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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회귀-27화 (27/214)

제27회 나는 들었다.

며칠 후, 나는 정식으로 황천각주에 올랐다.

아침 일찍 내 거처로 황천각의 무인들이 도착했다.

앞장선 사람은 함께 마군 조사를 했던 특별조사관 서대룡이었다.

“각주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서 조사관. 자네가 왔군.”

“제가 지원했습니다.”

사실 내가 황천각주가 된 것에는 눈앞의 이 작고 우울해 보이는 남자의 역할이 컸다.

“가시죠.”

나는 이안을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안아, 너도 함께 가자.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배워야지.”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안 데려갈 줄 알았는지, 그녀는 날아갈 듯 기뻐했다.

“우리 놀러 가는 것 아니다. 가서 배워.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고, 수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나도 빠지지 말고 다 배워라.”

“네!”

황천각에 도착했을 때, 조사관들이 모두 나와 입구에 늘어서 있었다. 새로 각주가 부임하면 이렇게 환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지나가자 그들이 일제히 포권하며 큰소리로 인사했다.

“각주님을 뵙습니다!”

나는 그들이 내 부임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호의적인 눈빛이었다.

그래서 옆에 서 있던 서대룡에게 슬쩍 물었다.

“환영하는 척 안 하면 월봉 깎는다고 했어?”

“아뇨.”

“아닌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좋아?”

그러자 서대룡이 발을 들어서 땅바닥을 내리찍는 흉내를 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이들의 환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마군 일대주 고당 때문이었다. 고당은 처음 조사를 나갔던 조사관을 살해했고, 이번에는 조사관을 다치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고당의 머리통을 박살 내서 죽였으니 그들에겐 통쾌한 복수를 해준 셈이었다. 거기다 각주 자리에 앉기에 너무 어린 나이라는 저항감은 천마의 혈통이 어느 정도 메워줬을 테고, 마군주까지 죽였으니 무공 실력 역시 검증된 상태.

“한 말씀 하시죠?”

서대룡의 말에 나는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수하들을 향해 돌아섰다.

천천히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다 짤막한 말을 전했다.

“내가 각주가 돼서 그대들이 더 행복해질지 더 불행해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전보다 심장은 더 빨리 뛸 거다.”

그 말만 하고 돌아서 건물로 들어갔다.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곧 알게 될 테니까.

집무실까지 안내한 서대룡이 돌아가려고 할 때, 내가 그를 남겼다.

“서 조사관,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지?”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서 조사관 보고 싶어서 왔지.”

입에 발린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듯, 서대룡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안아, 이런 무뚝뚝한 남자는 절대 피해야 해. 평생 재미없어.”

“대신 진국일 수도 있죠.”

이안이 서대룡의 편을 들어주었다.

“아냐, 이 친구는 건더기 하나 없는 멀건 국이야.”

이번에는 서대룡이 직접 나섰다.

“저, 진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습니다.”

“오, 성격 있어. 앞으로 그 성격 필요할 때가 많을 거야.”

눈치 빠른 서대룡은 내가 무슨 뜻으로 이 말을 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뇨. 저 싱거운 국입니다. 제발 위험한 일에 절 찾진 말아 주십시오.”

“그 멀건 국에 밥 말아 먹을 거야. 매운 양념 팍팍 풀어서.”

서대룡이 뒷걸음질 쳤다. 괜히 겁먹은 척하지만, 서대룡은 용감한 남자다. 저 작은 몸집에 큰 용기와 기상이 깃들어 있음을 나는 안다.

“자, 본 각에 대해 말해줘. 나 하나도 몰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서대룡이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황천각은 본교의 교칙과 법령을 수호하고 집행하는 기관입니다. 부정부패 척결은 물론이고 교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을 처리하죠. 총인원은 백 명으로, 조사관이 삼십 명이고 집행무인이 칠십 명입니다.”

집행무인은 조사관을 보좌하며 호위하고, 죄인을 체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

“숫자가 많을 필요가 없는 조직이니까요.”

황천각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권위 있는 조직이었다. 물론 마군 같은 예외도 있었지만, 마인들 대부분은 황천각을 무서워했다.

“조사관 삼십 명 중에 특별조사관은 모두 다섯 명입니다. 특별조사관은 어렵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건을 주로 맡습니다만, 평소에는 일반 조사관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집행무인은 따로 조사관에 배정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지원을 나갑니다.”

설명을 다 듣고 나서 그에게 물었다.

“서 조사관, 자네가 생각하는 황천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서대룡이 대답했다.

“본교의 어떤 조직도 팔마존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황천각을 콕 찍어 말하진 않았지만, 역시 팔마존이 가장 문제란 의미였다.

