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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50화 (250/298)

250화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2)

내가 멍하게 쳐다만 보고 있자 허목은 다소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이며 곧장 말을 이었다.

“가령 활인서에는 평소에도 수백 명의 병자가 몰려 있소. 한데, 기근으로 굶어 목이 허약해진 백성이오. 이런 백성이 수백 명이나 모여 있으면 어찌 되겠소? 역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외다. 지금껏 우리는 이를 아예 놓치고 있었소.”

“…….”

“역병이 창궐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활인서와 같은 기구였소. 우리는 이를 그대로 두고 위생을 보급하였고, 역병이 창궐하자 그제서야 병자를 격리했소. 대비와 마무리는 좋았을 수도 있으나,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외다. 나는 이번에 이를 깨달았소.”

“…….”

면역성이 떨어진 환자가 단체로 몰려 있으면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은 평소보다 몇 배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이걸 놓쳤다.

이보다 한심할 수가 없다.

어떻게 현대인이라는 놈이 이토록 간단한 문제를 상기하지 못했을까.

쌀 한 톨이 아쉬울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던가.

이러할 때 현대인으로서 가진 최소한의 기본적인 이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이를 진작에 제안했다면 죽지 않을 수 있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 것이니 너무 무능력하고 답답했다.

“역병의 처방을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오. 그러나 역병이 광범위하게 번질 수 없게 준비하는 건 더 중요하오. 우리가 역병의 시발점을 제압하고자 위생을 도입한 것과 같은 이치외다.”

나는 이어질 허목의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전국적 범위로 의료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자는 의견일 것이다.

최소한 분리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만들자고 할 것이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무조건 시행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보다 더 많은 백성을 살려낼 방법이 분명하니 말이다.

“반계.”

“예. 스승님.”

“군현마다 추위를 대비할 온돌 기구를 제안했다고 들었네.”

“그렇습니다. 동사자를 줄일 방법이라고 여겼습니다.”

“자네 말이 옳아. 한데, 이를 집행한다면 100명을 모아낼 시설보다는 10명을 모아낼 시설 10개를 건축하는 게 옳지 않겠나? 백성을 보살필 때 많은 인원이 모이는 건 무조건 막아야 하는 것이니 말일세. 그러지 않는다면 역병에 걸리는 지름길을 백성에게 알려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네.”

유형원도 미처 이를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 시절 사람들도 알았을 기본적인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들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었다.

“허 국장의 말이 옳소. 온돌 시설에서도 백성을 분리하는 게 옳소.”

“나도 동의하오. 초안을 수정하여 분리 시설로 집행하는 게 좋을 듯하오.”

여기저기서 수정을 요구하는 발언이 터져 나왔다.

“군현의 재정이 어렵긴 하오. 그러나 허름할지라도 분리해낼 수만 있다면 되는 것이니 능히 해낼 수 있을 것이오. 본부장 그리고 호판.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마시오. 그들은 해낼 수 있을 것이외다.”

확신이 가득한 말이었기에 나와 허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금 쟁점은 온돌방이 아니었다.

애초 허목이 제안한 건 의료 시설의 대대적인 확충이었다.

이게 문제였다.

“그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소. 내가 방안까지 마련했으니 말이외다.”

“방안이라고 하셨소?”

“그렇소. 결국, 가장 어려운 건 재원이 아니겠소? 하면, 재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마련하면 되오.”

“그런 방법이 있소?”

“가장 쉬운 건 지금껏 걸었던 길을 답습하는 것이외다.”

우리의 길이라고 하면 양반을 압박하고, 사찰을 꺼내오고…… 이런 것이었다.

“생각해 보시오. 조선 전역에는 서원이 1,000채, 향교는 300채가 넘소. 사찰도 2,000여 개요.”

결국, 허목이 언급한 건 기존 세력을 더 쥐어짜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우리의 길이긴 했다.

사실 서원을 의과 대학으로 만들었고 차츰 성과가 도출되었다.

하지만 모든 서원이 대상은 아니었다.

