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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76화 (276/298)

276화 위정자라는 석 자의 무게(2)

다시 말하지만, 나는 관복의 의무에 대한 논쟁을 그만하고 싶었다.

지금 조선에서 발생하는 백 가지 논쟁 중 가장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예송논쟁을 치웠더니 이런 게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대체 조선은 왜 이렇게 쉬지 않고 브레이크가 걸릴까.

“도덕적 위계의 문제가 아닙니다. 판단의 기회를 준 것에 불과합니다. 나서지 못하는 이들을 배려하고자 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에 떠는 백성은 긍휼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두려움에 떠는 관리는 긍휼히 여길 필요가 없다.

관리란 최소한 두려움을 감출 줄 알아야 한다.

“형님. 전대미문의 난세를 맞이한 위정자가 몸을 사리며 나서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지금이 전시라면 참하였을 것이나 차마 그러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한데 배려까지 해줘야 하는 겁니까? 어불성설입니다.”

“목숨을 내던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닐세. 이는 누군가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해. 한데, 이를 박탈하면 위정자로서의 무게가 너무나도 거대해지는 걸세. 그리고 이미 자네부터 위계를 만들었네. 아니, 죽음의 값을 위계로 세웠고 가치를 설정했네. 내 말이 틀렸나?”

“그러면 안 됩니까?”

“뭐……?”

“대체 언제 이 나라에서, 아니, 이 땅의 역사에서 누군가와 누군가의 목숨값이 같았습니까.”

인간이 값을 책정하기 시작한 이후 목숨값이 ‘평등’한 적은 없었다.

늘 달랐다.

지금이라고 다르던가.

“허 국장이 사지로 갈 때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사지라고 하는 곳에는 셀 수도 없는 이들이 목숨을 걸고 역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역사는 참으로 간장 종지와도 같다.

담아내는 ‘인명’이 조족지혈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할 사람들이 말입니다. 기록에서는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이들이지요. 그들의 존재는 조선이 이 난세를 극복했다는 역사적 사실로만 입증될 겁니다.”

“…….”

“형님의 말씀처럼 소제가 위계를 정한 게 아닙니다.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이를 그대로 관철하겠다는데 대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또한, 관복을 입은 저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저들의 사기를 보존해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틀리셨습니다.”

간장 종지와도 같은 역사는 냉정했다.

담기지 않으면 미련 없이 버렸다.

“저들이 몸을 사리고 눈치를 살피는 그 순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할 의원들, 억압만 했던 조선을 대신하여 나선 승려들, 그리고 저 비루한 자들이 입은 관복을 오매불망 바라만 봤던 서얼들의 사기가 떨어질 겁니다. 대체 나는 누구를 선택해야 합니까.”

“…….”

“목숨은 모두 귀하지만 위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게 한 겁니다. 죽음의 일상화라고 하셨습니까? 해서, 관리들이 무기력해진다고 하셨습니까? 나서지 못하는 이는 뒤로 물러나면 그만입니다. 사직을 요구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냥 제 일만 하면 됩니다. 이조차도 문제라는 형님의 말씀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송준길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에는 참으로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자네의 생각은 잘 알겠네.”

논쟁을 더 이어가지는 않았다.

그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말이 아니라, 내 생각을 존중한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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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뭄은 점차 심해졌다.

참혹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들판이 타버린 수준이었다.

밀과 보리의 수확은커녕 파종 시기도 지나갔다.

지난날, 남도를 뒤덮었던 폭우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내리지 않는 비를 바라며 하늘만 바라볼 수는 없었다. 봄 가뭄은 절대 혼자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오.

“현재 충청도의 역병이 가장 심각하오. 공무와 관련한 일이 아니면 군현 간의 이동을 철저하게 금지하라고 하였으니…….”

말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내 말이 끝나면 허적이 말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듣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전라도와 황해도의 가뭄이 너무 심하오. 군현의 곳간이 점차 고갈되고 있소. 그리고…….”

허적은 지친 기색으로 장계를 내밀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들이 잔뜩 있었다.

