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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68화 (268/298)

268화 고작 한 달

세상이 혼란스러웠으나 정치는 혼란스럽지 않았다.

이연이 즉위한 이후 첨예한 붕당의 대립은 없었으며, 위생국이 수립되었고, 군포 철폐 등 민생을 다독이는 수많은 개혁이 단행되었다.

자잘하게 하나씩 열거하지 않더라도 선정이 베풀어진 걸 절대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 혹은 집단마다 크고 작은 불만이 존재할 수는 있으나, 이연이 선정을 베풀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는 민심을 다독일 때 엄청난 힘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위정자가 부패하고 탐욕스러울 때 백성은 그들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랬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저번에 가져간 닭은 왜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잡아 드셨소?

-우리 집 오리도 어디서 행방불명이 된 거요? 하늘로 승천했소?

오랜 선정도 단 하나의 일로 발목이 잡힐 수가 있었다.

세상이 이랬다.

중대본으로서는 병충해를 제압하기 위한 묘안이었지만 닭과 오리의 주인들은 골수에 새겨질 일이긴 했다.

재산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해서, 반발이 크오.”

어색한 웃음이 동반되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분명한 사실이었으니 이를 달랠 방법이 없었다.

가볍게 생각하면 병충해를 제압한 이후 닭과 오리를 돌려주는 게 맞겠으나, 언제 병충해가 재발할지 몰랐기에 중대본에서 여전히 관리하고 있었다.

또, 애초에 누구의 소유였는지 정확하게 기록하지도 않았다.

하나씩 적으면서 어찌할 정국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끙. 그런데도 성과가 없는 건 아니오. 관리부터 무당까지 모두 동원되어 백성을 만나고 있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오.”

도성 곳곳에서 무당이 굿을 하고, 승려들이 집마다 방문을 활발하게 진행했다.

이에 질세라 사대부도 최선을 다하여 백성을 설득하였지만…….

“관리와 사대부는 좀 빠지라고 하는 게 어떻겠소?”

윤선도의 노여운 목소리가 말해주듯 그들은 또 문제를 일으켰다.

“시름에 빠진 백성에게 윽박이나 지르는 건 대체 무슨 경우요?”

“선생. 진정하시오.”

“그 꼴을 보고 있노라니 사화가 왜 필요한지 알 것만 같았소.”

“하하하…….”

괜한 말이 아니었다.

분기탱천한 백성에게 관리와 사대부들은 더 분기탱천했으니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환골탈태를 거듭해도 사대부들의 뿌리 깊은 위정자로서의 자세와 관점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교화란 백성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주입하는 것이었는데, 200년간 이어진 기풍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사실 양반들이 직접 백성을 만나러 하방했다는 사실 자체가 혁명적인 일이긴 했다.

지난 200년간 그들은 늘 한자리에만 있어 왔으니 말이다.

“선생의 말이 틀린 건 아닐세. 관리라도 이 일에서 배제하는 게 옳은 것 같네. 조정의 일에 전념하게 하는 게 맞네.”

송준길까지 거들었다.

그 역시 관리들의 권위 의식에 진절머리가 난 것 같았다.

“아니, 말이야 제대로 해보자는 걸세. 서인과 남인의 지도부가 여기에 다 모여 있네. 우리도 위계질서를 내리고 백성에게 다가가는데 새파랗게 젊은 관리가 대체……. 하. 볼수록 어처구니가 없네. 그들을 타이라고 단속하는 게 더 고된 일일세. 아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걸세. 그냥 하지 말라고 하게.”

억지로 타이르거나 압박을 가할지라도 못하는 걸 진심으로 하도록 할 수는 없다.

어쩔 수가 없었다.

“휴. 그리하지요. 관리는 조정의 일에 전념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기도 전이었다.

중대본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파발이었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충청도에서 역병이 창궐했습니다!”

“뭐……?”

“이미 사망자가 500명을 넘었습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우리는 무엇하나 해결한 게 없었다.

비극은 쌓여만 가고 있었다.

아직 하나도 차감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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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던 한 백성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떨려서 도무지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잡았지만, 경련은 커져만 갔다.