사찰도 승려들이 자원하여 백성을 구제하고 있다.

그러나 매사 사족과 대립하거나 사찰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왔다.

또한, 수령도 백성을 사찰로 옮기는 걸 마뜩잖아하는 곳이 많다.

그러니까

“전하께 청하여 어명을 받아내야 하오. 서원과 향교 그리고 사찰을 관청이 임의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오.”

지금 허목은 이 모든 걸 법도로 규정하자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기미가 보인다면 조기에 백성을 분리하여 역병을 대비하는 방침이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보다 적절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게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허목의 말대로 교지를 받아오는 건 오히려 쉽다.

하지만 어명이 내려졌는데도 집행이 안 되는 상황을 우려해야 한다.

특히, 서원은 아무리 어명이라고 할지라도 강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게 가능했다면 진작에 모든 서원을 의과 대학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괜히 서원을 고사시키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밑에서부터 압박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선뜻 어명을 받아오겠다고 말하는 게 어려웠다.

작금의 조선에서 어명은 무조건 10할 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일 애매한 상황이라도 연출되면, 억지로 멱살 잡고 여기까지 끌고 온 모든 것이 흔들릴 수가 있었다.

구심점의 승률 100%라는 건 이처럼 중요한 것이었다.

“또한, 일정 규모 이상의 사대부가도 활용해야 할 것이외다.”

아.

이건 아무리 이 시절이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가능했으면 박세당이 원리주의를 전파하느라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지도 않는다.

그런데

“해보지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화자는 남인의 영수, 허적이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박세당이 서북 지역을 뛰어다니며 원리주의를 전하는 건 사족의 힘을 끌어내기 위함이오. 그간 그를 보면서 제대로 돕지 못한 게 늘 마음에 쓰였소. 한데, 이번에 이렇게 기회가 왔는데 어찌 방관만 할 수 있겠소?”

“호판.”

“더욱이 본부장이 기호 지역을 순회하며 사족을 모두 설득했소. 한데, 우리 남인이 이렇게 수수방관만 할 수는 없소. 나는 아직도 서인보다 남인이 더 훌륭하다고 믿소.”

“허. 갑자기 당색을 언급하오?”

“남인과 서인은 원래 경쟁 관계가 아니었소이까.”

허적은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 지역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허.”

“왜 그러시오? 자신 없소?”

“어림도 없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나 마나 송준길이었다.

그는 눈까지 부라리며 말했다.

“우암. 자네는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나?”

“말하려고 했는데…….”

“되었네. 자네는 빠지게. 호판. 그 제안, 내가 받겠소.”

“허. 대사헌. 영수끼리 대화하는데 참으로 당혹스럽소?”

“뭐, 뭐요?”

“됐소. 나는 도산서원부터 설득하겠소.”

첫 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도산서원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엄청난 정치적 압박에 송준길은 멈칫했다.

허적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이번은 우리 남인이 이길 것 같소만.”

“어, 어림도 없소.”

“하하하. 말은 왜 더듬는 것이오?”

“…….”

“대사헌. 내가 도와드릴 수 있소.”

놀랍게도 허목이었다.

허적이 당황하여 쳐다봤다.

송준길은 놀라서 쳐다봤다.

“허 국장이 나를 돕는다고 하셨소?”

“그렇소.”

“선생. 왜 그러시오?”

“서인으로 전향할 생각이오?”

“대사헌. 본부장 닮아가시오?”

“말씀이 과하시오?”

“선생. 내 말은 들리지 않소?”

세 사람이 동시에 말하니 아예 난장판이었다.

“내가 돕는다는 건 도산서원을 설득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다는 것이외다.”

“우리 서인은 불가능이 없소. 무엇이오?”

“삼남지역에는 폭우로 터전이 아예 상실된 고을이 한두 곳이 아니외다.”

“어찌 모르겠소.”

“재건해야 하오.”

“당연하오.”

