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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회귀-40화 (40/214)

제40회 강해져라, 이안!

다음 날 일찍 천마전으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대전에 계시지 않고 개인 수련장에 계셨다.

밖에서 수련을 마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들어오너라.”

내 방문을 보고받은 아버지가 나를 수련장으로 들어오게 했다. 안으로 들어서는데 내심 떨렸다. 아버지의 개인수련장은 처음 들어와 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던 그 순간.

연무장 가운데 계시던 아버지가 나를 향해 쇄도했다.

아버지가 발휘한 초식은 명왕보였다.

거기에 날아든 검은 천마검.

천마가 천마검을 들고 명왕보를 발휘해서 누군가를 공격한다?

상대가 그 누구든 살아남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번쩍하는 순간 상황은 끝이 나 있었다.

천마검이 허공에 멈춰 있었다.

나는 천마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검날에 입김이 서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난 아버지의 공격을 점멸보로 피했다.

명왕보와 점멸보의 싸움에서 점멸보가 이긴 거냐고? 물론 아니다.

애초에 내가 가까스로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이 잘생긴 얼굴을 자꾸 노리시는군요.”

“바깥에서 널 노리는 자는 나처럼 자비롭지 않을 거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버지 수련장을 구경했다.

“특별한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네요.”

정말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벽에 몇 개의 검과 도, 창 등이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하다 못해서 수련용 인형 하나 세워져 있지 않네요.”

“필요 없는 것을 뭐하러 두느냐?”

하긴 나도 가상의 적을 상상하며 수련하니까. 아버지라고 다르겠는가?

그때 벽에 붙은 철판이 눈에 띄었다.

한 뼘 두께의 그것에는 주먹이 움푹움푹 들어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재질은 만년한철이었다.

“맙소사! 도대체 주먹이 얼마나 강하시면. 이건 만년한철 학대입니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리 와봐라.”

아버지가 나를 수련장으로 들인 이유가 있었다.

“풍신사보를 펼쳐보아라.”

“네.”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는 많지 않았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풍신사보를 펼쳤다.

풍신사보는 크게 네 개의 초식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 초식에는 총 구백 개가 넘는 변화를 담고 있었다. 해석에 따라 그 변화는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다.

그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운용하느냐에 따라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졌고, 종국에는 풍신사보의 위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같은 무공이라도 사용하는 이에 따라서 느낌이나 위력이 다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초식을 마쳤을 때, 아버지는 상기되어 계셨다. 아마 생각하셨던 것보다 내 성취가 높았기 때문이리라.

아버지와 함께 내가 펼쳤던 초식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단순히 발에 힘을 더 주느냐, 빼느냐. 허리를 틀 때 속도를 더 빨리하느냐 마느냐에 관한 토론이었다.

나는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어떤 부분은 아버지의 의견에 반하기도 했었는데, 놀랍게도 아버지는 굉장히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내가 말한 대로 그 자리에서 초식을 발휘하신 것이다.

“네 말대로 오른발에 힘을 더 주는 것이 올바른 해석 같구나.”

무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유로웠고 너그러웠으며 합리적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아버지와 풍신사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나 대화에 푹 빠졌는지,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꼈을 때야 무학에 대한 논의가 끝났다.

대화가 끝났을 때, 나는 풍신사보의 경지가 한층 성장했음을 느꼈다.

“크나큰 가르침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화무기를 죽이는 것으로 갚겠습니다.

“나중에 돈으로 다 갚겠습니다.”

내 너스레에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밥 먹고 가라.”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왜 그리 놀라냐?”

“아버지께 처음 들었거든요. 밥 같이 먹자는 말씀.”

“별게 다 놀랄 일이다.”

아버지가 먼저 수련장을 나갔다. 아버지 말마따나 별게 다 감동이다 싶었지만, 솔직히 마음이 울컥했다.

아버지와 식사를 했다.

진수성찬을 차려 드실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음식 가짓수가 많지 않았다. 정말 정갈한 상이었다.

“밥은 더 있으니, 많이 들거라.”

“네.”

너스레를 떨지 않고 밥을 먹었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닐 테니, 나는 이 순간을 잘 기억해두려고 노력했다.

조용히 식사만 하는 나에게 이상하다는 눈빛을 한 번 보내시고는, 아버지는 묵묵히 식사만 하셨다.

