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다른 괴물이 나오지 않기를.
다음 날, 섭혼마존이 죽었다는 소식이 교를 강타했다.
근래 여러 사람이 죽었지만 마존의 죽음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교내에 비상이 내려졌고,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사건조사를 나간 것은 우리 황천각이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특별조사관 전원과 집행무인 이십 명이 서환진으로 갔다.
섭혼마존의 거처 앞에는 그의 제자들과 귀술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절대 우리를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고,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마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까지 일단 우리 출입을 막고 보자였다.
나는 굳이 그들과 충돌하지 않았다.
“좋네. 그럼 마의 어르신이라도 들여보내 주게. 시체가 부패하지 않게 처리해야 하고, 정확한 사인은 밝혀야 하지 않겠나?”
마의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었고, 본교 마인들이라면 누구나 그를 믿고 존경했기에 그 제안까지 거절하진 않았다.
한참 동안 꼼꼼히 검시하고 나온 마의가 나와 섭혼마존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스스로 내기를 과하게 발출하면서 심장과 전신 혈맥이 크게 손상돼 죽은 거로 보이네. 주위에 침입한 흔적이나 싸운 흔적이 없고, 극독에 중독되지도 않았으니 주화입마에 빠져 죽은 것 같네.”
그 말에 제자들이 탄식했고 나는 내심 기뻐했다.
마의의 입에서 주화입마라는 말이 나온 이상, 흉수를 찾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환진에서 나와 천마전으로 보고하러 가는 길에 서대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죠?”
“뭐가?”
“있잖아요, 그거.”
감히 말로 할 수 없었는지 서대룡이 전음을 보냈다.
―각주님이 섭혼마존 죽인 것 아니죠?
―왜? 내가 죽인 것 같아?
―……어제 아이를 제게 데려오셨잖습니까? 심혼대법에 희생될 뻔한 아이라고요.
어디 그뿐인가? 두 달 전 출교할 때, 그는 내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려고 눈빛이란 말도 했었다. 이제 그 불가능이 가능이 되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정말 알고 싶어?
―아뇨, 아닙니다! 차라리 모르렵니다. 전 먼저 돌아가 있겠습니다.
서대룡이 황천각 쪽으로 발길을 돌려 걸어갔다.
저 멀리 천마전이 보였다.
과연 아버지는 어떻게 반응하실까?
* * *
천천히 걸음을 옮겨 피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태사의에 앉아 계셨다. 오늘은 총군사인 사마명도 함께 있었다.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자 사마명이 내게 물었다.
“이공자, 출교하신 일은 어땠습니까?”
“일은 핑계고, 잘 놀다 왔습니다.”
“얼굴이 더 좋아 보이십니다.”
“군사님도 일만 하지 마시고 바람도 좀 쐬시고 농땡이도 치십시오.”
“평생 안 놀다가 한 번 노는 그날, 보통 적들이 쳐들어오죠.”
사마명의 농담에 우린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가벼운 농담으로 인사를 마친 후 섭혼마존의 죽음에 관해 보고했다.
“마의께서 주화입마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내 말에 아버지와 사마명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그 결과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마존이나 되는 인물이 갑자기 주화입마에 빠져 죽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섭혼마존쯤 되는 분이 주화입마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황천각에서 사건을 조사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마존들이 나서서 조사할 겁니다.”
“우리가 하지 않고요?”
“대대로 마존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천마전이 개입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지요.”
“뭐, 그렇다면 나서지 않겠습니다. 저희야 편하고 좋죠.”
그렇게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 후, 사마명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사마명이 물러나자 아버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죽인 거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섭혼을 어떻게 죽인 거냐고?”
아버지의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궁금함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죽은 사람에게 미련을 가지는 분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겠지.
이놈이 대체 어떻게 섭혼을 죽였을까? 그것도 주화입마를 사인으로.
