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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06화 (206/298)

206화 만세 만세 만만세(12)

상황을 회피하고자 수를 쓸 수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족보에도 없는 방법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움이나 어처구니없음을 이미 아득하게 넘어버렸다.

“되돌아보시오. 그는 무도한 행동을 자행하다가 결국 정치적 힘을 완벽하게 상실했소.”

현재 이일선은 그냥 숨만 쉬는 존재였다.

애초 호가호위로 기생이나 하던 인물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건 이러한데, 내가 너무 우스운 건 다른 것이었다.

이미 팔다리가 잘린 이일선을 기어이 등판시킬 수밖에 없는 뇌호의 초라함이었다.

한때 조선의 군왕 이연까지 짓눌렀던 압도적 존재감은 아예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 야망이 대단한 인물이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를 찾고자 했을 것이외다.”

“…….”

“그는 조선의 거상인 변승업과 손을 잡았고, 내게도 양국의 무역을 크게 도모해야 한다고 제안하였소. 여러 정황이 이러하니 어찌 배후가 아닐 수 있겠소?”

친절해도 너무 친절했다.

이일선을 아예 상추 쌈으로 싸서 나에게 내밀고 있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아~’ 하고 입을 벌릴 뻔했다.

됐고.

어쨌거나 뇌호는 지금 내민 상추쌈의 맛을 제법 자신하는 게 분명했다.

즉, 조선의 내정에 관여하며 ‘협잡’을 자행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고 여긴 것 같았다.

불안함과 초조함에 흔들리던 뇌호의 눈동자는 어느새 안정을 되찾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처지가 다급하여 방패를 꺼낼 수는 있다.

하지만 재활용도 안 될 폐기물을 방패로 사용하는 게 너무 놀라웠다.

“어떻소……?”

“…….”

나의 침묵에 조급증이 생겼을까?

그새 뇌호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담겼다.

이는 이대로 흥미로운 현상이었기에 즐기듯 쳐다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턱을 왼쪽으로 살짝 틀면서 말했다.

“이일선이 변승업과 만났다는 겁니까?”

“그렇소.”

그런 사실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문이 열리게 된다면 변승업의 말보다 청국 정사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뇌호는 이를 염두에 두고 변승업을 버린 것이다.

보편적인 상황이었다면 제대로 된 정치적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편적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뇌호는 변승업이 우리의 장기 말이라는 걸 아예 상상하지 못하니 이런 무리수를 던진 것이다.

미친 듯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그런데 소인이 이해가 안 됩니다. 일개 역관 따위가 조선의 불교계를 통제하여 이런 엄청난 일을 도모했다는 게 아닙니까.”

“……그건 조사하면 나오지 않겠소?”

“다시 말씀드려야겠습니까? 이 나라 조선이 고작 역관 따위에게 이토록 흔들렸다는 겁니까?”

“…….”

물론 아주 많이 흔들리긴 했다.

이일선이 곧 황제였고, 황제가 곧 이일선이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진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정성스레 싸줘도 받아먹을까 말까다.

백 보 양보하여 모르는 척 대충 억지로 받아먹으려고 해도 기승전결이라는 게 맞아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고작 ‘역관’이 단독으로 이뤄내기에는 일의 규모가 너무 크다.

이건 과거의 이일선일지라도 불가능한데, 심지어 현재는 아무런 권한도 없지 않은가.

오른손 손바닥을 탁자에 올리며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참으로 가당치도 않습니다. 그런 말을 믿을 만큼 소인과 우리 조정이 허술하게 보이십니까?”

“본부장. 과거 이일선은 조선 군영 개혁을 좌초시킬 뻔했소. 오늘의 일을 획책했다고 해도 능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오.”

“사안이 다릅니다. 기밀을 누설하여 기득권의 저항을 초래한 것과, 이토록 세밀하게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 어찌 같습니까?”

퇴로조차 주지 않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뇌호의 안색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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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아래 무릎에 올려진 뇌호의 왼손은 힘이 꽉 들어갔다.

할 수 있는 최고의 성의를 보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송시열은 전혀 수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해서, 나를 향한 의심을 전혀 거두지 않겠다는 것이오?”

“모든 정황과 증거가 대인을 향하고 있습니다.”