하긴,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일부러라도 더 장난치고, 농담하고 너스레 떨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회귀 직전의 나와 아버지가 식사하고 있었다. 나이든 남자 대 남자로, 무인 대 무인으로. 그럼에도 아버지와 아들로.

‘아버지…… 이런 순간이 그리웠습니다.’

예전에는 그리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이 순간이 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그렇게 아버지와의 역사적인 첫 식사를 마쳤다. 말 한마디 없었던 이 첫 식사는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찬은 입에 맞았느냐?”

이제 평소의 나로 돌아올 때다.

“저랑 숙수 바꾸시렵니까?”

임 숙수 섭섭해 마. 농담이니까.

“일없다.”

“하하.”

아버지와 반주로 나온 술을 마셨다.

“도마와 마가촌에서 술을 마셨다고?”

“네.”

과연 아버지는 교내에서의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신다.

“그를 얼마나 믿느냐?”

“믿지 않습니다.”

“왜?”

“그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까요. 아무리 투명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안다고 자만해선 안 되니까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대답하자 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라도 도마를 믿다가 등을 찔릴까 걱정하시는 거다.

“오늘 왜 나를 찾아온 거냐?”

아버지를 찾아온 지 네 시진도 더 지나서야 이 질문을 받는다.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라.”

“제게 가족 하나 늘려주십시오.”

아버지가 그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혼인하고 싶다는 뜻이냐?”

“아닙니다.”

“그럼?”

“비천검술을 수신호위인 이안에게 전수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안에게 내가 대성을 이룬 비천검술을 전수할 작정이었다. 비천검술은 되어야 귀영대주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비천검술은 천마의 혈육에게만 전수되는 무공이었다.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전수할 수 없었다.

“진짜 혈육은 뒤에서 까내리더니, 수신호위는 가족으로 삼겠다는 거냐?”

“네. 혈육보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큰일을 해낼 사람이기도 하고요.”

“비천검술은 네 독문무공인데 괜찮겠냐?”

“제 독문무공은 구화마공이 될 겁니다.”

혈천도마와 일화검존을 거두려고 하고, 장호를 마군주에 앉히고, 새로운 마도를 세우려는 이 모든 과정은 내가 후계자가 되지 못하면 다 헛수고가 된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다. 후계자가 되어 구화마공을 전수받아야 화무기를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자신만만하구나.”

“충분히 전수해 줄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점에서?”

“저보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아버지는 잠시 말씀이 없으셨다.

술을 한잔 드신 후에 아버지가 물었다.

“그 아이를 네 사조직의 수장으로 삼을 작정이냐?”

“네, 맞습니다. 앞으로 제게 제거되는 마존들이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 공백은 제 사조직으로 채우겠습니다. 그러니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아버지의 흔쾌한 한 마디.

“좋다.”

처음에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렇게 쉽게 허락해 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정말 이안에게 비천검술을 전수해줘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아버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조건을 걸고 임무를 완수해야 허락을 해주실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쉽게 허락을 해주신 거지?

“대신 한 가지는 약속해라.”

“하명하십시오.”

“다음에 마존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내게 말을 해야 한다. 어떤 마존이라도.”

어렵지 않은 약속이었다. 아니, 약속하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다. 아버지 허락도 받지 않고 마존들을 해치울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네, 반드시 그러겠습니다.”

* * *

“부르셨어요?”

아버지께 허락을 받은 나는 곧장 이안을 내 개인수련장으로 불렀다.

“왜 불렀는지 알아?”

“네, 대충 짐작 가는 일은 있어요.”

“뭔데?”

“지금까지 수련한 것, 시험하시려는 것 아닌가요?”

수련장으로 불렀으니 당연한 짐작이었다.

“어떻게? 준비됐어?”

“최선을 다해 수련하긴 했어요.”

“그거 말고.”

“네?”

“새로운 무공을 전수받을 준비가 되었느냐고.”

순간 이안은 깜짝 놀랐다. 이내 놀람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상승의 무공을 익히는 것, 무인에게 이보다 더 기분 좋고 설레는 순간이 또 있을까?

“귀영대주 이안.”

“네.”

“지금부터 그대에게 비천검술을 전수하겠다.”

잠시 멍하게 있던 이안이 비명까지 지르며 경악했다.

“으악!”

그녀를 만난 이래 가장 놀라는 순간이었다.

