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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회귀-46화 (46/214)

제46회 사람을 현혹하는 인간은.

난 수련장 가운데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검존과의 비무로 비천검법은 십 성 대성의 벽을 넘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

이전까지는 비천검법을 떠올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꽉 짜여 있었는데, 지금은 조여져 있던 것이 느슨하게 풀어진 느낌이다. 완벽했던 초식에 의문이 생기면서 확신이 사라졌다.

나는 천천히 흑마검을 뽑아 들고 비천 검법의 초식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기존 실력이 사라졌거나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화려한 검광이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이 화려한 무공이 십이 성 대성을 이루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

결정적으로 나는 구화마공 십이 성 대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랬기에 이번 비천검법의 십이 성 대성을 이루는 경험이 후일 구화마공의 십이 성 대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렇게 한차례 수련을 끝마쳤을 때, 서대룡이 황급히 와서 보고했다.

“사건이 터졌습니다.”

“무슨 사건?”

“각주님께서 직접 가서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서대룡이 안내한 곳은 인근의 산이었다.

그곳은 이미 집행무인들이 나와서 주위를 통제하고 있었다.

현장에 먼저 와 있던 특별조사관 곡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매장한 지 얼마 안 된 시체가 십여 구나 발견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시신들의 심장이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심장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 가지 대법을 떠올렸다.

심혼대법(心魂大法).

사람의 심장에서 생기(生氣)를 흡수하는 대법으로 그 진행 과정이 실로 잔혹하다고 알려졌다.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뽑아내는 대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본교에서 그 대법을 사용할만한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

섭혼마존.

내가 비마혼을 구하러 다시 돌아왔을 때, 섭혼마존이 심혼대법을 이용해서 귀기를 모은다는 소문이 잠깐 돌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이었고, 그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진 않았다. 나 역시 오직 비마혼을 향해 달려가던 시기였기에, 그에 대해서 파볼 여유가 없었고.

‘설마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는 장면을 상상하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정작 나를 화나게 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서대룡이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한데 시체를 살펴보니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 같습니다.”

“일반인들이라고?”

“네. 남녀 구분 없이 섞여 있는데…….”

서대룡이 한숨을 내쉬며 덧붙여 말했다.

“시체 중에는…… 어린애도 있습니다.”

순간 내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다.

무인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을 건드는 것, 심지어 아이들까지. 이건 너무나 불합리한 일방적인 폭력이다.

무인들끼리야 기습을 하든 떼로 몰려오든, 어차피 비정강호를 각오하고 뛰어든 사람들의 난장판이고.

사실 알고 보면 나는 그렇게까지 정의로운 사람이 아닌데, 이런 지점에서는 이상하게 참을 수가 없다.

정말 이 시체들이 심혼대법의 희생자라면?

내가 비마혼을 찾기 위해 본교로 돌아왔을 때, 섭혼마존이 심혼대법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으니 수십 년에 걸쳐 이 대법을 자행했다는 의미다. 수천 명, 혹은 그 이상의 희생자가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런 거라면…… 문득 날 돌려 보내준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복수도 좋고, 내 인생도 중요하지만.

‘알겠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먼저 막겠소.’

그때 다른 조사관이 와서 보고했다.

“이것 보십시오.”

그가 가져온 것은 부채였다. 부채를 펼쳐보니 알아볼 수 없는 언어와 기괴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귀술사들이 사용하는 귀선(鬼扇)입니다.”

섭혼마존의 제자들이 사술에 사용하는 부채였다.

“어디서 발견되었나?”

“시체와 함께 있었습니다.”

섭혼마존의 소행임이 더욱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의심이 들었다.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은 자가 부채를 떨어뜨리고 갔다고?

“시체를 발견했다는 약초꾼은 지금 어디에 있나?”

“저쪽에 대기시켜뒀습니다.”

“가자.”

하지만 약초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무서워서 달아난 모양입니다. 당장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그를 찾지 못할 거란 예감이 들었다.

