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바람 한 점 없어도(1)
지금껏 단일 역병이 조선 팔도 전체를 뒤덮은 사례는 없었다.
이것만 해도 최악인데, 삼남 지방에 먼저 발생했던 지진으로 행정력이 마비된 군현이 있다. 이곳들은 병자에 대한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몇 명이 고을을 떠났을지, 몇 명이 죽었을지, 어디까지 번졌을지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황급히 관리를 파악했으나 올라오는 장계의 내용이 좋을 것이라는 희망 따위는 하지 않고 있었다.
“전하. 이대로라면 병자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천하를 누빌 것이옵니다.”
내 말에 담긴 정치적 의미와 요구하는 결정을 느꼈을까?
용안은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어심이 얼마나 동요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하하하…….”
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웃음이었다.
“꼴이 너무 우습소. 그렇게 애를 쓰며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있소. 백성의 고통은 하루가 지날수록 커지고 있는데 조정은 속수무책이오. 대체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이오? 왜란도 막지 못했고, 호란도 당했소. 지금은 이게 무엇이오? 조선은 어찌하여 이토록 무능한 방패의 모습만 보여야 하오? 언제 한번 백성을 제대로 지켜줄 수 있느냔 말이외다.”
이연이 어떤 각오로 여기까지 왔는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
경국대전까지 부정해도 좋다는 그의 어명은 조선의 군왕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결심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해서, 나는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말했다.
“신이 부족했사옵니다.”
“……본부장. 그간 우리는 위생과 의술에 참으로 노력을 기울였소. 중대본의 최대 성과가 바로 위생국이었소.”
“…….”
“서원에서 의술 교육을 장려했으며, 사찰이 총동원되었소.”
“신이 죽어도 할 말이 없사옵니다.”
“내가…….”
이연은 숨을 길게 내쉬면서 겨우 말을 이었다.
“지금 탓을 하고자 이러는 것 같소?”
“…….”
“다시 묻겠소. 그 모든 병자를 격리하는 수밖에 없소?”
“역병이 번지는 속도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사옵니다. 발병하면 죽는 경우가 허다하옵니다. 하온데, 처방은 기약조차 없사옵니다. 전하. 모든 병자를 격리해야 하옵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옵니다.”
“다시 말하겠소. 조선의 모든 역량을 기울인 일이었소. 한데, 결과는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소. 고작 격리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냐고 묻는 것이외다.”
“그러하옵니다.”
“대체…….”
이연은 고통스러운지 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다.
일그러진 용안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이오?”
“전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저 많은 병자를 격리할 방편조차 없었을 것이옵니다. 이 또한 개혁의 산물이옵니다.”
“…….”
“작금의 조선에서 병자를 격리하는 건 ‘포기’가 아니옵니다. 살리기 위한 다른 길에 불과하옵니다.”
절대로 말을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현재 파악되는 전국의 병자는 감히 가늠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들을 모두 수용할 인프라를 갖췄다는 사실 자체가 성과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를 모르지 않을 이연이 괴로워하는 건 그만큼 작금의 상황이 충격적이며 암울하기 때문이었다. 고작 한 달이라는 시간은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이를 멀쩡한 정신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하.”
“…….”
“아직 시작에 불과하옵니다. 가야 할 길은 백 배로 험할 것이며, 괴로움은 감히 말로 이룰 수가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하니 부디 어심을 굳건히 하시옵소서. 우리의 노력은 절대 헛되지 않았사옵니다. 기어이 이겨낼 수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해오신 모든 걸 믿으시옵소서. 신들과 걸었던 길을 신뢰하시옵소서.”
“…….”
“조선은 최선을 다한 것만이 아니라 모든 걸 훌륭하게 잘해왔사옵니다. 그러니 무너지지 않사옵니다. 부디 믿으시옵소서. 감내하시옵소서. 신뢰하시옵소서.”
진심으로 간곡하게 청하였다.
그러자 이연은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숨기면 힘겹게 말했다.
“어명을 내리겠소. 모든 병자를 격리하여 역병의 확산을 차단하시오.”
“신 본부장 송시열,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고통스러움이 가득한 용안을 뒤로 하고 알현을 끝냈다.
바깥 공기를 마시니 나 역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부지런히 걸었으나 걸어왔던 모든 길이 사라진 기분이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너무나도 진했다. 그런데도 걸어야 했으나 내 발이 닿는 곳이 길인지 아닌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힘겨웠다.
“대감.”
번뇌에 휩싸여 있을 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틀어보니 관리들이었다.
쓰게 웃었다.
그래. 이들도 해결해야 하는구나.
다만, 나는 관리들에게 큰 기대가 없었다.
충격과 실망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마음을 독하게 먹으며 말했다.
“설득할 시간은 없네. 강제하지도 않을 것일세. 그러나 파직도 하지 않겠네. 애석하게도 마음 같아서는 그리하고 싶으나 조정은 움직여야 하니 말일세. 그러니 빠질 사람은 지금 빠지게.”
경신 대기근이 시작된 마당에 관리를 파직할 수는 없었다.
이들이 몸을 사릴지라도 지금으로서는 대안이 없다.
이처럼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야지요.”
“가겠습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겠습니다.”
관리들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잘못을 두 번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관리들의 결의가 느껴졌다.
백성에게 위계를 강조할지라도, 전날의 실책이 있더라도 이들은
“조선의 관리로서 더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조선의 관리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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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현은 멍하게 하늘만 바라봤다.
그냥 먹먹했다.
붉어지는 눈시울은 도무지 막을 방도가 없었다.
