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개혁과 혁명 사이(3)
진실로 나는 오늘만으로도 버겁다.
내게 오늘이라는 시간은 두 가지 의미였다.
내일을 위한 디딤돌이자 견뎌내야 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유형원은 쉬지 않고 내일을 바라본다.
내일로 나아가면서 오늘을 기어이 소화한다.
어쩌면 나와 유형원이라는 개인의 역량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걸지도 모른다.
혹은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야가 다를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근본적인 철학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대체 무엇인지도 알아낼 재간이 없다.
정면으로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
나도
“…….”
유형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시작됐다.
나는 이를 밀어내지 않았다.
반면, 유형원은 이를 더 감내하기 힘들었는지 입가를 움직였다.
“알고 있습니다. 대감과 소생은 그러한 차이가 있지요.”
“우린 지금껏 잘해왔다고 생각하네. 또한 앞으로도 무탈하게 함께 해나갈 수 있다고 여겼네.”
“일찍이 소생이 상경하여 대감을 처음 뵈었을 때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유형원은 나를 경멸했고, 나는 유형원을 조롱했다.
-대감은 역사에 반역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작금의 조선은 우리의 시대이네. 아쉽지만 자네는 우리가 아닐세.
참으로 날이 선 말을 주고받은 첫 만남이었다.
담담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제갈량 흉내를 내기도 했네.”
“소생은 능히 그러했으나 대감께서는 유비를 감당하지 못하셨지요.”
“애초 자네가 제갈량이 아니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인가?”
“애석하게도 세상이 소생을 제갈량과 빗대고 있으니, 어찌 아니라고만 하겠습니까.”
“근본 없는 자신감은 세월이 가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군.”
“소생의 자신감은 이미 실력으로 입증했다고 생각합니다만.”
“끌. 딱히 부정하지는 않겠네. 한데, 그걸 가능하게 한 건 어디까지나 나의 공이었다는 걸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네.”
“하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겁니까?”
“아주 당연하게도 그렇게 되는 걸세.”
날카롭게 대립하던 상황은 잠시 잊었다.
모처럼 벗을 만난 듯 과거를 회상하며 웃음을 나눴다.
“되돌아보면 소생이 대감께 참 못된 행동을 많이 했지요.”
“허. 설마 그걸 이제 알았나? 특히, 남인의 학맥으로 나를 압박할 때는 정말 미치겠더군.”
“막 상경한 소생이 서인의 영수와 말이라도 제대로 섞어보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대감은 소생을 쳐다보지도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여러 인맥을 활용하니 사정이 달라진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하나? 물론 사실이긴 하지만, 굳이 언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네.”
“사실 대감이 애를 좀 먹었으면 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쉽지요.”
“눈에 훤히 보이는 수에 일부러 걸려서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나?”
여전히 훈풍이었다.
그럴수록 가슴 한쪽이 아렸다.
나는 알고 있다.
너무나도 애석하지만, 이 따스한 대화가 더 이어질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나와 유형원은 분명 서로에게 할 말과 해야 할 말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 우리는
“소생은…….”
다시 본론으로 진입했다.
“정치를 몰랐습니다.”
“…….”
“아니, 알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란 덜 뺏기려는 위정자를 어르고 달래는 타협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타협이 최소한의 개혁이 태어나게 한 또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서, 정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틈이 보일 때마다 소생의 생각을 주장했습니다. 기어이 일궈내고자 했습니다. 어째서요? 소생이 옳으니까요.”
본론의 서두에 깔린 건 날 선 비판이 아니라 유형원의 소회(所懷)였다.
“거칠었지요. 투박했습니다.”
“그런데도 나와 중대본은 자네의 안건을 수용했네. 자네의 말대로 자네가 옳았으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 그 부분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겸손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군.”
“하하하. 겸손해졌습니다.”
“이건 또 처음 듣는 말이군.”
“소생이 정치를 배웠으니 말입니다. 겸손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토록 경멸했던 정치를 익혔겠습니까.”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았다.
유형원은 분명 ‘정치’에 몸을 담았다.
가끔 과격하다고까지 여겨졌던 그의 정책이 현실과 접목되기 시작한 시기는 분명 존재했다.
그때 나는 유형원의 두 발이 땅에 닿았다고 생각했었다.
“대감께 배웠습니다.”
“…….”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으나 이는 진실이기에 말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어쩌면 오늘 대화의 끝이 비극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여겼을까?
그래서 허심탄회하게 말을 꺼내는 것일까?
적어도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여태껏 온 힘으로 함께 달려왔던 동지의 말을 들어야 할 때였다.
그리고 나도 말해야 할 때였다.
“그 이후 늘 느낀 게 있었습니다.”
“무엇이었나.”
“조선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대감은 결국 조선의 변화를 막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대화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또, 나는 이제 들어야 했다.
어째서 내가 변화의 걸림돌인지, 유형원의 생각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만 금권을 말할 수 있다.
결과, 오늘 우리의 대화가 좋지 않은 결론으로 귀결될지라도 그래야만 했다.
“대감께서는 오늘을 버티는 게 버겁다고 하셨습니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작금의 난세는 지옥보다 끔찍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데, 참으로 괴이한 게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대감은 오늘의 삶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가 버거운데 어찌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대감의 신경과 시선은 온통 ‘언젠가’ 다가올 더 끔찍한 난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생의 말이 틀렸습니까.”