“그런데 기존의 고을과는 달리 처음부터 중대본이 개입하여 재건해야 하오. 가령 반계가 주도했던 도성의 동부 지역처럼 말이외다.”

“…….”

호언장담하던 송준길은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불안하게 지켜보던 허적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허목의 제안은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도성의 동부 지역을 바로 잡는 일도 총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를 삼남지역의 재건 사업으로 확장하자는 말이었다.

나라를 뜯어고치자는 추상적인 구호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옮긴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역병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위생적인 고을로 만들어야 하오. 이미 백성이 살던 고을은 어쩔 수가 없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오. 어차피 하나부터 열까지 다 꾸려야 하오. 지금이 적기가 아니라면 대체 언제를 적기라고 할 수 있겠소?”

“…….”

“어떻소? 서인이 이를 해낸다면 어찌 남인이 고개를 들 수 있겠소?”

“…….”

송준길은 눈만 껌뻑였다.

그러더니 나를 슬쩍 쳐다봤다.

나는 그냥 멋쩍게 웃었다.

필시 허목은 이를 중대본에 제안하려다가 서인과 남인의 경쟁 구도를 보더니 슬쩍 올려본 게 분명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중대본의 일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이 문제는 무거운 중심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오.”

“해서요?”

“굳이 해야 한다면 중대본이 맡아야 하오.”

“허. 결국, 서인은 회피하는 것이군요.”

“내 말은 그게 아니외다. 동부 지역이 저토록 훌륭하게 완비된 건 반계가 총책임자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소. 한데, 고을마다 유형원의 역량을 가진 인사가 있을 수는 없소. 그렇다면 결국 중대본에서 일사불란하게 지침을 내려야 하는 일이외다. 나는 이를 언급한 것이오.”

“본부장의 말이 옳긴 하오만.”

허목은 슬쩍 시선을 돌려서 허적을 바라봤다.

이 문제의 최종 결정권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호조판서 허적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건 내가 축약한 것처럼 유형원이 설계도를 내리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고을마다 사정이 다를 것인데 이를 다 확인해야 한다.

이러자면 막대한 인력이 필요했다.

또한, 사족이 자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중대본이 주도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중앙의 재원이 필요하게 된다.

이를 인지했는지 허목이 말을 보탰다.

“재원이 부족하면 조정에서 보태고, 나무가 부족하면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지라도 해내야 하오.”

저렇게 간단한 일이 절대 아니다.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일이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것인데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일전에 유형원과 나눴던, 새로운 민가에 온돌을 도입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난제였다.

허적이 쉽사리 나서지 못할 때였다.

“서인의 영향력이 강한 곳은 최대한 자생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하겠소. 중대본의 재원을 사용하지 않게끔 말이외다. 그러나 세세한 지도는 반계가 해야 하오.”

“음. 하면, 남인도 그리하겠소.”

여태껏 듣고만 있던 윤선도도 등판했다.

즉, 자기 구역은 자기가 책임지자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었다.

그러자

“좋소.”

허적이 동의했다.

그러더니 나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니 교지만 받아주시오.”

나는 피식 웃었다.

“가장 어려운 걸 내게 맡기는군요.”

“중대본의 수장이 본부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이런. 실권은 호판이 들고 있소만.”

“가져가도 좋소.”

“결사적으로 사양하겠소.”

잔잔한 웃음이 스치듯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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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은 손을 덜덜 떨었다.

눈동자는 격하게 흔들렸다.

“이제는 나보고 장사까지 하라는 말인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조선 최고의 정예군을 이끄는 지휘관이었다.

군량을 수송하고, 석탄을 캤고, 물에 빠진 백성을 구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장사하러 가라고 한다.

“뭐? 두만강 이북으로 가서 모피를 구해야 한다고?”

바깥바람이라도 쐬지 않으면 이 분노를 어찌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문을 열고 나왔다.

“선왕께서 이를 보시면…….”

나왔는데……

“…….”

그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아니, 엄청난 규모로 무리를 지은 무언가가 보였다.

바로

“저건 설마…….”

황충(蝗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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