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기로(岐路)(2)
지금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번뇌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이연의 한마디가 촉발한 고민이었으나 이는 나의 세계관과 직결했다.
내가 송시열인지 아닌지 따위의 일이 아니었다.
지금 송시열의 길이, 나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일이었다.
경신 대기근의 방비인지 아니면 조선의 무궁한 영광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다.
전대미문의 재앙인 경신 대기근이 도래하는 걸 알고 있다.
조선이 어떻게든 경신 대기근을 버티며 수명을 이어가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중요했다.
경신 대기근을 그저 ‘버틴’ 이후 조선의 무궁한 영광을 바라보는지.
혹은
조선의 수명을 단축할지라도 경신 대기근을 기어이 방비하여 한 명이라도 덜 죽는 세상을 원하는지.
이 두 가지 중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나는 지금, 이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이를 정리하지 않으면 나는 여기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하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이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하여, 윤휴가 가장 적합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백호. 자네는 양반 중심의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하였네.”
유형원과 윤휴.
두 사람은 진실로 대척점에 존재하기에 그러했다.
“한데, 반계는 금권 정치를 도모하고 있었네.”
“금권 정치라고 하셨습니까? 대관절 그건 무엇입니까.”
“재력의 정도(程度)가 위정자의 척도가 되는 나라를 이르는 말일세.”
“…….”
의의로 침착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윤휴의 안색은 굳었다.
아니, 굳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냥 썩었다.
내 이야기는 그저 배경에 불과하다.
나는 윤휴의 판단이 궁금했다.
“묻겠네. 자네가 나라면 어찌 처신했을 것인가.”
“대감. 소생은…….”
“잠시. 본론을 듣기 전에, 의아한 게 있군. 어째서 허무맹랑하다고 말하지 않나? 상인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역임하고 판서도 하는 세상일세. 한데, 헛웃음이라도 지어야 하지 않나?”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맞습니다. 한데, 대감께서는 분명 반계의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허. 설마?”
“대감. 반계는 시대를 앞서갈지언정 상상의 세계에 발을 내민 사람이 아닙니다. 원래도 그러했습니다. 한데, 중대본에서 현실을 보고 독하게 자신을 담금질한 반계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벗에 대한 신뢰를 넘어선 영역이었다.
어명도 이 정도로 쉽게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야말로 사상과 정견(政見)을 넘은 유형원에 대한 존경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아니, 이조차도 부족할 것만 같았다.
“더욱이 반계가 이미 싹을 틔웠다고 하셨습니다. 하면, 진실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군. 하면, 묻겠네. 자네라면 어찌할 것인가.”
“무조건 막아야지요. 소생은 기어이 그리할 것입니다.”
작은 주저함도 없었다.
또, 너무나도 단호한 답변이었다.
조금 전까지 유형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였던 윤휴였기에 놀라웠다.
“여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하군.”
“금권 정치가 가능하다는 반계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작금의 조선보다 나아질 수도 있다는 말 역시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 중대본은 반계를 현실과 접목했기에 그러합니다.”
되돌아보면 유형원은 이상주의자에 가까웠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파격적인 개혁은 조선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그러했다.
그런데 중대본에 결합하여 현실을 목도한 유형원은 엄청난 속도로 현실 정치를 익혔다.
거대한 담론을 말하던 그는 언제부터인가 가장 필요한 세세한 정책을 도입하고 집행했다.
그렇게 그는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땅에 발을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래서 더 의아했다.
유형원의 금권 정치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하였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막아선다고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백호. 모든 걸 동의한다고 했네. 한데, 막아선다는 건 양반 중심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인가?”
“그렇습니다.”
“그건 모순이 아닌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도 퇴보를 선택하는 게 아닌가. 남의 의견이 그러한 게 아니라, 자네 자신도 이렇게 여기고 있네. 나를 이해시켜줄 수 있는가?”
“필시 더 나은 세상이 될 겁니다. 한데, 말입니다.”
윤휴는 정말 간단한 답변을 꺼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조선이긴 합니까?”
“뭐……?”
이건 정말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나의 반응과는 별개로 윤휴의 말은 이어졌다.
답변하는 게 어려울 정도의 속도였다.
“조선은 고려와 다릅니다.”
어째서 고려가 언급되었는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대화는 이어져야 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고려는 위정자의 성격이 바뀌어도 국호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좋게 본다면 탄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는, 고려라는 나라에 정확한 지향점이 없기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지향하는 부분이 없다고 하였나? 어찌하여 그러한가.”
“고려의 위정자는 구체적인 목적의식이 없었습니다. 호족이 그러했으며 문벌 귀족과 무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권문세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권세를 확보하기 위한 아귀다툼만 자행했을 뿐입니다. 위정자의 잦은 교체는 오직 권력 다툼의 산물에 불과했습니다.”
이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나의 개인적인 고민이 아니더라도 경청할 수밖에 없는 화두였다.
“오직 권력을 차지하고자 창칼을 휘둘렀던 500년이었습니다. 하여, 그 기나긴 세월 고려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백성은 핍박만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려의 백성은 어찌 핍박받았는가.”
