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내일을 박탈하다(7)
병자들은 살고 싶다고 울부짖었다. 그때마다 늘 아니라고 말했다.
격리는 포기가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고.
그러나 누구도 이를 믿지 않았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만일 정말로 격리가 생존으로 이어지는 수단이었다면 강압이 아니라 교화가 이뤄졌을 것이며, 유혈 진압이 아니라 제압의 수준으로 그쳤을 것이다.
하여, 모두 알고 있었다.
격리는 곧 죽음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위로는 중대본에서 아래는 의원까지, 이 지독하고 잔인한 결정을 집행하기에 하루를 버티는 것이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 어떤 명분을 가져올지라도 백성을 죽이는 결정과 선언을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체계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백성의 죽음과 얽힌 집단이 바로 훈련도감이었다. 격리를 거부하며 강력하게 저항하는 병자를 사살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니 그 괴로움을 감히 표현할 방법은 없었다.
조선 최고의 정예군이라는 자부심과 백성의 환호에 기뻐하던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오래된 기록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괴롭고 고통스러웠으나, 해야 할 일이었기에 이를 악물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훈련도감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영감. 중대본의 결정을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부관들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이완은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두려운 것이었다.
“수백 명의 백성입니다. 저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습니다.”
만일 역모나 민란이었다면 나아가 싸웠을 것이다.
적군이 이 땅을 공격했다면 목숨을 걸고 막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사안은 아니었다.
분명 백성이 폭동을 일으킨 건 사실이었으나, 이유가 너무나도 처절했다.
양반의 이기적인 행동에 생존의 욕구가 폭발한 것이었다.
그러한데 대군을 투입하여 모조리 사살한다는 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부관들을 도저히 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명령이 내려지면 따르겠으나 괴로움을 이겨낼 수가 없을 것이다. 이미 훈련도감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영감. 전격적인 진압은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
이완은 고민이 깊어졌다.
차라리 기근에 허덕이는 백성이 봉기했다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대본의 결정만 기다리는 시간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수백 명의 백성이 폭도로 변하여 고을을 불태우고 수령을 감금한 사실은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병자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이대로 그냥 두었다가는 일이 어찌 커질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악의 경우 흥분한 그들이 산성에 격리된 병자들까지 동원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진압하는 건 심장이 따갑고, 시간을 지체하면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일단 포위만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
“영감.”
이 또한 방법이라면 방법일지도 모른다.
일단 포위하여 상황을 잠시라도 살피면 될 일이었다.
이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이광성이라는 양반은 어찌하고 있는가?”
“도착하였을 때 안색이 창백하였습니다. 혹시나 하여 의원에게 보였더니 역병의 징조가 보였습니다.”
“허.”
이완은 탄식했다.
“역병에 걸린 몸으로 알리고자 여기까지 달려왔다는 말인가?”
“그런 듯합니다.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입이 무거워, 특별히 제 공을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참으로 기특한 인사로다.”
“하면, 어찌합니까.”
“무엇을 어찌하는가. 공은 공일 뿐일세. 역병의 징조가 있다면 격리하는 게 옳지. 근처 산성으로 보내도록 하게.”
“그리하겠습니다.”
이광성의 운명이 결정됐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그리고 훈련도감은 본격적으로 진군했다.
그 수는 2천여 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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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을 두려워했으나 늘 욕했다.
잘 피하면 탈이 날 건 없었고, 보이지 않는 곳이라면 마음껏 욕할 수 있었다.
이렇듯 백성이 시간을 내어 정성스레 욕한다는 건 그들이 실질적인 위정자였기에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그들이 모든 걸 결정하고, 집행하였기에 당연했다.
하여, 백성의 삶에 양반은 있어도 조선은 없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는데, 조선이란 곧 조정이며 군왕이었으니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백성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가능성이라는 건 사실상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하기에 양반을 제압하면 모든 걸 이뤄낼 수 있다고 여기는 건 당연했다.
실질적인 통치권자를 죽이고 구금한 것이었으니, 백성으로서는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면 이 땅의 실질적인 통치권자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고작 양반을 제압한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무거운 정치적 현실이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백성은 난생처음 진정으로 두려운 ‘조선’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2천여 명의 훈련도감이 인근에 주둔했다는 소식은 고을 전체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
“…….”
“…….”
관군이 오리라는 사실은 당연히 예상한 것이었으나, 애석하게도 현실과 예상의 차이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흥분하여 일으킨 행위의 지독한 결과를 비로소 체감한 것이다.
과정이 어떠하였을지라도, 혹은 정당하였을지라도 훈련도감은 진압을 위하여 왔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것이 현실이었다.
하여, 공포라는 단어가 가지는 위력이 구체적으로 구현되었다.
하필이면 죽음이라는 가장 두려운 단어와 함께 말이다.
“…….”
“…….”
“…….”
백성들은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였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나가서 싸울 수도 없고, 이대로 항복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어, 어차피 우리는 죽을 처지였어.”
이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진실은 아니었다.