“…….”
해부학만 집대성하면 고치지 못할 병이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울부짖으면서도 시체를 배를 갈랐다.
오열하면서 배 안을 뒤적였다.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참으며 기록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잠을 제대로 잔 게 언제인지도 몰랐다.
언젠가 죽으면 반드시 지옥에 가겠노라 되새기며 망자에게 용서를 빌었다.
백 번, 천 번을 빌었다.
그래도 오늘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산 자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역병이 창궐했는데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해부학을 익히기 전이나 지금이나 역병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는 무기력한 건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길을 걸었는지 회한과 후회가 점철되었다. 너무 괴롭고 지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서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홀로 맑은 하늘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중대본에서 전해온 소식을 되새길수록 속이 따가웠다.
“하아……. 격리라니.”
결국, 중대본은 모든 병자와 의심 가는 이들을 모조리 격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대로 저들을 보내면 살아서 볼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현재 파악한 역병의 증세를 고려할 때 격리 즉시 며칠 내로 전원 사망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격리란 곧 죽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그들의 죽음이 괴로웠고, 무기력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이 해한 시체의 주인들에게 죄스러웠다.
“백 의원.”
“대사께서 오셨습니까.”
“홀로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소?”
“……실은 그렇습니다. 대사. 병자들을 보내지 않을 방법은 없겠습니까. 한 달 아니 보름이라도 시간을 얻을 수 있다면 처방을 찾아내겠습니다.”
“나 역시 백 의원과 같은 길을 걸었던 적이 있었소.”
“대사……?”
“울부짖으며 부당함을 역설했소. 부디 시간을 달라고 통곡했소. 그러나 중대본은 단호하게 불가를 전하였소.”
“…….”
“참으로 원망했지요. 조정의 대신들이 어찌 이토록 차갑고 잔인한지 이해조차 하고 싶지 않았소. 나는 그랬소. 그리고 지금 백 의원도 그러할 것이오.”
처능의 목소리도 물기로 젖어 있었다.
그러나 말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 백광현이 느끼는 번뇌를 먼저 겪었기에 이를 전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원망했으나 그 뒤로는 나에 대한 자책감이 온몸을 짓눌렀지요. 세상에 불법을 전하고자 하면서 중생의 고통도 치유하지 못하다니. 이보다 한심할 수가 없었소. 그런데 백 의원. 지금에 이르러서 얻은 결론은, 우리보다는 중대본의 판단이 주로 옳다는 것이오. 물론, 나 역시 지금도 중대본이 결정을 번복해주길 바라오. 또한, 이런 방침을 내린 그들이 너무나도 싫소. 그러나 그들의 결정은 옳소.”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들은 우리가 흘리는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이며, 우리가 받는 고통보다 더 아픈 통증을 느끼며 내린 결정이기에 그러하오.”
“소인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혀 공감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오. 공감할 수도 없고. 나 역시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하지 못하니까. 그러나 사실은 그러하다는 것이오.”
“사실이라니요……?”
“증거는 바로 백 의원과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겠소? 조선이라는 경직된 나라에서 우리의 자리를 마련한 건 그들의 피땀이었소. 물론 장기판에 올려진 신세가 되긴 하였으나, 그들이라고 하여 처지가 다르겠소?”
“하지만…….”
“격리해야 하오.”
담담하지만 단호한 조언이었다.
백광현은 볼에서 습기를 느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눈물이 흘러내린 것이다.
너무나도 뜨겁고 서러운 눈물이었다.
“격리를 반대했으나, 격리하였기에 다른 이들이 살았소.”
“대사. 병자들은 죽을 겁니다.”
“알지요. 그때는 결과가 좋아서 격리되었던 병자들을 구했으나 이는 하늘의 뜻이니, 어찌 이번에도 장담할 수 있겠소? 또한, 지금의 역병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이니 가능성은 더 낮을 것이오. 아마…….”
백광현의 눈물을 바라보는 처능은 처연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죽을 것이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소. 그러나 중대본은 그러는 곳이오.”
“말이 안 됩니다.”
“그토록 냉정한 판단을 그들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소.”
의외의 말이었을까?
거세게 감정이 복받치던 백광현은 멈칫했다.
만일, 병자를 이대로 방치하면 어찌 될까?
처방이 나오지 않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역병이 확대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빠른 시간 내로 처방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니, 자신이 없었다.
이를 알면서도 병자를 놓지 못하는 자신이 떠올랐다.
“우리는 슬퍼하며 오열하고 반대하면 되오. 그리고 원망하며 처방을 찾으면 되오. 한데, 세상 모든 의원과 백성의 원망을 감내하며 격리를 명하는 저들은 냉정해야 하오.”
“…….”
“만일 중대본이 우리처럼 감정적이라면 조선은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소. 그들은 눈물은 흘리지만 눈동자는 날카로우며, 울부짖지만 냉정한 말을 창조하오. 이것이 중대본이 존재하는 이유라오.”
처능은 백광현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격리는 중대본의 일이오. 우리의 역할은 오열하며 처방을 찾는 것이오.”
“…….”
“적어도 우리는 병자들의 손을 잡으며 사과할 시간과 공간은 가지고 있으니, 차가운 얼굴을 하고 남몰래 흐느낄 중대본의 대신들보다는 나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오. 그러니 백 의원. 병자를 모두 격리해야 하오.”
“대사의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백광현은
“중대본의 지침을 따르겠습니다.”
결국, 주저앉아 오열했다.
오늘도 하늘은 참으로 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