“자네도 그 영향에 속해 있나?”

“저는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외톨이라서요.”

적어도 돈이나 승진을 위해 교내 정치에 뛰어드는 일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신념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투덜대는 불평분자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좋아. 너무 이상에만 치우친 사람은 나도 싫거든.”

내가 힐끗 이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합리적인 사람 좋아해. 자기부터 챙기는.”

자신을 두고 말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안은 옅게 웃을 뿐이었다.

내 시선이 다시 서대룡을 향했다.

“자네가 그랬지? 본교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어떤가? 이제부터 나와 본교를 바꿔보는 것은?”

“그렇게 열정을 발휘하시다가 떠나버리시면요? 이렇게 갑자기 오셨던 것처럼요.”

“나야 갈 때 되면 가야겠지.”

“함께 열정을 불태웠던 저는 타버린 재 속에 홀로 남아야 하는데요?”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원래도 외톨이라면서? 어때, 할래?”

내 뻔뻔함에 서대룡은 보란 듯이 큰 한숨을 내쉬었지만, 대답은 행동과 달랐다.

“하겠습니다.”

“이유는?”

“이미 마군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 이유를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네. 맡겨주십시오.”

나는 기분 좋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서대룡은 굳게 맞잡았다.

‘내가 가면 넌 어쩌냐고? 어쩌긴, 내 자리에 앉는 거지.’

암튼 생각보다 환대를 받으며 부임했고. 이제 필요한 것은 나란 사람을 확실히 인식시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본보기가 필요했다. 아주 독하고 나쁜 놈으로.

“최근 팔마존과 관련된 사건 중에 내가 다시 챙겨야 할 사건이 있나?”

‘다시 챙겨야 할’이란 말은 ‘부당하게 처리된’이란 말을 돌려 말한 것이다.

서대룡은 내 말뜻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당연히…… 있습니다.”

당연히란 말이 앞서 서대룡이 말한 황천각의 문제점을 되짚어주었다.

“가져와 봐.”

잠시 후, 서대룡이 서류를 가져왔다.

사건 내용을 확인한 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러 나 죽이려고 이러는 거지?”

서대룡이 가져온 사건은 하필이면 혈천도마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저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최근에 발생한 사건이고, 말씀하신 바에 부합합니다.”

“그러니까 왜 하필 혈천도마냐고!”

지켜보던 이안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도련님, 이번만큼은 참으셔야 해요. 도마 어르신께서 거의 폭발 직전 상태일 거라고요.”

난 이안에게 서류를 건넸다.

“그런 이유로 덮기에는 거기 적혀 있는 사연이 너무 억울해. 이안, 읽어보고 덮을 수 있으면 덮어봐.”

내용을 읽은 이안은 차마 서류를 덮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못 참겠네요.”

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자, 운명이 날 부른다면 가야지.”

사실 이건 운명 같은 것이 아니다. 주위에 쓰레기들을 방치한 한 늙은이 때문에 벌어지는 필연일 뿐이다.

* * *

곽수(郭洙)는 술에 취해있었다.

그는 술로도 어쩔 수 없는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무관을 다니던 아들이 친구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것이다. 머리를 다친 아들은 열흘이 지나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사정을 잘 아는 풍류주점(風流酒店) 주인장 조춘배(曺春培)가 그의 앞에 앉았다.

“그놈들이 풀려났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곽수는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젠장! 제기랄!”

황천각 조사관이 이번 일을 조사했다. 당연히 사고를 저지른 놈들이 뇌옥에 갇힐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세 놈은 무죄 판정을 받고 풀려났다. 친구와 비무를 하다가 다친 것으로 처리된 것이다.

“다 틀렸소. 이번 일을 주도한 애의 아버지가 백도귀(百刀鬼)라고 하더이다.”

백도귀는 백 명의 도귀를 이끄는 수장이었다.

“저런!”

조춘배가 탄식했다. 상대 아버지가 혈천도마의 수하, 그것도 십도귀(十刀鬼)도 아닌 백도귀라면 이번 일은 이대로 끝이었다.

“황천각 조사관도 다 똑같은 놈이오. 그 새끼들이 더 나쁜 놈들이오.”

“쉿! 목소리 낮추게.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조춘배가 주위를 살피며 그를 진정시켰다.

“들으라고 하시오. 황천각 개새끼들에게 나부터 죽이라고 하시오! 백도귀가 직접 와서 날 죽이라고 하시오!”

꽝!

곽수가 탁자를 내리쳤다. 술병이 흔들려 떨어지려는 것을 조춘배가 재빨리 잡았다.

“이 사람아! 제발 참게.”

