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신성모독
절대 반지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청나라가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는 이상 누르하치가 절대 반지라는 사실에 이견은 존재할 수가 없다. 아무리 미친놈처럼 설치던 청나라 상인이라고 할지라도 누르하치의 ‘위명’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랬다. 상인들은 신성모독의 죄를 지은 것이다.
혹시라도 청국인들이 저항할지도 모르지만, 압도적 명분이 있고, 훈련도감도 등판했기에 그냥 강제 진압하면 되는 일이었다.
우주의 모든 기운이 우리에게 집중되었으니 두려울 건 없었다.
순식간에 평양부 관청으로 입성했고, 나는 인상을 팍 쓰면서 뒤따라온 이완을 쳐다봤다.
“훈련대장. 실성하셨소?”
“일단 좀 앉읍시다. 혼자만 앉으면 다요?”
이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편하게 딱 앉았다.
코를 찡그리더니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내가 실성했냐고 물으셨소? 청국 태조의 위패를 들고 대성통곡하는 공이 그런 것 같소만?”
“정신 차리시오.”
“본부장. 말씀이 과하시오? 지금 나를 도발하는 것이오?”
이완의 눈동자는 싸늘했고,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런데 너무 가소로워서 비웃었다.
“도발? 우습소. 말해보시오. 칼을 뽑아서 휘둘러 청국 상인을 해하였다면 뒷일을 감당할 수는 있소?”
“하면, 우리 백성을 괴롭히는데 지켜만 봐야 하오?”
“우리 관리들은 속이 없어서 쳐다만 봤다고 생각하오? 상대는 청국인이오. 생각이라는 게 없소?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는데, 그 판단을 훈련대장이 무슨 자격으로 하오?”
“하하하. 정말 오만하오. 한데, 이를 어찌하오? 나는 이미 전하께서 편의종사권을 내리셨소. 한데, 내가 왜 본부장에게 이런 질타를 받아야 하오?”
“상황 파악 제대로 하시오. 훈련 대장의 무모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뻔했는지 말이외다. 피나는 노력으로 달성한 대청 무역이외다. 한데, 훈련 대장의 칼부림 한 번에 모든 게 허사가 될 뻔했소. 이해하셨소? 다시 말하오? 우리 관리들이 왜 참았다고 생각하시오?”
“하하하. 선왕 시절 패악질을 거듭하던 본부장이 이러고 있소?”
“기어이 해보자는 것이오?”
“됐소.”
“좋소. 여기까지 합시다.”
가운데서 사색이 되어 눈치를 살피던 박세당은 눈을 껌뻑이며 나와 이완을 쳐다봤다. 그런데 여기까지 우리가 신경 써줄 수는 없었기에 하던 대화나 이어갔다.
“한데, 본부장은 말을 왜 그렇게 못되게 하오?”
“내가 훈련대장의 일을 수습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아시오?”
“말 한번 잘하셨소. 애초 나를 두만강 이북으로 보내려고 한 게 누군데 이러오?”
“난 아니외다.”
“뭐요?”
“아니, 생각이라는 걸 해보시오. 아무리 국경이 열렸다고 한들 두만강 이북은 위험 부담이 크오. 심지어 초피를 구하는 일이외다. 청국에서 알면 무슨 일이 생길지 가늠도 할 수 없소. 만에 하나 잡히기라도 하면 어찌하오? 심지어 훈련대장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오.”
“허. 설마……?”
“그 설마가 맞소. 나만 반대하고 다른 이들이 밀고 갔소.”
“전하께서 윤허하셨을 것이오만.”
“그래서 내가 답답하오. 너무나도 답답하오.”
이완은 정말 당황했는지 눈이 동그랗게 변해 있었다.
설마 내가 온건파일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면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대차게 욕했을 것이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 분명하다.
“훈련대장. 지금 중대본은 너무나도 호전적이외다.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소. 이를 어찌해야 하오?”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유일하게 본부장만 제대로 된 의견을 제시했을 줄이야.”
“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시끄럽소. 그나저나 청국 상인은 어찌할 생각이오? 정말 압록강을 넘을 건 아니지 않소이까.”
