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첫 승(2)
손이 떨리고 긴장됐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직도 선명했다.
-미, 미치셨소?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이오?!
-그냥 나를 죽이시오!
-해도 해도 너무하오!
훈련도감을 동원한 가축의 징발은 백성의 격렬한 저항을 초래했다.
최근 몇 년 꾸준하게 선정이 베풀어졌고, 위생국을 중심으로 백성을 잘 보살폈으나, 평생을 관통한 불신을 없앤다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아니, 애초에 ‘재산’의 징발은 거센 저항과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도성의 민심은 급격하게 흉흉해졌다.
만일 중대본에서 여유가 생겨서 보상을 해준다고 할지라도 원성은 남을 듯했다.
그 정도로 살벌했다.
최악의 상황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메뚜기떼의 진압에 효과가 없을 경우였다.
욕은 욕대로 얻어먹고, 성과는 전혀 없는 건 정말이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중대본은 평양부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너무나도 간절하게 기다렸다.
“음. 본부장.”
윤선도였다.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단지, 기다림만으로도 엄청난 마음고생이 가능하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막연히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민심을 달랠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하오.”
“휴. 선생의 뜻은 알겠으나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것도 사실이오.”
“나도 그렇긴 하지만…….”
윤선도는 더 말하지 않고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사실 이번 일이 가지는 의미는 굉장했다.
만일 방어에 성공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재앙에 처음으로 유의미한 승전을 거두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즉, 무기력하기 당하고 수습에만 집중했던 중대본이 처음으로 능동적인 방어전을 펼친 것이다.
이는 역병의 대비하는 위생국의 정책보다 더 진일보한 공세적인 방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휴. 시일이 충분히 지났는데도 무소식이니 참으로 답답하오.”
“내 말이 그 말이외다.”
흐름을 끊은 건 역시 허적이었다.
그는 중심을 딱 잡으며 말했다.
“평양부의 일은 이미 우리 손을 떠났소. 그러니 지금 우리는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는 게 옳소. 우선…… 하. 근데 대체 왜 이리 연락이 없는 것이오?”
결국, 허적도 말하다가 화를 냈다.
멋쩍은 웃음은 커져만 갔다.
“호판 대감. 어떤 결과가 나올지라도 평양부로 보낼 구휼미의 다시 점검할 필요는 있습니다.”
“반계의 말이 옳소. 지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오. 우선 구휼미는…….”
허적의 말이 이어질 때였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팽팽한 긴장감이 올라왔다.
숨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옆 사람의 신경에 거슬리지 않게 하고자 숨도 참게 되었다.
그런데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함성이 들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서로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고 있었다.
입꼬리가 꿈틀거리며 미소를 만들었다.
“이겼다!”
“첫 승이다!”
젊은 관리들의 구체적인 언어가 들렸다.
우리는 주먹을 꽉 쥐며
“오오오오!”
“오오오오!”
“오오오오!”
환호성을 질렀다.
눈물이 핑 돌았다.
너도나도 얼싸안았다.
그랬다.
이는
“대감! 첫 승입니다!”
진실로 첫 승이었다.
우리는 울었다.
진심으로 기뻐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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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업은 너무 황당했다.
평생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이런 일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또, 오늘처럼 심각한 위협과 만난 적도 없었다.
긴장을 끈을 놓치지 않고 훈련대장 이완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지독한 외골수였다.
변승업은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영감. 소인이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런. 내가 말이 너무 빨랐나? 이해하게. 평양성에서 대승을 거두었기에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네.”
“대승이라고 하셨습니까? 그곳에서 전투가 발생한 것도 아닐 텐데 어찌…….”
“하하하. 병충해를 우리 훈련도감이 격퇴했지 않은가. 이것이 대승이 아니면 무엇이 대승인가. 잘 들어보게.”
이어지는 이완의 말에 변승업은 크게 감탄했다.
손쓸 방법이 없는 병충해다.
이를 가축을 동원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해결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자연스레 소멸하는 병충해의 시기와 적절하게 맞물린 덕도 있을 것이지만 굳이 입을 대지는 않았다.
승전의 기쁨에 취한 무장에게 섣부른 말을 하는 건 수명을 단축하는 기민한 지름길이니 말이다.
“영감. 참으로 감축드립니다.”
“하하하. 고맙네. 아닐세. 이 모든 건 선왕께서 살피시기에 가능한 일이었네.”
“물론입니다. 소인도 늘 선왕을 심장에 품고 있습니다.”
“역시 자네는 된 사람일세.”
“별말씀을요. 한데, 소인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자 여기까지 오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아. 대수롭지 않은 일일세. 우선 가져온 어류를 수레에 올리겠나?”
“예?”
“응?”
“……저기 보이는 수레는 소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수레인 것 같습니다만.”
“허. 어찌 자네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시나? 승하하신 선왕께서 아신다면 크게 낙담하실 것이네.”
“…….”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선왕을 찾는 이완이었다.
변승업은 진땀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냉철한 이성은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게 했다.
“영감.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기 보이는 어선들은 모두 소인의 소유입니다. 청국의 바다까지 가서 목숨을 걸고 어류를 구해온 겁니다. 한데, 훈련도감의 수레에 그냥 실으라니요? 이해할 수 없군요.”
“말하지 않았는가. 평양부에 병충해가 발생했고 우리가 대파했다고 말일세.”
“결국, 소인의 어류로 평양부의 백성을 구제하겠다는 것이군요.”
“바로 그것일세.”
