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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31화 (231/298)

231화 무엇을 위하여(1)

허목은 중대본, 아니, 조선 위생의 총책임자였다.

군현의 수령으로서는 이토록 막중한 위치에 있는 인사가 여기까지 직접 온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하니 허목 또한, 현령이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도 자신이 와야만 했기에 거동한 것이었다.

화들짝 놀란 현령을 보며 허목은 송시열과 나눈 대화를 짧게 상기했다.

-허 국장. 농이 과하시오.

-농이 아니오만?

-중앙에서 전체를 관장하셔야 하오.

-일찍이 본부장도 삭주로 가셨소만.

-그때와 사정이 다르오.

-다르지요. 이미 주상께서 경국대전을 불태워도 된다는 의지를 밝히셨으니까.

-허.

-나는 가야겠소.

-대체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오?

-경험하지 못한 사태요. 이를 직접 보고 판단하지 않는 이상 위생국의 길을 설정할 수 없소.

-…….

-반대해도 갈 것이오. 직접 알현을 청할 것이니까.

-됐소. 몸 성히 다녀오시오.

살릴 수 있는 백성은 기어이 살릴 것이다.

그러나 오직 병자를 살피기 위해서만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역병의 치료나 위생의 관철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이고 직관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위생국의 새로운 방침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위생국의 방책은 지극히 지엽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여태껏 발생한 기근 등이 국지적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또, 그래서 버거웠으나 어떻게든 방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재앙의 강도와 범위가 아예 달라졌다.

그렇다면 발 빠르게 새로이 설정하는 게 옳았다.

여차하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군현까지 직접 내려온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

허목은 관청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곧장 물음을 던졌다.

“듣자니 위생을 집행하고자 백성을 설득했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저항하는 바람이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저항? 위생은 귀찮지만, 수령의 말을 거역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일도 아닐세. 혹시 백성이 그렇게 나온 이유가 무엇인가?”

“위생의 시행 이후 오히려 더 간지러워졌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청결을 유지하던 사람이 불결한 공간과 만나면 몸이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위생의 정도가 척도 그 자체였다.

또, 그래서 허목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해서, 어찌하였나?”

“씻지 않으면 가려운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들었습니다. 한데, 백성들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설득이 어려웠겠군.”

“송구합니다.”

현령은 멋쩍은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렸다.

교화하지 않고 ‘약간’의 겁박을 한 건 사실이었다.

이는 중대본의 방침을 어기는 것이기도 했다.

허목은 대충 사정을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 사달이 난 군현에서 백성을 매번 설득할 수는 없다.

관의 권한을 동원하여 강제로라도 일을 집행하는 게 옳았다.

“교화는 평시에 하는 것일세. 전시에는 강압적으로라도 통제해야지.”

뜻밖의 답변에 현령의 표정은 다소 밝아졌다.

어떤 식이라도 문책당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대처는 그 정도가 전부였나?”

“예?”

“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다.

거물의 행동에 현령은 진땀을 흘리며 허둥거렸다.

“이보게.”

“예, 예. 선생.”

“결국, 백성이 머무는 공간이 불결하다는 걸 의미하지 않은가. 이러한데 백 번을 씻어도 무엇이 바뀌겠는가. 사람의 몸이 청결하더라도 몸을 쉬는 공간이 그렇지 않으면 가려움은 해결될 수가 없네. 어찌 이를 간과한 것인가.”

대처의 미흡함을 조목조목 지적하자 현령은 버벅거렸다.

그러나 점차 가늘어지는 허목의 눈을 확인하더니 황급히 말을 꺼냈다.

“폭우와 홍수로 멀쩡한 곳이 없었습니다.”

“알고 있네. 한데, 역병이 창궐하여 고을을 집어삼키는 것보다 사전에 잘 대처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소인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시일을 끌 생각이 아닐세.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우선 청결한 거처부터 마련하게. 몸을 깨끗하게 씻는 건 그 이후의 일일세. 또한, 식수도 잘 관리하여…….”

엄청난 습기를 동반한 폭우와 홍수는 위생 최대의 적이다.

이를 챙기는 건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지만, 안일하게 대처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

그러니 허목은 장황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곧장 위생을 집행하게. 괜한 소란을 일으키는 이는 내치게.”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생…….”

현령이 눈치를 살폈다.

왜 주저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허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당분간 구휼미는 어려울 것이네.”

“휴. 그렇습니까?”

아무리 청결을 유지하더라도 굶주림이 이어지면 결국, 역병이 창궐할 수밖에 없다.

현령의 얼굴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구황을 집행할 것이네.”

폭우가 집어삼키고 홍수의 여파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어디서 무엇을 구하여 구황을 펼치겠는가.

현령은 답답했다.

“내가 알아서 하겠네.”

“예?”

“구황은 내가 책임질 것이니 자네는 위생에 전념하게.”

너무나도 의아하였으나 허목은 참으로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의심할 이유는 없다.

조선에서 구황과 관련하여 허목보다 뛰어난 이는 없으니 말이다.

하여, 현령은 크게 반색하며 신뢰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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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령에게 호언장담하긴 했으나, 수마(水魔)가 강림했던 지역에서 구황을 펼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인근의 산만 하더라도 나무가 다 뿌리 뽑힌 실정이었다.

또, 언제 다시 산사태가 발생할지 모르기에 쉽사리 접근하여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애초 허목은 기본적인 구황 정책을 집행할 생각은 없었다.