“평안도에 서리와 눈 그리고 우박, 경기도는 우박, 경상도는 서리와 우박이 내려서 힘겹게 싹을 틔운 작물을 모두 상하게 했소.”

여기에 경상도는 또 지진이 발생했다.

충청도의 역병은 잠잠해지기는커녕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제주도에도 역병이 창궐했다.

한마디로 지금 조선 전역에서 가뭄과 냉해 그리고 지진, 역병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민심이 어떠할지는 보고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본부장. 어쩌면 조정의 구휼미를 한 달 내로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소.”

“군현의 사정이 그렇게 어렵소? 조세까지 징수하지 않는 상황인데 말이오.”

“군현마다 형편은 다르오. 그러나 장계에 의하면 이미 힘겹게 버티는 곳이 한둘이 아니외다.”

“허.”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올해 초 삼남 지역을 흔들었던 지진으로 피해가 발생한 탓이 크오.”

그러니까 지진이 식량 창고를 박살 내버렸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역병의 광범위한 창궐로 일하는 이는 줄고 부양해야 할 병자가 늘면서, 이미 구휼미를 나누기 시작한 군현도 상당수요.”

우리가 단행한 개혁은 꼬리와 꼬리를 물며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역병을 잘 대처하고 병자를 살리고자 한 위생국의 방침은 전과 달리 막대한 의료비를 발생하게 했다. 또한, 효율적인 구휼미 배급을 위해 조정으로 보내지 않고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대동미 등을 보관하게 한 방침은 지진이 치워버렸다.

이럴 때마다 이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이건 안 했으면…… 개혁의 효과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좋은 개혁이, 서로 만나면서 결과가 안 좋게 나오는 사례가 이미 다수였다.

최종적으로 몇 년을 비축했는데, 몇 달도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휴회를 결정했다.

답답한 마음을 비우고자 육조거리로 나왔는데 관리들 몇 명이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기우제라고 하였나?”

이들의 요청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그렇습니다. 대감. 늘 가뭄이 발생하면 기우제를 시행하였습니다. 올해 봄 가뭄은 전과 비교할 수 없는데도 중대본에서는 기우제를 시행하지 않기에 건의드리는 것입니다.”

“…….”

“가뭄으로 흔들리는 민심을 다독이려면 기우제가 좋지 않겠습니까.”

나는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냥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쓴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자네들 말대로 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봄 가뭄이 조선 전역을 흔들고 있네. 한데, 관리라는 이들이 가져온 정책이라는 게 고작 기우제인가? 참으로 한심하도다.”

“대감. 소인들은 그게 아니라…….”

“치우게.”

그냥 손을 내저으며 말문을 막아 버렸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관리들을 한 명씩 바라봤다.

당황하여 시선을 피하는 모습부터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하는 꼴까지 다 한심했다.

“그간 우리 중대본에서는 쉬지 않고 개혁을 단행했고, 조선의 역량을 이끌었네.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이 난세를 극복하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는 말일세. 또한, 무당까지 동원하여 위생을 보급하고 있네. 그러한데 유독 기우제를 지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일러주십시오.”

“기우제는 민심을 다독이는 게 아니라 백성을 고문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모든 걸 동원하여 기근과 싸우고 있으나, 자연을 상대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만 하는 제사는 한 번도 진행하지 않았다.

나와 조선인들이 모두 알듯, 제사를 지낸다고 하여 비가 내리거나 지진이 멈추는 게 아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민심을 다독이는 효과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난리는 무려 2년간 이어질 것인데 섣불리 기우제 따위를 지내면 절망만 커질 뿐이다. 뻔히 알고 있는데 진행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리고 이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작금의 난세는 위정자가 부족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하늘이 일방적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지 않은가. 하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늘에 대고 울부짖으면 제발 멈춰달라고 해야 하는가? 이리하면 해결할 수 있는가? 아니지. 절대로 아니다. 눈물을 멈추고 싸워야 하며, 생존을 도모하고자 무엇이라도 하는 게 옳다.”

