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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94화 (294/298)

294화 내일을 박탈하다(8)

이완은 머리가 뜨거웠다.

식혀야 했다.

그래야만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했다.

하여, 말을 아꼈다.

이완은 심장은 따가웠다.

침착해야 했다.

그래야만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여, 듣기만 했다.

그런데도…….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었다.

듣고 있노라면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숨도 쉬지 않았다.

철저하게 무표정하게 듣기만 했다.

조선 최고의 무장으로서 사안을 분명하게 바라보고자 했다.

그래야만 했다.

“영감. 이 모든 건 이광성의 간악한 행동에서 비롯한 것이외다.”

가까스로 고을에서 벗어난 수령의 목소리는 참으로 간절했다.

이토록 엄혹한 난세에 이와 같은 이가 어디에 있을까.

이완은 진실로 감복했다.

그러나 티 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래야만 했다.

“그를 벌하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소. 내가 장담하리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역병에 걸린 몸을 이끌고 변고를 알리고자 달려왔다고 여겼다.

그를 의인이라고 하였다.

그러한데 실상을 알고 보니,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할 양반이 제 안위를 위하여 일탈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그의 무책임한 행동이 원인이었다.

엄히 벌하는 게 마땅한 죄인이었다.

그러나

“불가하오.”

이완은 단호했다.

지금 중요한 건 오직 한 가지, 흔들리지 않는 강고한 원칙이었다.

“여, 영감.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그를 벌할 수 없다니요? 모든 건 그가 시발점이었소. 그리만 한다면 백성도 진정할 것이외다.”

“나 역시 그를 벌하고 싶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역병의 기미가 보이는 인물이오. 하여, 격리했소.”

“하, 하지만…….”

“공의 말대로 그를 끌어내어 벌하다가 역병이 번지면 어찌 되오? 작금의 조선을 가장 괴롭히는 건 태풍도, 홍수도, 가뭄도 아닌 역병이외다. 하여, 나는 공의 청을 들어줄 수가 없소.”

이완은 무장이었다.

그의 판단에는 정치적 판단이 전혀 가미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명령을 충실히 수행할 뿐이었다.

수령은 이러한 이완의 성향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불안함이 엄습했다.

목이 따가울 정도로 타들어 갔다.

해서, 두려운 일을 해결하고자 간곡하게 말했다.

“영감. 부디 무고한 살상을 멈춰주시오.”

“…….”

“저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 백성이외다.”

“…….”

그의 목소리는 참으로 절절했다.

듣고 있노라면 손을 맞잡고 함께 눈물을 흘리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완은 모든 감정을 억눌렀다.

훈련도감의 수장으로서 가장 원칙적인 판단을 입에 담을 뿐이었다.

“그들은 양반을 죽이고, 고을을 불태웠소. 한데, 죄가 없소?”

“그, 그건 이광성의…….”

“좋소. 공의 말대로 이광성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라고 하지요. 한데, 백성들이 이광성만 해하였소? 아니외다. 오히려 그는 멀쩡하게 여기까지 왔소. 하면, 대체 죽은 이들은 누구요? 아무런 죄도 없는 양반들이외다. 묻겠소. 수년간 이어진 기근을 극복할 때 그들의 역할이 없었소?”

“…….”

“아닐 것이외다. 곳간을 열어 구휼미를 내렸을 것이외다. 위생을 보급하고자 최선을 다하였을 것이외다. 한데, 죽었소. 양반을 해하여도 용인할 수 없거늘, 선행을 베푼 이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것이오. 한데, 죄가 없다는 것이오?”

“영감.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오. 이를 통치의 영역에서 관대하게 바라봐주시오. 당장 벌하기보다는 추포하여 사정을 파악한 뒤 처결해도 늦지 않을 것이외다.”

“나는 통치와는 무관하오. 그저 어명을 수행할 뿐이외다. 내게 내려진 어명은 중대본의 방침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집행하라는 것이었소.”

흔들리지 않았다.

꺾이지도 않았다.

