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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87화 (287/298)

287화 내일을 박탈하다(1)

변고를 언급한 윤선거의 말이 절대 기우가 아니라고 여긴 건 나만이 아니었다.

“나 또한 동의하오. 변고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소.”

허적도 윤선거의 말에 힘을 실었다.

다른 이들도 미세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방침으로 민심이 얼마나 흉흉했는지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동의하였기에 논의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허적이 말을 이었다.

“훈련도감을 제외한 모든 군영을 해산했기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군현에서는 감당할 수가 없소. 만일, 그 수가 100명을 넘어간다면 큰 근심이 될 것이외다.”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적한 것이었다.

한 지역에서 수천 명이 봉기하면 훈련도감이 능히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열 곳에서 100명씩 동시다발적으로 변고가 발생하면 훈련도감이 대응하기 어렵다.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이것이 군영을 해산한 대가라면 대가였다.

그렇다고 하여 군영을 부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변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니 이대로 나아가자고 할 수도 없었다.

반면, 방침을 완화하여 집행할 수도 없었다.

이는 쉽사리 해결지점을 찾을 수 없는 사안이었다.

적절한 타협점도 보이지 않았다.

“우선 훈련도감의 병력을 나눠 각도에 주둔시켜야 하오. 그래야만 미연의 사태에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외다.”

“그래야겠지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사족 중 불순한 마음을 품은 이가 등장할 수도 있소.”

사정은 다르지만 원 역사에서도 발생한 일이었다.

지금이라고 하여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어쩌면 더 지독한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면, 단지 변고가 아니라 조선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일이 발생하오. 이를 경계해야 하오.”

충동적이거나 감정적으로 일어날 병자의 저항과 정치적인 성격이 짙은 사족의 봉기는 아예 결이 다른 사안이었다. 파급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후자가 클 수밖에 없었다.

섣불리 믿지 못하는 대신들에게 부연 설명을 해줄 필요를 느꼈다.

“역병에 걸린 사족이라면 불순한 마음을 품을 수 있지 않겠소? 격리를 피해야 할 것이니 말이외다.”

“본부장의 말대로 역병에 걸렸는데 어찌 거병을 할 수 있겠소이까.”

“호판. 그러니 명분이 더 좋지 않겠소? 죽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외다.”

“뭐요……?”

“작은 기미만 보여도 다 격리하오. 그런데 격리를 피해 도주한 양반 중 누군가가 죽지 않은 것이오. 역병이 아니었던 것이외다.”

“…….”

멈칫하며 말문이 막힌 허적을 바라봤다.

나는 자조적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바로 자신이 격리의 무고한 희생자가 될 뻔한 사례는 상당히 좋은 명분이지요. 많은 양반에게 호소할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지 않겠소?”

“단지 그 정도로 어찌 봉기를 일으킬 수 있겠소?”

“백성은 생존의 위기에 봉착하면 민란을 일으키지요. 하지만, 기득권은 가진 것을 빼앗길 때 거병하는 게 만고의 진리가 아니었소?”

“…….”

“지금껏 사족은 참으로 많은 걸 빼앗겼소.”

나는 그들의 행동을 적어도 지금은 양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양보가 거병으로 이어질 수는 없으니 말이외다.

“지금껏 그들이 잘 협조했다고 할지라도, 목숨이 경각에 걸렸을 때는 다를 수밖에 없소.”

무릇, 기득권이 가장 중시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자신의 목숨이다.

이는 동서고금의 진리다.

“중대본의 잘못된 방침으로 죽을 뻔했으니 반발이 클 것이외다. 더는 협조하고 싶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떠올릴 것이외다. 그간의 손해를. 그리고 기근으로 죽어가는 조선을 바라보며 웅대한 생각을 품겠지요.”

머릿속을 환기했다.

참으로 개운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들이 전하를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오. 중대본, 아니, 방침을 내린 나 송시열을 처단한다는 명분이라면 참으로 괜찮을 것이니 말이외다. 멀쩡한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간신을 척결하여 나라를 바로 잡겠다는 구호라. 이보다 적합한 것이 있겠소?”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수천 명의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낸 간신으로 말이외다. 무능하고 오만한 중대본의 본부장 말이외다.”

누군가 무언가를 탐하고자 거병한다면 나보다 좋은 제물이 어디 있겠는가.

경계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역사는 변화였으나 역모를 일으켰던 무리의 역심을 뿌리 뽑을 정도로 상황이 호전적인 건 아니니 말이다.

“역병에 걸린 사족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하오. 또한, 그들의 친인척까지 철저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변고는 언제라도 발생할 것이외다. 참담한 난세에서 양반의 반란이라는 건 민심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게 될 것이오.”

만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군영의 부활을 주장하는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었다.

이 난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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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향청 좌수 이광성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렸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의원에게 물었다.

“지, 지금 뭐라고 했나?”

“송구합니다. 서역으로 의심됩니다.”

“……확실한가?”

“아직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증상이면 격리 처분이 내려질 겁니다.”

“…….”

이광성의 머릿속은 미친 듯이 혼란스러워졌다.

말이 격리였지, 사실상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 어떤 희망을 품을 수도 없는 자리였다.

