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다 비슷하게 못 생겨서.
서대룡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죽은 까마귀를 들고 나를 따라 나왔다.
“저기 매달아.”
진심이냐는 서대룡의 눈빛에 나는 단호히 말했다.
“잘 보이게 가운데 매달아.”
나는 서대룡을 시켜 죽은 까마귀를 마군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복도 가운데 매달았다.
소식을 듣고 마군들이 몰려왔다. 몇몇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대부분은 인상을 쓰며 욕설을 내질렀다.
“젠장! 저거 뭐야?”
“재수 없게 죽은 까마귀를 왜 걸고 지랄인가?”
“조사관이면 단가?”
“재수 없는 황천각 놈들.”
“퉤퉤, 오늘 꿈자리가 더럽더니.”
“저긴 갈기갈기 찢어서 시체 걸기 딱 좋은 자린데?”
그들의 가슴에는 각 대를 상징하는 숫자가 적힌 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앞서 입구에서 한 번 충돌할 뻔한 일대의 마군들이 가장 욕을 많이 하는 것을.
물론 대놓고 나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어차피 황천각 욕이 내 욕이었다.
분위기가 한껏 험악해졌을 때, 한 사람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이거 너무 한 것 아니오?”
그의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누가 말했나? 여긴 다 비슷하게 못 생겨서.”
모두 인상을 구기는 가운데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마군 삼 대주 장호(張虎)요.”
장호는 마군들 중에서 제일 덩치가 컸다. 무복이 터져나갈 것 같은 근육질에 얼굴을 가르는 기다란 검상은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했다.
서대룡의 전음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삼대주 장호가 대주들 중 무공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격도 보통이 아니고요.
과연 장호가 드러내는 존재감은 그곳에 있는 자 중에서 압도적이었다.
“우리 장 대주께선 뭐가 불만이신가?”
“그걸 꼭 말해야 아시오? 사람 다니는 길에 이런 불길한 것을 걸어두면 어쩌자는 거요?”
“침상에 던져둔 것보단 낫지 않나?”
“괜한 사람 기분 잡치지 말고 그런 짓 한 자를 잡아서 벌하시오.”
나는 장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가 내뿜은 강력한 마기가 나와 서대룡을 압박해왔다. 일순간 숨이 꽉 막혀오는 것이 과연 마대주들 중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을만했다.
“자네 말도 일리가 있군. 서 조사관, 그거 다시 내려.”
“네.”
서대룡이 매달아둔 까마귀를 내렸다. 지켜보던 마군들이 대놓고 비웃었다.
“겁은 많아서.”
“하여튼 매를 들어야 말을 듣지.”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설쳐.”
노골적으로 욕을 하고 비웃는 그들을 뒤로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서대룡이 물었다.
“대체 까마귀 시체는 왜 내 건 겁니까? 이렇게 쉽게 내릴 것 같았으면.”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누가 투서를 보냈는지 알아내려고.”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물었다.
“그래서 알아내셨습니까?”
“응.”
“네?”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서대룡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요?”
난 까마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녀석들 덕분에. 그러니 나가서 잘 묻어줘.”
* * *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마군 삼 대부터 한자리에 모았다. 어제 까마귀 사건 때 나선 사람이 삼대의 대주 장호였으니, 그의 불만은 당연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오?”
“뭐 하는 짓이라니? 내가 조사하러 왔다는 소식 못 들었나?”
“그럼 일대부터 조사하지 않고 왜 우리 삼 대부터 조사하는 거요?”
“그건 내 마음이지.”
“어제 일로 앙심을 품은 것 아니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장호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자네들은 모든 기록을 제출해야 할 거네. 최근 행적은 물론이고 전장(錢場) 기록까지 모두 조사할 거야.”
그러자 삼대 마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도 의도적으로 털면 먼지가 한 줌인데, 여긴 마군이다. 농담 좀 보태면 여기서 제일 착한 사람이 저기 어느 고을 흑도 두목쯤 될 거다.
장호가 버럭 소리쳤다.
“아무리 당신들이라도 그럴 수는 없소.”
“있어.”
꽝!
장호가 내 앞에 놓인 책상을 때려 부쉈다.
“이봐, 흥분은 자유지만 반란죄는 중죄라는 것 잊지 마.”
반란죄란 말에 삼대 마인 몇몇이 달려와서 장호를 말렸다.
“참으십시오, 대주님.”
“좋게 상종할 상대가 아닙니다.”
나는 장호를 더욱 자극했다.
“대주인 자네부터 조사할 거네.”
“좋소! 나와 담판을 지읍시다! 너희들은 나가 있어!”
장호의 주위로 마기가 휘몰아쳤다.
그러자 수하들이 장호를 진정시켰다.
“대주님!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말고 나가 있어.”
“네.”