어딘지 이번 일은 자연스럽지 않다.

아무리 본교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 심장을 파내는 대법을 공공연히 진행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섭혼마존은 대법과 관련된 일은 정말 철저하게 처리했을 텐데?

그런데 시체가 약초꾼에게 발견되고 부채까지 떨어져 있다고? 그럴 리가. 누군가 시체를 매장한 곳을 알아내서 발견되게끔 한 것이다.

“증거가 발견된 이상, 서환진으로 가서 이 부채의 주인을 조사해야겠지요?”

서대룡은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두렵나?”

“네. 저는 본교에서 섭혼마존이 제일 무섭습니다.”

“왜?”

“귀술사들에게 당하면 제 영혼을 빼앗기니까요. 강시처럼 조종당하다가 비참하게 죽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칼 맞고 죽는 게 낫죠.”

“어쩌나? 내일 나와 서환진으로 가야 할 텐데.”

“저 오늘부로 황천각 그만두겠습니다. 아아, 정말 가기 싫습니다.”

“걱정 마라. 집행무인들도 데려갈 테니까. 무공 강한 이들로 몇 명 추려.”

서대룡이 소리쳤다.

“그 사람들이 미쳐서 절 죽인다니까요!”

누군가 의도적인 조작까지 해가며 섭혼마존이 심혼대법을 하고 있다고 내게 알려왔다. 사실인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나는 이 조작의 배후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사우종.’

일화검존의 오른팔인 사우종.

내가 그라고 추측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사우종을 처음 봤을 때도 떠올렸던 그의 인상적인 최후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는 섭혼술에 당한 채로 일화검존을 죽이려다가 역으로 죽었다. 가장 충성스러운 수하가 섭혼술에 걸려 주인을 죽이려 한 사건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가 죽고 난 후 밝혀졌다. 그가 검존을 여인으로 좋아했었다는 것이. 그리고 누가 섭혼술을 걸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치정에 얽힌 비극이겠거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다 잊혔다.

사우종이라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

공교롭게도 최근에 일화검존과 사흘간의 비무를 가졌다. 그 일이 뭔가 사우종을 자극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섭혼마존과 싸우다 죽거나, 그를 상대하느라 검존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다.’

어떻게 시체처리장소를 알아냈고, 부채를 빼돌렸는지는 몰라도 제대로 나를 섭혼마존에게 밀어 넣었다. 이번 사건은 황천각주인 내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우종은 모를 것이다.

섭혼마존을 떠밀면서 자신도 함께 무대에 들어섰다는 것을.

* * *

다음 날 나는 서대룡과 집행무인들을 데리고 서환진으로 향했다.

사전에 기별했기에 서환진에서는 우릴 안내할 귀술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참(呂參)이라고 합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우리는 여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걷다 화원에 들어서는 순간 난 발걸음을 멈췄다.

“잠깐. 귀기(鬼氣)가 느껴지는데?”

나는 수하들을 멈추게 하고 주위를 살폈다. 귀기는 화원에 심어진 귀화(鬼花)때문이었다.

“저 꽃들이 내뿜는 향 때문이군.”

여참은 깜짝 놀랐다. 정말 예민한 감각을 지닌 고수가 아니라면 귀화의 귀기를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귀술사가 아닌 사람이 귀화의 귀기에 노출되면 한동안 내공 운용이 원활하지 않게 되고, 섭혼술에도 더 잘 걸리게 되지. 환영을 보는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고, 운 나쁘면 심마(心魔)에 빠질 수도 있다. 나는 내 수하들에게 그런 꼴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당장에라도 검기를 날리려 흑마검을 치켜들자 여참이 소리쳤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아주 잠깐 귀화의 향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그가 품에서 작은 원통을 꺼내더니 화원 가운데 세웠다. 통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주위에 있던 귀기가 그 연기에 몰려들었다.

“이때 어서 지나가시죠!”

나는 수하들과 함께 재빨리 그곳을 지났다.