“부정하지 않겠네. 나는 진정 그러했으니까. 한데, 그것이 어찌 변화의 장벽이라는 것인가.”
“내일은 결국 오늘이 됩니다.”
말장난처럼 들렸다.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알 수 있었다.
내게 시간은 모두 경신 대기근을 방비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
놀랍게도 유형원은 이를 지목하고 있었다.
“해서, 대감의 하루는 모두 허비되고 있었습니다. 내일을 결국 오늘로 만드는 사람은 절대 변화를 도모할 수 없습니다. 늘 내일이 불안하기에 오늘을 절약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느꼈던 차이를 유형원도 인지하고 있었다.
“내일의 변화를 상상하는 것, 지금과는 다른 조선을 그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좌절을 이길 수 있는 근거입니다. 소생이 숨을 쉴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해서, 소생은 쉬지 않고 변화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하여, 멈출 수 없습니다.”
“나는 오늘을 허비하지 않았네. 내일의 백성을 위하여 오늘의 백성이 희생되는 걸 원하지 않았으니까. 하여, 최선을 다하였고 나 또한 멈출 수 없었어. 이를 부정하지 말게.”
“대감과 중대본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으며, 능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생은 다시 한계를 느꼈습니다. 어째서인지 알고 있습니까?”
“말하게.”
“대감께서도 이르셨습니다. 그저 기근 방비를 했을 뿐인데 양반의 권한이 축소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랬지.”
“한데, 그들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들의 협조가 없으면 조선은 기근을 방비할 수 없네. 나는 현실을 인지했을 뿐일세. 또한, 자네의 성에 차지 않았을지라도 양반의 권한이 축소되고 있다면 세상은 변하고 있는 것이네.”
“예. 양반이지요. 종래 사족이라고 불렸던 200년간 이 나라를 통치한 그들의 권한은 줄었습니다. 하지만 양반이라는 단어의 절대적인 권능이 사라진 건 아니지요. 애석하게도 대감은 이를 옹호하는 거대한 장벽입니다.”
두루뭉술하던 유형원의 말에서 드디어 본질적인 내용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내가 왜 변화의 마지막 장벽인지 알게 됐다.
“조선 성리학의 상징, 살아 있는 성현, 가장 권위 있는 양반. 해서, 대감은 변화의 장벽이 되었습니다.”
내가 송자인 이상 나는 기득권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조선의 위정자가 성리학자인 이상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나와 첨예하게 대립하던 서원 세력이 위기에 봉착하자 나를 찾아와서 조언을 구한 것이 단적인 사례였다.
그들 중 누구도 내가 성리학 조선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는 그럴 의지도 힘도 없었다.
나는 이 나라의 위정자가 누구냐를 묻지 않고, 누가 더 기근 방비에 도움이 되는지를 살피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형원의 의문이 반론을 제기해야 했다.
지금부터 금권을 말할 것이었으니 말이다.
“조선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감히 단언할 수는 없네. 그러나 어떠할지라도 양반은 이 나라의 위정자일 것일세. 한데, 어찌 좌절하기만 할 것인가. 보시게. 이미 우리의 개혁은 지금 양반이 아닌 이가 내일은 관복을 입을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했어. 그들은 결국 양반이 될 것이네. 하면, 조선의 위정자는 바뀌는 것일세. 한데, 자네는 어찌하여 모두 덜어내야만 하다고 하는가.”
“이미 말하였습니다. 신라는 고려가 되었고 고려가 조선이 되었습니다. 이때 위정자가 그대로였습니까. 아닙니다. 아예 변하였습니다. 어째서 그러했습니까? 모순을 일으키는 건 법도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과연 누구였습니까. 당대의 위정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내치지 않고 어찌 세상의 부조리함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유형원은 상당히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듣기에 따라서 조선을 아예 부정하는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조선이라는 국호가 이 땅에 태동했다는 사실, 과거 역성이 도모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위정자를 교체하지 않고서는 세상의 부조리를 치울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귀족을 그대로 두고 어찌 민본이 가능하였겠습니까.”
“근거가 틀렸네. 고려는 곧 귀족이었고, 귀족은 곧 고려였네. 이미 하나가 되었던 무리와 국호를 어찌 치워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작금의 조선은 다릅니까. 200여 년 전 이 땅을 열의로 채웠던 사대부는 양반이라는 이름으로 썩어버렸습니다. 양반이 곧 조선이며, 조선이 곧 양반입니다. 전조 고려 시절 아무리 유능한 이라 해도 귀족의 무리에 편입되면 도태하고 변질하였듯, 조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반이 되는 순간 권한을 유지하고 강화하기에 급급할 것입니다. 조선은 이미 시기를 놓쳤습니다. 지금이라도 전면적인 변화를 일궈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유형원의 진단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는 나 역시 느끼고 있었다.
‘조선(朝鮮)’, 이 두 글자의 국호는 경신 대기근을 방비하기에 너무나도 낡고 지쳤으며 허약했다.
더 젊고 혁신적이며 강한 나라였다면 하지 않아도 될 기력 낭비가 너무 심했다.
그 낭비의 범주에는 지금 나와 유형원의 대화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