수하들이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이내 밖으로 나갔다. 수하들이 진심으로 그를 따른다는 것이 느껴졌다.
수하들이 모두 나가자 장호는 차갑게 말했다.
“날 이렇게 대한 것, 후회하게 될 거요.”
얼굴을 가르는 상처가 더욱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가만히 장호를 응시하다가 목소리를 낮춰서 나직이 물었다.
“언제까지 날 시험할 텐가?”
순간 장호가 흠칫 놀랐다.
“무슨 소리요?”
“투서 보낸 것이 자네지?”
순간 장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하지만 그는 거짓말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눈동자에 이어 목소리마저 떨리자, 이내 장호는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흥분하던 그가 나직하게 말하자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어제 자넨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상황에 나섰지. 그건 마군주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맞습니다.”
“또한 자네의 삼대 무인들이 가장 기강이 잘 서 있더군. 까마귀를 달 때 오직 자네 수하들만이 아무도 욕설을 하거나 비웃지 않았지. 조금 전에 나서서 자네를 걱정하는 마음도 그렇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렇게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조직 내 부정부패를 그냥 넘기기 힘들었겠지.”
사실 그래서 알아맞힌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장호가 투서를 보낸 사람임을 알아차린 것은 장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서대룡이 보낸 전음 덕분이었다.
―삼대주 장호가 대주들 중 무공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격도 보통이 아니고요.
그 전음을 듣는 순간, 나는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이 시기에 마군 대주가 죽었던 사건이 있었다. 유난히 더 기억이 나는 이유는, 당시 죽은 대주가 마군 대주들 중 제일 강하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그렇게 무공이 강한데 왜 죽었을까? 그런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났다.
난 죽은 사람이 장호였음을 확신했다. 투서를 넣고 마군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결국 마군 내 누군가의 손에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과연 내 예상대로 투서를 넣은 사람은 장호였다.
“투서가 제대로 작용할지 몰라 자세한 내용을 적지 못했습니다.”
황천각 역시 혈천도마의 영향력 아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한 것이다.
“한데 이 공자께서 조사를 나오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내가 나온다는 소식 듣고 어땠나?”
“외람된 말씀이지만,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서대룡을 돌아보며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솔직함이 유행인가?”
“이 공자께선 우리보다 더 젊으십니다만.”
“아, 그렇지.”
히죽 웃은 후 장호에게 물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마군주가 마군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장호가 말해준 이번 일의 내막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돈을 받고 수하들을 암살 청부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뭐?”
어지간한 일에는 놀랄 일이 없는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어디 지역 문파에게서 뇌물이나 받아먹나보다 생각했는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군 같은 고수들이 움직이니, 어디 한두 푼으로 움직이겠는가?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을 것이다.
서대룡이 놀라 물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휴가를 이용하기도 하고, 특별훈련을 빌미로 보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서대룡과는 달리 나는 그것이 가능한 한 가지 경우를 알아차렸다.
“일대 전체가 가담했군.”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단번에 알아맞히자 장호는 깜짝 놀랐다.
“제일 먼저 우릴 막아선 것이 그들이었다. 까마귀 시체를 보고 욕을 가장 많이 한 것도 그들이었고. 일이 벌어지면 일사천리로 함께 움직이더군. 아까 말했잖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일 대주만 봐도 알 수 있고. 하면 자넨 이 사실은 어떻게 알아냈나?”
“이전 조사에서 조사관을 살해하고 자결한 무인이 제 친구입니다. 투서를 넣은 사람도 그 친구였죠.”
“자결한 것이 아니라 자결당한 것이군.”
“맞습니다. 그 친구가 죽기 며칠 전에 투서를 넣은 사실을 제게 알려줬었습니다.”
회귀 전 삶에서는 나는 이 사건을 알지 못한다. 그저 장호의 죽음만 있었을 뿐. 결국 이 사건 역시 밝혀지지 않고 그대로 묻혔다는 뜻이다.
“얼마나 친한 친구였나?”
“입교 동기였습니다. 가족 같았고요.”
“왜 그때 밝히지 않고?”
“당시 놈들이 제 친구와 조사관을 살해한 후, 무서울 정도로 엄격하게 내부를 감시했습니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죠.”
“누가 죽였나?”
“마군주가 지시하고, 일대주 고당이 직접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장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일은 마군주와 마군일대 전체가 개입한 초대형 부정부패 사건이었다. 거기에 조사관 살해까지. 그야말로 본교 역사상 최대 규모의 범죄.
과연 아버지나 사마명이 몰랐을까?
분명 어느 정도 눈치채셨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보내셨을 거고.
과연 내가 마군주와 맞짱 떠서 이번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려고 보내신 거다. 상대가 마군주니 죽을 수도 있는데도…… 생각해 보니 너무하시네.