“허. 그래서요?”

“정녕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심려치 마시지요.”

“그게 문제요. 감히 나를 어찌하겠다는 그 발상 자체가 불쾌하다는 것이오. 그래. 그러면 이렇게 묻겠소. 너무 궁금하니 답해 보시오. 나의 개입 여부를 어찌 밝혀낼 것이오? 나를 신문이라도 할 것이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이 청국과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청사의 옷깃 하나 스칠 수 없다.

즉, 대국 사신으로서의 압도적 권위를 내세우며 송시열을 압박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 자체를 돌아올 수 없는 최악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적당하게 압박하였으니 다시 손을 내미는 게 현명했다.

“나는 고작 이런 작은 오해로 우리 사이가 멀어지는 원치 않소만?”

“…….”

“국문을 제외한 이일선의 신문을 묵인하겠소.”

이건 전례 없는 양보가 분명했다.

송시열도 이만하면 더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송시열의 입가에는 야릇한 조소가 걸렸다.

불쾌함이 치솟았고 대번에 미간이 일그러졌다.

“이일선이 배후일 수도 있겠지요. 한데, 소인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하. 기어이 일을 그르칠 생각이오?”

“법도대로 하는 겁니다.”

“좋소. 그러니 다시 묻지요. 감히 나를 어찌하겠다는 말이오?”

“대인. 소인은 그저 분명한 배후를 밝히고자 하는 겁니다.”

“본부장! 기어이 나와 척지겠다는 것이오?”

“소인이!”

송시열의 기세 역시 전과 달랐다.

눈빛부터 싸늘함이 가득 담겼다.

“대인과 손을 잡은 건 상호 간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양측의 의리를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다. 한데, 과연 소인만 이러하였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명확할 정도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손을 잡은 관계였다.

지금껏 기가 막힐 정도로 이해관계가 일치했기에 우호가 증진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너무나도 어긋났습니다. 무엇보다 대인의 변명이 너무나도 성의가 없습니다.”

“본부장!”

“소인은 간과하지 않을 겁니다.”

-쾅!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뇌호가 탁자를 거칠게 내려치며 싸늘하게 말했다.

“간과하지 않겠다?”

“그렇습니다.”

“본부장이야말로 큰 착각을 하고 있소.”

“착각이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그동안 사정을 봐준 것 역시 쌍방의 이익을 위함이었소. 한데, 감히 나를 겁박한다?”

“…….”

“오늘부터 번국의 운명을 알려주리다.”

대국 사신단의 위엄을 강렬하게 보였다.

그런데 송시열의 입가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기대하겠습니다.”

뇌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응수했다.

“이보시오. 싸울 상대를 봐가면서 수작을 부리시오.”

다시 현실을 말해줬다.

“나는 황상 폐하의 대리인이오.”

“다시 말하지요. 기대하겠습니다.”

실로 건방진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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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능은 애초 아무것도 의도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송시열의 강권으로 여기까지 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윤증과 서얼까지 대대적으로 결합했다.

이렇듯 모든 상황 불교의 정치적 상장을 추동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취할 수 있는 과실은 너무나도 달고 맛날 것이기에 뿌리칠 이유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선택지는 없다.

무조건 걸어야 할 길이었으니 욕심을 내는 게 합당했다.

하여, 조만간 최대 인원을 결집하여 정확하고 선명한 정치적 구호를 구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송시열이 무장 병력을 대동하여 나타났다.

너무나도 서슬 퍼런 기세였기에 좌중은 순식간에 경직됐다.

심지어 아무런 말도 없이 뇌호를 만나러 갔다.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도무지 초조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일이 묘하게 돌아가는군요.”

“혹시 들은 바가 있소?”

“송구합니다. 소생도 사부님의 행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윤증도 의아함을 숨기지 못한 채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송시열이 다시 모습을 보였다.

일제히 시선이 집중됐으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한 기색으로 다가왔다.

“전후 사정은 따져 묻지 않겠네.”

“대관절 무슨 일입니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법회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나?”

“소승이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겁니까?”

처능은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아예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법회의 배후가 확실한 사람이 어찌 이런 물음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송시열의 태도가 너무나도 진중했다.

