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폭풍전야(2)
조선 의술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위생국은 오늘도 전쟁터였다.
허목의 옷은 이미 땀으로 절어 있었고,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미간은 잔뜩 찌푸려졌고, 한숨은 쉬지 않고 새어 나왔다.
바쁘게 오가던 그는 결국 화를 터트렸다.
“내가 몇 번을 말했나?!”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의원들과 병자들이 있었다.
모두 당황하여 눈을 껌뻑이면서 허목을 쳐다봤다.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은 덤이었다.
그러자 허목은 더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 모여 있지 말라고 하였네! 병자와 병자의 거리를 확실하게 지키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하였나? 또한, 한곳에 병자를 모아서도 안 된다고 했거늘 자네들은 아직도 이를 숙지하지 못한 것인가?”
“선생. 진정하십시오.”
“하!”
“그게 아니라 이미 완쾌한 이들입니다.”
“완쾌하였다고 할지라도……. 음. 그러면 병자가 아니지 않은가.”
노발대발하던 허목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의원은 조금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파서 왔기에 썩 좋은 기억은 아니겠으나, 그간 정도 들어서 인사나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덕분에 소인의 몸이 멀쩡해졌습니다. 그동안 밤낮으로 애써주신 걸 소인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허목에게도 말했다.
“소인이 잠시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벌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아.”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내가 그렇게 퍽퍽한 사람이 아닐세.”
허목은 얼굴이 다소 붉어지는 걸 느꼈으나 애써 무시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자연스레 말을 돌렸다.
“아프지 말게. 여기는 안 오면 좋은 곳이니 말일세.”
“새겨듣겠습니다.”
“선생. 그리고 기별이 왔는데 인근의 폐가를 모두 확보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예. 사람을 보내서 정리한다면 병자를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라고 하던가?”
“오늘까지 확보한 게 수십 채에 이르니 족히 수백 명은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됐군. 그러면 자네가 도성 내외의 시설을 다니며 병자를 이동시키라고 전하게.”
“소생이요?”
“하면, 내가 가야 하나?”
“지금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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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현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눈 뜨고 일어나서 누워서 눈감을 때까지 웃으면서 다녔다.
평생의 꿈이었던 해부학을 집대성한 것만으로도 기쁜데 후학까지 두게 되었으니 웃음이 마를 수가 없었다.
“하하하. 백 의원. 웃음이 떠나지 않소이다.”
처능의 호탕한 말이 들렸다.
백광현은 황급히 몸을 돌려 정중하게 합장했다.
“대사.”
“하하하. 백 의원을 보면 이 노승도 기분이 좋아서 괜히 말을 걸고 싶소.”
“이런. 대사께서 나서주지 않으셨다면 어찌 제자를 둘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처능의 전폭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자무식인 백성을 상대로 한 일이었기에 훈민정음으로 편찬한 의서가 절실한 건 당연했는데 처능과 승려들이 모두 해결했다. 또한, 의원이 되고자 하는 백성을 모아내고 ‘서원’에서 공간을 확보까지 해주었으니 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도왔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니외다. 승려들이 거들긴 하였으나 어디까지 백 의원이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지요. 아무나 ‘선택’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외다.”
처능의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아니, 애초 백광현이 여기에 온 게 송시열의 의지라는 걸 알기에 하는 말이었다.
송시열은 절대로 아무에게나 이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송시열이라는 인물이 워낙에 종잡을 수 없긴 하다.
백광현은 조금 애매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소인도 알고는 있습니다만…….”
“하하하. 되었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다 알고 있소.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으니 애써 말을 만들기 위해서 애쓰지 않아도 되오.”
“하하하…….”
“그나저나 좀 어떻소? 뒤를 이을 만한 제자가 보이시오?”
“아. 당장은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최소한의 의술을 펼칠 수 있는 의원을 최대한 많이 육성하라는 명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송시열이 눈앞에 있는 건 아니지만 절대 말을 어길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처능도 대강 사정을 짐작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네 이놈! 아직도 손을 씻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더냐!”
무당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지목당한 백성은 사색이 된 채로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 어찌 아셨소?”
“딱 보면 보이거늘!”
“그, 그것이…….”
딱 보이면 보이긴 했다.
누가 봐도 손이 지저분했으니 말이다.
처능과 백광현은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사실 이곳에서 위생의 보급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를 꼽으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무당이었다. 이를 부정할 만한 사람, 아니, 집단은 딱 한 곳이었다.
바로
“이유를 말하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사족이었다.
지나가던 양반 한 명이 못마땅하다는 듯 무당에게 훈계했다.
그러나
“허! 신이 노하셨다!”
오히려 무당이 일갈했다.
양반의 수염까지 덜덜 떨렸으나 딱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무당의 활동에 제약을 가하지 말라는 목사의 엄명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처럼 양반이라고 할지라도 위생을 보급하는 무당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희한한 현상도 생기긴 했다.
“봤지? 양반도 무당한테 한마디도 못 하지?”
“진짜 신내림을 받은 것이었어. 그래서 양반들도 무서운 것이었어.”
