다.

반면, 유형원의 안색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

꼿꼿하게 편 허리는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한데, 자네들이 환속 승려와 고작 잡과를 두고 다투겠노라 말하고 있네. 승려가 사족의 몸에 손을 댄 사실에 분기탱천하고 있어. 이것이 괴이하지 않다면 대체 무엇이 괴이하겠는가.”

표면상으로 서얼은 분명히 사족과 같은 배를 탄 입장이었다.

정통 사대부가 아니기에 외곽에 있을 뿐, 그들이 통치하는 조선이기에 지금의 위치라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환속 승려가 잡과로 진출하고자 하는 마당에 이들의 선택지는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다.

그러나 유형원은 이런 사실을 아예 밀어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싶나? 입신양명하고 싶나? 고관대작이 되고 일국을 경영하고 싶나? 하면, 누구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나?”

“…….”

“대체 누가 자네들의 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나?”

“…….”

“적자가 아니었나? 그런데 왜 자네들이 적자의 길을 가고자 하나?”

쐐기를 박는 듯한 아니 심장에 무너뜨리는 말이 이어졌다.

“착각하지 말게. 조선은 자네들이 조정에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닐세.”

유형원의 입가에는 조소가 걸렸다.

“백성은 수백만에 그치고, 영토는 수천 리에 불과할지라도 위정자는 오직 혈통으로만 규정하는 사치스러운 나라가 바로 조선일세. 이 나라가 자네들의 나라라는 착각은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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