“…….”

“그런데 위정자들이 모여서 기우제나 지내면 백성들은 어찌 생각하겠는가? 애석하게도 조선이 만백성의 목숨을 책임질 수 없기에 하루에도 수많은 백성이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할 때 위정자가 했듯이 하늘을 바라보며 빌기만 할 것이다. 왜? 위정자가 그리하니까. 이게 옳은가?”

관리들은 머뭇거렸다.

저들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중대본의 결정을 집행할 뿐이었다.

“굶어 죽어가는 백성이 살고자 할 때 무엇을 하던가? 관리를 찾고, 사대부를 바라보며, 관청으로 걸어간다. 죽이라도 얻고자 간절하게 찾아간다. 그들이 하늘에 대고 쌀 한 톨이라도 바라던가? 아니지. 그렇지 않다. 너희는 대체 우리 백성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 누구를 찾는지 깊게 성찰해본 적이 있는가? 아직 백성은 사대부를 간절히 원하거늘 어찌 이렇게 한심할 수가 있는가.”

“…….”

“우리가 할 일은 개혁과 생존이다. 구체적인 방책으로 쌀 한 톨을 구하여 백성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게 관리의 책무이거늘, 가져오는 방책이 고작 기우제이더냐?”

한숨을 길게 내쉬며 일갈했다.

“민심이 동요하기에 기우제를 해야 한다고 했는가? 하. 백성의 마음을 위로해야 할 때 너희는 무엇을 했던가. 그들과 다투고 윽박이나 질렀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백성이 가장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서얼과 승려가 아니라 사대부이며 관리이다. 이는 너희가 이 나라의 위정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평소 백성이 원망하며 증오할지라도 조선을 책임지는 건 사대부이며 관리였다. 백성들도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간절하게 바라였을 것이다. 가벼운 말 몇 마디가 아니라 이들이 약조하는 구체적인 생존에 대해서 말이다.

“한데, 너희는 관리로서, 사대부로서 이를 수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하늘에게 위탁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어찌 한탄하지 않겠는가.”

“…….”

“하늘이 가해자이거늘 무엇을 빌어야 한단 말인가. 살고자 노력한 우리의 노력이 잘못이라며 용서라도 구해야 한단 말인가?”

“…….”

“새기도록 하라. 하늘의 뜻이라는 건 없다. 만일 존재한다면 하늘이 적이며 원망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니 이 모든 건 오직 인간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너희는 가장 큰 책임감을 가진 ‘관리’라는 걸 죽을 때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찌 이토록 지독하게 변화에 둔감할 수가 있을까.

속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난세가 시작된 이래 나는 참으로 많은 말을 했다. 너희를 설득하거나 탓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대체 언제까지 너희에게 말을 해야 하는가? 또, 백성은 언제까지 너희의 허튼 말을 들어야 하는가? 그들이 왜 교화가 안 되겠는가. 안 될 말만 하니 안 되는 것이다.”

저들의 답변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바로 등을 돌렸다.

아직도 조선은 멀었다.

아니, 관리들만 멀었다.

조선의 모든 이가 생존을 찾고자 죽을힘을 다하는데 저들은 태평하게 하늘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쓰린 속을 애써 감추며 걸어가려고 할 때였다.

“대감.”

유형원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하며 다가왔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도성의 곡물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종래 은 두 냥이었던 쌀 한 섬이 3냥으로 뛰었습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말입니다.”

“뭐…….”

“누군가 곡물을 매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재기의 징후를 포착했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등을 돌렸다.

기우제를 청한 관리들이 노려봤다.

“하늘이 재해를 내리고, 사대부는 이권을 챙기니 꼭 난세라고 할 수는 없겠군.”

이를 바득거렸다.

“관리로서는 기우제를 청하고, 관복을 벗으면 쌀을 매입하여 백성의 숨통을 끊고자 하는 네놈들은 대체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나? 참으로…….”

진심으로 내뱉었다.

“역겹고, 가증스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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