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29화 (29/214)

제29회 우리가 겁내야 할 것은.

당연히 혈천도마나 도귀들부터 찾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양호를 체포한 일에 대한 첫 반발은 내부에서부터 일어났다.

삼십여 명에 달하는 황천각 조사관이 대청에 모여서 나를 부른 것이다.

이번 일을 주도한 사람은 최고참 특별조사관 곡명(曲銘)이었다.

“직접 집무실로 찾아봬야 하는데, 인원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무례를 범했습니다.”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라 싸우자고 찾아온 것 같은데?”

“절대 아닙니다, 오해 마시길.”

그들은 하나의 마음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눈빛만 봐도 대충 알 수 있었다. 불만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과 마지못해 함께 움직인 사람이 누군지를.

곡명이 모두를 대표해서 나섰다.

“본각에서 이미 무죄로 종결한 사건을 재조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그건 본각 조사관들의 사기와 권위를 무너뜨리는 행동입니다.”

내가 곡명 뒤에 선 조사관들에게 물었다.

“자네들도 그렇게 생각하나?”

“네, 그렇습니다.”

그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내 생각은 좀 다른데? 오히려 이번 양호 사건이 본 각의 권위를 무너뜨렸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런 상식적인 일을 굳이 설명해야 알 정도인가? 이거 실망이군.”

그러자 곡명이 표정을 굳히며 반박했다.

“비상식적인 일은 이미 각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이번에 내가 양호를 체포할 때, 놈이 사람들 앞에서 다 자백했다는 소리 들었나?”

“들었습니다.”

“근데 뭐야? 대체 왜 몰려온 거야?”

“저희가 드리는 말씀은 이미 종결한 사건의 재조사에 대한 것입니다.”

“원칙의 문제다?”

“그렇습니다. 전례에 없던 일이기도 하고요.”

“곡 조사관. 죄 없는 아이가 맞아서 죽을 뻔했고, 죄를 지은 놈은 붙잡아서 자백까지 받았어. 당연히 재조사해야 하지 않겠어? 이 상황에서 원칙을 내세우는 자네가 어떻게 보일 것 같나?”

“구태의연하다고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조직에 있어 원칙은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고지식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압박하려는 것인지. 그는 한 발도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각자의 생각을 알아보지. 재조사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쪽으로!”

단체행동을 하러 왔으니, 지금 움직이는 사람이 있겠는가 싶지만.

한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절대적인 나의 지지자 서대룡이었다. 그가 나와 친분이 깊다는 것을 모두 알았기에, 파급되는 동요는 없었다.

“나의 충신이자 일당백 서 조사관이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개인적인 친분으로 움직인 것이 되잖습니까?”

“아니었나?”

“아닙니다. 각주님에 대한 충성심과는 별개로 이번 사건은 재조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조사가 미흡했습니다.”

곡명을 비롯한 몇몇 조사관들이 노골적으로 인상을 굳혔지만, 서대룡은 차분히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외압이 있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고요.”

“좋아. 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

내가 이번에도 손을 번쩍 들며 조사관들을 쳐다보았다.

설마 있을까 싶은 상황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는 지난 마군 조사 때 고당에게 다쳤던 무인이었다. 나는 그의 복수를 해줬을 뿐만 아니라, 마의에게 부탁해 최고의 치료를 받게 해주었다.

“익호(翼虎)입니다. 그때는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친 몸은 어때?”

“괜찮습니다.”

“다행이군.”

익호 이외에 다른 조사관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곡명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하긴, 나를 본 것은 불과 며칠이지만, 곡명과는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수 년을 함께 해왔을 테니까.

그때 한 사람이 더 움직였다.

“양군(梁君)입니다. 익호와 동기입니다. 익호의 복수를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양군이 나서주는 바람에 몇 사람이 용기를 내서 내 쪽으로 옮겨왔다. 그들은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옮긴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이번 조사는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곡명 쪽에 서 있는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내가 그들 중 한 사람을 불러냈다. 그는 바로 오늘 일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다.

“종화(從華) 조사관!”

“네.”

종화가 바로 이번 사건을 담당했던 조사관이었다. 백도귀 아들을 무죄로 만든 바로 그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는 사건을 제대로 조사했습니다.”