“안 그래도 이 일을 논의하려고 하오. 상황에 따라 넘어갈 의사는 있으나 이왕이면 안에서 정리하는 것이니 말이외다.”
“음. 적지에 들어갈 결의를 세웠으면 그리하는 게 좋긴 하오. 한데, 간다고 할지라도 본부장이 청국 황제를 잘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렵지요. 그러니 안 가는 게 맞소.”
“거. 말을 왜 그렇게 고약하게 하시오? 됐소. 어쨌거나 훈련대장이 묘안을 하나 내보시오. 조선 최고의 지휘관이니 말이외다.”
누르하치의 위패를 무기로 앞세웠기에 청국 상인을 겁박하고 억류하는 건 가능했다. 그러나 진짜는 바로 지금부터였다.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다면 정말 시간 낭비만 한 것이다.
“본부장. 내가 생각해보니 이건 누가 봐도 우리가 유리한 전장이오. 다만, 적이 대군이니 우리는 지형을 이용한 청야전술이 옳을 듯하오.”
“서둘러 말해보시오.”
“그러니까…….”
역시 조선 최고의 지휘관다운 계책이었다.
이거 잘하면 엄청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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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부 관청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절절하게 대성통곡을 했다.
물론,
“대감. 그런데 계속해야 합니까?”
괜한 물음을 던지는 박세당은 아직도 멀었다.
그토록 세밀하게 설명했건만 이런다. 답답했다. 정말.
“시끄럽네.”
그의 말을 가볍게 일축하며 연기를 이어갔다. 어찌나 절절하게 울었던지, 뻘쭘하게 쳐다보던 박세당과 사족들도 결국은 온 힘을 기울여 동참하기 시작했다.
점차 청나라 상인들의 낯빛은 흙빛으로 변해버렸다.
처음 이완이 포박할 때 제법 저항하던 것과는 상황이 완벽하게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이제 분위기가 농밀하게 무르익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쓱 쳐다봤는데, 아까만 하더라도 나를 파리 새끼 보듯 하던 눈빛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려움과 황망함만이 가득 담겨 있었으니 너무 즐거웠다.
“나는 조선의 정1품인 본부장 송시열이다.”
“…….”
오래전 중대본이 수립되면서 영의정과 동격이 된 나였다.
아니, 명예직에 불과한 영의정에 비해서 엄청난 실권이 있었기에, 조선의 이인자라는 말은 절대 과장일 수가 없었다.
고관대작이라고는 생각했겠지만 무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니 청국 상인들의 안색은 흙빛에서 똥색이 됐다. 일이 복잡하게 꼬였다는 생각에 머릿속도 엉망진창일 것이다.
“나는 우리 주상 전하의 어명을 받들어 대국 태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한데, 네놈들이 감히 나를 해하고자 했다. 결과, 위패가 크게 손상되었으니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묻겠다. 나를 해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이더냐?”
“대감. 오해가 있습니다. 해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다시 묻지. 나를 해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이지? 설마 내가 송시열이라는 걸 알았더냐?”
“그것이 아니라…….”
“아니면, 내가 어찌 위패를 가지고 있는 걸 알았느냐? 다시 물어야겠군. 어째서 위패를 상하게 한 것이지?”
“소, 소인들이 어찌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 부디 해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정말 절절하게 사정했다.
그런데 나랏일 하는데 이 말, 저 말 다 들어주면 끝이 없다.
심지어 심각한 외교 문제로 확대해야만 하는데 자잘한 사정까지 다 들어주면 일이 순리대로 풀리게 된다. 이건 별로 원하는 게 아니었다.
“해명은 여기서 할 필요가 없다. 애초 나는 너희의 해명을 들을 이유도 없고.”
“무,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가 나를 해하려고 한 건 명확한 사실이다. 무슨 해명이 필요하지? 또한, 대국 태조의 위패를 손상하고자 한 것도 명백한 사실이니라. 이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우리 백성이 모두 보는 앞에서 발생하였으니 말이다. 그러하니 이 문제는 응당 황상 폐하께서 직접 처결하셔야 할 것이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황상 폐하라니요?”
