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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26화 (226/298)

226화 하늘이여, 땅이여(1)

징글징글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만백성이 얼어 죽고 있는데 갑자기 무슨 놈의 홍수란 말인가.

심지어 삼남 지역을 아예 관통했다고 한다.

마왕 경신 대기근은 강림도 안 했는데 너무 강렬했다.

도무지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지친 기색이 가득한 허적이 상황을 하나씩 언급했다.

“전라도에서는 3일간 쉬지 않고 폭우가 쏟아졌소. 도랑과 냇가가 넘치고 평지에 내가 생겼으며 논밭이 물에 잠겼소.”

3이라고 했다.

1과 2 뒤에 등장하는 숫자 3이 아니었다.

3일이라고 했다.

1일, 2일 다음에 이어지는 3일이 아니었다.

72시간 동안 폭우가 내렸다.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면 어지간한 현대 국가도 감당하기 어렵다.

실제로 대한민국도 태풍이나 장마가 3일간 집중적으로 내리면 허우적거렸다.

물난리로 사람들이 동동 떠다닌 사례도 셀 수 없다.

그 정도 폭우가 작금의 조선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니까 바꿔 말해서, 전라도라는 행정구역이 물에 잠겼거나 떠밀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상도도 큰 차이가 없소. 냇가가 넘치고 육지가 바다를 이루었소.”

“…….”

“그나마 충청도는 사정이 덜하지만 어디까지나 전라도와 경상도에 비교할 때 그렇다는 것에 불과하오. 사람과 소가 낙뢰로 죽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참혹함을 입에 담을 수가 없소.”

그리고 폭우가 반드시 동반하는 게 있었다.

입술을 세게 깨물며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곳곳에서 산사태가 잦을 수밖에 없을 것이외다.”

“현재 파악한 것만 해도 크고 작은 산사태가 많소. 갑자기 산이 무너져 민가를 덮쳐 일가(一家)를 모두 집어삼켰다는 사례는 셀 수가 없소.”

“…….”

문서를 말로 옮긴 것이었다.

이를 듣기만 했는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정신이 흐릿해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우리가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이 있소. 절대 간과해서는 아니 될 사안이외다.”

“무엇이오……?”

“서얼이 크게 결합하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파발의 공백이 모두 메꿔진 것이 아니외다.”

인력의 공백이 발생하여 서얼이 투입됐다.

그런데 이건 단순하게 파업이 발생하자 대체 인력을 구한 수준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공백이 발생한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역병이었다.

서얼이라고 하여 역병에서 무조건 안전할 수는 없었다.

그저 목숨을 걸고 파발을 수행할 뿐이었다.

그러니 전처럼 정보의 전달과 취합이 부드러울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허적은 이를 다시 각인시킨 것이다.

“호판. 그 말은…….”

“크게 두 가지요. 하나는 아직 군현의 피해가 모두 장계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외다.”

지금까지 파악된 것만 해도 엄청났다.

그런데 장계의 수는 턱없이 적다.

즉, 재앙에 허덕이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담은 글자가 중대본을 괴롭히는 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한데, 허적은 분명 두 가지라고 했다.

“나머지 하나는 무엇이오?”

“파발이 전보다 속도가 나지 않소. 즉, 지금 중대본으로 올라온 장계의 내용은 이미 시간이 제법 지난 것이라는 말이외다. 장계에는 살아 있을 백성이 이미 지금은 죽었을지도 모르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백성은 끔찍하고 항거할 수 없는 그대로 노출되어 엄청난 피해를 받았을 것이오.”

“…….”

“하…….”

긴 한숨이 중대본을 집어삼켰다.

그 묵직함이 강렬한 생명력을 가졌다.

그리고 쥐어짜는 듯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직 장계가 취합된 것이 아니기에 정확한 피해 규모를 알 수는 없소. 그러나 전례 없는 상황이라는 건 분명하오.”

“…….”

“모두 알겠지만 말하오. 대처 방안은 없소.”

호조판서 허적은 너무나도 단호했다.