곧장 향리 한 명을 불렀다.

“근처 변승업의 상단이 운영하는 목장이 있을 것이네.”

“음. 선생. 그곳을 근처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거리가 있긴 합니다.”

“사람을 보내게.”

향리는 조금 당황했다.

조선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어찌 이렇게 귀가 막혔을까?

변승업의 목장은 절대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단 사람을 보내라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대화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선생. 정말입니까?”

“농을 하는 게 아닐세.”

“소인이 실언했습니다. 하면, 무엇을 전하면 되겠습니까.”

“내 이름을 대면 알아서 준비할 것이네.”

“선생. 소인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

“예?”

조금 전, 자기 말을 떠올린 허목은 잠시 멋쩍게 웃고 말았다.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송시열처럼 행동하고 말았다.

이를 인지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황급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목도 괜히 긁어내듯 헛기침했다.

“가거든 기민을 구휼할 방책을 마련하라고 하게. 그러면 일이 진행될 것이네.”

“목장이라고 하면 소나 말 따위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기껏 여물만 있을 것인데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어찌 사람이 여물을 먹겠는가. 소나 돼지를 도살하여 먹어야지. 안 그런가?”

“그, 그렇습니까?”

“백성이 굶는데 가축만 살아서 뭐 하겠나? 속히 서두르게.”

허목은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했다.

이대로 더 굶으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또한, 고기라는 건 오래 굶주렸을 때 먹으면 오히려 탈이 난다.

먹으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그리하겠습니다. 한데, 선생.”

“왜 그러는가?”

“아무래도 소인이 전해드리는 게 옳을 듯해서 말입니다.”

“바쁘니 정확하고 빠르게 말하게.”

“위생의 집행이 여의찮은 상황입니다.”

“그 일은 내가 현령에게 직접 지시했네. 한데, 여의치가 않다? 무슨 말인가?”

“불만이 가득한 백성들을 통제하는 것만 해도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수해로 시설까지 열악하여 무엇 하나 쉽지 않습니다.”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예……?”

허목은 헛웃음을 지으며 날카롭게 말했다.

“나는 그 시설을 먼저 세우라고 했네. 한데, 시설이 열악하다고 불평을 쏟아내는 것인가? 그 시간에 보수하고 세워야 하거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

“아.”

“다시 말하겠네.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백성을 동원하여 청결한 공간부터 만들게. 또한, 씻을 수 있도록 준비와 옷 따위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네. 이리하지 않으면 폭우와 홍수가 스친 이곳은 필시 역병이 창궐할 것이니까.”

“소, 송구합니다. 소인이 곧장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새기게. 다 풍족하게 할 수 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네.”

한 명의 백성을 더 살려야 한다.

그런데 역병이 창궐할 위험이 강렬하게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때는 한 명이 아니라 모든 백성을 살릴 방법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게 옳다.

소수의 불편함을 다 이해하며 걸어갈 때가 아니었다.

또한, 과정에서 불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언제라도 치워야 했다.

“무조건 해야 할 것이네. 알겠나?”

갑자기 싸늘해진 허목의 태도에 향리는 사색이 됐다.

하지만 감히 말을 보태지 못하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향리가 물러나자 허목은 한숨을 쉬었다.

파악한 바에 의하면 그나마 멀쩡한 군현이었다.

그런데도 이토록 상황이 열악하다면 다른 곳은 어떠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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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이 눈을 부라리며 강행을 명했다.

그런데 일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진행되는 건 아니었다.

더욱이 위생 자체에 대해서 회의감을 가진 백성에게 위생 시설을 세우고, 청결한 공간을 마련토록 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백성에게 권하는 게 아니라 명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 정말 화가 나는군.”

“어처구니가 없어.”

“평생 이런 난리 통에 붙잡혀서 일하는 건 또 처음일세.”

“내가 논밭을 되살리고, 물길을 바로 잡는 일이었으면 말도 안 해.”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하.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는군.”

당장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 위생 시설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이를 동의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끼니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하나 제대로 잘 이뤄지지 않았는데 ‘노역’에 동원되었다.

백성의 불평과 불만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적당히 하게.”

향리 중 한 명이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백성들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지 마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씀입니까.”

“힘들다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들, 너무 과해.”

“뭐가 과합니까? 이 난리가 났는데도 노역에 동원하는 관청이 과하지요.”

“위생…… 됐네. 잘 듣게. 하늘에서 폭우가 내렸고, 홍수가 났어. 그런데 여태껏 경험한 폭우와는 아예 사정이 달라. 삼남 지역 전체가 물에 잠겼고, 양반들도 죽을 정도로 험난한 시절일세. 한데, 자네들이 이렇게 불만을 대놓고 표출하다가는 무슨 사달이 날지 장담할 수 없네.”

“허. 지금 우리한테 겁박하는 겁니까?”

“겁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걸세.”

분위기는 흉악해졌다.

여차하면 충돌이 발생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됐습니다. 하면, 소인들은 이 일을 그만두겠습니다.”

“참으로 가관이군.”

“뭐요?!”

백성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도구를 집어 던졌다.

당장이라도 향리의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하늘의 내린 난세는 이를 가능하게 했다.

딱 그때였다.

“멈추게. 아니, 다시 들게.”

중후한 목소리가 울렸다.

싸늘한 눈빛과 딱딱한 안색을 한 허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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