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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295화 (295/298)

295화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조선의 사대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비극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사상자는 어찌 되는가.”

“아군은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무관은 정확하게 ‘아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저들을 ‘적’으로 규정하였다는 말이었다.

남몰래 심장을 떨었다.

그러나 이 또한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백성의 상황을 물었네.”

“전원 사살했습니다.”

“…….”

“절반은 이미 역병으로 죽은 상태였습니다. 생존자는 모두 죽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고을을 벗어난 이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연의 사태를 대비하여 철저하게 수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또한, 고을은 모두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일벌백계였다.

지독하고 정확한 원칙에 입각한 집행이었다.

그리고 무관의 표정은 고통이 가득했다.

그토록 참혹한 현장을 감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나의 웃음을 본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고생하셨네.”

“아, 아닙니다. 하면, 소인은 물러가겠습니다.”

“그리하게.”

지금껏 나는 이토록 침통함이 가득한 중대본을 경험한 바가 없었다.

모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들에게 이 상황의 본질을 만들어줄 의무가 있었다.

“만일 훈련도감이 근처에 없었다면, 혹은 훈련대장이 없었다면 상황을 수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오.”

“…….”

“호판. 각 도에 새로운 병력을 배치하는 일은 서둘러 진행해야 할 듯하오. 이번 사태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에 불과하니 말이외다.”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았다.

건조한 목소리로 오직 원칙만을 담아냈다.

나는 이러했다.

“이 일을 각도의 관찰사에게 전하여 군현에 전달토록 하시오.”

“본부장.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소?”

“섣부른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백성들도 알아야지요. 그래야만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소.”

기어이 이렇게 해야만 했다.

“중대본의 조치에 대한 반발이 크오. 사지가 멀쩡한데 어찌하여 역병이라고 하느냐고 원성이 가득하오. 한데, 진정 그러했소? 아니외다. 모두 병자였소. 역병은 어김없이 그들을 죽였소.”

“하면, 역병의 실체에 대해서만 알려도 탈이 없을 것이오.”

“호판. 그리할 때가 아니외다. 백성이 어떤 원망을 할지라도 나아가야 하오. 작은 틈이라도 보인다면 변고는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소.”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허적의 눈동자는 번뇌가 가득했다.

아직 괴로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여러 차례 말하였소. 이 모든 건 내가 감내할 것이외다. 모든 문서는 나 송시열의 결정으로 이뤄질 것이외다. 그리하면 되오.”

그 어떤 반발이라도 짓밟으며 나아갈 것이다.

마음을 다시 독하게 먹었다.

그리고 이번 사안을 통해서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조선의 목민관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덕을 앞세워 백성을 교화하고 애달프게 챙겼다.

만일, 그들이 아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수백 명의 병자가 유민이 되었다면 지옥이 개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오직 하나가 아니었던가.

백성이 죽어가는 순간 직접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

“작금의 사태가 더 참혹한 민란으로 번지지 않은 건 오롯이 목민관의 역할이었소. 이는 필히 정사에 남겨야 할 일이외다.”

“…….”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려 목민관의 자긍심을 세우도록 하겠소.”

나는 쉬지 않고 작금의 변고를 언급했다.

그러나 백성의 일에는 단 일 할의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죄인이어야 하오. 그들을 위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외다.”

그들을 기리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훗날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그러하다.

“본부장. 알릴 것이라고 하셨소. 하면, 눈물을 훔치는 백성이 있을 것이외다. 이를 어찌할 것이오.”

“……사사롭게 기리는 걸 어찌 벌할 수 있겠소? 물론, 그들 모두를 벌할 상황이 아닐 뿐이외다.”

우습게도, 참으로 우습게도 이번 사태는 남은 기간 역병에 대처하는 조선의 방침이자 백성을 향한 강력한 경고가 될 것이다.

방침을 따르지 않으면 다 죽게 된다는 철의 방침 말이다.

나는 다시 깨달았다.

이 시절 조선에 ‘교화’란 사치에 불과하다는 걸 말이다.

그러나 깨달은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조선의 역사였다.

아니, 조선의 가치였다.

미처 몰랐던 조선의 진정한 가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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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용안도 참으로 힘겨워 보였다.

그래서 내가 말을 꺼냈다.

“전하.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중대본의 방침을 최종 승인받고자 찾았건만 이연은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부디 흔들리지 마시옵소서.”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까?

나를 빤히 바라보던 이연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본부장. 혹시 아시오?”

“알고 있사옵니다.”

“무엇을 말이오?”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은 백성이 관군의 손에 죽은 사례였사옵니다.”

“그것만이 아니외다.”

“단일 군현에서 가장 많은 백성이 죽었사옵니다. 하오나 재해가 아니라 관군이 죽였사옵니다. 신이 어찌 모르겠사옵니다.”

“…….”

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작금의 비극을 말했다.

감정의 동요도 전혀 없었다.

그저 이렇게 지독할 정도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아니, 세상을 짓밟았다.

