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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52화 (252/298)

252화 첫 승(1)

평양부는 참으로 오랜 세월 이 땅에서 가장 번영을 이룬 지역 중 한 곳이었다.

그 옛날 왕도(王都)로서의 찬란한 역사와 북진 정책의 전초기지로 위엄을 보였던 시절의 기록이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증명했다.

조선 역시 평양을 중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랜 세월 한양 도성의 바로 뒤를 이었던 정치적 위상은 넘어가더라도, 중대본 출범 이후 서북 지역 재해 극복의 기준으로 기록되었다는 건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평양부는 번영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를 세어본다는 생각을 감히 꺼낼 수도 없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창궐한 황충은 사람을 밀어내고 평양부를 차지했다.

바로 코앞에서 참담한 비극을 바라보는 이완은 속이 새카맣게 탔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으나 너무 답답하여 부관들과 논의라도 했다.

뾰족한 수를 도출할 수 없을지라도 머리를 맞대어 말을 나눴다.

그러나 어떤 의미가 있는 말이 오갈 수는 없었다.

걱정과 한숨만 주고받는 논의에 불과했다.

“끙. 소인들도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휴. 그렇습니다. 황충과 싸울 수도 없고, 막아낼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정예군이라고 할지라도 수천, 수만 마리의 황충을 어찌할 방법은 없다.

애초에 황충을 상대로 활을 쏘거나 칼을 휘두를 수도 없으니 말이다.

차라리 백만 대군의 적과 싸우는 게 나은 정도였으니 더 말하면 입만 아팠다.

“영감. 훈련도감이 백성을 지키는 군영이긴 하지만 이건 조금 상황이 다릅니다.”

“돌격을 외쳤다가는 일제히 탈주할 분위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황충 떼가 군량까지 급습했기에 병졸들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병졸도 사람이었다.

아무리 정예군이라고 할지라도 메뚜기 수천, 수만 마리를 보면 공포감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이완은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훈련도감이 어찌 미물을 보고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 조선 최고의 정예군이거늘. 선왕께서 이를 보시면 얼마나 탄식하시겠는가.”

“영감. 우리 병졸들은 훈련하지 않은 지 오래됐습니다. 허구한 날 운송하고, 땅을 파고, 강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언제 총을 들고 훈련하겠습니까. 백성의 환호를 받기에 사기는 높지만, 일사불란한 정예군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들 동작이 많이 굳어진 건 사실입니다.”

정말로 이러지는 않겠지만, 부관의 말대로 최근 군사 훈련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긴 했다.

정확하게는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이었다.

“자네들의 말대로 우리 훈련도감이 군사 훈련을 소홀히 한 건 사실일세. 그런데 어찌하여 이리되었는가? 우리가 방만한 생활을 했기에 그리된 것이 아닐세. 우리의 존재 이유가 전쟁이 아니라 백성의 구휼로 바뀌었기에 그리된 것이네. 나는 진실로 이처럼 생각하는 바일세.”

“…….”

“그러한데 우리가 고작 미물을 감당하지 못하여 수수방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걸세. 백성이 저토록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겨우 모아둔 곡식을 모두 빼앗기고, 삶의 터전도 황폐화가 되었네. 이를 보고도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네! 선왕께서 이를 보시면…….”

이완의 일장 연설은 정말 길게 이어졌다.

부관들의 눈빛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흐려졌다.

“어찌 자네들은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것인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부관 중 한 명이 나섰다.

“그래서 영감께서는 묘안이 있으십니까.”

“찾아야지! 그걸 하기 위해서 자네들과 내가 있는 것이며, 이곳에 모인 것일세.”

“아니,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 영감.”

“횃불을 들고 뛰어다녀서 불에 태우자는 말이라도 좋으니까 뭐라도 꺼내 보게!”

“음? 좋은 생각이신 거 같습니다. 황충이 불을 감당할 수는 없지요.”

“이보게. 불이 붙은 황충이 바로 안 죽고 날아다니면 민가까지 다 태울 것 같지 않나?”

“송구합니다.”

“생각이라는 걸 하고 말하게. 참으로 답답하군.”

부관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완은 정말 어떤 방법이라도 찾기 전에는 논의를 끝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영감. 가장 좋은 건 황충을 죽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잊지 말게. 나는 자네가 묘안을 꺼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걸.”

“결국, 메뚜기가 아닙니까. 천적은 오리와 닭입니다. 근처에서 오리와 닭을 구해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송구합니다. 소인은 그저…….”

“아닐세. 좋은 생각일세.”

“예?”

“그렇지. 적과 싸울 때에는 적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기를 꺼내야지.”

“아.”

“오리와 닭 한 마리가 황충을 얼마나 잡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 하지만 족히 수십 마리는 처리하지 않겠나?”

“그,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인근을 수색하여 닭과 오리를 모조리 잡아 와서 평양성 안에 풀어버리게. 단 한 마리라도 죽일 수 있다면 우리의 작전은 성공하는 것일세.”

이완의 말은 농이 아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수행해야 할 일이었다.

막상 이렇게 되자 의견이 하나씩 터져 나왔다.

“영감. 병충해가 끝난 이후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끝난 이후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소인이 생각해봤는데, 우리 훈련도감이 가장 잘하는 건 역시 운송이었습니다.”

“암. 우리가 운송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면서 백성의 군영으로 재탄생했지 않은가.”

“예. 그러니 구휼미의 운송을 미리 준비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수레를 이끌고 도성이 미리 당도해 있는다면 하루라도 빨리 백성을 구휼할 수 있을 겁니다.”

“참으로 탁월하군.”

이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었다.

이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영을 절반으로 나눠서 오리와 닭을 구하고, 운송을 시작하게.”

