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기로(岐路)(1)
이연이 내린 처우(處遇)를 전했다.
유형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붉은 그의 눈시울은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함을 품고 있었다.
“종래 변승업과 김근행에게 부여된 독점 무역의 권한을 거둔다고 하셨습니까.”
“그러하다네.”
“…….”
이 결정은 참으로 간단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단지 상단이 성장하는 것과 특정 상단의 비대화는 아예 결이 다른 일이었다.
금권 정치는 적당하게 성장한 상단이 아니라 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거대 상단의 등장에서 시작하기에 그러했다.
이러한데 이연의 조치는 변승업과 김근행 상단의 비약적인 성장을 차단한다.
결국 유형원의 초안은 초입부터 어그러졌으며, 금권의 길이 당분간 봉쇄된 것이다.
“금권 정치가 기어이 이 땅에서 태동하려면 자연스러운 길을 걸었어야 했네. 지나칠 정도로 속도를 낸 것일세.”
“소생의 처우를 듣겠습니다.”
유형원은 더 말을 보탤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해서, 나 역시 논쟁을 더 키우지 않기로 하였다.
“죽여도 감내할 것이며, 귀양도 웃으며 갈 것입니다. 그러니 편히 일러주십시오.”
“모두 아닐세.”
“예?”
“전하께서는 지금의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하셨네.”
유형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내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하였을 것이다.
“마음껏 조선을 비웃었던 자네에게 내리는 최고의 형벌은 두 가지일세. 첫째로 조선이 기어이 작금의 난세를 이겨내고 찬란하게 번영하는 모습을 보이겠노라고 하셨네. 자네는 살아서 두 눈으로 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네.”
유형원은 기본적으로 지식인이었다.
여기서 더하여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적 성향을 보인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에게 이연이 내린 형벌은 참으로 지독하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의 형벌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유형원에게는 가히 최고의 형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자네는 어떠한 저서도 남길 수 없네.”
“…….”
“또한, 더는 제자를 거두어도 안 될 것이네.”
“…….”
“조용한 혁명을 꿈꾸었던 자네로서는 가장 두려운 형벌이겠지.”
기어이 원하던 세상을 두 눈으로 볼 수 없다.
또한, 이를 후대에 전할 수도 없다.
이보다 무서운 벌은 없다.
“이것이 주상께서 자네에게 내리는 벌일세.”
“…….”
“자네의 사고는 정사는 물론이거니와 야사에도 기록되지 않을 것이네.”
그런데
“어째서 소생의 목숨을 거두지 않으십니까.”
유형원은 여전히 담담했다.
감정이 복받치는 듯 보이기도 했으나 차분했다.
다른 감정이 섞여 있는 듯하였으나 침착했다.
“그것이 궁금하였나?”
“그렇습니다.”
나 역시 대화의 말미에 물어봤다.
참으로 여러 생각을 들게 하는 답변이었다.
-유형원을 살리는 걸 선택하셨사옵니까?
-이미 사문난적을 결의하였소. 우리는 함께 국체를 부정하였거늘 어찌 목숨을 거둘 수 있겠소?
이연의 말을 전해 들은 유형원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한마디를 더 보태고 싶었으나 더는 그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더 괴로워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될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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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밤이었다.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였다.
사가의 마당에 홀로 서서 물끄러미 밤하늘을 바라봤다.
답답한 속이 조금이라도 진정되면 좋겠는데 뜻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의외가 아닐 수 없소.
나는 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경은 여태껏 기근 방비에 도움이 된다면 그 무엇도 용납했소.
이연의 말은 내게도 지독한 여운으로 남았다.
나는 대체 왜 기근의 극복보다 조선이라는 두 글자에 집착했을까.
‘우리’가 존재하지도 않을 훗날의 조선이 금권 정치에 지배되는 게 대체 무엇이라고 그리하였을까.
“내가 한 언행이거늘 내가 답을 찾지 못하는 건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머릿속이 지독하게 어지러웠다.
그러나 도무지 정리할 수가 없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번뇌에 휩싸일 때였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기에 숨을 길게 쉬며 말했다.
“왔는가.”
바로
“예. 대감.”
“늦었습니다.”
변승업과 김근행이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진한 긴장감이 담겨 있었다.
무려 ‘역모’가 언급되었던 일이다.
사안이 이렇게까지 흘렀으니 저들이 두려워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이미 저들을 탓할 수가 없었다.
보라.
조선 최고의 상인으로서 어찌 큰 꿈을 꾸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기에 그저 속으로만 품으며 살았을 것이다.
처음 변승업이 나를 찾아왔을 때를 되새겼다.
상인이었기에 이권을 전혀 탐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이때 이론을 제공하며 정책으로 구현할 수 있는 유형원의 등장은 두 사람을 다른 세상의 지척까지 인도하였을 것이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무언가를 담고 있었을 두 사람이 기뻐하며 동조했던 건 당연한 일이다.
상념을 밀어냈다.
등을 돌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되돌아보면 처음 우리는 아주 우호적인 관계였네. 한데, 이렇게 되었네. 참으로 가슴이 시리지 않은가.”
“대감.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대감의 경고를 무시한 죄를 어찌 씻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말은 진심이었다.
