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서막(序幕)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기에, 아니, 잠이 오지가 않았기에 눈뜨고 밤을 지새웠다.
누워 있지도 않았고, 그냥 앉아서 천장만 바라봤다.
그리고 기다리지 않았던 경술년 새해 첫날의 태양이 떠올랐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탉이 울었다.
“…….”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관복을 입었다.
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더니 심장이 요동쳤다.
들이쉬면 머릿속의 뇌가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진정해야 한다. 나는…….”
내 목소리였지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분명 평소와 다름이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으나, 경신 대기근이 강림하는 경술년의 첫날이라는 사실 하나로 공포가 밀려온 것이다.
이건 미래를 아는 사람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감정이었다.
다시 숨을 크게 내쉬며 문을 열었다.
세상은 그대로였다.
아직은 변한 게 없었다.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
경술년 새해 첫날부터 사달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마음을 편히 먹으며 사가를 나섰다.
백성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바쁘게 오갔다.
어제와 같은 일상이 오늘도 이어졌다.
세상은 바뀐 게 없었다.
기저에 깔린 난세에 대한 고통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웃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은 늘 슬퍼할 수는 없기에 웃었다.
그런데
“어?”
“어?!”
“어?”
바쁘게 움직이던 백성들의 소란이 들렸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이었다.
“…….”
하늘에는 속이 붉고, 겉은 푸른 햇무리(일훈, 日暈)이 보였다.
“…….”
됐다. 그냥 평범한 현상이다.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고,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걸음을 옮겼다.
등청하니 모두 모여 있었다.
표정들이 다들 좋지 않았다.
이 시절 하늘의 변고는 중대사안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나는 처지가 다르긴 했으나, 미래를 알고 있기에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들의 불안함에 함께 매몰될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소.”
허적의 말도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하늘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는 나라고 하지만, 이 시절 사람들의 정서라는 걸 무시하면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선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도 이렇게 동요한다면, 민심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왜 이러는 걸까?
벌써 마음이 몇 번이나 이랬다가 저랬다가 한다.
나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외다. 조금 더 지켜보지요.”
“휴. 그러길 바랄 뿐이오. 세상이 어지러우니 모든 걸 우려하는구려. 내가 예민했소.”
“아니외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였고, 괜히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하게 됐다.
나는 분위기를 환기하듯 양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모두 기운을 내야지요. 아직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소.”
“참으로 기운이 나는 소리구려.”
“하하하.”
엷은 미소와 함께 논의는 시작됐다.
오늘도 우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
달무리도 관측됐다.
마치 하늘이 우리에게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선전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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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중화.
평소와 다름이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가끔 추워지기도 했고, 비가 잦기도 했다.
하지만 삶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조정에서 내린 어류로 굶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백성들은 땔감과 석탄이 비축되어 있기에 추위가 닥쳤을 때 버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해서, 오늘도 어김없이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 그래서인지 백성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까지는 없었으나 심각한 근심이나 걱정도 없었다.
“자네 좀 웃게나.”
“응?”
“아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우거지상인가?”
“아. 잠자리가 영 뒤숭숭했네.”
“이런. 악몽이라도 꿨나?”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말이 그러나?”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원. 실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그나저나 땔감을 받으러 갈 건가?”
“그래야지.”
언제 추위가 기승을 부릴 줄 모르는 시절이었기에 관청에서는 주기적으로 땔감을 나눴다. 백성들로서는 반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더 추워지면 석탄도 준다더군.”
“정말 추워지면 주겠지. 일단은 땔감에 만족해야지.”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이왕이면 근처에 창고를 두었으면 좋았을 건데 왜 이리 멀리 두었나 몰라.”
“하하하. 이 사람. 오늘 왜 이러나? 이보게. 고을 안에 그만한 창고를 둘 수 없으니 외곽에 둔 게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멀지도 않아. 부지런하게 걸어가면 금방일세.”
“그냥 해본 말일세.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
두 사람은 정겹게 농을 주고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보 더 걸었을 때였다.
“네 이놈들!”
우렁찬 호통 소리가 들렸다.
무당이었다.
한 명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 씻었소.”
“내가 다 알고 괜히 한번 불러 본 것이다!”
“그러시겠지요.”
무당은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괜히 웃으며 사라졌다.
“저 무당은 영 신통치가 않아.”
“실은 나도 그 생각은 해봤네. 그래도 늘 조심해야지.”
“암. 무당 말을 안 들으면 삼대가 재수 없다고 했어.”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땔감 창고에 도착했다.
그런데 벌써 장사진이었다.
얼핏 봐도 수십 명이었다.
“끙. 사람들이 참 부지런하군.”
“내 말이 그 말일세.”
“그래도 어쩌겠는가.”
“기다리다 보면 순번이 오겠지. 못 받아 가지는 않으니 뭐.”
그래도 잠시 줄을 서고 보니 그새 뒤로 많은 사람이 나타났다.
어느새 백 명은 훌쩍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보니 자연스레 소란이 커졌다.