“아들놈이 깨어나지 못하면 마누라는 제 명대로 못 살 거요.”

조춘배는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안다. 곽수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이들 부부가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지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이다.

“깨어날 거네.”

“만약 못 깨어나면 그놈 죽여버리고, 나도 자결하렵니다.”

바로 그때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죽일 수는 있고요?”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니 주점 입구에 청년 셋이 서 있었다.

“너는?”

방금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물은 사람은 가운데 청년이었는데, 이 청년이 바로 이번 폭행을 주도한 양호(梁湖)였다.

“아저씨가 뭔데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죽인다 만다 그러세요?”

곽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너!”

막상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양호를 만나자 그는 놀라고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버럭 소리쳤다.

“너, 이 새끼. 너 때문에 지금…… 내 아들 살려내! 살려내라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그의 감정은 격렬했지만, 양호는 심드렁했다.

“이 새끼야! 우린 너한테 사과 한마디 못 들었다!”

그러자 양호가 앞으로 나서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네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됐죠? 나 분명 사과했어요. 그러니 아저씨도 이 새끼, 저 새끼 그만 하세요.”

“뭐? 너 방금 뭐라 했어?”

“내가 아저씨 자식 아니잖아요?”

옆에 있던 두 놈이 킥킥댔고, 양호 역시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취기와 분노가 뒤섞인 곽수가 참지 못하고 검을 뽑으려 했고, 조춘배가 달려들어 필사적으로 말렸다.

“참게. 참아!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참아!”

여기서 곽수가 검을 뽑았다간 양호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뻔했다. 곽수는 외전의 하급 무인이었고, 양호는 나이는 어렸지만 어려서부터 제대로 무공을 익혀왔으니까.

“아저씨, 미쳤어요? 사과하래서 했는데 날 죽이려 하네.”

그냥 가면 될 것을 양호는 작정하고 온 듯 계속 곽수를 자극했다.

“참, 양심 없네. 자, 죽여봐요.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라고.”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곽수는 당장이라도 놈을 찔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이길 수도 없지만, 설령 양호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건 더 큰 문제였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끝장날 것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의식을 차리지 못한 아들과 슬픔에 잠긴 아내까지 모두 양호의 아비에게 살해당할 테니까.

“자네들도 어서 가시게. 어서.”

조춘배가 양호와 친구 놈들을 내보려고 했지만, 양호는 인간이길 포기한 놈처럼 굴었다.

“우리 동이가 누구 닮아서 겁쟁이인가 했더니 아버지를 닮았었네.”

그 순간 곽수는 이성을 잃었다.

곽수가 검을 뽑았고, 기다렸다는 듯 양호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얼굴을 가격당한 곽수가 뒤쪽 탁자에 부딪히며 자빠졌다.

“분명 저놈이 먼저 검을 뽑았어!”

뒤에 서 있던 두 놈이 증인이라도 된 양, 우리가 봤다고 소리쳤다.

양호가 달려들어 곽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창고나 지키는 놈이 감히 황천각에 날 고발을 해?”

놈이 돌아가지 않고 시비를 건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황천각에 고발당하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났고, 분을 이기지 못해 화풀이하러 온 것이다.

그렇게 실컷 주먹질한 후에야 양호는 곽수의 몸에서 일어났다.

“이게 다 아저씨 때문이야. 집에 가서 돈 훔쳐 오라니까 그러데. 아버지가 피땀 흘려 번 돈이라서 안 된다고. 병신이 혼자 착한 척은. 나만 쓰레기냐고? 그러니 내가 안 때릴 수가 있어? 이게 다 아저씨 책임이야. 알았어?”

“…… 네 입으로 자백했다!”

곽수의 입술은 터졌고 찢어진 눈 밑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내렸지만, 이 순간 그는 어떤 희망을 찾았다.

“무슨 자백?”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다 들었다! 네가 우리 아들을 왜 때렸는지. 비무가 아니라 폭행이었다는 자백을 했어.”

양호가 사나운 기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 여기 내가 한 말 들은 사람 있어요?”

그곳에 손님이 여럿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심지어 주점 주인인 조춘배도 나서지 못했다. 나서는 순간 이곳에서 장사를 접는 것은 물론이고,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것이다. 손님으로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들은 사람 없다는데? 히히히.”

양호의 웃음에 결국 곽수는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어흐흐흑!”

너무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들을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놈이 자신을 희롱하며 웃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참담했다. 아버지로서 부끄러웠고 너무 미안했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 흘러내렸다.

“병신처럼 어른이 운다. 정말 부전자전이다. 하하하.”

양호와 함께 온 놈들도 킬킬대며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주점 이 층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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