처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청 태조의 사당을 건립하고자 하는 법회입니다. 이를 모르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알고 있네. 한데, 조금 전 내가 청사에게 아주 흥미로운 제보를 들었다네.”

“그 내용 소승도 무척이나 궁금하군요.”

“이번 행사에 이일선이 개입했다는 내용이었네.”

“예……?”

너무나도 저열한 이름 석 자가 언급됐다.

내용은 더 충격적이었다.

모든 이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송시열은 손을 움직여 무장 병력을 가리켰다.

“법회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네. 혹시라도 사대부와 충돌이 다시 발생할까 우려되어 병력을 배치한 것일세. 한데 아주 놀라운 제보를 들었으니, 나로서는 참으로 당황스럽군.”

“소승은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그건 조사해 보면 다 알겠지.”

“압송이라도 하실 겁니까?”

“아. 모든 일에서는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일세.”

송시열은 더 말하지 않겠다는 듯 등을 돌렸다.

아니, 병력을 향해서 외치고 있었다.

“일대를 철통같이 에워싸서 지키게. 누구도 접근해서는 아니 될 것이네.”

명분은 불미스러운 일의 방비와 구성원의 보호였다.

하지만, 본질은 감시와 고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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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호는 잔뜩 성난 표정으로 조선 왕과 마주했다.

번거롭게 조선 조정의 대신들과 더는 응대할 생각이 없었다.

아예 군왕을 짓눌러 조선의 불순한 움직임을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알현한 조선 왕의 안색이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도성 전체가 난리인데 이토록 평온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여기까지 온 이유를 잘 알 것인데 아무런 긴장감도 없다는 게 너무나도 괴이했다.

대면하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치솟았다.

그러나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하.”

“묻겠소. 이일선이 본국의 내정에 관여했소?”

이 문제를 바로 거론한다?

거두절미도 이런 거두절미가 없었다.

심지어 추궁하고 있지 않은가.

뇌호는 작금의 조선에서 청사의 위신이 얼마나 무너졌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눈치를 살피며 무마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한데 무마는커녕 조선 왕은 책망(責望)하고 있었다.

뇌호는 고소를 삼키며 일단 답변했다.

“소인이 파악하기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더 세밀하게 파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조선이 그를 신문할 수 있소?”

“…….”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소?”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불쾌함은 씻어 내려보낼 수 있으니 딱 여기서 멈추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소인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라오. 한데, 듣자니 공도 변승업을 만났다고 하오.”

“전하. 그 문제는 이미 충분히 해명했습니다.”

“그래요? 한데, 이 문제가 내게는 어찌 인지되는지 아시오?”

“…….”

“어차피 조선은 공을 해할 수 없으니 이 정도로 하고 마무리하자는 것이외다.”

“…….”

“내 말이 틀렸소?”

“아무래도 오해가 큰 듯합니다.”

상황이 생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조선 왕은 애초 이일선을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해당 사안을 청 사신단 전체로 확장할 의도를 숨기지도 않았다.

이건 너무나도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황급히 나서려고 했으나, 묵직하게 펄럭이는 용포가 말문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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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은 날카로운 눈으로 뇌호를 노려봤다.

그의 눈동자에는 갈등과 번뇌가 잔뜩 담겨 있었다.

끝내 그가 눈을 피할 때 송시열의 말이 떠올랐다.

-전하. 사람은 눈에 보이는 걸 가장 신뢰할 수밖에 없사옵니다.

-…….

-이일선의 처벌을 원하는 사대부의 상소는 귀로 들릴 뿐이옵니다. 그들은 당장 행동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니 말이옵니다.

-해서요?

-반면, 재조지은을 바라는 연좌와 법회는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사옵니다. 뇌호의 머리를 지배할 것이옵니다. 보이는 과실을 취하고 싶을 것이니 말이옵니다.

정확한 분석이었다.

실제로 뇌호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압도적 정치력을 구현할 수 있는 황제의 대리인이라는 위치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이는 도성 곳곳에서 청 태조 사당의 건립을 부르짖는 무리를 떨쳐 버리지 못한 것에서 비롯한 것이 분명했다.

“좋소. 백 보 양보해서 이일선이 배후라고 하지요. 하면, 이를 어찌 처리할 것이오?”

