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Pest(3)
병자의 처우와 관련한 중대본의 방침은 조선 전역으로 전해졌다. 물론 평시보다 파발이 수월하거나 빠를 수는 없으나, 여러 노력이 보태졌기에 큰 탈이 생기지는 않았다.
탈이 생긴 곳은 병자와 직접 교감을 나누었던 현장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안색이 창백한 병자들은 의원들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이놈들 보고 이제 산성에 갇혀서 죽을 날을 기다리라는 겁니까?”
“누가 그리 말하였나. 자네들도 알지 않나? 그저 확산을 막자는 것일세. 늘 하던 일이 아닌가. 한데, 어찌 이러는가.”
“예. 늘 하던 일이지요. 한데, 어젯밤만 해도 확실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오늘은 역병이 확실하니 산성에 가서 죽으라고요?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껏 격리는 의원의 확진 선언이 있을 시 진행됐다.
하지만 이곳의 병자는 기미가 보인다는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격리한다고 하니,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식량이나 약재도 줄이실 계획이 아닙니까.”
“이 사람아. 그런 게 아닐세…….”
“…….”
되돌아볼 때 백성은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하루를 보내온 것이다. 웃으며 기쁨을 나누기보다는 바득바득 이를 악물며 버텨왔다.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이 어떤 것인지.
그래서 지금 지독한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놈들을 버리시는 겁니까?”
“…….”
“왜 대답하지 못하십니까. 이제 이놈들을 죽이려는 게 아닙니까.”
“오해가 있네. 우리가 어찌 자네들을…….”
“한데, 왜 갑자기 격리하는 겁니까? 밤새 소인들이 역병에 걸리기라도 했습니까?”
“…….”
“왜 말씀을 하지 못하십니까. 병세가 악화라도 된 겁니까? 아니지요. 어제보다 더 살 만합니다. 심지어 어쩌면 역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한데, 오늘은 격리라니요? 의심이 간다고 하여 아예 죽여버릴 생각입니까?”
“…….”
의원들은 정치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저 병을 치료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대민 통제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병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는 흉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문 병자들의 항의는 거세졌고, 이대로라면 탈이 날 건 분명했다.
그러나
“따르지 않으면 벌할 것이다.”
이완이 병력을 이끌고 등장하며 상황은 다소 달라졌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항의하던 병자들도 멈칫하며 눈치를 살폈다.
“너희의 딱한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는…….”
“전하…….”
이완의 말을 자르며 병자 한 명이 흐느끼며 나섰다.
그의 입에서 나온 두 자는 가장 압도적인 권위를 가진 것이기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전하께서 이놈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하셨습니까.”
“말을 삼가라.”
“죽을 때 죽더라도 누가 죽이라고 했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뭐라……?”
“예. 영감께서 오셨으니 잡혀가겠지요. 이놈들이 무슨 수로 버티겠습니까. 하지만, 알아야겠습니다. 전하께서 죽이라고 하셨습니까?”
“내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말을 삼가라고 하였다. 감히…….”
“벌하십시오! 그냥 여기서 죽이십시오!”
“…….”
악만 남은 병자들은 핏발 선 눈으로 이완을 노려봤다.
독기가 잔뜩 담긴 눈빛과 마주한 이완은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분명 말로는 벌한다고 하였으나 대체 어찌 이들을 벌할 수 있겠는가.
설령 그리한다고 한들 어떤 효과를 낼 수 있겠는가.
이미 죽으러 가야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백성인데 말이다.
그래서 곤혹스러웠다.
아니, 고통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끌려가서 죽어야 하는 겁니까!”
“전하께서 시키셨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전하를 욕하면서 죽을 겁니다.”
“저주할 겁니다.”
눈물은 없었다.
악에 받친 절규만 있을 뿐이었다.
분위기는 참으로 을씨년스러웠다.
누구도 상황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이완은 처량하게 하늘을 바라봤다.
여전히 귀로는 병자들의 악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군왕을 욕하며 저주했다.
멀찍이서 쳐다보는 백성들의 얼굴에도 공포가 가득했다.
저들 역시 군왕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이완은 결국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송시열 대감일세.”
“하.”
병자들은 입술을 깨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산성까지 내 발로 가겠습니다.”
“이건 우리가 선택하는 겁니다.”
“죽을 자리까지 누가 시키는 자리로 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의 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하루라도 더 살 겁니다.”
“그래야 하늘에 대고 저주할 거니 말입니다.”
흉흉함이 하늘을 찔렀다.
제아무리 이완이라고 할지라도 죽을 길을 걷는 백성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괴로움을 애써 숨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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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오는 장계마다 흉흉해진 민심이 세세하게 담겨 있었다. 세상 모든 이가 나를 욕한다고 하였다. 목민관들이 나를 어찌하고자 일부러 그리 적어 올린 건 아니었다. 민심의 향방을 조정에 전해야 할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었다.
위정자에 대한 ‘신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절이었다. 그러한데 지금과 같은 민심의 동요는 절대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성질이었다.
그래서일까?
중대본의 공기는 평소보다 무거웠다.
대신들의 안색은 잔뜩 굳은 상태였다.
결국, 이를 밀어내는 건 나의 역할이었다.
“호판. 격리한 병자의 수가 어찌 되오?”
“…….”