문뜩 떠올랐다.
나와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부드러웠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변승업과 김근행의 쓸모에 집중했다.
반면, 두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 쓸모를 입증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늘 내 눈치를 살폈을 것이다.
“…….”
괜한 잡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다시 대오를 정비하며, 태세를 갖춰야 할 때였다.
“늘 웃으며 조정의 일에 복무하는 자체로 만족한다고 했네. 하지만, 그런데도 이익을 챙기고자 눈치를 살피던 자네가 떠오르는군.”
“대감. 소인은…….”
“자네는 그랬던 사람이었네. 나는 거기까지 용인했었지. 어찌 상인이 손해를 볼 수 있겠는가. 다 이해할 수 있었어.”
변승업은 분명 그러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더군.”
“…….”
“힘이 생기자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여겼네. 해서, 가끔 직접 경고했지. 선을 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유형원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시절이었기에 적당한 경고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미 금권의 시대를 속에 품은 거상에게 내 말은 전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무릇, 처세(處世)에도 등급이나 종류가 있다.
늘 그렇다.
사람은 성공하면 변한다고 한다.
전과 태도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할 수도 있다.
어찌 이를 모두 탓할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이 모두 성인군자가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이것도 최소한의 경우라는 게 있다.
변승업과 김근행의 언행을 되돌아봤다.
말 그대로 ‘감히’였다.
처음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이 모습의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바로
“권력이라고 불리는 물건이 있네.”
권력이었다.
“권력은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게 해주지.”
변승업과 김근행은 내게 밑바닥을 보여준 것이다.
“아직 손에 잡히지도 않은 권력인데도 휘두르고자 했네. 만일, 진정 가지게 된다면 어찌 될까? 이는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
“양반과 상인의 차이를 알았으리라고 생각하네.”
위정자로서 최소한의 자각이 없는 무리가 권력을 가지면 세상을 발아래에 두려고 한다.
백 보 양보하여 금권 정치가 개막되더라도 작금의 상단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더는 중대본에 재원을 지원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대, 대감. 아닙니다. 소인이 성심껏…….”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가?”
“…….”
“남들과 같은 위치에서 정당하게 경쟁하게. 나는 이제 중대본의 본부장이며, 자네들은 많은 상단의 주인 중 한 명일세. 알겠는가.”
기본적으로는 처세가 탁월한 이들이다.
나의 말투에서 타협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이제라도 깨달았을 것이다.
해서, 괜한 말은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숙였다.
“이제 이곳에 찾아올 필요 없네. 물러가게.”
두 사람은 결국,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등을 돌렸다.
오늘따라 밤하늘이 참으로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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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도 잔 게 아니었다.
이연이 던진 말의 여운이 아직도 나를 지배하고 있기에 그러했다.
“…….”
이렇게 앓다가는 정말 죽지 싶었다.
환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럴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해서, 대충 뻗어 있었다.
생각을 더 하려고 했으나 그냥 멍하게 쳐다만 봤다.
그냥 이러고 있기로 했다.
뇌를 좀 쉬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냥 이렇게 대충 뻗어 있었는데 정말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사람이 대뜸 등장했다.
참으로 지겹도록 뜨거운 윤휴였다.
나는 어물쩍 일어나서 앉으며 말했다.
“최소한 들어오기 전에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네만.”
“대감과 농할 기분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런 듯 보였다.
나를 노려보는 건 둘째치더라도 얼굴에 피로가 잔뜩 묻어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의아했다.
밑도 끝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윤휴다운 무례함은 뒤로하고 일단 물어봤다.
“용건이나 꺼내게. 나도 자네와 실랑이하고픈 생각은 없으니까.”
“반계의 일을 들었습니다.”
“그 일이라면 그냥 잊게.”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어려우면 수기치인이라고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지우게.”
“대감.”
윤휴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하. 설마 반계가 그새 자네에게 가서 하소연이라도 했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면, 어찌 알았나?”
“…….”
“정사는 물론이거니와 야사에도 남아서는 안 될 일일세. 영원히 함구하기로 하였어. 한데 자네가 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어찌 여겨야 하나?”
“대감. 이는…….”
“서론은 필요 없네. 당장 본론을 꺼내게.”
나는 집요할 정도로 추궁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윤휴의 심리상태가 아니라, 영원히 덮어져야 할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하지. 나는 이 사실을 아는 모든 사람을 파악해야 할 이유가 있네. 그러니 말하게. 누구를 통하였나?”
“반계가 모든 저서를 불태웠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대감께서는 반계의 저서를 비웃으셨지요.”
“해서?”
“대감과 만난 직후 불태웠으니 찾아온 겁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반계는 말하지 않으니 나를 찾아왔다는 건가?”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소생이 궁금한 건 대감의 생각이니까요.”
이 논쟁을 이만 끊고 싶었다.
“나도 내 생각을 모르네.”
“예……?”
그런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네가 내 생각을 알아내 주겠나?”
“이건 또 무슨 괴이한 생각입니까.”
“자네가 반계의 가장 대척점에 있기에 하는 말일세.”
“대척점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나는 그 사이에 낀 사람이라고 하면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