오직 나아갈 뿐이었다.

이토록 단단하기만 한 이완의 말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저들은 죄인이오.”

“내가 조정에 아뢰겠소. 잠시만의 시간을 내어주시오.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지 않소이까.”

“평시에 발생한 민란이었다면 그래도 될 것이오. 한데, 지금은 난세이며 저들은 병자요.”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오?”

“사정이 딱하여 시일을 끈다면 모든 병자에게도 적용해야 하오. 이리하는 게 옳소?”

“…….”

“또한, 평시의 법도를 적용하여 벌하자면 따로 잡아 가둬야 하오. 한데, 역병의 징조가 있는 이들을 이리할 수가 있소? 아니지요. 무조건 격리해야 하오. 그런데 내가 보는 건 이것만이 아니오.”

이완의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었다.

듣기 힘들 정도로 일정하고 건조했다.

“병자와 아닌 자가 며칠을 함께 보냈소.”

“영감. 그건…….”

“그들 모두를 파악해야 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오.”

이완은 참으로 집요할 정도로 이를 언급했다.

수령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위생의 방침만 보더라도 일이 이렇게 심각하오. 한데, 병자가 아닌 이들도 양반을 죽이는 일에 동참했소. 내가 이 일에 대해서 더 언급해야 하오. 그리고 하나 더 묻겠소.”

“…….”

“공은 역병의 징조가 없소?”

“…….”

더 이상의 개입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수령의 안색은 흐려졌다.

“내 말을 이해하셨을 것이외다.”

“…….”

“저들은 벌해야 하오. 한데, 무슨 사정을 봐줘야 하오? 또, 무슨 말을 들어야 하오?”

“…….”

“또 묻지요. 공은 작금의 난세가 아름답소?”

너무나도 신랄한 말이었다.

뼈가 저릴 정도였다.

“물론 공을 탓하는 건 아니외다. 목민관은 공처럼 백성의 신망을 받아야 하오. 그래야만 난세를 극복할 수 있으니 말이외다. 그러나 나는 다르오. 나는 내 일을 하는 것이오.”

“하면…….”

“공은 공의 몸을 추스르시오. 그게 전부외다.”

수령의 눈빛은 참으로 간절했다.

그러나 더 말하지는 않았다.

이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었다.

적어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시오. 공의 역할은 여기까지셨소.”

당신의 탓은 없다는 위로였다.

결국, 수령은 안색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완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전군, 출병한다.”

오늘도 진군해야 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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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이 사안인 만큼 평소보다 더 서둘러서 진군했다.

모두 표정이 어두웠다.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어쩌면 오늘 수백 명의 백성을 죽여야 할지도 몰랐다.

아니, 더 많은 이를 죽여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

“…….”

“…….”

“…….”

너무나도 참담하고 끔찍하여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고을의 범위로 진입한 병졸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입을 다물 수도 없었다.

결국, 모두 시선을 돌렸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그리하였다.

“…….”

“…….”

“…….”

“…….”

진입로부터 이미 수십 명이 죽어 있었다.

역병이었다.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여 온몸을 긁은 이가 있었다.

힘들어 끝내 바위에 머리를 박아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죽은 이도 많았다.

그리고 눈을 제대로 감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옥이 세상에 열린다면 바로 오늘일 것이다.

그러나

“위생 수칙에 따른 방비를 시작한 뒤 전원 진군한다.”

이완의 명령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모든 걸 준비하여 온 길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영감.”

상황을 파악하고 온 부관이 다가왔다.

“백성들은 모두 무장을 해제하였습니다.”

“…….”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무장을 해제했다…….”

“한데, 이미 병마가 들어선 듯합니다.”

“누구의 의견이었나.”

“고을에 의원들이 잔류한 상태였습니다.”

“…….”

“그들이 백방으로 손을 썼으나 불가항력이었다고 합니다.”

이완은 곱씹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그 시간은 참으로 짧았으나, 온몸에 통증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길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날이로다.”

한탄하며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진입하여 제압하게.”

냉정한 명령이었다.