“무, 무슨 말인가. 우리라고 말하지 말게. 나는 아니었네.”
역병의 징조가 보이지 않았던 백성의 수도 적지 않았다. 명백하게 이들은 죽음과는 실질적인 연관이 없었으나 훈련도감의 등장으로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여기까지 와서 책임이 없다는 건가?”
“사실을 말하는 걸세.”
분열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차피 죽을 운명에 처한 이와 단지 화가 났을 뿐이었던 이들이 한데 섞여 있는 것이니 말이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급격하게 험악해졌다.
지켜보던 수령이 황급히 나섰다.
“내가 훈련도감을 설득하겠네.”
목민관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는 묘한 파장을 만들어냈다.
살길을 모색하는 백성은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반색했다.
그러나
“사또를 어찌 믿습니까.”
죽음이 기정사실화인 병자들은 날카로웠다.
다소 당황한 기색의 수령이 말을 꺼내려고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사또께서 보낸 관리들이 결국 훈련도감을 끌고 왔습니다.”
“예. 여기서 사또까지 내보내면 훈련도감은 바로 우리를 죽이겠지요.”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내보낸 관리들이 있었다. 억울한 사정을 조정에 호소하여 약재 따위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훈련도감만 진입했으니 관리들이 원한을 품고 달려갔다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제대로 일을 수행했다면 훈련도감이 왔을지라도 사람을 보내왔겠지요. 약재를 챙겨왔으니 대화를 하자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변명하지 마십시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들을 내보내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여기서 다 죽어버리는 건데 말입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우리가 왜 죽나?”
지켜보던 백성들이 눈까지 부라리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우리는 사또를 밖으로 보내겠네. 막지 말게.”
“그걸 왜 자네들이 결정하나?”
“하면, 누구 허락이라도 받아야 하나? 자네가 양반이라도 되나?”
우습게도 이 순간에 언급되는 건 ‘양반’이라는 존재였다.
이들에게 양반은 위정자였고 세상의 끝이었기에 그러했다.
고을의 양반을 모두 죽인 이들이었는데도 이러했으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양반들 죽이는 데 자네들도 동조했네.”
“…….”
“그런데 인제 와서 양반을 찾나? 실성이라도 하셨나?”
“치우게. 이런 대화를 더 할 필요가 없네. 사또께서 훈련도감을 만나서 상황을 잘 설명하면 될 일일세.”
“그래. 그 상황 말일세. 이 모든 일은 격리가 두려운 병자들이 일으킨 것이라고 하면 어찌하나? 우리만 죽나?”
“그건 사실이었네. 애초 이광성의 집으로 쳐들어간 건 자네들이 아니었나? 우리는 애초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네.”
양측의 대립이 심각해졌다.
당장 충돌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모두 진정하게!”
수령이 다시 나섰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를 믿지 못할 수도 있네. 그러나 이대로 허망하게 죽을 생각인가? 살 수 있는 길을 어떻게든 찾아야 하지 않겠나? 내가 약조하겠네. 훈련대장을 만나서 자네들의 사정을 모두 말할 것이네.”
“우리의 사정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그러면 하나만 묻겠습니다.”
병자 중 한 명이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대로 일이 마무리되면 우리는 격리가 됩니까. 안 됩니까.”
“뭐……?”
“양반들이 먹는 그 약재를 우리 모두에게 내어주실 수 있습니까?”
“그건…….”
“못하겠지요. 불가능하지요. 처음에는 욱한 마음에 제대로 뒤를 돌아보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약재를 내어주면 모든 병자에게도 그리해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
“이리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불가능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해보겠다고 나설 수는 있다.
그렇게 협상하겠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수령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병자들도 말을 아끼며 물끄러미 수령을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참으로 정직하신 분입니다.”
누군가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괜한 말, 뻔한 말이라도 하셔서 소인들을 설득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를 언급도 하지 않으시는군요.”
“……내가 어찌 자네들에게 할 수 없는 걸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아닌 말로 어찌 설득할 수 있는가. 그리하는 순간 내가 살고자 백성을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일세. 나는 그리할 수 없네.”
“…….”
“나는 백성을 보살피는 목민관일세. 백성에게 거짓을 말하는 건 목민관의 일이 아닐세. 그러니 나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것일세.”
“…….”
참으로 지독하게 정직한 사람이었다.
병자들은 그저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행입니다.”
긴 한숨과 함께 나온 말이었다.
“그거 아십니까.”
“…….”
“백성에게 세상의 끝은 양반입니다.”
“…….”
“그런데 이게 참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증오하고 원망하는 양반이 버팀목이라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이지요.”
“…….”
“그래도 사또께서는 아니었지요. 늘 그랬고 오늘도 그러시군요.”
“…….”
“감사합니다. 죽기 전에 양반다운 양반을 품고 갈 수 있게 해주셨으니 말입니다. 척박한 세상의 끝이 이러하군요.”
병자들은 여전히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간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러니 너그럽게 이해하십시오.”
“…….”
“보내드리겠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선정을 베푸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