종화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자네 혹시 도귀에게 뇌물 받았나?”

순간 종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를 대신해 화를 낸 사람은 곡명이었다.

“그게 무슨 망발이십니까?”

난 차가운 기도를 드러내며 곡명에게 물었다.

“그럼 자네가 받았나?”

“아닙니다.”

“한데 자네가 왜 나서지? 상관에게 망발이란 망발까지 하면서?”

“제 수하 일이니까요.”

“내 수하기도 해. 아닌가?”

순간 곡명은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허락 없이 나서지 말도록.”

“네.”

그의 입을 단속한 후 다시 종화에게 말했다.

“백도귀에게 돈 받았나?”

“아닙니다.”

“맹세하나?”

“목숨 걸고 맹세합니다.”

그는 결백하다는 듯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못 믿으시겠다면 조사해 보십시오.”

“이미 조사했다. 정말 돈은 받지 않았더군.”

내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이미 조사했다는 뜻은 내사(內査)를 끝냈다는 의미.

나서지 말라고 했지만 곡명은 참지 못했다.

“우리 조사관들은 특별조사가 아니면 내사할 수 없습니다.”

“특별조사로 진행했네. 교주님 직속 명령까지 받아와서 외부 조사로.”

흠칫 놀라는 곡명에게 차갑게 물었다.

“교주님이 나를 이곳 각주로 임명했을 때, 이 정도도 밀어주지 않을 거로 생각했나?”

“아닙니다.”

내가 모두를 돌아보며 차분히 말했다.

“궁금하더군. 돈도 받지 않았는데 왜 사건을 이렇게 덮었을까?”

“저는 사건을 덮지 않았습니다. 제 조사에 의하면…….”

내가 종화의 말을 끊었다.

“놈이 자네 여동생을 죽이겠다고 해서?”

순간 종화가 얼어붙었다. 그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걸 아셨습니까?

“자네를 조사한 결과, 자네는 보기 드물게 청렴한 사람이더군. 나는 믿지 않았어. 더 뒤져보라고 했어.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한데 놀랍게도 자넨 정말로 청렴한 사람이었어. 그럼 이렇게 청렴한 사람이 왜 사건을 대충 무마하고 넘어갔을까? 자네에게 한 가지 큰 약점이 있더군. 유일한 가족인 어린 여동생이.”

종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놀란 곡명이 그에게 물었다.

“정말 놈에게 협박받았나?”

종화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놈아, 말해! 정말 협박받았냐고!”

곡명이 닦달했지만, 종화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왜 곡명이 이번 일에 앞장서 나섰는지도 알고 있다. 종화는 곡명이 가장 아끼는 후배였다. 이번 일로 종화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도우려고 나선 것이다.

내가 종화에게 말했다.

“여동생을 걱정하는 거라면 괜찮아. 이미 집행무인들을 보내서 안가(安家)에서 지키고 있으니까. 이번 사건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동생은 안전할 거다.”

그 말에 비로소 종화의 얼굴에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이내 그가 모든 것을 인정한다는 듯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곡명이 탄식했다.

“아아.”

오랫동안 함께 일했으니 종화가 여동생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는지 그도 몰랐던 모양이다.

난 고개를 푹 숙인 종화에게 말했다.

“협박을 받았더라도 이러면 안 된다는 것 알지?”

“네,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지켜보는 조사관들의 표정은 저마다 달랐지만 다들 분노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남 일이 아니었다. 언제 자신이 겪을지 모를 일.

“일어나라.”

“네.”

종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내가 각주가 된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자넬 용서하지 않았을 거야. 하나 이번 일은 내가 오기 전의 일이니까 특별히 용서한다.”

“정말 저를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내가 용서하는 게 아니라 자네의 청렴했던 지난 삶이 자넬 용서한 거야. 이제 청렴했던 자네의 지난 삶은 이번 일로 다 사라졌다. 처음부터 다시 쌓아나가도록.”

자신을 용서할지 몰랐기에 종화는 크게 감동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를 감동하게 한 것은 다음 말이었다.