부관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리고…….”

이완이 단서를 달았다.

어쩌면 저항하지 않는 이는 살려두라는 명령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부관들의 얼굴은 밝아졌다.

희망을 품었다.

이 일의 끝에 ‘격리’가 존재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 명도 살려두지 말게.”

명령은 가혹했다.

그러나 항명은 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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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은 가혹했다.

백성들은 절규하며 도주하였으나 무리였다.

철저하게 진을 구축한 훈련도감은 그 어떤 틈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을 전체를 둘러싸고, 제압하는 시간은 한나절 남짓이었다.

“하하하…….”

이미 죽음이 지척에 이른 병자 한 명이 바닥에 누운 채로 서글프게 웃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눈물이 뒤덮은 얼굴이었다.

참으로 익숙하고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차마 바라보는 것도 어려웠다.

“나리…….”

물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이완을 불렀다.

이완은 대꾸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혹시라도 남길 말이 있을까 듣고자 했다.

혹여 욕이라도 할까 들어주고자 했다.

이렇게라도 한다면 마지막 길이 조금은 평온할까 들어주고자 했다.

그래서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쳐다봤다.

어서 욕설을 내뱉기를 바라였다.

하늘 아래 존재하는 모든 험한 말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또는 벌하지 마시오.”

그가 남기고자 한 말은 선하였다.

하여, 이 자리에 있는 훈련도감의 구성원들에게는 죽음보다 가혹하였다.

이 순간이 아니, 그의 마지막 말이 그러했다.

“하아……. 부디 그리해주십시오.”

“…….”

“못된 마음을 품었고, 이리한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우리가 사또를 생각해서 고을을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

“병자들이 돌아다녀서 역병을 옮기기라도 하면 우리 사또께 폐가 될까 봐 그리했지요.”

이는 대체 무슨 말인가.

어찌 이런 유언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은 어찌하여 이토록 가혹할 수 있을까.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독하게 눈이 아파졌다.

“돌아가셔서 만나면 꼭 대신 전해주겠습니까?”

끝내 이완은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필히 그리해야 했다.

이 또한 그의 책무…… 아니, 사람이기에 그리해야만 했다.

이 절절한 마지막 말을 들었으니 답하는 게 도리였다.

“말하게. 내가 꼭 전해주겠네.”

“보잘것없는 삶이었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았고, 내일은 기대할 게 없는 너무나도 흔한 삶이었습니다. 남긴 건 없었고, 남길 수 있는 것도 없는 그런 삶이었지요.”

“…….”

“그런데 말입니다. 이 마지막 순간, 가슴 속에 따스함을 가질 수 있다면 모든 건 사또의 선정이 이유입니다. 이를 전해주시겠습니까.”

“응당 그리할 것이네.”

“참으로…….”

그의 목소리는 격하게 떨렸다.

눈동자는 점차 감겼다.

그런데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감사했다고 전해주십시오. 마지막까지 너무 감사했다고.”

“내가 꼭 전하겠네.”

“하하하…….”

“편히 눈을 감게.”

“…….”

그는 결국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목민관에게 감사함을 표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말을 전하기로 한 이완을 향해서는 어떠한 감사함도 남기지 않았다.

참으로 하늘은 잔인했다.

이완은 이를 악물며 지독하기 이를 데 없는 하늘을 노려봤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조선의 사대부로서 아니 조선인으로서 이보다 슬픈 일이 어디에 있을까.

작금의 난세는 너무나도 힘겨웠다.

“영감. 모두 참하였습니다.”

백성의 몸을 참하였고, 훈련도감은 정신이 참해졌다.

백성은 죽어서 슬펐고, 훈련도감은 살아서 슬펐다.

이 해, 조선은 그러했다.

그리고

“영감. 수령이 사망했습니다.”

역병이었다.

끝내 말을 전하지도 못하였다.

그는 들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백성의 말을.

그들의 진심을.

이 해, 하늘은 그러했다.

그저 잔인하기만 하였다.

이 해는 경술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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