“보십시오. 그들에게 백성은 조세를 내는 도구였고, 제 땅을 경작하는 쟁기였으며, 전투에 앞세우는 병장기였습니다. 고려의 위정자에게 백성은 그저 많을수록 좋은 무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바라보는 철학이 부재하였기에 발생한 필연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비수로 심장을 찔러대듯 고려를 난자했다.
윤휴의 눈동자에는 작은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멀쩡한 백성을 노비로 만들었던 겁니다. 한두 명의 일탈로 발생한 게 아니라 500년 내내 위정자가 모두 그랬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여, 위정자가 자주 교체한다는 건 탄력성이 있는 게 아니라 지향점이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추악한 아귀다툼만 있을 뿐이지요.”
“하면, 조선은 무엇이 다른가.”
“간단합니다. 조선은 적어도 백성을 대놓고 노비로 만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고려와 조선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우리 조선의 위정자는 최소한의 도의는 지키며 생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저 억지 논리가 아니었다.
철저한 성찰에서 나온 말이었다.
“물론, 조선은 지나칠 정도로 경직된 나라입니다. 하여, 위정자가 바뀔 수 없습니다. 이 나라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양반이 위정자일 것입니다.”
원 역사에서도 그랬다.
양반이라는 존재는 조선에서 단 한 순간도 기득권을 잃지 않았다.
심지어 조선을 넘긴 무리도 그들이었다.
제3의 세력이 등장하여 나라를 무너뜨린 게 아니었다.
양반으로 시작하여 양반이 끝을 맺었다.
지독할 정도로 경직된 나라였다.
“조선의 위정자라고 하여, 양반이라고 해서 어찌 권세를 탐하지 않았겠습니까. 또, 어찌 권력을 잡고자 하지 않았겠습니까.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남인과 서인의 대립이 가치관과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하였다고 할지라도 어찌 추악한 권력욕이 없었다고 하겠습니까.”
어느새 절절한 자기반성도 함께 흘러나왔다.
윤휴의 말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습니다. 조선이 존재해야 한다는 걸. 또한, 조선이 건재하려면 백성이 태평가를 불러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하여, 조선의 위정자는 기득권을 위해서라도 조선을 사수하고자 합니다. 자강을 꺼내고 개혁을 부르짖으며 또 곳간을 열며 백성에게 다가갔습니다.”
“…….”
“가장 저열한 조선의 위정자가 이러합니다. 다수의 위정자는 진실로 백성을 위하였습니다. 2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조선에서 백성을 착취하고 패악질한 위정자가 과연 몇이나 됩니까. 손에 꼽을 정도일 것입니다.”
이 또한 옳은 말이었다.
부족하고 무능한 인사는 많다.
하지만, 미쳐서 날뛴 이는 드물었다.
이는 분명한 조선의 자부심이다.
“우리 양반의 역사를 간교하다고 질타하실 수도 있습니다. 철저하게 통제하며 억압한다고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역사는 절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부족하기에 배울 뿐입니다.”
나는 지금껏 조선의 사대부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무서운 위정자라고 지칭한 바가 있다.
조선을 완벽할 정도로 사대부의 나라로 만든 그들은 어떠한 저항조차도 발생할 수 없게 하였다고 말이다.
윤휴는 이를 인정하면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한데 대관절 금권 정치란 무엇입니까. 이러한 나라를 어찌 조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시작은 조선에서 하였을지라도 끝내 조선이라는 두 글자를 욕되게 하여 끌어내릴 것이니, 어찌 지켜만 보겠습니까.”
놀라운 건 윤휴가 양반이 위정자인 조선이 금권 정치의 조선보다 나을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금권 정치가 구현된다면 이미 조선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더 나은 세상보다 조선이라는 국호를 선택한 것이다.
“의외로군.”
“소생은 대감이 더 의아합니다.”
“무슨 말인가.”
“조선의 위정자가 조선을 지키고자 하는 게 무엇이 의외라는 겁니까.”
“…….”
너무나도 간결한 말이었다.
심지어 명쾌했다.
그래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되돌아봅니다. 우리는 지엄하신 어명을 따라 사문난적을 결의했습니다. 세종의 길을 꺼냈으며, 위대한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선을 부정하는 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조선을 더 조선답고 위대하게 번영하는 나라로 만들어내자는 각오와 결심이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윤휴의 목소리에는 조선에 대한 자부심이 흐르고 있었다.
“작금의 지독한 난세가 가렸으나 우리 중대본의 개혁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성과를 일궈내고 있습니다. 소생은 감히 자신할 수 있습니다. 역성을 일궜던 우리의 선대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말입니다. 소생은 진실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만일, 평시였다면 우리 조선은 태평가가 천지를 뒤덮을 정도로 번영했을 겁니다. 이 역시 진심입니다. 그리고…….”
말끝을 흐린 윤휴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두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 모든 역사의 중심에는 우리 사대부가 있었습니다. 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진실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양반의 저변을 확대하는 대감의 판단은 유효했으며 기근 극복의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다시 이어졌다.
“지난 조선의 역사는 경직되었으나 작금의 조선은 탄력적입니다.”
이 또한
“이 또한 조선입니다.”
조선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