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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63화 (263/298)

263화 폭풍전야(1)

윤선도는 심사가 완전히 뒤틀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터트렸다.

“자네들은 대체 일을 어찌 하는 것인가?”

“……선생. 진정하십시오.”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

윤선도의 화를 고스란히 받는 이는 한 명이 아니었다.

족히 10명은 되는 인원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기분 나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우리 남인의 기강이 언제 이렇게 무너졌단 말인가.”

이들은 모두 남인의 중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네!”

하늘을 찌를 듯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윤선도의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남인 중진들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하. 우리 남인의 거점에 있는 서원에 연판장을 돌려 동의를 구하라고 한 지가 대체 언제인가? 한데, 아직도 5할도 달성하지 못했네. 이게 말이 되는가?”

“선생. 아무래도 서원은 성현의 제사를 지내고 사대부가 학문을 익히는 공간인지라, 병자를 수용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윤선도는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입술은 파르르 떨렸고, 볼은 거칠게 씰룩거렸다.

“서인은 이미 6할에 육박했네. 한데, 조선 성리학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남인이 그보다 못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

“조금 전 대사헌이 나를 얼마나 조롱했는지 아는가? 내가 자네들의 무능력함에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가?”

“…….”

“왜 아무도 말이 없는가? 대사헌이 나를 조롱하는 게 합당하다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

윤선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고개를 들고 남인 중진들을 노려봤다.

“지난번 폭우로 무너진 민가를 복원하기 시작했네. 거점의 온돌 보급을 책임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을 것이네.”

“…….”

“나는 자네들이 지금 행하는 침묵이 무척이나 불쾌하다네. 그러니 멈춰주길 바라네.”

“…….”

“하……. 설마 이것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선생. 온돌의 보급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

윤선도는 화가 나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어찌 남인의 중진이라는 인사들이 어찌 이렇게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단 말인가.

“대체 뭐가 어렵나? 변승업이 모든 재원을 보태고, 유형원이 온돌 설치 방법을 인쇄하여 군현마다 전달했네. 그러면 자네들이 할 일이라는 건 백성들을 교화하는 게 전부일세. 이게 어렵나? 대체 자네들은 왜 경전을 익히고 다니나?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지 않은가!”

“…….”

“지금 자네들은 우리 남인이 서인보다 못하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세! 내가 분명히 말하겠네. 이달 내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가져오지 않으면 내가 직접 군현으로 내려갈 것이네. 알겠나?”

“그, 그리하겠습니다.”

“썩 물러가게! 꼴도 보기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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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송준길은 1년이 늘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고, 조금 전 윤선도를 크게 약 올렸던 일을 떠올릴 때마다 입꼬리가 씰룩거린 것이다.

“하하하. 자네들이 내 체면을 제대로 살려주었네.”

“하하하. 대감. 어찌 소생들의 덕이겠습니까. 그저 우리 서인이 남인보다 뛰어나기에 발생한 일에 불과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하하하! 그런 것인가? 내가 생각이 짧았군. 오늘 자네에게 크게 배웠어.”

“이런. 소생이 오늘 드디어 큰일을 하고 말았군요.”

“하하하!”

송준길의 사가를 가득 메운 20여 명의 서인 중진들 사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비상시 서원의 사용과 온돌의 설치를 두고 펼쳐진 붕당 간의 ‘경쟁’에서 가볍게 이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추이라면 이변이 없는 한 압승이 확실했다.

“하하하! 자네들 너무 열심히 하지 말게. 아니, 왜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나? 쉬엄쉬엄하게. 아무리 그래도 남인도 입장이라는 게 있을 건데, 우리가 너무 크게 이기면 민망하지 않겠나? 자네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데 말일세.”

“이런. 대감. 모르셨습니까? 그럴 줄 알고 이미 소생들이 쉬엄쉬엄했습니다.”

“이런! 그랬었나? 그런데도 남인을 압살하고 있단 말인가?”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이건 어쩔 수 없군.”

“그러니 말입니다. 애초 우리 서인과 남인의 경쟁이라는 건 성립도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대, 대감.”

서인 학자 한 명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송준길은 빙그레 웃으면서 쳐다만 봤다.

다른 이들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이 사람아. 왜 그렇게 뛰어다니나?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하하하! 그러니 말입니다. 이보게. 걸어 다니게. 안 뛰어도 이긴다네.”

“이 좋은 시설에 왜 그렇게 달리나? 천천히 걸으며 하늘도 보고 그러게.”

다들 농을 던졌다.

그런데

“도, 도산 서원이 결의했다고 합니다.”

절대 발생하지 않을 줄 알았던 일이 터졌다.

남인, 아니 서인까지 포함한 조선 서원의 태두인 도산 서원의 한 걸음은 모든 서원의 열 걸음보다 무거웠다.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조금 전 농을 던진 이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송준길의 눈치를 살폈다.

순식간이었다.

“자네들, 걸어 다니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허. 종묘와 사직 그리고 만백성의 안위가 달린 일이거늘 쉬엄쉬엄한다고 했나?”

“대, 대감.”

“하! 진정 실성하셨는가? 어디서 그런 말을 함부로 입밖에 내뱉는가!”

“소, 송구합니다.”

