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바람 한 점 없어도(3)
도성의 감염자 수는 서너 명에 불과했는데, 이는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위생국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이미 확보해둔 격리실마다 1명씩 격리하여 허목이 직접 그들을 살폈다.
추가 감염의 가능성은 늘 존재하는 것이었기에, 위생국은 감염자의 동선을 모두 파악하여 접촉이 확인된 백성을 전원 분리 조치했다.
또한, 사대문도 바로 봉쇄했다.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지방과는 질적으로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각 지방에서 아무리 역량을 기울인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인 차이는 좁힐 수가 없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 가장 중요하고 간절하게 바라야 할 부분은 따로 있었다.
“이참에 허 국장이 처방을 마련하길 바랄 뿐이외다.”
바로 처방이었다.
전국을 뒤덮은 압도적인 병자의 규모에 파발을 수행하던 관리까지 역병으로 죽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에 소규모이긴 했으나 도성까지 역병이 침투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중대본 내부에서도 노선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발생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으나, 허목이 처방만 확보한다면 모든 걸 일소할 수 있었다.
그러니 부디 성과가 있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허목과는 별개로 작금의 상황을 점검해야 했다.
역병의 확산 속도는 원 역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하며 광범위했다. 나 아니 우리는 이 원인을 알아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조선인 전체가 역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근본적인 위기감이 엄습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송준길은 운을 던졌다.
“우암. 여러 갈래로 상황을 분석해봤네. 한데, 상당히 곤혹스러운 결과가 나왔어. 그러니까…….”
전근대인지라 전염병에 취약할 수는 있다.
그런데 감염 속도가 비상식적으로 빠르다.
지역과 지역의 교류가 현대국사 수준도 아닌데 어찌 이럴 수가 있을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런데 원인은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송준길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중대본의 개혁이 초래한 결과였네.”
그동안 우리는 조선을 종단하고 횡단하는 무수한 개혁을 도모했다. 수레가 이동했고, 서얼이 오갔으며, 승려가 달렸고, 훈련도감이 진군했으며, 사대부가 대규모로 운집해 연좌했다. 게다가 땔감 따위를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수시로 수십 명, 수백 명이 모여서 줄을 서는 게 일상인 시절이었다.
바로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위생을 강조했을지라도 현대와 비교하면 원시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동이 광범위하게 역병을 옮긴 것이다. 즉, 한 명의 보균자가 군현을 마비시켜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 역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역병이 확산한 것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 것이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하지 말아야 할 개혁을 도모한 것일까.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뇌가 커졌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홀로 번뇌와 싸울 사치는 내게 허락된 적이 없었다.
“우암. 현재로는 군현과 군현의 이동을 최대한 차단하는 게 옳지 않겠나? 공적인 업무가 아니면 누구도 이동할 수 없게 해야 하네.”
“탈은 없겠습니까?”
“반드시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그러나 조세도 조정으로 운송하지 않게끔 명을 내리지 않았는가. 버티고자 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을 것이네. 또한, 지금은 이게 최선일세. 어디에서 병자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현 상황을 더 유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네.”
“형님의 의견을 따르지요. 하면, 남은 건 결국 발병의 원인이군요.”
“……허 국장의 의견이 현재로는 가장 합당하긴 하네.”
모두 쓰게 웃었다.
얼마 전 격렬하게 진행된 논쟁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노선 갈등으로 중대본이 갈라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아무리 덮고 간들 허목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역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긴 하네. 다만, 허 국장이 어찌 반응할지…….”
송준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힘없이 열렸다.
고개를 돌렸는데
“…….”
넋이 나간 허목이 들어왔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병자는 죽었고, 처방은 가늠도 해보지 못했다는 걸 말이다.
낮게 한숨을 쉬며 입술을 잘게 깨물었으나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허목이 말할 때까지.
“……손을 쓸 틈도 없이 죽었소.”
“……고생하셨소.”
“고생이라. 한 게 없는데 무슨 고생이오?”
“어찌 한 일이 없다고 말하오? 위생국의 일사불란한 대처가 없었다면 도성은 아비규환이 되었을 것이외다.”
“그래서 든 생각이 있소.”
여전히 멍한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가 나 아니 우리를 모두 담아내며 초점을 되찾고 있었다.
“만일 도성을 방비할 역량의 절반 아니 3할이라도 군현에 있었다면 이 사달은 발생하지 않았소. 조선 8도가 역병으로 죽어가는데 사대문만 부여잡고 있으면 되오?”
“허 국장.”
“지금 중대본이 하는 건 역병을 제압하는 게 아니라 역병이 알아서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오. 이렇게 할 것이면 대체 뭐 하러 위생국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오? 바뀐 게 전혀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해야 하오?”
“소금을…….”
호조판서 허적이었다.
그의 말이 천천히 이어졌다.
“소금을 미리 군현으로 운송하는 게 좋을 것 같소.”
허목의 말과는 다소, 아니, 전혀 다른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꼭 해야 하는 말처럼 이어갔다.
“소금은 생존에 꼭 필요하오. 만일 소금이 없으면 사람은 죽소. 그러니 미리 소량이라도 군현에 보내는 게 옳소. 또한, 해안가의 군현은 구휼미를 조금 더 보낼 필요가 있소. 만일 그들이 기근을 버티지 못하여 어업을 포기하면 어류와 소금 모두 구할 수 없을 것이니 말이오.”
“호판……? 무슨 말씀이오?”
“미리 대비하는 것이외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소. 하늘은 이미 우리에게 가뭄을 예고했소. 그러니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것이지요.”