“그러니까 지체 높은 양반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나?”
“저번에 다른 무당은 양반한테 쫓겨났던데?”
“그 무당들은 영험하지 않은 것이지.”
위생 보급에 열과 성을 보이지 않는 무당은 여전히 천시받는 현상과 더해지면서 자연스레 몇 명 무당의 말을 맹신하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위생의 보급이 탄력을 받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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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거의 표정은 무거웠다.
기쁘기도 했으나 걱정도 너무 컸다.
그러나 장성한 아들의 길을 막을 수도 없었다.
“네 뜻이 정녕 그러하다면 내가 어찌 반대할 수 있겠느냐.”
“소자는 아버님의 진심 어린 격려와 지지를 받고 싶습니다.”
윤증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고, 눈과 표정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윤선거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로서는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님. 소자는 역병이 발발했을 때 우리 관리가 몸을 사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개탄스러웠습니다. 만일 서얼이 아니었다면 그 난국을 어찌 해결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한, 폭우가 무너뜨린 백성의 터전에 그들이 달려가서 복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자는 이를 듣고 더는 도성에 편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말리지 말아주십시오.”
“……나는 아직 본론도 꺼내지 않았다. 너는 갈수록 우암을 닮아가는구나.”
“아버님. 어찌…….”
윤증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감히 부친 앞에서 스승을 욕보일 수 없기에 애써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윤선거는 그 모습이 정겨워 가볍게 미소 지었다.
“사사롭게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출사하여 관복을 입는 걸 어찌 보고 싶지 않겠느냐? 그러나 난세를 살아가는 일국의 대신으로서 사대부가 백성을 위하여 하방(下方)한다는 걸 어찌 막겠느냐. 나는 네 뜻을 지지하며 응원할 것이다.”
“아버님…….”
“네 말이 참으로 옳았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부친의 말에는 한마디마다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윤증은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쉬운 길이 아닐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정척사를 부르짖은 뒤 소자는 단지 출사하기보다는 성리학의 진실한 가치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게 와닿았습니다.”
조선 성리학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정파는 누가 뭐라고 해도 위정척사파였다.
성현이라고 불렸던 이들을 성균관 대성전에서 끌어내리고 서원에서 밀어낸 일을 해냈다는 것 자체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었다. 이후 실학으로 진행된 일은 끝없이 회자했다.
그래서인지 윤증의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물론, 부친의 앞이었기에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하방하여 백성을 보살피며, 사족을 설득하고, 서원의 역할을 바로 잡을 것입니다.”
“네 뜻이 참으로 옳다.”
해서, 윤선거 역시 맑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대로 하방한다면 어쩌면 관직과는 인연이 영영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난세가 도래하면서 발생한 여러 변화로 사대부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오늘 윤증의 하방 결심에 이런 고려가 없다고는 할 수가 없다. 아니, 무척이나 비중이 컸다. 윤증이 애써 이를 언급하지 않자 윤선거는 덕담하듯 편히 말을 꺼냈다.
“몇 년간 이어진 난세로 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됐다. 단지 세상이 어지러워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변화를 선택한 것이니라. 기층에서 시작되는 변화는 늘 위정자의 탄압을 받기 마련이었다. 어찌하여 그러한지 아느냐?”
“기층의 변화는 위정자의 세상을 위협하는 위험한 현상이기에 그러했습니다.”
“옳다. 만일 작금의 난세에 양반이 오직 질서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백성을 짓누르는 것이며 변화를 탄압하는 것이다.”
“아버님. 지금껏 이어진 질서는 이미 실패했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양반이 무능력하여 위정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200년의 역사를 지탱했던 질서가 퇴장해야 할 때라는 걸 의미하는 겁니다. 만일 지금 물러난다면 200년을 버틴 영광으로 기록될 것이나, 끝까지 고수하고자 한다면 조선의 종기가 될 뿐입니다.”
당대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이자 대신인 부친의 앞이었기에 애써 숨겼던 말이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했다.
윤선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고 그름과 잘잘못을 떠나서 조선의 위정자는 아직‘은’ 양반이다. 이는 양반이 변화를 주도한다면, 아니, 변화를 거부하지만 않더라도 역사는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겠지.”
“그렇습니다. 하여, 소자는 양반이 어찌하여 조선의 위정자인지를 명확하게 할 것입니다. 서얼과 승려 그리고 상인보다 부족하지 않다는 걸 보이고자 합니다.”
윤증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미 성균관의 유생들도 소자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출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이다.”
“성균관의 현판을 주상 전하께 바친 성균관입니다. 그간 부단하게 노력했으나 아직 부족했습니다. 위정척사가 실학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데, 도성에서는 이를 입증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방하여 집대성할 것입니다.”
결심이 너무나도 단단했다.
윤선거는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하라.”
“물론입니다. 학연, 지연, 혈연 중 가장 중요한 게 혈연이니 말입니다.”
“하하하! 네 말이 옳다. 네 부친이 조선의 예조판서이니 늘 상기하며 앞세우도록 하라.”
“소자는 감히 아버님을 내세울 것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하하하! 과연 우암의 제자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