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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88화 (288/298)

288화 내일을 박탈하다(2)

아비규환이라고 해야 할까?

수십 명의 병자가 격리를 거부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어차피 이판사판입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다치기 전에 물러나는 게 좋을 겁니다.”

살기까지 품은 싸늘한 경고였다.

의원과 승려 그리고 향리는 수로도 밀렸고, 기세로도 감당하지 못했다.

“조용히 고을을 떠나게 해 주십시오.”

“그럴 수는 없네. 일단 진정하게나. 우리가 해결책을 찾아보겠네.”

“해결책이라고 하셨습니까? 그걸 우리가 믿을 것 같습니까? 시간을 끌다가 관군을 부를 생각이겠지요.”

“이 사람들아. 우리를 믿게.”

“어찌 나리들을 믿습니까!”

핏발 선 눈으로 악을 쓰며 발악하듯 외쳤다.

“멀쩡한 백성을 산성에 넣어 죽이려는 나라입니다. 믿으라고요? 대체 뭘 믿으라는 겁니까!”

“자네들은 병자일세. 지금 괜찮다고 하여 내일도 괜찮은 게 아닐세.”

“하! 눈이 있으면 보십시오. 우리가 역병에 걸린 병자로 보이십니까?”

“말하지 않았는가. 역병의 기미가 보이는 건 사실이라고.”

“어림도 없습니다!”

병자들은 이를 악물었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압니다.”

“예. 험한 꼴 보기 전에 이제 비키십시오.”

주먹을 꽉 쥐며 다가오는 병자들의 눈에는 살기 아니, 광기까지 담겨 있었다. 이건 도무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막고자 한다고 하여 막을 수도 없었다.

“정말 역병이라면 소인들은 죽겠지요.”

“그러나 안 죽으면 다시 돌아올 겁니다.”

“적당한 곳에 잘 숨어 있을 테니 찾지 마십시오.”

“그런데 꼭 돌아올 겁니다.”

말을 끝낸 병자들은 도망치듯 서둘러 고을을 벗어났다.

언제 관군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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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는 건 모조리 집어 던졌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던진 물건에 몸이 상할 수도 있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누군가가 고작 다치는 일을 하나하나 고려할 상황이 절대로 아니었다.

저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내가 죽는, 오직 생존을 위한 저항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물리친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았다.

상황은 너무 일방적이었으니 말이다.

이미 다수의 의원이 의식을 잃었고, 손을 보태던 승려나 관리도 마찬가지였다.

“머, 멈추게.”

아직은 의식이 있었던 의원은 병자들의 서슬 퍼런 기세에 질려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와 넝마가 된 의복을 챙길 겨를 따위는 없었다. 죽음을 지척에 둔 두려움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묻지요. 정말 우리가 역병에 걸렸습니까?”

“저, 정말일세.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한데, 왜 멀쩡합니까?”

“처음에는 그럴 수 있네.”

“헛소리 집어치우십시오. 역병에 걸려 죽은 사람을 한둘 봤는지 압니까? 그냥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네.”

“하. 그걸 누가 믿습니까?”

병자들은 눈을 부라리며 화를 쏟아냈다.

“걸리면 바로 죽는다고 한 게 불과 몇 달 전입니다. 한데, 바로 죽는 병자를 격리한다더니 이제는 미열만 있어도 잡아서 가두는 게 말이 됩니까?”

“나, 나는 중대본에서 내려온 지침을 따랐을 뿐이네. 그 방침에 의하면 자네들은 분명 역병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태일세.”

“시끄럽습니다. 약재나 내놓으십시오.”

“야, 약재라니?”

“우리가 관리들까지 상하게 했습니다. 죽었을지도 모르지요. 한데, 여기서 살 수 있겠습니까?”

“…….”

“약재를 챙겨 산속이라도 들어갈 겁니다. 당장 내놓으십시오.”

“아, 알겠네.”

의원으로서도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약재를 챙겨주는 게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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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명의 병자와 100여 명의 병졸이 대치했다.

승패는 자명한 것이었으나 병자들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먼저 몸을 움직여 싸움을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

“…….”

“…….”

이완은 병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들의 표정에는 절망과 좌절만이 담겨 있었다.

참으로 애통했다.

하늘은 참으로 잔인했다.

어찌하여 이토록 구슬픈 현실을 허락했단 말인가.

심장 아니, 사지가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겨우 심장을 진정시키며 병자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씩 모두 눈에 담았다.

정사에 기록될 수 없는 생김새지만, 누군가는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담아냈다.

고통스러웠으나 피하지 않았다.

다시 숨이 막히는 것 같았으나 이를 악물고 바라보며 심장에 새겼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고,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마치 모든 이가 이완에게 시간을 허락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훈련대장 이완이다.”

드디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이름을 말하겠나?”

이어진 말은 다소 의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유를 묻는 이는 없었다.

그저 그의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지길 바라는 이가 이 자리에는 많았기 때문이었다. 다소 길고 지루한 이 시간이 끝나면 더는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이가 있다는 걸 알기에 그러했다. 지금 이곳에서 이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들은 모두 괴롭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너희가 살아 있었다는 걸 내가 남길 것이다.”

“…….”

“이름 석 자 정도는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소인의 이름은…….”

낫을 든 병자 한 명이 덜덜 떨면서 이름을 말했다.

그를 시작으로 병자들이 천천히 이름을 꺼냈다.

정사에 남을 수 없는 이름이지만 야사에는 남을 것이다.

“…….”