“으으…….”

근처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 다가갔다.

그런데

“으아아악!”

그의 온몸이 뒤틀렸다.

사람들은 대경실색하여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커어어어억!”

구토를 시작했다.

또 그리고

“허어억…….”

설사까지 했다.

사람들은 놀라서 다가갔으나 그의 눈동자가 정상이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요?”

바닥에 누운 상태로 이상한 말을 했다.

당황한 이들이 부축하려고 손을 잡았는데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내 손은 왜 잡소? 당신들 뭐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인 듯했다.

그런데

“으으으악……!”

지켜보던 다른 이도 주저앉았고 온몸이 뒤틀렸다.

그가 시작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주변의 사람들이 쓰러졌다.

모두 몸이 뒤틀렸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피했다.

남은 이들은 모두 구토와 설사를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해괴한 말을 시작했다.

그들의 대화였다.

그리고

“…….”

“…….”

“…….”

“…….”

모두 죽었다.

그야말로 찰나였고, 십수 명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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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명의 병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바쁘게 오가던 백광현은 멈춰서더니 이를 악물며 눈을 부라렸다.

“모든 병자를 분리하라고 몇 번을 말하나!!”

“소, 송구합니다.”

“내게 송구할 게 아닐세! 병자들에게 송구하게! 자네가 지금 병자들을 죽이려고 한 것이네!”

“소, 송구합니다.”

“이따위로 할 거면 당장 때려치우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자들의 피와 각종 오물로 가득한 백광현의 일갈은 실로 두려운 것이었다. 흡사 야차와도 같았기에 이제 막 의원의 길을 밟은 이들은 연신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백 의원. 진정하시오.”

진땀을 흘리는 처능이 다가와서 말했다.

백광현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혹시 원인을 파악할 수 있겠소?”

“소인도 평생 처음 경험하는 역병입니다.”

“그렇소……?”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온몸이 뒤틀립니다. 모든 걸 토해내고 설사까지 동반합니다. 곧장 심장이 허약해지며, 사지가 차가워지고, 정신까지 오락가락합니다.”

“…….”

“그러다가 그냥 죽습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손쓸 틈도 없이 죽어버립니다. 미열이라도 보인다면 무조건 분리하여 관리해야 합니다. 처방이 없지만, 처방하고자 해야 합니다.”

백광현은 치를 떨며 말했다.

“이곳의 병자들도 의심이 갈 뿐 아직 확실하게 발병한 이는 없습니다. 아니, 발병하면 바로 죽습니다. 이건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손쓸 틈도 없습니다.”

“하…….”

처능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백광현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말을 할 정도라는 건, 도무지 손쓸 방법이 없다는 걸 의미했다.

“이미 역병으로 죽은 이가 셀 수도 없소. 이대로라면 다 죽게 생겼소. 너무나도 답답하오.”

“대사.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습니다.”

“백 의원. 발병하면 즉시 죽는 역병이오. 조정의 방침대로 병자를 분리하여 격리할 틈도 없소. 그렇다고 하여 미열이 보이는 모든 이를 격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오. 그러면 조선 천지에서 수만 명이 격리되는 것이오. 이건 재앙이오.”

처능의 말은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다.

백광현은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렸기에 고개를 저었다.

“두려운 건 위생의 여부와도 무관하다는 것이오. 아니, 단지 손을 씻는 수준으로는 이번 역병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됐소. 지금부터 위생의 강도도 더 올려야 하오.”

“대사의 말씀의 옳습니다. 처방을 구하되 예방이 더 중요하니 말입니다.”

“부디 하루라도 빨리 수그러들길 바랄 뿐이외다.”

처방을 구하는 게 아니라 사라지길 바란다는 말이었다.

그만큼 이번 역병은 전례 없는 공포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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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역병이었다.

엄청난 속도의 전염률과 견디기 힘든 통증을 동반한 초유의 역병이었다.

문제는 조선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종 역병이라는 점이었다.

표본 자체가 없었다.

특이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보통 역병은 북에서 시작하여 남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데, 이번에는 남쪽에서 먼저 발발했다.