그 말에 불평불만이나 아쉬움을 표출할 사람은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버티는 게 유일하오. 버텨야 하오.”

홍수는 평소 치수 사업으로 대비하는 게 전부다.

이미 발생했으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구제(救濟)만을 생각해야 할 때였다.

나는 양손에 힘을 꽉 주며 좌우를 돌아봤다.

모두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 상태였다.

이는 작금의 고통을 겨우 집어삼켜서 참은 탓이었다.

“분명 버거운 상황이오. 암담한 현실이오. 그러나 이를 대비하고자 존재하는 게 바로 중대본이외다.”

“본부장.”

허목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나마 진정하며 논의를 이어가려던 내 심장도 덜컹 내려앉았다.

그러니까 잔뜩 일그러진 허목의 얼굴과 땅을 뚫을 것 같은 목소리를 들으니 잠시 잊은 걸 떠올렸다.

홍수는……

“……홍수는 위생 최대의 적이오.”

위생 최대의 적이었다.

이는 바꿔 말해서

“역병이 걷잡을 수 없이 창궐할 것이외다.”

전방위적인 역병 창궐을 의미했다.

압도적인 공포가 우리를 옥죄었다.

“하늘이 조선을 버렸소.”

“어찌 이렇게 박할 수가 있소.”

“숨 쉴 틈도 주지 않으니 어찌 대비할 수가 있소이까.”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를 탓하거나 분위기를 환기할 수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겨우 다잡은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겨내어 나가고자 하다가도 흔들리고, 붙잡고 버티고자 해도 무너졌다.

되돌아보면 중대본이 수립되기 전후만 하더라도 국지적인 자연재해였다.

버겁기는 했으나 해볼 만했다.

어려움은 있었으나 여기까지 잘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만큼 재앙의 위력은 압도적이었다.

조선 전역에서 추위가 발생하더니 밑도 끝도 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그렇게 강이 범람했다.

사실 우리는 방한 대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도 버거웠다.

여기에 홍수를 감당해야 하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역병까지 대비해야 했다.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누구를 잡고 하소연할 기력이라도 아껴야 할 상황이었다.

“본부장.”

허목이 다시 나를 불렀다.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됐다.

나는 듣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내일을 운운할 때가 아니었다.

당장 지금 모두 죽게 생겼다.

“위생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역병을 제압하시오.”

“그리하겠소.”

“허 국장…….”

한마디를 더 보탰다.

“부디 감당해주시오.”

“물론이외다.”

허적을 바라봤다.

“조정에서도 구휼미를 내려야 할 것이오.”

“응당 그럴 것이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간 꾸준하게 추진해온 국고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

그러니까 고통받고 절규하며 죽어가는 백성들에게 뭐라도 내릴 수는 있었다.

고작 이 정도가 작금의 조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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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사방이 물에 잠긴 세상이었으나 그나마 피해가 덜한 군현도 있었다.

하늘이 도왔을까?

아니면, 잠시 귀찮았을까?

어쩌면 변덕일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엄청난 수해(水害)로부터 피했다는 건 다행이었다.

폭우는 참으로 기괴했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걸 앗아갔는데 불필요한 건 강렬하게 남겼다.

바로 축축한 날씨였다.

자연스레 모든 것이 불결해졌다.

-빡빡빡!

-빡빡빡!

……

-빡빡빡!

두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에 옹기종기 모인 백성이 있었다.

그들은 온몸이 가려웠다.

개운하게 씻기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가능할 수가 없었다.

종일 긁어도 가려웠다.

그래도 긁었다.

그래서 많은 백성의 팔 아니 전신은 손톱이 만든 자국에 피가 묻어났다.

그 자리에는 축축한 공기와 물기가 잔뜩 머금어졌다.

미세한 통증이 몸 여기저기에서 느껴졌다.

끝내 참지 못한 백성 한 명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평생 더럽게 살았어.”

그의 외침에 모두 쳐다보며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손은 멈추지 않고 여기저기 긁고 있었다.