“하온데, 전하. 그들이 진정 백성이옵니까? 정녕 그러하옵니까?”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신은 그들을 백성으로 바라보지 않았사옵니다. 진정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사옵니다. 그들은 조선이 안위를 위협하는 죄인이었으며, 역도이며, 적이었사옵니다. 응당 벌해야 할 무리였사옵니다.”

“…….”

“조선의 역사에 그들의 자리는 없어야 하옵니다. 신은 진실로 이렇게 생각하옵니다.”

용안은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고통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보이는 이연의 감정을 가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불필요한 것이다.

이연은 천성적으로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하여, 성군이었다.

그러나 불멸의 명군이었기에 모든 감정을 추스르며 철의 군주로서 단호한 결정을 내리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수백 명의 백성이 관군의 손에 죽음 작금의 사태를 아무렇지 않게 감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호한 결정을 내린다고 하여 냉혈한은 아니지 않은가.

철의 군주라고 하여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하여, 이연의 고통은 절대로 가식이 아니었다.

아니, 이연만이 아니었다.

중대본의 대신을 비롯한 문무백관이 이러했다.

조선의 사대부가 모두 충격과 좌절에 빠졌다.

작금의 사태는 위정자의 뇌리를 흔들어버린 것이다.

오직 나만이 오롯이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러나 외롭지 않았다.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일 뿐이며, 이연도 이연의 길을 가는 것이다.

사대부도 그들의 심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먼 길의 끝에 만나지 않을지라도 괜찮았다.

이제는.

이 시절 조선에서 냉혈한의 심장은 오직 나 한 명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다른 모든 사대부가 냉혈한이 될지라도 오직 군왕만은 어진 마음을 지켜야 했다.

아무리 난세가 가혹할지라도 오직 이연만은 도덕을 가져야만 했다.

그래야만 조선이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조선이 감정을 따뜻함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어이 그래야만 조선이 난세의 종식 이후 정상화를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여,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조선의 군왕은 어질어야 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나는 기어이 보았고,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여, 말하였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걸.

“전하. 덕치는 틀리지 않았사옵니다.”

나는 덕치를 조롱했고, 비웃었다.

그러나 조선의 덕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을 구현했다.

덕치.

유학 혹은 성리학.

이를 비웃고 헐뜯는 건 대한민국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경신 대기근이라는 초유의 난세를 버티며 국체를 유지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하늘 아래 그 어떤 나라가 이를 해낼 수 있겠는가.

우습게도 이 원동력은 그토록 헐뜯었던 유학이었다.

이 시절을 관통하는 내가 덕치를 가볍게 조롱할 근거는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덕치는 허구가 아니었다.

유학이 현실에서 구현된 통치가 바로 덕치였기 때문이었다.

오직 이것이었다.

“전하. 목민관이 덕으로서 백성을 이끌지 않았다면 참화가 어찌 이 정도로 끝났겠사옵니까.”

“…….”

“전하. 덕치란 그 무엇보다 강하고 튼튼했고 위력적이었사옵니다. 하여, 신 송시열. 간곡하게 청하옵니다. 아무리 흔들릴지라도 덕치를 지켜주시옵소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원 역사의 조선이 이토록 지독한 난세를 버티며 200년의 역사를 더 이어갈 수 있었던 저력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나의 선택.

나의 결정.

나의 결론.

모든 건 하나였다.

나는 기어이 걸었던 위대한 조선사에 찬사를 보내게 되었다.

한국사 최고의 왕조였다.

한국사 최고의 국호였다.

조선(朝鮮).

이 두 글자가 그러했다.

하여, 말하였다.

“부디 슬퍼하시옵소서.”

“…….”

“부디 그들을 가엽게 여기시옵소서.”

“…….”

“하오나, 신을 만류하지는 말아주시옵소서.”

이 또한 진심이었다.

나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송시열이 된 이유를 말이다.

고작 경신 대기근만의 방비가 아니었다.

덕치를 치우고, 성리학을 폐기하여 조선의 체질을 바꿔내는 게 아니었다.

덕치의 부족함을 채우고, 성리학의 부족함을 채우고, 조선을 완성하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경신 대기근을 넘어 향후 200년을 더 이어갈 이 나라 조선을 말이다.

“전하. 신은 애초 덕치와 어울리지 않사옵니다.”

“경은…….”

그래.

나는 송시열이기에 조선에서 덕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이론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내가 감히 이연의 말을 잘랐다.

“무릇 성리학은 수기치인을 해야 하옵니다. 하온데, 전하. 신은 도통 이게 잘 안되옵니다.”

나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감히 괴력난신을 입에 담아도 되옵니까?”

“물론이오.”

“불가는 윤회를 믿사옵니다. 하온데, 죄를 많이 짓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옵니다.”

“…….”

나는 여전히 웃었다.

맑고.

투명하게.

그리고 밝게.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오직 신을 위하여 존재하옵니다.”

모든 말을 전하였다.

그런데 괜히 한 번 더 말하고 싶었다.

“그 자리가 바로 신의 자리이옵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또 말하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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