진원지 자체가 아예 달랐다.

“대감. 일이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변승업의 말이었다.

불안했다.

“무슨 말인가…….”

“역병으로 상업이 크게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뭐……?”

“이번 역병이 청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소문이 번지고 있습니다.”

“뭐라?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이번 역병은 남쪽에서 시작했네. 청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게다가 어찌 벌써 역병 소식이 상인들에게 알려졌단 말인가. 철저하게 통제했거늘.”

“소인 역시 이번 일이 청국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인들은 두렵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사방팔방에 인맥이 있습니다. 정보의 취득이 파발보다 빨랐으면 빨랐지 절대 느리지 않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군현의 조세를 거두지 않고 전방위적인 총력적으로 돌입했는데 무역에 차질이 생기면 도성이 가장 먼저 말라 죽게 된다.

“그런데 근거가 없는 건 아니오.”

허목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말이었기에 나는 더 절망적이었다.

“지금껏 발생하지 않았던 해괴한 역병이외다. 시점을 되돌려보면 대청 전면 무역이 시작된 직후였소. 이런 소문이 번지는 걸 막을 방도가 없소. 게다가 그동안 역병은 주로 서북면에서 시작되었소. 우리는 남쪽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지만, 백성들로서는 이런 구체적인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하…….”

“본부장. 전례 없는 위기가 시작되었소. 어쩌면 상인들이 무역에 나서지 않을지도 모르오.”

“그리되면 조선은 길이 없소. 허 국장. 이를 해결해야 하오.”

“내가 그걸 모르는 게 아니오. 하지만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소. 처방이 없는 역병이며, 청국에서 번졌다는 괴담까지 보태지고 있소. 상인들을 억지로 밀어서 압록강을 넘어가게 할 수도 없으니 말이오.”

“…….”

“…….”

참담함에 침묵했는데 허목이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무슨 할 말이 있는듯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시선을 돌렸다.

“대감. 대청 무역은 무조건 강행해야 합니다.”

“반계. 묘안이 있겠는가?”

“관세를 줄여야 합니다.”

“제대로 받아도 버티는 게 쉽지 않네. 한데, 줄이면…….”

“본부장. 반계의 말이 옳소. 전혀 받지 않는 것보다 줄여서라도 징수해야 하오.”

허적까지 보탰다.

“상인은 이익을 위해서는 목숨도 불사하오. 그들에게 더 큰 이익을 보장한다면 어찌 나서지 않겠소이까.”

“허…….”

“역병이 진정될 때까지라도 이리하는 게 옳소.”

“대감. 소인도 그렇게 여깁니다. 평생 상단을 운영했기에 잘 압니다. 역병이 두렵지만, 아직 서북면에서 구체적인 역병 증세가 발견된 건 아닙니다. 단지 두려움인 것입니다. 그러니 관세를 줄이면 상인들은 압록강을 넘을 겁니다.”

변승업까지 동조했다.

더는 반대할 이유나 명분이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타협안이었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휴회하지요.”

그런데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모두 시선을 마주쳤다.

쓴 미소가 감돌았다.

모두 손에 힘을 주었다.

문이 열렸다.

일제히 바라봤다.

“전라도에서 역병이 창궐하여 사망자가 수백 명에 이릅니다.”

이를 악물며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는데 비극을 전하는 이가 한 명이 아니었다.

그 뒤로

“경상도에서 역병이 창궐했습니다.”

“강원도에서 역병이 창궐했습니다.”

“평안도에서 역병이 창궐했습니다.”

“함경도에서 역병이 창궐했습니다.”

조선 팔도의 소식이 전해졌다.

뇌가 비극을 이성적으로 인지하는 순간 한 가지가 떠올랐다.

전국적인 역병은 파발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걸 이미 경험한 바가 있었다.

오늘은 1670년 그러니까 경술년, 아니, 그러니까 경신 대기근의 첫 달이었다.

경신 대기근의 한 달이 중대본의 11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다.

고작 한 달이었다.

끔찍하게도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쌓여만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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