머릿속이 복잡했는지 허적의 답변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멈칫하더니 쓰게 웃었다. 그 역시도 전국에서 이뤄진 송시열 성토대회가 마음에 걸린 것 같았다.
“본부장.”
“나는 괜찮소. 그러나 괜한 말은 넣으시오.”
“…….”
“진심이외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건데, 이를 전하께서 감내하실 수는 없다고 생각하오. 그래서 나는 괜찮소.”
내가 아니면 누가 이를 감당하겠는가.
백성에게 군왕은 마지막 희망이어야 한다. 그러니 내가 나서는 게 옳았다. 아니, 내가 결정한 방침이기도 했다. 나는 진실로 이렇게 생각했다.
허적은 낮게 한숨을 쉬면서 쓴 미소를 힘겹게 거두었다.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소. 그러나 이 추세로는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오.”
“호판. 괜찮으니 정확하게 말해주시오.”
“……원래 격리되었던 인원을 제외한 인원이오.”
이번에 새로 집행한 방침으로 격리된 인원만 1만 명이라는 말이었다. 이 정도 규모라면 전국에서 나를 욕하는 여론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1만 명의 목숨을 거둔 방침을 내린 것이니 말이다.
떨리는 마음을 단번에 밀어냈다.
지금 내게 감상이나 불필요한 감정은 너무나도 큰 사치였으니까.
“그 수가 10만 명을 넘어도 좋소. 증세를 보이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조리 격리하시오.”
“대감.”
“반계. 반론은 받지 않겠네.”
“반론이 아닙니다. 방침을 더 세밀하게 고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병세의 경중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정말 가벼운 증세라면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경중을 보고 판단하여 격리를 따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어쩌면 격리된 병자 중 흑사병에 걸리지 않은 이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지금처럼 강도 높은 격리 방침이 아니었다면 다시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이를 고려한 유형원의 말은 참으로 타당했다.
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할 생각이 없었다.
“어찌 살아남나? 약재도 보내지 않을 것이고, 식량도 줄일 것인데 말일세. 병마가 물러간들 굶어 죽겠지.”
“대감.”
“혹시 살 수도 있는 이들을 죽인다는 생각은 하지 말게. 우리는 이를 정확하게 파악할 역량이 없네. 자네 아직도 모르겠나? 지금 조선에 들이닥친 서역이라는 역병을 막는 방법은 철저한 통제와 봉쇄밖에 없네. 위생은 이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세.”
처방은커녕 확산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서역이 죽인 백성의 수가 수천 명일세. 확실하게 서역에 걸린 병자도 수천 명일세. 불과 몇 달 만에 발생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네. 한데, 격리할 병자를 또 나누자는 건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전근대에서 1만 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격리해낸 것만 해도 기적적인 행정력이었다. 여기서 더 나가는 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원을 격리해야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는 건 빠르게 포기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네. 그게 더 많은 백성을 지키는 길일세. 나는 이 생각을 바꾼 적이 없네.”
“……소생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의외로 유형원은 쉽게 물러났다.
어쩌면 모두 비슷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문제를 더 논의하는 것 역시 사치였다.
숨을 다시 내쉬며 차분하게 말했다.
“반계. 잊지 말게. 도성에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서역이 창궐하면 아니 될 것이네.”
“쉽사리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생의 고삐를 더 강하게 당기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내겠습니다.”
“한데, 본부장.”
윤선거였다.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으나 애써 밀어내려는 듯 최대한 갈무리를 하고 있었다.
“만일 병자들이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어찌할 생각이오?”
“……저항할 경우를 이르시오?”
“그렇소. 어차피 죽을 길이라는 걸 병자들도 알고 있소. 누군가 불순한 생각을 할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소. 하지만, 죽음의 공포와 좌절의 늪이라는 건 충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소. 그 많은 병자 중 한 명이라도 선동한다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도 있소. 여러 장계를 살펴보더라도 병자의 저항이 심상치 않은 곳이 있었소. 중대본에서 이에 대한 방침을 제대로 하달하지 않으면 혼란이 커질 수도 있소.”
“일리가 있소.”
“생각이 있소?”
“사살(射殺)하시오.”
“…….”
단호한 방침에 윤선거의 말문이 막혔다.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들을 설득하는 시간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면 격리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오. 모든 병자가 버틸 것이니 설득할 동안 역병이 확산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러니 격렬하게 저항하는 이는 사살하는 게 옳소.”
“……그래도 어찌 백성을 사살할 수 있소.”
“사살이 어렵다면 강제로 포박하여 격리해야 하오. 한데, 이 과정에서 역병이 번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오?”
“……변고(變故)가 발생할 수도 있소. 이를 염두에 두셔야 하오.”
통상 변고라는 건 역모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 윤선거가 말한 변고라는 건 조직적인 반란이 아니라, 생존의 길을 차단당한 백성이 일으킬 산발적인 저항을 뜻하는 것이었다.
원 역사에서도 경신 대기근 기간 생존을 위한 산발적인 도적질이 있었다. 또한, 역모에 가까운 군사적 움직임도 포착되어 조기에 진압한 바가 있었다. 그러니 윤선거의 말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다만, 원 역사는 기근으로 굶어 죽기 직전에 발생한 것이라면, 지금은 중대본의 강력한 조치에 불만을 품은 변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