“당장 나가게! 참으로 한심하군!”

가차 없는 축객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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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는 모처럼 유형원과 동부 지역을 거닐었다.

몇 년 전의 황량함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번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두 사람이 굳이 이곳을 찾은 건 단지 번영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반계. 보이는가?”

“하하하. 이 사람아. 벌써 몇 번을 말하는가.”

“백번을 말해도 들어주게. 내가 너무 뿌듯해서 그러니까.”

유형원은 괜히 고개를 저었으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윤휴가 평소와 다르게 이리 말할 만한 일이었기에 그러했다.

“보시게. 사방에 5묘나 되는 뽕밭들이 있네.”

다소 과장이 보태지긴 했으나, 그래도 될 일이었다.

백성이 거주하는 민가에서 뽕나무를 재배하여 양잠까지 시행하고 있었으니, 윤휴가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태조 이래 꾸준하게 추진한 양잠 정책이었으나 늘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작금에 이르러서는 동부 지역을 뒤덮을 정도로 뽕나무가 많았다. 전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만약 나라 전체를 어지럽히는 기근이 아니었다면 이 자체로 태평성대라며 환호를 질러도 되었을 정도의 일이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뽕나무를 제대로 재배한 지역은 고작 10여 개에 불과했네. 한데 보시게. 지금에 이르러서는 70여 곳에 육박하였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하하! 자네 말이 맞네. 이는 참으로 좋은 일일세.”

“또한, 이제는 그루마다 뽕잎 30근을 거둘 수 있으니 조선 전체가 뽕잎으로 가득할 것이네. 나는 가슴이 너무나도 벅차오른다네.”

“하하하. 내가 잘 알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네.”

그간 잠을 줄여가면서 양잠업을 챙기던 윤휴를 옆에서 보았던 유형원이었다.

얼마나 마음을 쓰며 애를 썼는지도 잘 알았다.

그래서 진심으로 말할 수 있었다.

“자네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할 수 없었을 것이네. 참으로 대단하네.”

“이보게. 반계. 뽕나무가 아무리 많아도 양잠법을 알지 못하면 한갓 땔감에 불과하다네.”

“암. 당연하지. 그래서 양잠법을 보급하는 일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가. 내가 옆에서 다 보았지 않은가.”

“특히 누에는 민감하기에…….”

정말이지 평소 윤휴를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들뜬 상태였다.

심지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형원은 한 번도 끊거나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환하게 웃으면서 벗의 말을 듣고 대꾸해주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끽하는 가슴 따뜻한 순간이었다.

한참이나 떠들던 윤휴의 눈에 수레가 보였다.

“아. 인분을 옮기는군.”

동부 지역 민가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인분을 철저하다 못해 지독할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관리한다는 점이었다.

모든 인분이 양질의 비료로 거듭나고 있으니 정말이지 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네가 참으로 고생이 많았네.”

“이런. 백호. 이러니 서로 덕담을 일부러 주고받는 것 같지 않은가.”

“아무렴 뭐 어떤가. 좋은 일인데 백 번을 해도 나쁠 게 없지 않은가.”

“자네 말이 많아.”

인분의 냄새가 거리를 강렬하게 전해졌으나 윤휴는 싱그럽게 웃을 뿐이었다.

“자네의 노고로 동부 지역이 이렇게 변했네. 참으로 대단하네.”

“이 사람. 되었네. 그만하시게. 내가 너무 민망하니 말일세.”

“하하하. 그런가?”

“양잠업 이야기나 해주시게.”

“좋은 생각일세.”

윤휴가 다시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이런. 비가 내리는군.”

“하하하. 내가 말이 너무 많았네. 서둘러서 비를 피하지.”

“되었네. 뭐 어떤가. 나는 자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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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때마다 무섭게 범람했던 청계였다.

근처를 지나가다가 몇 명이 죽었는지 몰랐다.

오늘도 제법 강한 비가 내렸다.

그러나 청계 근처를 오가는 백성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몇 년 전 유형원의 주도로 대대적인 역사를 시행한 이래 청계가 한 번도 범람하지 않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좋군.”

“그렇지. 옛날이었으면 비가 올 때 이쪽으로는 걸어 다니지도 못했지 않은가.”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이렇게 편한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하는 말일세. 청계 역사는 내가 본 조정의 일 중 가장 잘한 일일세.”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두 사람이 괜한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만큼 청계의 범람은 일대 백성들에게 상당한 위협이었다.

이를 한 번에 해결했으니 칭송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들어보니 몇 년은 물이 넘칠 일은 없다더군.”

“수시로 사람들이 와서 청계 바닥을 확인하지 않는가. 또, 인부를 동원해서 흙을 조금씩 퍼 나르니 넘칠 일이 있겠나?”

“그렇지. 자네 말이 참으로 옳아.”

청계가 범람하는 이유는 결국 흙 따위가 쌓여서 수면이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형원은 주기적으로 관리와 인부를 파견하여 청계의 범람을 미연에 차단했다.

엄청난 인력이 필요한 역사를 또 일으키는 것과 비교할 때, 몇 배나 효과적이고 원칙적인 방책이었다.

덕분에 청계는 완벽하게 인근 백성의 터전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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