“내가 각주로 온 이상 그대들의 가족은 내 가족과 같다. 가족 건든 새끼는 내가 다 작살낸다. 왜? 안 믿기나? 난 마군주도 베었다. 도귀라고 무서워할 것 같나?”

나를 향하는 시선이 점점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제부터 본각은 그 어떤 외압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순간부터 단돈 한 푼이라도 받아 챙기면 중죄에 처한다. 너희가 처넣은 죄수들과 같은 뇌옥에 갇힐 각오를 해야 할 거다. 못 지킬 것 같으면 본 각에서 나가도록.”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그들의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기쁨과 흥분, 반감, 불신…….

“대신 이번처럼 너희들을 건드는 놈 역시 그냥 두지 않을 거다. 협박을 받았을 때 내게 말하면 반드시 가족을 지켜줄 거다. 이미 납치되었다 해도 반드시 구해줄 거다. 날 믿어도 좋다. 내가 안 미더우면 교주님을 믿어라. 아버지께 구해달라고 간청드려서라도 꼭 구해낼 테니까. 그러니 외압이 들어오면 반드시 내게 보고하도록.”

나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을 때, 황천각은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나는 상대가 누구든 악행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설령 천마전에서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교주님이 죄를 지으면 교주님도 체포할 거다!”

순간 모두 숨을 멈췄다. 천마를 체포하겠다는 말은, 지금 당장 천마에게 죽어도 이상한 것이 없는 말이었다.

“내가 겁내는 것은 교주님도, 팔마존도 아니다. 내가 겁나는 것은 우리가 병신이 되는 거다. 지켜야 할 사람을 못 지켜주고, 벌을 받아야 할 놈이 히죽대며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 거다. 어제 그놈 붙잡으니까 객잔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좋았으면 손뼉을 다 치더라. 나는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놈이라서 앞으로 계속 박수받을 거다.”

내 진심이 전해지면서 조사관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특히 협박을 받았던 종화는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곡명 뒤쪽에 서 있던 조사관이 내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그녀는 바로 서대룡이 좋아하는 조향이었다.

“저도 각주님과 함께 박수받고 싶어요.”

그게 시작이었다. 하나둘씩 조사관들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어떤 이들은 진심이었고, 또 어떤 이들은 분위기상 마지못해 건너왔다.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니까.

이제 마지막 남은 사람들은 곡명이었다.

“내가 세운 새로운 원칙이 마음에 들지 않나?”

“아닙니다.”

“한데 왜 거기에 서 있나?”

“…….”

“자존심이 상해서인가?”

“아뇨. 각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심인지 모르겠습니다.”

천만에. 그는 지금 자존심이 상했다. 후배를 위하는 좋은 의도로 왔지만, 함께 온 명분도 기세도 모두 사라졌고 앞서 나섰다가 무안을 당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 몇 걸음이 그에게 너무 힘든 거다.

나는 저 상처 입은 자존심을 어루만져 줘야 한다. 그게 수장의 역할이니까. 분열보다는 단합이 필요한 시기였고 그는 고지식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사실 종화를 뒤질 때, 그도 싹 뒤졌다.

“앞서 했던 말은 모두 진심이네. 내 진심을 현실로 만들려면 자네의 경험과 도움이 꼭 필요하네.”

내가 먼저 곡명에게 손을 내밀었다.

“날 도와주게.”

“감사합니다, 각주님.”

곡명이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 일은 곡명을 달래는 일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조사관들 때문이다.

나는 바로 서대룡에게 명령을 내렸다.

“서 조사관.”

“네.”

“지금 당장 집행무인들과 함께 가서 양호의 부친인 백도귀 양태(梁泰)를 체포하라. 죄명은 특수협박죄다.”

그때 곡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순순히 체포에 응하지 않을 겁니다.”

난 모두가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라고 해, 그랬다간 도귀 전체를 날려버릴 테니까.”

대체 뭘 믿고 이러느냐는 생각들이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 앞에 선 황천각 조사관들은 입각한 이래 단 한 번도 도귀 전체를 날려버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벌써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열기가 느껴진다.

이 뜨거움으로 확신할 수 있겠다. 오늘은 황천각이 생긴 이래 사기가 가장 높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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