아버지, 맹수가 새끼를 절벽에 떨어뜨려 강하게 키운다는 말, 사실이 아니랍니다. 새끼가 떨어지면 그 빠른 발로 뛰어 내려가서 물고 올라온답니다!
내가 장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좋은 친구를 뒀군.”
“그 친구가 좋은 친구였습니다. 제가 좋은 친구였다면 그 친구가 죽었을 때, 나섰겠지요.”
“그건 어리석은 친구고.”
마군이라고 다 쓰레기 같은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켜보던 서대룡도 마음이 울컥한 모양이다. 이전 조사에서 죽은 조사관 역시 그가 존경했던 선배였으니까.
두 사람 모두 그 사건으로 친한 사람을 잃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나는 이들 두 사람을 보며 ‘잃어버린 마도’에 희망이 있음을 느꼈다. 내가 원하는 천마신교는 이런 이들이 중책을 맡는 곳이다.
“용기를 내줘서 고맙네.”
“한 번에 저를 알아내신 것을 보고, 이 공자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좋은 선택이었어. 참, 자네 전장 기록을 털어도 문제 될 것 있나?”
“없습니다. 탈탈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겁니다.”
“먼지는 누구에게나 있어. 자네가 먼지라 생각지 않은 것도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으니까. 하나 걱정 말게. 그 정도로 털지는 않을 거야.”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저 멀리 삼대 수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 대주가 그대들을 대신해 모든 기록을 내놓기로 했다. 그러니 자네들은 모두 돌아가도 돼.”
장호가 버럭 소리치며 내 연기에 맞장구를 쳤다.
“두고 봅시다! 만약 내가 죄가 없으면 그냥 있지 않을 것이오.”
그의 눈빛에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수하들을 대신해서 조사를 받는다는 말을 해줘서, 수하들이 더욱 자신을 신뢰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회귀 전의 장호는 죽었지만, 지금의 장호는 죽지 않을 것이다.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이 내 회귀의 목적이니까.
문을 닫자 서대룡이 내게 말했다.
“이 공자님은 소문으로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소문은 어떤데?”
“그냥…….”
“그냥 솔직히 말해. 소문을 전하는 거잖아? 네 생각이 아니고.”
“천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어쩌면 칭찬일 수도 있잖아?”
“네?”
“천마에 어울린다가 칭찬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난 공포정치로 본교를 다스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본교도 변해야 하지 않겠어?”
변화를 이야기하자 서대룡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하지만 이내 다소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변화가 말처럼 쉽지는 않지요.”
“맞다. 쉽지 않지.”
“천마가 되면 본교를 바꾸시려고 노력하실 겁니까?”
당연히.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가족은 멸문이고, 본교는 봉문이라는 결과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속마음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사실 천마가 되는 것보단 중원이나 유람하면서 놀고 싶다.”
사실 이 말도 어느 정도는 진심이었다. 화무기만 죽이고 나면 중원을 유람하며 실컷 놀 작정이니까.
“다들 천마가 되려고 영혼까지 팔려는데…….”
“이 무슨 배부른 소리냐 이 말이지?”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그건 네가 권력지향형 인간이라 그렇고.”
“제가요?”
억울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그에게 불쑥 물었다.
“누군가를 도울 때 행복해?”
“……아뇨.”
“진급하면 행복해?”
“……네.”
이내 서대룡은 한숨을 내쉬며 자학했다.
“아, 전 권력지향형 인간이었군요?”
“다들 행복의 조건이 다르지. 어떤 사람은 돈이고, 권력이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사는 거고. 또 어떤 사람은 협의(俠義)고.”
“협의를 실천해서 행복하다는 것, 가능할까요?”
“가식 같아?”
“네.”
지난 삶에서 그런 사람을 경험한 적이 있다. 너무나 이기적이라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협의의 탈을 쓴 사람. 그래서 종국에는 자신까지 속이는 사람. 그는 선하지 않았는데, 끝까지 자신이 협의 길을 걷는다고 믿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면 야망을 솔직하게 드러낸 사람보다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 역시 살아가는 방식일 뿐일 테니까.
“이 무림에는 진짜 협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너나 나의 이 간장 종지 크기의 마음으로 헤아리기에는 너무 큰 사람들이 있지.”
잠시 나를 응시하던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권력지향형 인간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서대룡을 보며 피식 웃었다. 동년배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겐 이런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
“어울리지 않는 자기반성은 그만하고. 가서 장호에 대한 기록이나 털어와. 아까 말했듯이 적당히 털어. 그리고 황천각 조사관들도 더 데려와. 이제부터 대대적인 조사가 들어간다는 분위기를 잡는다.”
“알겠습니다.”
나는 창가에 서서 밖을 쳐다보았다. 때마침 건너편 건물에서 마군주가 창가에 서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내가 바라보는 것은 하찮은 그가 아니라, 그 너머 저 멀리 보이는 천마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