하늘이 수상한 시절이긴 했으나 대화는 제법 정겨웠다.
그러던 중이었다.
“아니, 그래서 내가…….”
“응? 왜 말을 하다가……?”
“…….”
“…….”
장시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소란스러움이 순식간에 멎었다.
그러면서 다들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 소리가 들렸다.
아니, 시끄러웠다.
아니…… 천지에서 굉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온몸이 떨렸다.
북동쪽이었다.
눈을 마주치던 백성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천천히 고개를 움직였다.
몸은 그대로였고 고개만 움직였다.
북동쪽 하늘을 본 백성들은 그대로 멈췄다.
그냥 몸이 굳어버렸다.
지금 하늘에서
-쏴아아아아아아앙!
-쏴아아아아아아앙!
-쏴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크기의 불덩이가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땅과 충돌했다.
그 누구의 비명도 없었다.
굉음과 굉음의 잔재가 세상을 뒤덮었다.
오늘, 지옥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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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내내 햇무리와 달무리가 계속 나타났다.
민심은 갈수록 어수선해졌다.
하늘에서 이러고 있으니 우리가 대처할 방법이라는 건 없었다.
하늘에 대고 제사라도 지내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며칠 제사를 지냈는데도 효과가 없으면 민심은 더 크게 요동칠 것이니 말이다.
심지어 관리들도 동요하는 마당에 조정은 어수선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급기야 도성의 밤하늘에 유성까지 나타났다.
사발처럼 생겼고 꼬리의 길이는 눈으로 봐도 1m는 되었다.
아직 퇴청하지 않았던 중대본에서는 한숨만 터져 나왔다.
“도성의 백성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소.”
“관리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소.”
직접 보지는 않았으나 듣기만 해도 불안함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갈수록 수상한 징조가 나타나고 있소.”
“괴란의 징조라고 할 수 있소.”
이들의 말은 그냥 뜬구름이 아니었다.
이 시절에도 천체 관측에 대한 데이터가 꾸준히 모여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백성의 불안함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적극적인 방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백성을 달래야 하오.”
“그래야지요. 지금껏 없던 강도 높은 방법을 사용해야 하오.”
그런데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민심을 다독일 수 있을까.
하지만, 민심의 동요가 임계지점에 도달했기에 그냥 있을 수도 없었다.
“우선 백성들을 직접 만나서…….”
내가 말을 이어가기도 전이었다.
중대본의 문이 발칵 열렸다.
몰골이 엉망이 된 관리였다.
아니, 파발이었다.
그런데 손에는 문서가 없었다.
그냥 몸만 온 것이다.
상황이 급박함을 알려주는 단서였기에 불안함이 치솟았다.
누가 묻기도 전에 그가 입을 열었다.
“펴, 평안도 중화에 화괴(운석)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뭐……?”
“주위 31척 5촌가량의 땅이 꺼졌습니다.”
운석이라니.
대경실색하여 물었다.
“사, 사상자는 얼마나 되는가?”
“…….”
“어서 말하라!”
“화기가 떨어진 곳은 원래 민가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한데, 땔감과 석탄을 보관한 창고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뭐라……?”
“줄을 선 백성 수백 명이 모두 죽었습니다.”
원래는 죽지 않았을 백성이 방한 대책에 의하여 죽었다는 말이었다.
의도가 아니었고, 잘못 한 일도 아니었으나 심장이 따가웠다.
“또한, 하늘에서 먼지가 비 오듯 하여 낮에도 앞으로 볼 수 없습니다. 햇빛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기에 극심한 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
“그러나 땔감이 없기에 백성들은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비극이 연결되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다른 피해는 없는가.”
“…….”
“말하라.
“극심한 추위를 이기지 못한 백성들이 아무거나 태웠는데 불이 크게 번졌습니다.”
“그곳에는 관리가 없단 말인가!”
“땔감을 나누는 장소에 관리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지금 중화는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지금도 화마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습니다. 대감. 중화가 지도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다.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모두 연결된 것이다.
심장이 떨려서 말이 안 나왔다.
그래도 말을 꺼내야 했다.
“우선…….”
그런데 또 문이 열렸다.
이번에도 파발이었다.
그 역시 문서는 없었다.
사람만 온 것이었다.
그런데 덜덜 떠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더 큰 불안함이 엄습했다.
목울대를 몇 번이나 움직이던 그가 말했는데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삼남지역에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이라고 했다.
심지어 삼남지역이라고 했다.
나는 날카롭게 물었다.
“어서 말하라!”
“폭우로 복원하였던 민가가 수백 채가 무너졌습니다. 아니,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소인이 장계를 받아 올라올 때의 수치에 불과했습니다.”
“사상자는 어느 정도인가…….”
“……깔려 죽은 이가 이미 수천 명에 이릅니다.”
“…….”
“대감. 인세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단 며칠 만에 우리가 쌓은 개혁의 성과 절반이 소실되었다.
절망이라는 두 글자가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