“조선에서 신문을 진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할 것입니다. 이후 모든 과정과 결과를 황상께 고하겠습니다.”

“결국,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구려.”

“허. 전하. 지금 황상을 능멸하는 겁니까.”

“사실을 말했을 뿐이외다.”

“어찌…….”

“됐소. 어차피 대국의 일이니 내가 어찌 입을 댈 수 있겠소? 해서, 나 역시 조선의 일을 알아서 처리할 것이오.”

“…….”

이연은 기괴하게 일그러진 뇌호의 얼굴을 즐기듯 쳐다봤다.

천천히 오른손을 뒤집었다.

그리고 일거에 꽉 쥐면서 말했다.

“청 태조의 사당을 운운한 무리를 모조리 벌할 것이오.”

“…….”

“해서 두 번 다시는 본국에서 그와 같은 말이 나오지 않게 할 것이외다.”

어떤 경우라도 이는 조선의 내정이 확실했다.

그런데 확장한다면 단순히 조선만의 내정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이미 사안은 사대부와 승려의 무력 충돌로 규정된 것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청 태조의 사당 건립과 새로운 재조지은이 언급되었다.

그러니 결국 이연의 말은, 청 태조 사당을 공론화하여 완벽하게 짓밟아버리겠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본국의 태조를 치워버리는 말에 뇌호의 안색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아니, 불쾌함이 강렬하게 담겨 있었다.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용납이라고 하셨소?”

“소인이 조선의 내정에 관여할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감히 대청의 태조를 운운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내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을 알게 되었소.”

마치 봄바람이 살랑이는듯한 목소리였다.

이연은 너무나도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이토록 거대한 일을 고작 역관에 불과한 이일선이 홀로 도모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소. 그렇지 않소? 조선에서 청 태조의 사당을 세우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니까 말이외다.”

“…….”

“한데, 공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셨소.”

“소인은 아니옵니다.”

“당연히 믿소. 그런데 이때 흥미로운 의견이 제시되었다는 것이외다.”

“흥미로운 의견이라고 하셨습니까. 무엇입니까.”

“황명이었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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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조선 왕의 광기가 골수에 미친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다.

지금은 모든 걸 동원하여 상대를 압박해야 할 때였다.

뇌호는 노기를 풍기며 조선 왕을 노려봤다.

“지금 감히 황명을 운운하셨습니까.”

“묻는 말에 답하시오. 황명이었냐고 했소.”

“전하. 소인이 물었습니다. 감히 제후가 대국의 황상을 능멸하는 겁니까?”

“내가…….”

아래부터 낮게 깔리는 목소리였다.

그 순간 조선 왕과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는 짙었다.

“물었다.”

“!!!”

뇌호는 당혹감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황제의 생각이냐고 물었다.”

“!!!”

지금 듣고 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화자가 조선 왕이라는 사실만 어렴풋이 인지할 뿐이었다.

그러나 몸에 깃든 대국 사신의 본능으로 오만한 웃음을 지었다.

“삼전도의 맹약을 기린 삼전도비가 떠오르는군요.”

병자호란 이후 청의 요구로 세운 비석을 삼전도비라고 했다.

청으로서는 승전비였으나 조선은 오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를 언급한 것이다.

양국의 위계를 명확하게 인지시킨 것이다.

그런데

“네놈의 대답에 따라서 지금 당장 삼전도의 비석을 부술 수도 있다.”

“!!!”

조선 왕의 답변은 광기 그 자체였다.

뇌호는 발악하듯 매섭게 말했다.

“선전포고로 간주하겠습니다.”

“얼마든지.”

“!!!”

“한데, 말이다. 네가 내 나라 조선에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지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묻지 않느냐. 해서,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이라도 넘을 것인가?”

“무, 무슨…….”

“장담하지. 너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왜?”

조선 왕의 입꼬리가 하늘까지 올라갔다.

뇌호는 불안함이 거세게 엄습해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평생 이런 칙칙한 습기는 경험하지 못했다.

“전운이 감돌 때 우리는 청 태조의 사당을 건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

“네놈은 외교 실패의 책임을 지고 목이 날아가겠지.”

확신할 수 있었다.

조선 왕은 그냥 아예 미친 게 분명했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조선 왕의 겁박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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