“내가 말 안 했다면 우린 귀기에 노출된 채 들어갔겠군.”

“죄송합니다.”

내 질책에 여참이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 명령을 받는 처지임을 알기에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그때 서대룡이 내 뒤에서 나직이 말했다.

“저희들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주님.”

돌아보니 서대룡뿐만 아니라 집행무인들도 고마워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모두 귀기에 영향을 받았을 테니까.

“다들 긴장 풀지 마라.”

“네!”

곳곳의 석상이나 탑에서 귀기를 내뿜었다.

내가 알아차리기가 무섭게 여참이 알아서 귀기를 억제했다.

서대룡이 섭혼마존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건 뭐 만나러 가다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렇게 우린 서환진의 중심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 지어진 집들은 생김새가 특이했다. 대부분 달팽이 껍데기처럼 생긴 집들이었는데, 중복된 원들로 이뤄진, 그야말로 중원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건축물들이었다.

이곳이 처음인 서대룡은 처음에는 이국적인 모습에 감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좋지 않다고 호소했다. 이곳 건물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서대룡과 집행무인들에게 눈을 감고 걸으라고 했다. 그들은 눈을 감고 일렬로 어깨에 손을 짚은 채 내 뒤를 따라 걸었다.

기묘한 건물들 가운데 원뿔 모양의 건물이 있었다. 이곳이 바로 섭혼마존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그의 방이야말로 어지러움의 극치였다. 벽과 바닥, 천장까지, 온통 빙글빙글 도는 문양들로 가득했다. 정말이지 이 방에 있는 것 자체가 괴로울 정도였다.

그 방의 중앙에 섭혼마존이 앉아 있었다.

섭혼마존 야소(夜素).

과거에도 느꼈지만, 그는 정말 평범하게 생겼다. 지금 당장 마가촌에 가면 비슷하게 생긴 사람 열 명은 데려올 수 있겠다 싶은 얼굴이었다. 이 어지러움 속에 저런 평범함이라니?

그는 사람을 현혹하는 인간은 다 이렇게 평범하다는 것을 상징처럼 보여주는 인물 같았다.

“마존을 뵙습니다.”

내가 정중히 예를 차리며 인사했다.

회귀 전 그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심지어 대법재료를 찾으러 다시 본교로 돌아왔을 적에도 그와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팔마존 중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사람이 그였다.

“어서 오게, 이공자.”

그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흩어져 들렸다. 왼쪽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오른쪽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세상의 귀퉁이까지 어인 일인가?”

이번에는 등 뒤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이렇게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니, 어떤 의미에서 이미 섭혼술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사건조사차 왔습니다.”

그러자 섭혼마가 나를 뚫어질 듯 응시했다.

갑자기 눈동자의 검은자위가 커졌다. 온통 시커메진 그의 눈을 보고 있으니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함께 온 수하들은 지금 제정신이 아닐듯싶었다.

“제법인걸?”

마음속 생각인 양, 목소리가 동굴 속 메아리처럼 울렸다.

“심지가 굳다는 소릴 곧잘 듣습니다.”

물론 그래서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천마호신공 덕분이었다. 천마호신공이 스스로 발동해 귀기가 정신과 마음에 침범하지 않도록 막았다. 물론 아직 성취가 깊지 않았기에, 섭혼마존이 전력을 다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불필요한 기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나는 재빨리 오늘의 방문목적을 밝혔다.

“특이한 시체가 십여 구 발견되었는데, 그곳에서 귀술사의 물건이 나왔습니다.”

“어떤 물건인가?”

내가 부채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귀선마다 제 주인이 있는 모양이었다. 귀선을 보자마자 섭혼마존이 한 사람을 불렀다.

“능휴(凌携)를 불러라.”

보통이라면 물어야 할 질문이 생략되었다. 특이한 시체라고 일부러 강조했는데도 섭혼마는 뭐가 특이한지 묻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어떤 시체인지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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