“설마 이 문제를 조선에서 몇 마디 말을 하고 요동으로 송환까지만 할 줄 알았더냐? 아니지. 나는 송시열인데 그렇게 일을 정리할 수는 없지. 내가 너희를 끌고 직접 황도로 가서 황상 폐하께 고할 것이다.”
보나 마나 ‘적당하게 난리 좀 치다가 요동으로 보내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단 국경만 넘으면 어떻게든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니, 혹시 모를 지금의 육체적인 위협만 벗어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기어이 멱살 잡고 황제에게 넘긴다고 하니 드디어 본질적인 위기감이 생긴 것이다. 과연, 청국 상인들은 영혼이 잠시 가출이라도 한 듯 멍하게 나를 쳐다봤다. 안색에 생기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가서 석고대죄할 것이다. 황상께서 알아서 처결하시겠지.”
“아, 아니…….”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서 밤낮으로 쉬어야겠네. 목사는 저들의 자백을 받아내게.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네. 내가 모든 걸 책임질 것이니까.”
이미 시나리오는 잘 말해줬다. 의주 목사 정도 된다면 내 뜻을 잘 알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여차하면 정말로 국경을 넘을 생각이긴 했다.
안 가면 좋긴 한데, 가야 한다면 가볼 생각이었다.
자고로 유리할 때는 미친놈보다 더 미친 공세적 외교가 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뒤돌아 걸어갈 때 다리도 좀 절뚝거려줬다.
더 신경 쓰이게 말이다.
크게 휘청거려주는 건 덤이다.
적당할 때 박세당이 날 부축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깔끔한 판이었다.
이제 의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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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 네월이 됐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질질 시간을 끌면서 겨우 의주에 당도했다.
이제 압록강을 넘으면 되는 일이지만 안 넘어가는 게 좋은지라 며칠 머물며 시간을 더 끌었다.
아. 물론 미리 사람을 요동으로 보내어 ‘청국 태조 폐하의 위패를 집어 던진 무리를 붙잡았으니 압송해가시오!’라고 소식을 전했다.
그러하니 시간이 되면 청국에서 책임 있는 관리가 올 것이다.
내심 뇌호가 오길 바랐으나 강희제가 어찌 판단할지는 모를 일이다.
그리고
“아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이오?!”
바라고 바라였던 내 친구 뇌호가 달려왔다.
너무 기쁘고 반가워서 하마터면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격하게 포옹할 뻔했다.
하지만 군자란 늘 침착해야 하기에, 애써 감정을 갈무리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뇌호도 엄청 급하게 달려왔는지 의관이 엉망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의 머리카락이 참으로 보기 좋았고, 청국 상인이 보이면 죽여버리겠다는 듯한 눈빛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신성모독을 전해 들었으니 얼마나 열이 받겠는가.
“오셨습니까. 대인. 일단 앉으시지요.”
“본부장. 상인들이 진정 우리 태조의 위패를 집어 던졌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때려죽일 것만 같은 기세였다. 이 서슬 퍼런 기세를 보이며 실행에 옮길 권한도 있는 사람이 우리 편이니 이렇게 듬직하고 좋았다.
그러면 이제부터 마음껏 송시열답게 살아보기로 했다.
“상인이 아니라 죄인입니다. 그들이 소인을 급습했습니다.”
자고로 불이 나면 부채질해주는 게 원칙이다.
“본부장을 급습했다니요?”
“대관절 무슨 말이오? 분명 우리 태조의 위패를 집어 던졌다고 들었소.”
“죄인들은 소인의 정체가 송시열이라는 알고 일부러 급습한 겁니다. 조선에서 대국 태조의 위패를 이동하며 모실 수 있는 사람은 소인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즉, 이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준비된 일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사고가 아니라 의도한 일이라니요? 대체 그들이 무슨 사유로 태조의 위패를 해한다는 말이오?”
“감히 죄인들이 대국을 상대로 허튼짓하지는 않을 겁니다. 역모란 어불성설이니 말입니다. 그러면 남은 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양국의 관계를 해치고자 한 겁니다.”
“뭐요……?”
본질은 신성모독이 아니라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