“이럴 때 멋지게 대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죽였다고. 한데 과대평가십니다. 제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섭혼마존을 주화입마에 빠져 죽게 할 정도로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버지에게는 솔직히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혈안정수를 구한 방법에 대해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섭혼마존이 주화입마에 빠져 죽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주화입마가 아니라 싸우다 죽은 것이 되었다면 사인을 철저히 분석해서 누가 죽였는지부터 찾아내려 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시체를 어딘가에 묻어야 했을 테고. 어쨌든 여러모로 지금보다는 골치 아팠을 것이다.
“저는 어제 도마 어르신과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제 행적은 그분이 보장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둘이 함께 가서 죽였느냐?”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아버지, 이건 하늘이 내린 벌입니다. 섭혼마존은 사람의 심장을 산채로 파내는 괴물이었습니다.”
어차피 아버지는 내가 죽였다고 믿고 계신다.
그럼에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버지에게는 부담이 될 진실이었으니까. 마존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도 눈을 감아줘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잠시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던 아버지가 불쑥 말했다.
“섭혼이 죽었으니 조용히 있던 마존들도 움직일 거다.”
팔마존은 생사공동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곧 전체의 위협. 아버지가 나를 의심하듯, 그들 또한 나를 의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난 아버지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괴물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 *
천마전을 나온 내가 찾아간 곳은 북천검가였다.
나를 맞이한 사람은 사우종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공자님.”
그는 평소보다 더 밝은 얼굴로 나를 대했다.
‘사우종아, 사우종아. 엄밀히 따지면 섭혼마존은 네가 죽인 것임을 알고 있느냐?’
그가 섭혼마존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나는 심혼대법에 대해 알지 못했을 테니까.
이 상황에서 가장 놀라고 당황한 사람이 바로 이 사우종일 것이다.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섭혼마존이 죽었으니까.
모옥 앞까지 나를 안내한 그가 정중히 인사한 후 돌아섰다.
“그럼 말씀 나누십시오.”
좋은 놈이 아님은 확실한데, 그렇다고 섭혼마존을 끌어들인 일로 그를 처벌할 수는 없었다.
모른 척 놈을 주목하고 있다가 역으로 이용할 일이 있으면 그때 이용할 작정이다.
“어서 오게, 이공자.”
예전에는 돌아보지도 않고 화원 손질만 했던 일화검존이었는데, 이제 반갑게 나를 맞았다.
“잘 지내셨습니까?”
“출교했다고 들었네. 잘 다녀왔는가?”
“네. 바람 좀 쐬고 돌아왔습니다.”
“이공자는 볼 때마다 일취월장하는군.”
“제가 달라진 것 같습니까?”
나와 사흘간의 비무 때문일까? 확실히 나의 변화에 민감한 그녀다.
“당장에라도 비무를 신청하고 싶은 욕심이 들 정도로.”
“조만간에 자리 한 번 가지시죠.”
“좋네. 언제라도 환영일세.”
나는 그녀를 위해 가져온 것을 내밀었다.
“이건 약소하지만 선배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내가 가져온 것은 이 지역에서는 구하기 힘든 씨앗이었다.
“향기가 좋은 꽃이라기에 가져왔습니다.”
“오, 살면서 씨앗 선물은 처음인데?”
“저도 처음입니다.”
“고맙네, 내가 잘 키워보겠네. 자, 들어가서 차 한잔하세.”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단아하게 꾸며진 그곳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집이 아늑하고 좋습니다.”
“좋긴. 늙은 여자 혼자 사는 곳이라 별것 없다네.”
“늙다니요. 저와 함께 항주 거리를 한 번 걸어보시죠. 아마 사내놈들이 열 걸음 걸을 때마다 와서 같이 술 마시자고 수작 부릴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릴!”
손사래를 치면서도 그녀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검술이 뛰어나다는 칭찬보다 이런 칭찬에 약한 그녀다.
“다음에 한 번 가시죠. 도마 어르신도 함께.”
도마가 언급되자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아직 도마와는 여전히 사이가 나쁜 그녀다. 중간에 내가 끼어있기에 되도록 표를 내지 않을 뿐. 여전히 도마와 화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섭혼마존이 죽었다는 소식 들었나?”
