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한 명 그리고 백성(2)
역경의 세월을 버텨온 훈련대장으로서도 이런 현상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더워야 할 계절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추위였다.
심지어 한두 곳이 아니라 광범위한 지역에 일제히 시작됐다.
겨울을 준비하지 않았던 백성이었기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지엄한 어명으로 땔감의 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았더라도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추수를 기다리며 버텨야 할 계절의 추위는 굶주림을 태동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훈련도감의 보급이나 방한에는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안도할 일이 아니었다.
조선 최고의 정예군인 훈련도감의 수장으로 하루아침에 냉 지옥으로 변한 세상을 살펴야 했다.
비록 지금 맡은 역할이 평양부 근처에서 석탄을 캐는 것이었으나 백성을 바라봐야 했다.
“작금의 조선에서 훈련도감의 역할은 외세의 침략을 방비하는 게 아니라, 하늘의 횡포로부터 한 명의 백성이라도 구하는 것일 터.”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
일찍이 내려진 군왕의 어명도 이러했다.
-편의종사권을 내리겠소.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고려하지 말고 집행하시오.
누구의 동의도 필요 없는 권한이었다.
엄밀히 따진다면 편의종사권은 전시에도 논쟁의 불씨가 있었다.
그러나 절대 과한 결정은 아니었다.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하늘의 횡포에 수천 명의 정예군을 통제하는 지휘관으로서의 권한을 능동적으로 보장한 것이니 말이다.
즉, 말 그대로 최고의 신뢰에서 비롯한 최선의 수였다.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추위 자체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땔감이나 방한 대책은 조정의 지침대로 관청이 수행하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무장으로 살아왔기에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파악했다.
바로 식량의 확보였다.
맹렬한 추위에도 사시사철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은 강과 바다였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이완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대동강이었다.
“…….”
이미 많은 백성이 어업을 준비하거나 시도하고 있었다.
추위를 밀어내고자 곳곳에서 모닥불을 피워둔 상태였다.
땔감을 아끼지는 않는 백성의 모습이 참으로 낯설었으나 안도감이 치솟았다.
손을 녹이는 백성, 그물을 준비하는 백성 등 제 할 일을 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만일, 매서운 추위만 아니라면 일상이라고 여겨도 될 듯했다.
그래서일까.
이완의 입가에는 자연스레 포근한 미소가 감돌았다.
모처럼 백성의 생기를 느끼니 마음도 편해졌다.
“영감.”
부관이 다가왔다.
“명하신 대로 어업에 능한 병졸을 모두 데려왔습니다.”
“하면, 모두 백성을 거들도록 배치하게.”
“그리하겠습니다.”
잠시 상념에 빠졌던 이완의 귀로 큰 소란이 들렸다.
오랜만에 느낀 평화로움이 취했던 터라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
서너 명이 타고 그물을 던지던 작은 어선이 전복됐다.
문제는 어민이 물속에서 허둥지둥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완은 본능적으로 외쳤다.
“당장 저들을 구하라!”
그 즉시 조선 최고의 강군이 움직였다.
서너 명의 어민을 구하고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일사불란했다.
물속으로 뛰어들어 어민을 구하는 병졸.
다른 어선으로 다가간 병졸.
결과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어민을 구했다.
천운이 아니었다.
철저한 훈련이 만들어 낸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이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수, 숨을 쉬지 않습니다.”
“이미 물을 많이 먹었습니다.”
어민의 상태가 최악이었다.
가뜩이나 기승을 부리는 추위에 물속에서 허우적거린 탓이었다.
하지만 이완은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라.”
간결하고 확고한 명령이었다.
그 즉시 병졸들은 어민의 목을 뒤로 젖혔다.
윗옷을 찢듯이 벗겼다.
신체 건장한 병졸은 오른손을 아래로, 왼손을 위로 하여 깍지를 끼었다.
그렇게 병자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심폐 소생술을 직접 시행하는 병졸들이 외쳤고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주변의 병졸들도 화답하듯 함께 했다.
수십 번을 반복한 뒤 다른 병졸로 교체하여 심폐 소생술을 이어갔다.
그리고
“콜록…… 콜록…….”
“콜록…… 콜록…….”
다시 숨을 쉬었다.
모두 눈물바다였다.
끌어안으며 울었다.
환호성을 질렀다.
이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죽을 목숨을 구했다.
무려 4명이었다.
이완은 하늘을 바라보며 홀로 말했다.
“선대왕께서 이를 보고 계신다면 참으로 기뻐하실 것이다.”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훈련도감의 사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무릇 백성을 살리는 일은 가장 위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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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기근 그리고 역병.
세 가지 재앙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건 없었다.
방한 대책을 수립해도 아사와 역병이 위세를 부릴 것이다.
구휼미를 확보해도 추위와 역병이 강렬했다.
역병을 막아도 추위와 굶주림이 남아 있다.
그러니 세 가지 재앙을 모두 방비해야 했다.
다만, 현실적인 요건으로 조정의 대책은 방한과 기근 대책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처방을 마련했소.”
허목이 깜짝 발표했다.
어찌나 열기로 가득한지, 찰나 윤휴가 말했다고 착각할 뻔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봤다.
“정말이오?”
“그렇소.”
“믿을 수 없소.”
“본부장. 지금 나와 농이라도 하자는 것이오?”
“설마 지금 내가 이 엄중한 시기에 농이나 하겠소? 정말 믿기 어려워서 하는 말이외다.”
