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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46화 (246/298)

246화 개혁의 작은 성과

중대본의 인사들은 아주 신이 난 듯 떠들었다.

정말로 쉬지 않고 말했다.

“좋소. 이참에 두만강 이북의 모피를 우리가 모두 확보하는 겁니다.”

“흑룡강 일대의 부족과 우호적인 관계만 형성해도 능히 승산이 있소.”

“이게 북벌이지 뭐가 북벌이겠습니까.”

이러다가 북경으로 진군하자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말을 더 보태지 않고 그냥 흐린 눈으로 바라만 봤다.

지끈거리는 머릿속에서는 이연과 나눈 대화가 생생하게 상기됐다.

*****

밑도 끝도 없이 호전적인 중대본을 막으려면 역시 군왕의 단호한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오긴 왔는데…….

“좋소.”

이연까지 이런다.

아니, 질러도 내가 질러야 하는데 왜 사람들이 이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다른 방도가 있소?”

이러니 또 말문이 막혔다.

절로 썩은 미소가 지어졌다.

“청 태조의 사당을 건립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어쩔 수 없이 서원을 부여잡고 있는 남인이외다. 한데, 그들의 영수부터 지도부까지 모두 찬성하오. 이러한데 구태여 내가 마다해야 할 이유가 있소?”

“…….”

“그리고 훈련 대장보다 미연의 사태에 잘 대처할 사람이 누가 있소?”

“…….”

“또,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외다. 나는 아무런 대처 없이 내 백성을 사지로 보낼 수는 없소.”

“…….”

“기근을 방비하자고 다른 백성을 죽으라고 떠미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오.”

“…….”

이것은 덕치로 포장한 마키아벨리였다.

언제 조선에 군주론이 배포된 것일까.

그래서 그냥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좋소. 바로 시작하시오.”

방법은 없다.

달리는 수밖에.

*****

알현은 이토록 짧았다.

또한, 군왕의 동의가 있었기에 모든 건 아무런 걸림돌 없이 진행됐다.

훈련 대장 이완에게 사람을 보내고, 두만강 이북으로 진출할 상단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본부장은 어째서 말이 없소?”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데 허적이 굳이 나를 찾았다.

여전히 흐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정말 순수하게 의아함이 담긴 그의 눈빛이 참으로 별로였다.

“이는 본부장이 제안한 사안이었소. 한데, 말을 아끼기에 물어본 것이오.”

“아.”

“혹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소?”

다 걸렸다.

나는 두만강 이북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모피를 구해오고 싶었을 뿐, 청나라와 대놓고 외교 갈등을 일으키길 원하지 않았다.

이쯤 되고 보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결국,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일그러진 표정은 경련을 일으켰고 어색한 웃음을 유발하고 말았다.

“없소.”

애석하게도 이 두 음절이 나의 최선이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연이 교지에 도장까지 찍은 마당에 나의 의지는 너무나도 미세한 것이었다.

만일, 내가 기어이 반대하려고 했다면 알현했을 때 끝까지 버텼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국 여기까지 흘러왔다.

그러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그냥 동의하는 게 세계 평화와 무병장수에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소?”

“아주 그렇소.”

“좋소.”

허적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우리는 두만강 이북에 조선 최고의 정예군의 지휘관까지 파견하게 됐다.

그의 뒤를 ‘훈련도감’의 일부라도 따르게 될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부디 아무런 탈 없이 모피만 잘 가져오길 바랄 뿐이었다.

“하면, 이제 기근 피해를 본 지역을 구제할 방법을 논의해야 하오.”

이건 정말 답이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 허적이 먼저 서론을 꺼냈다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이럴 때 그냥 지켜만 보는 건 오랜 세월 고민했을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괜찮은 방법을 마련한 것이오?”

“해봐야지요.”

“해보다니요?”

“그동안 우리는 제염에 큰 힘을 기울였소. 하지만, 소금의 사용을 최대한 억제했소.”

사실이었다

중대본이 막 출범했을 때 가장 먼저 시행한 건, 뽕나무를 심고 제염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허적은 지독할 정도로 소금의 사용을 아꼈다.

비축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냥 사용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참에 물어보기로 했다.

“호판. 어째서 소금을 이토록 비축하는 것이오?”

“본부장. 참으로 고아한 물음을 하여 심히 당황스럽소.”

“거. 그냥 답해 주면 되는데 어찌하여 그러시오?”

내가 재차 따지듯 묻자 허적은 헛웃음을 짓더니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다른 사람도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말이다.

“기근을 방비하는 중대본의 본부장이 어찌 이러시오?”

아주 황당해하는 허적의 말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정말 사유를 모르겠으니 말이다.

“거. 그냥 답해 주시오. 진짜 모르겠으니까.”

“잊으셨소? 우리는 동해에서 엄청난 수의 명태를 포획(捕獲)했소.”

“내가 어찌 모르겠소? 어선까지 건조했잖소. 한데, 명태는 갑자기 왜 나오는 것이오?”

“함경도의 백성만 명태를 먹게 할 요량이었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재원을 동원하여 어선을 만들지도 않았소. 어디 그뿐이오? 군선까지 투입해서 명태를 잡았소만?”

“내륙의 백성도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아!”

스치는 게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허적은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소금이 있어야만 명태를 운송할 수 있지 않겠소? 아니, 정말 이를 생각하지 못하셨소?”

“아.”

아예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연관을 짓지 못한 것이다.

어쨌거나 정말 좋은 소식이었기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명태를 기근이 발생한 삼남지역과 평안도로 운송한다면 도움이 되겠구려.”

“허. 본부장. 참으로 묘안이오.”