바로 그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눈치를 살피던 의원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소인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잠시.”

이광성은 재빠르게 의원을 붙잡았다.

“이 사실을 알리지 말게.”

“하지만…….”

“내게 시간을 주게. 그래도 죽으러 가는 길인데 식솔과 짧은 시간이라도 가져야 하지 않겠나?”

“…….”

“내 그동안 많은 쌀을 백성에게 베풀었네. 이를 잊으셨나?”

“휴. 알겠습니다. 하지만, 며칠 안에 마무리하셔야 할 겁니다.”

“물론일세.”

의원이 떠난 뒤 이광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미친 듯 요동치는 심장을 도무지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일부러 고통을 주고자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어찌해야 하는가…….”

진실로 역병에 걸렸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아니, 아니다. 왜 죽어야 하는가.

어떻게든 의원을 곁에 두고 백 가지 약재를 먹으며 생명을 이어가는 게 옳다.

이대로 격리되어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기어이 살고 싶었다.

언젠가는 죽을지라도 이런 개죽음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말이 되는가. 사대부에게 이런 비참한 죽음이라니. 이 난세가 우리의 탓도 아닌데 말이다.”

백 번을 생각해도 과한 처사였다.

어찌 사대부와 백성을 향한 잣대와 대처가 같을 수 있는가.

그동안 사대부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희생과 양보를 강요했단 말인가.

그런데 죽음조차도 같아야 하는가?

“하. 그간 사족이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일을 떠넘겼다. 한데,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속이 따가울 정도로 괴로웠다.

이대로 죽는 것도 억울했고, 그간의 모든 일들이 다 허망했다.

“내가 정말 역병에 걸리긴 한 것인가? 의원도 확신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역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확신으로 이르렀다.

참으로 가벼운 증상이 아닌가.

지금도 사지가 멀쩡하고, 불편한 곳이 없었다.

이대로 씻은 듯 괜찮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최종적인 결론은 도주였다.

“일단 몸을 피해야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산성에 갇혀 비참하게 울부짖으며 죽을 수는 없었다.

모든 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약재를 챙겨 숨은 뒤 살아남으면 복귀하면 된다.

“어차피 의원은 발설하지 못할 것이다. 알리면 자신도 처벌받을 것이니 말이다.”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심장에는 조정을 향한 거대한 증오가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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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였다.

그야말로 난리였다.

“시, 싫습니다!”

공포에 질린 병자 한 명이 악을 쓰며 저항했다.

낫까지 휘두르며 그 누구의 접근도 불허하는 그의 모습은 처절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군관들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보게. 이러면 자네만 다치는 걸세. 그러니 낫을 내려놓게.”

“하하하! 미치셨습니까? 나를 죽이려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합니까? 썩 물러나십시오!”

“누가 자네를…….”

“시끄럽다고 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서 악을 쓰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안쓰러웠다.

“똑바로 들으십시오. 죽어도 내 집에서 죽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지 않은가.”

“어림도 없습니다!”

“…….”

사실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갈수록 병자들은 저항은 심해졌다.

역병에 걸린 병자가 격리된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으나 이번은 유독 심했다. 과거와 다른 이유는 정말로 간단했다.

병자들이 제 몸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역병에 확실한 병자들은 저항할 힘도 없다.

역병이라는 걸 스스로가 가장 정확하게 인지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전처럼 몸이 가벼운 건 아닐지라도 죽을병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기껏 고뿔이라고 생각했는데 역병이라고 하니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강렬하게 저항하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게다가 나는 역병에 걸린 병자가 아니지만, 격리될 누군가는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게 된다면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제대로 지원도 해주지 않을 게 뻔하지 않은가?

죽지 않아도 되는데 죽을 수밖에 없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공포에 휩싸였기에 관청의 지침을 따를 수가 없었다.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쉰 군관은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시선을 옮겨 병자를 바라봤다.

그의 떨리는 눈동자가 눈에 담겼다.

“미안하네.”

“무, 무슨…….”

“제압하라.”

그의 명령과 동시에 병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병자는 기겁하며 낫을 휘둘렀으나 조선 최고의 정예군인 훈련도감의 병졸 십수 명을 감당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낫의 허덕임은 너무나도 허망하게 끝났다.

병자의 저항은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차라리 여기서 죽이십시오!”

처절한 절규가 이어졌다.

“살아온 세월도 개보다 못했는데, 죽는 순간도 개보다 못하게 죽어야 합니까!”

그의 통곡에 지켜보던 백성들은 끝낸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도 여기서 죽으면 내 처자식들이 장사라도 치러줄 거 아닙니까…….”

격리되어 죽으면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때가 되면 모조리 화장하거나 매장해버리기 때문이었다.

“죽은 뒤에도 개처럼 구천을 떠돌아야 합니까…….”

“…….”

“그래도 아비가 언제 죽었는지는 내 새끼들이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었던 가치가 너무나도 무참하게 박탈당하고 있었다.

그의 외침은 이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죽어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원망의 대상은 한 명이었다.

“송시열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이름을 석 자를 내뱉었으나 누구 하나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저 그를 끌고 갈 뿐이었다.

모든 것이 박탈당했는데 입까지 틀어막는 건 너무나도 잔인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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