“음. 닭과 오리의 수가 많을 겁니다. 도살하면 당장 어려움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인데요?”
“나도 그럴까 싶었으나 중대본에서 절대 불가라고 하였네. 중요한 전력이니 잘 보존했다가 또 사용해야 한다더군.”
“아.”
“그러니 자네가 나서야겠네.”
그 말을 하며 이완은 크게 웃으면서 떠들었다.
변승업도 함께 웃었다.
“하하하. 영감. 농이 과하십니다.”
“하면, 사양하지 말게. 선왕께서 자네를 기억하실 것이네.”
“송구하지만,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왜 이러나?”
“영감이야말로 왜 이러십니까.”
“원하는 걸 말해보게.”
“정당하게 값을 치르시면 됩니다.”
“일단 백성부터 구해야 하지 않겠나?”
이완은 완강했다.
보아하니 무조건 어류를 가져갈 기세였다.
웃으면서 말하고는 있으나 절대 설득이나 권유가 아니었다.
의지를 좋게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이는 변승업으로서도 괜한 우려가 아니었다.
이완의 뒤에는 일천 명에 육박하는 병력이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면 그냥 가져가는 것이다.
백성의 구휼이라는 압도적인 명분을 앞세우고 있으니 버텨봤자 답도 없다.
쓰게 웃었다.
아무리 조선이 변했다고 할지라도 상단은 이토록 무기력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위기는 넘어갈 수 있는 법이다.
“좋습니다. 하지만, 소인도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 그냥 넘겨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는가. 원하는 걸 말해보게.”
“영감께서 보증을 확실하게 서주십시오.”
“보증을?”
“값은 중대본에 찾아가서 받겠습니다. 영감께서는 문서로 작성만 해주십시오.”
“어렵지 않네.”
변승업은 확실하게 알게 됐다.
이완은 중대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말이다.
이건 이대로 좋은 일이었다.
엷게 웃으면서 문서를 꺼냈다.
물론, 지필묵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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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업이 문서 한 장을 내밀고 있었다.
이건 위험했다.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애써 감추며 시선을 돌렸다.
“대감……?”
“어? 언제 오셨는가.”
“조금 전에 소인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한데, 문서를 내밀자 갑자기 눈동자가 흐려지셨지요.”
“아. 내가 그랬나?”
“송구합니다만 소인이 조금 바쁩니다.”
“내가 어찌 모르겠나.”
계속 궁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변승업은 같이 웃어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해드리지요. 훈련도감에서 소인이 확보한 어류를 몽땅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소인은 값을 받으러 대감을 찾아온 것입니다.”
대체 이완이 무슨 생각으로 그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필시 대승을 거두고 상당히 흥분하여 나선 것 같긴 한데, 이게 정말 골치 아팠다.
변승업이 가져온 어류는 아무리 후려쳐도 위생국의 1년 재정에 육박할 정도로 막대한 규모였다.
아니, 이것도 최소치였다.
당연하겠지만 우리는 이를 변제(辨濟)할 능력이 없었다.
이완의 기민한 대처로 평양부가 궤멸적 상황에서 벗어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 결과도 너무 궤멸적이었다.
지금 앞에서 변승업의 물고기가 찰랑거리고 있지 않은가.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설마 대감께서도 모르쇠로 일관하시는 겁니까?”
“이 사람아. 모르쇠라니?”
“조금 전 소인이 오니 호판 대감을 필두로 모두 사라지셨습니다.”
“다들 바빠서 그런 것일세.”
“지금 대감께서도 계속 답변을 회피하고 계십니다.”
“휴. 솔직히 말하겠네. 지금 중대본은 값을 치를 여력이 없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화가 조금 편하겠군. 무엇을 원하는가.”
“다른 건 원하는 게 없습니다. 값을 치르시길 바랄 뿐입니다.”
“…….”
“분명 이런 일을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데, 중대본에서 먼저 이러시니 소인은 정말 당혹스럽습니다.”
이건 내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냉정하게 내쳤으니 말이다.
“변 역관. 변제할 것이네. 그러니 시일을 조금 줄 수는 없겠나?”
“음.”
“좋네. 허심탄회하게 말하지. 자네도 우리 여력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을 것이네.”
“그렇긴 하지요. 뭐. 좋습니다. 하지만, 이자는 있을 겁니다.”
이거였구나.
변승업이 이번에 생각한 재산 증식 방법이.
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허. 이자라니?”
“환곡도 이자가 있습니다. 아닙니까?”
“자네 정말 야박하군.”
“송구합니다.”
어쩌겠는가.
변승업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완이 독단적으로 행동하긴 했으나, 막대한 수량의 어류가 평양부는 물론이고 인근의 기근 지역까지 구휼해냈다.
좋은 데 돈을 썼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동해지역에서 운송될 어류가 아른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참에 훈련도감을 운송부대로 편성해버릴 생각을 했다.
그래야만 이 화가 풀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딱 그때였다.
상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상선?
이곳에 상선이 왔다는 건
“전하께서 변 역관을 찾으십니다.”
이연이 찾는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내가 아니라 변승업이었다.
나는 재빨리 말했다.
“드디어 때가 되었네.”
“대감께서 준비하신 겁니까.”
“두말하면 잔소리지. ‘우리’ 전하께서 자네를 찾는 이 순간을 그토록 열망하지 않았던가.”
변승업의 얼굴에는 엄청난 긴장감이 감돌았다.
“소인.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자네는 잘할 수 있을 것이네.”
“아. 본부장 대감께서도 함께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함께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