“위생인지 뭔지 하더니 계속 가려웠어. 자네들은 아닌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 나도 그랬어.”

“나도.”

“나도 그렇지.”

여기저기서 호응이 이어졌다.

“좋은지 안 좋은지는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 잘 씻고 다니면 역병에 안 걸린다고 했네. 하지만 우리 같은 놈들이 어찌 허구한 날 씻어?”

“그럴 시간도 없고, 땔감도 귀하지.”

“암. 아무리 전보다 땔감을 구하기 쉬워도 겨울나기 준비하기도 부족해.”

“고된 몸에 부족한 땔감으로 씻으라고 하면 그게 되나.”

“그러니까 보게나. 폭우 한 번 내리니까 사람이 더 괴롭지 않나.”

사방에서 호응이 터져 나왔다.

“윗분들이나 할 수 있는 걸 우리한테 강요하는 게 말이 되나?”

“내 말이 그 말일세. 이럴 때 쌀이라도 내리면 말도 안 하겠네.”

“흥! 바랄 걸 바라게! 이 난리가 났는데 우리한테 뭐라도 내리겠나?”

“그건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서 살아야 해.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해.”

“자네 말이 옳아.”

관청에 대해서 호의적인 내용은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온몸을 긁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절대 ‘위생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폭우가 만들어 낸 복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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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며칠 전만 해도 논밭이 있던 곳이었다.

논과 논 사이, 밭과 밭 사이의 도랑은 늘 잔잔하게 물이 흘렀다.

물론, 종종 지독한 가뭄으로 물이 흔적을 감추기도 했다.

하지만, 근처 저수지 따위가 있었기에 어려웠으나 기어이 위기를 극복했다.

늘 그렇게 버텼고, 삶을 이어왔다.

고통스럽고 힘들었으나 살아올 수 있었다.

되돌아보면 확실했다.

어떻게든 ‘물’이 있었기에 생존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랬다.

그랬는데

“…….”

“…….”

“…….”

“…….”

“…….”

“…….”

도랑이 너무나도 거대해졌다.

어린아이가 힘껏 뛰면 넘을 수 있던 도랑은 거대한 강이 되었다.

지옥을 가져오던 가뭄을 버티게 해주었던 저수지는 이제 바다였다.

“…….”

“…….”

“…….”

“…….”

“…….”

“…….”

“…….”

“…….”

논과 밭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친 몸을 쉬게 했던 집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두 발로 걸었던 공간은 발을 디디기도 어려울 정도로 급격하게 줄었다.

오랜 세월 대를 이어 이 땅을 지켜왔던 백성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강’과 ‘바다’를 바라만 봤다.

한때 두 발이 거닐었던 사람의 공간을 넋을 놓고 쳐다만 봤다.

“…….”

“…….”

“…….”

“…….”

“…….”

“…….”

“…….”

“…….”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꺼낼 힘이 없었다.

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지를 부리는 건 사치였다.

그리고 누구도 삶을 그리지 않았다.

지금 내일을 꿈꾸는 건 미친 짓이었다.

오늘이 너무나도 지옥이었으니 말이다.

폭우가 만든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은 사람의 공간만을 박탈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언어를 뺏었다.

사람의 의지를 먹어 치웠다.

사람의 희망을 소멸시켰다.

폭우는 백성의 분노도 가져갔다.

많은 백성 중 누구도 관리나 사대부를 욕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이유가 참으로 우스웠다.

모두 같은 처지였기에 그러했다.

압도적인 폭우의 위력은 참으로 공평했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사람은 그저 두 발로 서 있기에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폭우가 백성에게 모든 걸 박탈‘만’ 한 건 아니었다.

눈물을 허락했고, 죽음도 내렸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건 아니었다.

죽거나 눈물을 흘리면 되는 것이다.

이는 허락되었으니 말이다.

이렇듯 폭우는 멈췄으나 존재는 영원히 남았다.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의 열기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하늘은 지독할 정도로 맑았다.

무언가를 해결한 듯 기분 좋아 해맑아 보일 정도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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