끝나지 않기를 바라였던 시간은 어느새 끝을 향하고 말았다.

이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겨운 말을 이었다.

“일찍이 나는 이 땅을 지키고자 숨을 쉬며, 앞을 보고, 달려왔다.”

“…….”

“한데, 지금 내 앞에서 숨을 쉬고 있는 너희는 이 땅을 지키고자 한 백성이로구나. 참으로 한탄스럽다.”

이완은 다시 말을 끌었다.

그러나 병자 중 누구도 낫을 내려놓지 않았다.

차라리 여기서 죽고야 말겠다는 절박한 의지였다.

아니, 이대로 낫을 내려놓더라도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몰랐다. 이미 관리와 의원을 상하게 했다. 조정의 방침을 정면으로 거스른 수준이 아니었다. 이대로 잡혀가면 결국 죽을 것이다. 어설픈 감언이설에는 귀를 막은 지 오래였다.

그래서 이미 퇴로는 없었다.

이완도 더는 말을 길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는 불필요한 감정이기에 밀어내야 했다.

“너희를 기억하겠다.”

“…….”

“나를 원망하라.”

그의 오른손이 하늘로 향했다.

“병자…… 아니, 죄인들을 모조리 사살하라.”

사살령을 내렸다.

그 즉시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이미 겨누고 있던 수십 개의 조총이 잔혹하리만큼 정확하게 병자의 심장을 해하였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병자가 죽었다.

“으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악을 쓰며 달려든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수가 생길 수는 없었다.

저들이라고 하여 병졸의 공세를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무의미한 행동은 아니었다.

다가온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악이라도 쓰며 달려드는 게 더 좋으니 말이다. 가만히 서서 죽음을 그저 기다리는 건 너무나도 두려운 것이다.

참으로 구슬프고 참혹한 순간이었다.

평생 이토록 잔인한 장면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완은 피하지 않고 모든 장면을 눈에 담았다.

쓰러지는 병자의 눈동자를 바라봤고, 떨리는 그들의 손을 바라봤으며, 흐르는 눈물을 품었다. 이를 악물며 모든 것을 기어이 담아냈다.

“…….”

“…….”

“…….”

모든 병자를 제압했다.

이완은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모든 시신을 수습하여 잘 묻어 주도록 하라.”

그리고 알고 있었다.

오늘과 같은 일은 앞으로 계속하여 발생하리라는 걸 말이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너무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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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가 빗발쳤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각지에서 산발적인 병자의 저항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훈련대장 이완의 장계에 의하면 병자 40여 명을 사살했다고 하오.”

결국, 사살된 병자가 발생했다.

무거운 침묵만이 이를 대꾸할 수 있었다.

어떤 말로도 이 무게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조선의 정규군이 백성을 향해서 총부리를 겨눴다는 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니 말이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조선의 사대부라면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심장이 찢어질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 비극이었다.

또 그래서 방법론에 대한 논쟁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를 경계하였기에 먼저 말을 꺼냈다.

“잡아서 격리할 수도 있소. 한데, 수십 명을 제압하여 격리할 병력이 조선에는 없소. 이를 해내려면 군영을 부활시켜야 하오. 하지만, 우리는 이럴 여력이 없소이다.”

군포를 개혁하면서 훈련도감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현실이었다.

지금 병자를 제압하기 위해서 군영을 부활시키는 건 또 다른 최악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본부장. 군영의 부활까지는 아닐지라도…….”

“호판. 역병에 걸린 병자들이외다. 이들과 접촉하여 포박하는 과정 자체가 위험천만하오.”

“…….”

“게다가 이들이 고을을 벗어났소. 잡아서 다시 격리하는 과정. 이 모두가 역병의 창궐을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허적만 이러는 게 아니었다.

모두 버티기 힘들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의 위정자로서 가진 도덕적 책임감이 곧 이들의 정치였으니 말이다.

“정신 차리시오. 도덕적 책임감이라는 건 위정자가 세상을 지탱할 때나 필요한 것이오. 감당할 수 있을 때나 내세우며 백성을 품을 수 있는 것이외다. 조선의 모든 게 쓸려나가는 초유의 난세에 무슨 도덕성을 운운하오?”

나는 모질 정도로 말을 독하게 했다.

그래야 했다.

중대본의 대신이 이런 상황이면 조정 전체가 도덕성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걸 의미하니 말이다. 이 시절 조선의 사대부가 가지는 도덕적 세계관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아하고 높은 수위였기 때문이었다.

“모두 서역의 위력이 압도적이기에 잠시 잊으셨소? 지금도 조선 전역에서 초유의 재해가 발생하고 있소. 한데, 우리는 이 중 무엇 하나 제대로 방비하고 있지도 못하고 있소. 한데, 위정자가 도덕성에 지배되는 건 사치가 아니라 반역이외다.”

그리고 나는 작금의 상황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알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이는 조선의 위정자가 가지는 도덕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병자들이 저항하는 건, 내가 역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외다. 왜? 위정자에 대한 불신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부활한 것이오.”

“…….”

“이를 초래한 건 바로 우리요. 한데, 과거는 송두리째 집어 던지고 어찌 눈물을 흘리고 있소? 평생 백성이 흘린 눈물을 만든 게 바로 위정자인데 말이외다.”

나는 다시 말했다.

이들에게.

“이는 도덕이 아니라 위선이오.”

“…….”

“그러니 모두 착각에서 벗어나시오.”

나는 참으로 지독했다.

지금 이들은 중대본의 대신들인데도 이리 말하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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