“…….”
“본부장. 우리는 너무 수세적이외다. 하늘의 횡포를 우리가 감히 막아낼 수는 없으나 공세적으로 방비할 수는 있소. 힘들어도 이게 옳지요.”
“호판의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외다.”
“역병도 마찬가지요.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하여 역병을 예방하고자 했소. 작금의 조선 위생국은 이 땅의 역사에서 볼 수 없는 수준으로 의술을 이끌었으나, 역병의 규모는 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도 참담하오.”
“…….”
“이토록 광범위하게 역병이 발생한 원인이 비록 우리의 개혁에서 시작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하였소. 해서, 떠올려봤소. 이렇게라도 방비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지 말이오. 너무나도 끔찍하오. 이 이상 위생에 국력을 기울이는 건 총체적인 붕괴로 귀결될 것이외다.”
허적은 원론으로서 허목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런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허목의 답변은 의외의 것이었다.
그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되돌아 생각하면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요. 하늘이 우리의 역량 이상으로 횡포를 부리는 것인데 어찌 언성을 높이겠소이까. 해서, 조금 전에 말한 것이었소. 위생국의 역량은 충분하기에 도성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라도 능히 방비해낼 것이오.”
“허 국장……?”
“내가 충청도로 가겠소.”
“실성하셨소?”
“아니 될 말.”
“허 국장. 말도 안 되는 말이외다.”
“선생.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스승님. 안 됩니다.”
그의 말에 일제히 만류했다.
격렬하게.
허목이 위생국의 길을 찾고자 역병이 발발했던 군현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 자체가 달랐다. 당시는 중대본의 ‘대신’으로서 행정을 통제하러 갔다면, 이번에는 아예 ‘의원’으로 처방을 찾으러 가겠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그때보다 역병의 강도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한마디로 허목이 죽을 수도 있었다.
“관리들도 다 파발을 가고 있소. 한데, 내가 왜 안 되오?”
결국, 초연하게 위생국의 역량을 언급했던 건 자신이 가기 위한 포석을 깐 것이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허목은 이미 칠순이 넘은 고령이다.
“최악의 역병이니 조선 최고의 의원이 가는 게 옳소. 거. 도성에 역병이 창궐하였다기에 여기서 처방을 만들까 싶었는데 이게 또 안 되오. 참으로 답답하오.”
“안 된다고 하였소.”
“총력전이라고 하셨소.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하지요. 그러니 내가 가겠소.”
“불가하오.”
“되었소. 이미 전하께서 윤허하셨으니까.”
“뭐요……?”
“그냥 떠날까 하다가 그저 인사나 나누고자 온 것이오. 아. 반계.”
“스승님……. 소생이…….”
“위생국을 자네가 맡아야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밖에 없기에 전하께도 고했네. 고생하게. 그리고 자네의 말이 옳아. 정치는 대국적으로 해야지. 나는 시야가 너무 좁았어.”
허목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전하께 반려를 청하지는 마시오. 이미 너무 많은 옥루(玉淚)를 보이셨소. 더 어심을 어지럽게 하는 건 신하의 도리가 아니외다.”
우리는 더 말할 수가 없었다.
------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으나 나는 위생국의 지척에서 서성였다.
오늘 새벽에 허목이 도성을 떠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를 배웅해야 했다.
“끌. 뭐 하러 여기까지 오셨소?”
허목이 모습을 보였다.
나는 애써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지나가던 길이었소.”
“여기를 왜 지나가오? 바쁠 텐데 괜한…….”
허목이 잠시 말을 멈췄다.
내 뒤로 중대본의 모든 이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 명씩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내 길을 찾아가는 것이오.”
“…….”
“중대본에 합류한 이후 매번 생각했소. 정말 내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소. 나는 정치가 너무 별로였소. 냉정하지 않기에 늘 병자가 밟혔고, 만백성보다는 한 명의 병자가 더 안쓰러웠소. 그런데 내가 무슨 정치를 하겠소? 나는 그냥 야인이 좋소.”
“허 국장은 누구보다도…….”
“됐소. 나는 야인처럼 살다가 본부장 욕하는 상소 한 번씩 올렸던 게 더 좋았소.”
괜한 말은 넣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꼭 하셔야 하오. 나를 탄핵하는 허 국장의 상소가 너무나도 좋았으니까.”
“하하하! 물론이오. 내 평생 가장 즐거웠던 일이 바로 그것인데 어찌 멈추겠소이까.”
“약조하셨소.”
“내가 본부장은 무조건 탄핵할 것이니 기다리기나 하시오.”
허목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모두를 눈에 담았다.
진하고 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만 가보겠소.”
그의 몸이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선생.”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모인 백성들이었다.
병자도 있었고, 병자였던 이도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규모였다.
백성의 심장에 ‘허목’이라는 두 글자가 진하게 새겨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순간이었다.
“선생.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부디 건강하게만 돌아오십시오.”
“우리도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선생께서도 무탈하셔야 합니다.”
혹자가 그랬다.
사대부는 민심을 갈망하기에 민본을 버릴 수 없다고.
그래서일까?
마지막까지 의연하고자 했던 허목은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참으로 해맑게 웃었다.
“전하. 불충하게도 조선 200년사 최고의 영예를 신이 가지게 되었사옵니다. 용서하여주시옵소서.”
그러면서 고개를 내려 우리와 백성들을 모두 담아냈다.
“모두 살아서 보지요.”
이 시대, 가장 간절한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