정말이었다.
가장 난도가 높은 문제를 갑자기 해결했다고 하니 어찌 쉽사리 믿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허목과 위생국이 현장에서 병자를 직접 대면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여 군현에서 제대로 된 장계가 올라와서 서류 검증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대뜸 해결 방안을 만들었다고 하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허목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과연 사부님이십니다. 기어이 해결책을 찾으셨군요.”
“선생. 과연 훌륭하오.”
“이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외다.”
……
“어서 말해보시오.”
다들 허목의 위대함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됐다.
물론 나의 머쓱함은 전혀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기에 재차 물었다.
“허 국장. 무슨 수로 역병을 제압할 수 있소?”
“말로 설명할 사안이 아니외다.”
“뭐요……?”
“다양한 약재를 사용하여 병자에게 직접 처방해야 하오.”
“해서요……?”
“위생국 의원을 파견한다면 능히 처리할 수 있소.”
“…….”
“시일을 더 끌 필요가 없소.”
“…….”
그러니까, 가서 뭐라도 할 테니 일단 보내달라는 의미였다.
너무 당당해서 나도 모르게 가자미눈을 하고야 말았다.
그나저나 세상이 어지러우니 이런 일도 다 겪는구나 싶었다.
대쪽 같은 허목이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도 황당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정객이 이런 낮은 수를 쓰는 것도 놀라웠다.
심지어 더 충격적인 것도 있었다.
좌우를 흘겨보니 모두 내 시선을 피하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조금 전 밑도 끝도 없이 허목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니까 모두 작당하고 이 판에 뛰어든 것이었다.
“…….”
이 놀라운 상황에 잠시라도 생각 정리를 해보려다가 말았다.
이럴 때는 그냥 물어보는 게 옳았다.
“왜 이렇게까지 하오?”
“본부장. 격리를 반대하지 않겠소. 모두 따를 것이외다. 그러니 위생국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해주시오.”
역병이 창궐하면 조정에서 의원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번에 이리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게 존재했다.
“의원을 보내지 않은 건 도성을 방비하기 위함이외다.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오.”
이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당연하게도 군왕과 위정자가 거주하는 도성의 방비가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더 나아가 유민이 발생하여 도성으로 달려오기라도 한다면 위생국은 총동원되어야만 했다.
이러한데 위생국 의원을 군현으로 파견한다는 건 너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만일, 도성이 역병에 노출되면 조선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간 조정은 의술 교육을 크게 육성했소. 한데, 군현의 일도 알아서 감당할 수 없다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게 아니겠소?”
변형된 방법을 가장 쉽게 제압하는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원론을 앞세우는 것이었다.
사실 서원과 정면충돌을 감내하면서도 의술 교육을 강행한 건 다 이럴 때를 위해서였다.
허목도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 말에 답하지 않고 제 논리를 펼쳤다.
“내가 어찌 도성의 방비를 등한시하겠소? 그런데도 이리 나선 이유는 역병과 직접 만나야 하기 때문이외다.”
전과 같은 이유였다.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허목은 포기하지 않았다.
“기근은 구휼미를 확보하여 대비할 수 있소. 추위는 방한 대책으로 감당할 수 있소. 한데, 역병은 어찌 방비하오?”
“그래서 위생을 강조하는 것이오.”
“한계가 있다는 걸 알지 않소이까. 아무리 위생을 중시하더라도 역병은 창궐하오. 결국, 이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역병과 싸운 의원이 필요하오. 본부장. 우리 위생국은 기록을 확보하여 내일의 역병을 대비해야 책임이 있소. 그러한데 이렇게 쳐다만 본다면 어찌 존재의 의미가 있겠소이까.”
재난(災難)의 수위가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면서 번뇌에 휩싸이는 순간이 많아졌다.
지금도 그랬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들이야말로 조선의 중추였다.
그러니 나보다 더 조선이라는 나라를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토록 간절하게 나서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갑자기, 너무나도 갑자기 말이다.
“기어이 나서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본부장은 한 명이 아니라 백성을 살려야 한다고 했소. 이를 기억하시오?”
“물론이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한 명을 살리는 게 백성을 구하는 길이외다.”
결국 철학의 문제였다.
나의 고민을 느꼈을까?
허목의 간곡한 말이 이어졌다.
“어찌 모든 군현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소? 경기도와 평양 인근이라도 의원을 보낼 수 있다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소.”
“…….”
“본부장.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봅시다.”
이럴 때마다 고민됐다.
나는 아직도 송시열의 몸을 차지하는 사람에 불과할까?
아직도 나는 100만 명이 죽음을 90만 명으로 마무리하면 된다는 통계학적 접근을 하는 것일까?
반면, 내 앞에서 간곡하게 말하는 허목은 단 한 명을 위하고자 하는 것일까?
“재원은 비축하되 역량은 아낌없이 사용해야 하지 않겠소?”
더는 반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이로써 총력전에 동원되는 건 재화(財貨)만이 아니라 노동력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이 판단이 어찌 귀결될지는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나보다는 더 조선인이 분명한 이 시절 위정자들의 판단을 신뢰할 뿐이었다.
또, 어쩌면 나는 아직도 비극을 수치화하거나 기록화하는 데 집중할지도 모른다.
하여, 내가 나를 객관화할 수 없기에, 한 명을 바라볼 때는 이들의 시선을 따라는 게 옳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것이 옳은 길이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