“네, 들었습니다.”
“그 죽음에…… 자네가 관계되었나?”
그러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순간 그녀의 눈빛은 차가웠다. 나를 향한 호의와는 별개로 섭혼마존의 죽음은 다른 마존들을 긴장시키는 일이었다.
하나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경각심은 아주 오랫동안 내려오는 그들의 생존원칙이었으니까.
“마의께서 주화입마로 죽었다고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그걸 믿는 마존은 아무도 없을 것이네.”
“그래도 저는 아닙니다.”
단호한 내 말에 일화검존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뒀지만, 속마음에서도 거둬들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왜 저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아마도 비무 때문일 것이다. 그녀와 박빙의 실력임을 알았으니까.
“자네가 일으킨 파문에 호수가 출렁대고 있으니까. 아, 자넨 호수가 아니라 풍랑이 이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했지? 자네가 몸을 담그는 순간, 평온했던 호수는 이미 바다로 바뀌었다네. 섭혼마존이 첫 번째로 그 바다에서 익사했지.”
“저는 그 바다에서 낚시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빠뜨려 죽이진 않습니다.”
“그 말은 맞겠네. 도마를 낚았으니.”
“선배님은 어렵겠습니까?”
“낚은 고기를 풀어주면 가능할지도. 도마가 잡혀 있는 어망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옅게 웃었고 그녀는 웃지 않았다.
“사람 일이란 모를 일이야. 섭혼마존은 그토록 제 몸을 사리고 아꼈던 인물이었는데…… 이렇게 제일 먼저 죽을 줄이야.”
“서환진이 당분간 혼란스럽겠습니다.”
“후계자 싸움이 벌어질 거네.”
마존이 죽으면 후계자가 뒤를 이어받는데, 남은 칠마존 중 네 마존의 인정을 받으면 후계자가 된다.
섭혼마존에게는 다섯 명의 제자가 있었다. 아직 정식으로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 죽었기에, 그 다섯 명 중 제일 뛰어난 사람이 섭혼마존의 뒤를 이을 것이다.
“누구를 지지하십니까?”
“그건 왜 궁금한가?”
“기왕이면 우리 쪽 사람이 이어받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 쪽?”
“네, 우리 쪽요. 비무친구인 우리요.”
그녀가 도마를 떠올리기 전에 선수를 쳤다.
비무친구란 말이 우스웠는지 비로소 그녀가 옅게 웃었다.
“비무친구와는 뜻을 함께할 수 있지.”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눈 후 작별을 고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바쁜데 와줘서 고맙네.”
일화검존이 마당까지 따라 나왔다.
“이공자. 낚시를 하다 보면 어떤 물고기는 쉽게 낚이고, 또 어떤 물고기는 물속에서 팽팽하게 버티지. 한데 조심하게. 어떤 물고기는 튀어나와 낚시꾼을 공격할 수도 있고, 심지어 배를 뒤집어 버릴 수도 있다네.”
한마디로 도마나 자신을 제외한 다른 팔마존들을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잊지 말게, 나는 아직 잡힌 물고기 아니네.”
“이런 충고를 해주시는 것만 해도 반쯤은 잡힌 물고기 아니겠습니까?”
일화검존은 반쯤 잡혔다는 말에도 그리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어쩌면 딱 그 정도라 인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음에 뵐 때까지 보중하십시오.”
모옥을 나서서 조금 걷다가 돌아보니 그녀는 마당에서 내가 준 씨앗을 흙에 심고 있었다. 무섭게 나를 노려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런 관계가 된 것이다.
그녀 말이 맞다. 사람 일이란 참 모를 일이다.
아버지나 일화검존의 경고대로 그날 바로 칠마존들의 회합이 있었다.
섭혼마존의 죽음 때문에 마련된 특별회합이었다. 오직 마존들만 참석하는 회합이었기에,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아버지조차 알지 못했다.
회합이 있던 날 밤, 혈천도마가 나를 찾아왔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