“예. 영감.”

드디어 훈련도감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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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충해가 위력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장기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 점이었다.

우리는 그 직후 구휼미를 ‘살포’해야 했다.

만일 시기를 놓쳐서 기근으로 이어지면 더 큰 재앙이 도래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기민하게 움직였다.

없는 살림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꾸렸다.

남은 건 최대한 빨리 평양부로 운송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애석하게도, 섣불리 구휼미를 운송할 수도 없었다.

시기를 잘못 잡으면 메뚜기가 구휼미까지 싹 쓸어버릴 수가 있으니 말이다.

노심초사하며 평양부에서 장계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랬는데

“허.”

땀에 전 훈련도감의 부관이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중대본의 문을 열었다.

우리는 바짝 긴장하며 그를 쳐다봤다.

평양부의 관리도 아니고 훈련도감의 부관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무게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오, 오리와 닭을 구해주셔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오리와 닭이라니?”

“구휼을 이르는 말인가?”

여러 사람이 의아하여 반문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외쳤다.

“당장 도성 안의 모든 오리와 닭을 평양부로 보내야 하오!”

“바로 그렇습니다. 본부장 대감. 지금 훈련도감의 병력 절반이 동원되어 오리와 닭을 찾고 있습니다. 중대본에서도 이를 거들어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도성 안에 있는 닭과 오리는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보낼 것이네. 운송 방법도 수립할 것이니…….”

“훈련도감의 병력 절반이 수레를 이끌고 도성의 지척에 이르렀습니다.”

“뭐……?”

“도성에서 마련될 구휼미의 원활한 운송과 더불어 준비되는 닭과 오리를 바로 옮기고자 하달된 명령입니다.”

이래서 군대는 군대였다.

정말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데, 본부장. 대체 이게 무슨 말이오?”

“호판. 황충의 천적은 닭과 오리라는 걸 잊으셨소?”

“설마……?”

“그렇소! 과연 훈련도감이요. 병충해를 병법의 이치로 해결하려고 하다니 말이외다. 호판. 수백, 수천 마리의 오리와 닭이 평양성을 활보한다면 황충의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외다.”

“가능하겠소?”

“안되면 뭐 어떻소? 뭐라도 해보는 것이오.”

아무것도 손쓸 수 없었던 병충해였다.

그러나 해볼 만한 일이 생겼다는 건 너무나도 즐겁고 기쁜 일이었다.

“좋소. 도성 안의 모든 오리와 닭을 징발하여 보내지요.”

“얼마나 되겠소?”

“거기까지 호조에서 파악하고 있지는 않소. 그러나 궐에서 사육도 하니 민간의 오리와 닭까지 보탠다면 족히 수천 마리는 될 것이외다.”

확실하지는 않다.

허적의 말대로 민가의 닭과 오리가 몇 마리인지 세세하게 파악한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도 기근이 심하니 진작에 잡아먹었을지 알 수 없기에 추산할 뿐이었다.

일단 부딪혀 보는 것이다.

어쩌면 황충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도 있었다.

나는 곧장 명령을 내렸다.

“자네는 당장 병력을 이끌고 도성으로 진입하게. 전권을 줄 것이야. 눈에 보이는 닭과 오리는 모두 징발하게나.”

이 또한 총동원령이었다.

거센 저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백성의 반발은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모처럼 좋은 말일세. 군대는 그런 걸 생각할 필요가 없지.”

백성의 저항이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다.

우리는 아름답게 닭과 오리의 값을 치를 여력 따위는 없으니 말이다.

허적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관은 더 말하지 않고 바로 달려 나갔다.

나는 주먹에 힘을 주며 허적을 바라봤다.

“호판. 효과가 있으면 오리와 닭을 사육해야 하오. 병충해를 감당할 유일한 방도가 될 것이니 말이오.”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것이오. 오리와 닭도 먹어야 하니 말이외다.”

“물론이오. 이 일의 결정은 호판에게 맡기겠소.”

“알겠소. 아무쪼록 효과가 있길 바랄 뿐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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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은 바짝 긴장했다.

평생 군문(軍門)의 길을 걸었으나 이보다 더 긴장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폐허가 된 사방을 바라보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잠재울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핏발선 눈으로 좌우를 돌아봤다.

“선왕께서 늘 이르셨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결사의 각오가 담겨 있었다.

“적의 공세를 방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훈련도감의 숙명이다.”

“…….”

“비록 요격해내지 못했으나 오늘 기어이 성과를 낼 것이다.”

“영감. 더 시간을 끌 수는 없습니다.”

참다못한 부관이 나섰다.

지금도 엄청난 수의 황충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병졸들이 거칠게 손을 휘저으며 물리치고 있으나 쉽사리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들었다.

그리고

“모든 오리와 닭을 풀어라.”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꽥꽥꽥꽥꽥!

-꽥꽥꽥꽥꽥!

-꽥꽥꽥꽥꽥!

오리와

-꼬꼬댁꼬꼬댁!

-꼬꼬댁꼬꼬댁!

-꼬꼬댁꼬꼬댁!

닭이 날뛰기 시작했다.

족히 수천 마리는 될 오리와 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평양성을 지배한 황충을 향해서 맹렬하게 달리는 날짐승의 위용은 참으로 대단했다.

이완은 바짝 긴장하며 결과를 살폈다.

그러나

“영감. 물러나야 합니다.”

부관이 만류했다.

마음 같아서는 전투의 결과를 지켜보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남는다는 건 병졸도 잔류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니 말이다.

아무리 정예군이라고 할지라도 황충이 두려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완은 등을 돌렸다.

부디 평양성의 병충해가 해결되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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