“안 돼요! 비천검술은 천마의 혈육에게만 전수되는 무공이잖아요? 제게 무공을 전수하시면, 교주님이 저를 일장에 쳐 죽이실 거예요. 도련님도 크게 혼이 날 테고요. 혹시 몰래 전수하겠다는 의도이시면 포기하세요.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에요. 설령 비밀이 지켜진다 하더라도, 저는 배울 수 없습니다.”

그녀가 한바탕 말을 쏟아내자 내가 웃으며 물었다.

“할 말 다 끝났어?”

“더 있지만 딱 이 말씀만 드릴게요. 안 돼요! 절대 안 된다고요!”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버지께 허락받았다.”

“네?”

이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이안이 놀라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표정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놀람에 여러 표정이 있는데, 지금 이 놀람은 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정말요?”

“그래.”

“그럴 리가 없어요.”

“의심스러우면 나랑 같이 가서 확인해 보든지.”

아버지를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이안이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쳤다.

“차라리 절 죽이세요.”

“이런 일로 거짓말할 정도로 널 미워하지 않아. 결정적으로 내 말이 사실인 이유를 말해줄까?”

“뭐죠?”

“네 말이 맞아. 허락 없이 전수했다간 넌 죽어. 내가 널 그런 위험에 빠뜨릴 리 없지.”

이안도 내게 그 정도 믿음은 있었나 보다.

“정말 허락받으셨군요?”

“그래.”

이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비천검술은 도련님의 독문무공인데. 왜 제게 전수해주시려는 거죠?”

“그야 귀영대주가 되려면 이 정도 무공은 익혀야 하니까. 그리고…… 너는 내 혈육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니까 배워도 돼.”

순간 이안이 울컥했다.

“도련님.”

“널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야. 앞으로 확실히 부려 먹으려고. 그러니 너무 좋아하지 마.”

“그래도 감히 어떻게 도련님의 무공을 익혀요?”

“내 독문무공은 구화마공이 될 거다. 그러니 부담 없이 익혀도 된다.”

결국 이안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절…… 귀하게 여겨준 적은…….”

말을 잇지 못하는 이안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이안은 대성통곡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쌓여 있던 어떤 것이 툭 하고 터져 나온 모양이다. 실컷 울도록 그대로 놔두었다.

한바탕 울고 난 그녀가 마음을 다스리자 나는 그녀에게 비천검술을 전수했다.

무공전수는 전음으로 진행되었다.

―비천검술은 하늘의 변화와 기운을 담은 여덟 개의 초식으로 이뤄져 있다. 단전이 하늘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넓혀라. 진기는 바람처럼 흘러야 하고, 때론 봄바람처럼, 때론 태풍이 지나가는 것처럼 강력해야 한다. 내력의 시작은…….

총명한 이안은 다섯 번을 반복해서 불러주었을 때, 비천검법의 구결을 완벽하게 외웠다.

“구결은 자다가도 옆구리 찌르면 바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해.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이안은 죽도록 노력할 테고, 내가 틈틈이 가르친다면 이안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할 거다.

“그리고 이거.”

내가 품에서 작은 목곽을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죠?”

“열어봐.”

그녀가 연 목곽 안에는 피독주가 하나 들어있었다. 황금장주의 비밀금고에서 가져온 피독주 중의 하나였다.

“뭐죠?”

“피독주다.”

“네? 그 귀하다는 피독주요?”

“그래. 앞으로 중독의 위험이 있거나 독공을 쓰는 자를 만나면 입에 물고 싸워라.”

“이걸 왜 제게?”

“비천검술을 정식으로 익히게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의 선물이다.”

“안 돼요! 무공도 전수받았는데 이렇게 귀한 것까지 받을 수 없어요!”

“꼭 받아야 해.”

“왜요?”

“너보다 안 친한 사람에게도 줄 것이거든. 네게도 안 준 걸 다른 사람에게 줄 수는 없으니까.”

“이상한 논리잖아요?”

“자, 그럼 나중에 배운 것 시험 치러 온다. 수련 게을리 마.”

다시 이곳이 울음바다가 되기 전에 나는 황급히 그곳을 나섰다.

등 뒤에서 감동과 고마움을 넘어선 어떤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저 뜨거움이 만들어낸 미래가 기대되었다. 적어도 날 위해 몸을 던지는 뜨거움이 되게 하진 않을 거다. 그러니…….

강해져라,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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