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Pest(2)
허목의 서찰이 도착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논의를 거치지 않았고, 이견도 없었다. 전대미문의 역병을 상대하는 엄중한 정국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 우매한 짓이니 말이다.
물론, 조선이 흑사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이건 조선이 아니라 어디라도 마찬가지였다. 페니실린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바뀌는 건 없다.
그러나 예방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최대한 방비는 할 수 있다.
현대 국가와 비교하면 열악한 수준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지만, 조선의 위생 시스템 자체가 형편없는 건 아니었다. 이 시절,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위생을 관리해 온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로 도성에서 창궐하면 아니 될 것이네.”
도성을 사수하는 것이었다.
만일, 치료법이 없는 흑사병이 도성에 창궐하면 순식간에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한양 도성에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건 조선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감. 전면적으로 집행했습니다. 진인사대천명입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
“그렇습니다.”
“아닐세. 그렇지 않네.”
유형원의 말이 무조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어차피 예방에 대한 노력이 전부인 상황에서 전면적인 집행을 명했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볼 수는 있다.
그래서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위생의 강도를 올린다는 건 틈을 주지 않는 것일세. 늘 되돌아보며 부족한 점이 없는지 살펴야 하네. 절대로 방심하지 않고 돌봐야 하는 것이네.”
사람은 늘 실수하고, 무뎌지기 마련이다. 철저하게 집행하더라도 허점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단지 집행‘만’ 명했다가는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된다. 방심 혹은 안도라는 사치스러운 단어가 만연할 수도 있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
“일전에 말한 바와 같이, 강화한 위생을 따르지 않는 백성은 구휼미의 지급을 모조리 중단해야 할 것이네. 관리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삭탈관직이라도 해야 할 것이네.”
지금 필요한 건 결국, 강제였다.
“전례 없는 위력적인 역병의 정체가 밝혀졌네. 이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참혹한 결과만 기다릴 뿐일세.”
“심려치 마십시오. 이미 관련된 내용도 모두 전달했습니다. 며칠 내로 조선 팔도 전역에서 서역의 예방을 위한 위생 지침이 일제히 집행될 겁니다.”
유형원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이 시절 조선의 행정력이라는 건 절대 전근대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긴 했다. 제대로 전달되고 목민관이 이를 악물며 집행하기만 한다면 승산은 있었다.
“게다가 도산서원의 결의 이후 사족이 전면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술에 힘을 보태던 승려와는 달리 사족은 백성에 대한 강제력을 뚜렷하게 발휘할 수 있습니다. 큰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구현된 건 아니지만, 근거가 분명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송준길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그 역시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유일한 변수는 파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일세. 하지만, 아직은 아무런 문제가 없네.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지 몰라도, 역할이 내려졌을 때 발을 빼는 관리는 없으니 말일세.”
정체를 알 수 없던 역병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관리를 움츠리게 했다. 하지만, 수면 위로 정체가 올라온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물론 흑사병이 초유의 공포라는 건 분명하지만, 지금 관리들의 결의와 결심은 최고조로 올라간 상태였다.
말 그대로
“목숨을 던질지라도 해낼 것이네. 그들을 믿게.”
죽음을 각오한 상태였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호판. 각 도로 구휼미를 더 보낼 수 있겠소? 결국 기근에서 비롯되는 것이니만큼, 기아(飢餓)를 방비하는 게 원칙이니 말이외다.”
“여력은 있으나…….”
여전히 국고에는 수백 석의 구휼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탕진하듯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소한 1년의 계획을 수립하며 집행해야 하기에 허적의 판단이 중요했다.
“어류가 풍족한 평안도와 함경도는 1만 석, 그 외는 2만 석을 보내겠소. 하지만 지금 당장 이 이상은 곤란하오.”
“충분하오. 기존에 보낸 구휼미도 부족하지 않으니 그 정도의 수량이 추가로 보내진다면 큰 힘이 될 것이오.”
“당장 집행하리다.”
“원저의 수확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윤휴의 말대로 감자 농사가 큰 성과를 내었다. 기근 극복에 엄청난 도움이 되리라는 건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추가적인 대책은 빠르게 마련되었다.
“그리고…….”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를 언급해야 할 때였다.
“청국 상인의 철수를 막을 방법이 필요하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탈하는 청국 상인을 붙잡을 방법이 필요했다. 만일, 그들이 이대로 철수한다면 조선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대감. 송구하지만, 그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조선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 너무 큽니다.”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변승업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으니 자네 생각을 말해보게.”
“최소한 국경 지역에 청나라 상단의 거점을 내어줘야 할 겁니다.”
“…….”
“걸리면 반드시 죽는 역병이 조선에 창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일국의 대사이지만, 청국 상인들에게는 한 지역의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이를 상쇄할 정도의 조건이 아니라면 절대로 국경을 넘지 않을 겁니다.”