“하하하.”

놀림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웃었다.

정말 좋은 소식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물었다.

“운송 방책만 수립하면 완벽하겠구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1. 소금을 함경도로 운송한다.

2. 명태를 소금에 절인다.

3. 소금에 절인 명태를 기근 지역으로 운송한다.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딱 이때.

“운송은 그동안 제작한 수레를 총동원하면 될 듯합니다.”

유형원이 보태듯 말했다.

그랬다.

우리는 유형원의 결합 이후 수레를 100채나 제작했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으나 여러 실패를 거듭하며 기어이 해냈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해야 한다.

“수레의 정교함을 자신할 수 있는가?”

“실전에 투입하지 않고서는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손상되는 수레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명태를 쏟아 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도 감당하며 수레 기술을 진일보시켜야 합니다.”

“자네 말이 옳아.”

반박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실전에 투입하지 않고 성능을 파악할 방법이 우리에게 없었다.

어쩌면 큰 실패를 거듭할 수도 있겠지만, 도전이라는 건 해봐야 한다.

옛 성현께서 이르셨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이다.

그러니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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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가장 능동적이었다.

압도적인 자연의 횡포를 어찌할 방법은 없지만, 수습하는 건 어쨌거나 인간의 영역이었다.

오늘은 모처럼 회의가 길었다.

평소처럼 침묵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게 아니었다.

방한 대책의 수립 및 집행과 어류의 운송을 통한 기근의 해결은 분명히 중대본의 역량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각지에서 재건되는 고을에서 온돌을 도입하는 일도 빠르게 진행됐다.

물론.

“소생이 파악하였는데 무너진 민가는 온돌을 설치하면 될 듯합니다.”

점차 일이 커져 갔다.

애초 고을마다 공동 온돌방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무너진 민가를 새로 짓는다면 그 안에 온돌을 설치하자는 것이 유형원의 의견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온돌의 설치 방법을 세밀하게 작성하여 파발을 보내면 되겠나?”

유형원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시원시원해서 좋군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중대본 논의가 끝난 직후 나는 동부 지역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유형원이 함께하며 쉬지 않고 온돌 정책을 언급했다.

“그나저나 변승업과 김근행은 어떻던가?”

“실의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가? 의외로군.”

일국의 체계를 바꾸고자 한 인물들이다.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하게 된 터라 충격이 컸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한다.

“늘 세상을 살피며 살아온 이들입니다. 지금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겠지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것도 두렵겠지만,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대감께서 그냥 두겠습니까?”

하긴.

당시 나는 정말 살벌하게 경고하긴 했다.

진짜 또 눈 밖에 나면 멸문지화를 시킬 기세였다.

그러니 변승업과 김근행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말이었다.

“한데, 그들에 대한 특혜는 모두 거두신 겁니까.”

“그러기로 했네. 동시에 그들이 중대본에 보탰던 재원도 모두 중단하라고 했지. 알지 않나?”

“위생국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좋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위생국에 투입되던 그들의 재원이 결국 상업으로 돌아가는 걸세. 조정의 입장에서는 잠시 어려울 수 있겠으나 더 많은 관세가 들어올 수 있다면 나쁘지는 않을 것이네.”

“가령 쇠고기 전매권도 모든 상단에 기회를 주겠군요.”

“그렇지. 혹시 아는가? 쇠고기 전매권을 기회로 아예 새로운 상단이 등장할 수도 있네. 바로 이곳 동부에서 말일세.”

어느새 당도한 동부 지역을 가리키며 주변을 돌아봤다.

정말이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었다.

동서남북으로 일정하게 잘 닦인 도로에는 수레가 규격을 맞추며 이동했다.

도로를 마주 보고는 자를 잰 듯 반듯한 민가가 빼곡하게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았고, 누군가의 욕설도 들렸다.

그리고 밥 짓는 연기가 보였고, 밥 냄새도 났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된 것이다.

도로의 양쪽에는 장시를 대비한 공간이 보였다.

물론, 당장 구매력이 부족한 유민을 대상으로 한 거주지역이었기에 아직은 휑했다.

그러나 점차 꽉 채워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시선은 인파가 가장 많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바로

“쇠고기를 나누는 곳이지요.”

반촌에서 쇠고기가 넘어오는 점포였다.

상당한 아니, 엄청난 규모였다.

어지간한 사대부의 사가보다도 컸다.

나도 모르게 말했다.

“쇠고기 전매권으로 동부 지역을 움직일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하면, 이곳은 뚜렷한 성격을 가진 거주지역이 될 것이며, 거대한 상업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겁니다.”

어쩌면 동부 지역은 도성의 메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누구나 살고 싶은 부촌 같은 느낌 말이다.

“자네가 괜히 도로의 끝에 장시가 들어설 공간을 마련한 게 아니겠지.”

“변승업의 전매권이 거두어졌으니 많은 상단이 들어설 겁니다. 여러 조건을 내세우겠지만 이곳의 백성이 일할 터전을 제시해야 할 겁니다.”

자고로 국고는 백성이 부유할 때 가장 윤택하게 채워지는 법이다.

그러니 유형원이 아주 정확하게 방향을 잡아 온 것이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연의 횡포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증거를 찾으라고 한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나는 단언할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웃으며 걸었다.

묘하게 부풀어 오른 마음과 함께.

그리고 얼마 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윤선거가 도착했다.

우리는 그가 청국 황제로부터 선물을 잔뜩 들고 왔기를 바라였다.

정말 간절하게.

나를 본 그의 첫 마디는 아주 간단했다.

“우암. 뭐 하나?”

“음?”

“당장 상단 올려 보내게.”

황상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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