애석하게도 조선은 우리에게나 일국이었다. 광활한 대륙의 입장에서는 일개 ‘성’에 불과한 수준이라는 건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니 청국 상인은 그냥 피해 가면 되는 지역에 불과한 것이다. 역병이 잠잠해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진입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던지는 존재가 상인이라는 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역병은 다릅니다. 무조건 죽을 수도 있는 곳에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는 상인은 없습니다. 더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조선은 그들에게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매력적인 지역이 아닙니다.”
“…….”
“역병의 기세가 영원하지는 않지만, 다시 청국 상인이 등장하려면 최소 1~2년은 필요할 겁니다. 물론 우리 상단도 더 부지런히 국경을 넘어 무역하겠으나, 한계가 있습니다. 대감. 지금 아쉬운 건 우리 조선입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거점을 내어준다면 의주가 적합합니다.”
“의주라…….”
“그렇습니다. 이리한다면 청국 상단도 철수를 멈출 겁니다.”
현재도 양국은 무역 장벽이 없었다. 오가며 관세만 낸다면 누구라도 원하는 시기에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의주에 청국 상단의 거점을 내어준다는 건 엄청난 파급으로 이어질 것이다.
국경이라는 장벽까지 완벽하게 허물어지는 것이니 조선의 내부에 침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국적은 청국이지만, 기업은 조선에 등록한 상태라고 해야 할까? 의주에서 청국을 넘어가지 않으면 관세를 내지 않고, 조선과 무역이 아니라 단지 장사하는 수준에 이를 것이다.
이러하니 조선 내부에 청국 상인의 거점을 내어준다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어이가 없게도 이 사달이 났는데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조선이 무엇을 가리며 생각하겠는가. 우리는 백년대계를 수립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이 순간의 생존을 도모하고자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견이 있다면 지금 꺼내시오.”
사실상 변승업의 말에 동의했다.
나서는 이는 없었다. 청국 상인의 발목을 잡을 다른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단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건 작금의 중대본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상단의 반발은 없겠소?”
유형원이 변승업에게 물었다.
“없을 겁니다. 아니, 없습니다. 설령 있을지라도 능히 설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 괜찮습니다.”
“…….”
변승업이 유형원의 말을 막았다.
유형원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잠시 지었으나 더 나서지는 않았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물어볼 여력이 없었다.
“하면, 오늘 논의는…….”
“본부장. 한 가지 빠진 게 있소.”
윤선거였다.
그의 무거운 표정을 바라보자 속이 아려왔다.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됐기 때문이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논의였다.
어쩌면 이대로 묻어가면 좋을지도 모를 내용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논의하지 않아도 군현마다 현황에 맞게 집행될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중대본에서 명확한 지침을 내리는 게 옳은 일이지만, 잠시 마음을 다독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는
“병자는 어찌할 것이오?”
수만 명을 죽이는 것이니 말이다.
공기는 무거워졌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잠시 말문을 닫았다.
“처방을 찾을 수 없는 역병이외다. 병자에 대한 처우가 전과 같을 수가 없을 것이오. 이를 명확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일선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소.”
“…….”
“물론, 허 국장은 자신의 판단에 기초하여 일을 진행할 것이오. 그는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능력이 있으니 말이오. 하지만 대부분의 군현은 새로운 방침을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가 없소. 이를 우리가 정확하게 정해야 하오.”
“…….”
잠시라도 고민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윤선거의 말대로 이는 ‘오늘’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잠시 회피했소.”
늘, 이런 문제에서 가장 강경한 태도를 보인 건 나였다.
그런데 규모가 달라졌다고 하여 방침을 덜어낸다면 혼란만 가중할 뿐이었다.
“위생의 강도를 올렸듯, 격리도 그리해야 하오.”
“포기하자는 말이오?”
“병자는 모조리 인근의 산성에 격리하는 것으로 하겠소.”
이미 허목은 흑사병에 걸린 병자를 단호하게 격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발병하면 의원이 살피지 않고 그 즉시 격리하는 게 옳소. 약재의 지급도 중단하겠소.”
“…….”
“지금부터 조선의 모든 의원은 서역의 치료에서 손을 떼겠소.”
“…….”
“만일, 이를 어기는 목민관이나 의원이 있다면 국법으로 엄히 다스리겠소. 또한…….”
잠시 뜸을 들이며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저항하는 병자가 있다면 죽이시오.”
“…….”
“…….”
“…….”
“…….”
누구도 답변하지 않았다.
반론도 없었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수가 천 명이어도 좋소. 만 명이어도 상관없소. 그러니 죽이시오.”
“…….”
“훈련도감에 전하여 운송의 일을 중단하고 각지의 병자를 관할하게 할 것이오.”
나는 또 말했다.
“이 모든 건 내가 안고 갈 것이오.”
이는 나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가 말을 보태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필시 함께 안고 가자고 할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다시 쐐기를 박았다.
“교지가 아니라 중대본 본부장 송시열의 직인(職印)으로 명을 내리겠소.”
이는 필시 나의 일이었다.
그래서 바로 등을 돌렸다.
오직 내가 감내할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