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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회귀-60화 (60/214)

제60회 숨겨둔 꼬리가 많답니다.

마의가 향한 곳은 의방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거처로 나를 데려갔는데, 그곳 지하에는 중요한 시술을 위한 밀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벽을 채운 장식장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온갖 약병과 약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약초에 관해서는 전문가인 나조차도 처음 본 약초들이 많았다.

“위험한 시술이니만큼 준비할 것이 많네.”

“천천히 하십시오.”

“실패하면 어쩔 텐가? 눈이 실명할 수도 있네.”

그가 내 의지를 떠보기 위해 물어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신안술에 실패한다고 실명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런 위험성을 지닌 시술이었다면, 감히 천마에게 시술을 바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마의가 실패하는 환자라면, 그건 제 운명이 박복해서겠지요.”

내 믿음에 마의는 피식 웃으며 비밀금고에서 시술에 필요한 재료들을 꺼내왔다.

곧이어 마음을 안정시키는 향을 피웠고, 침을 소독했다. 여러 약물을 배합했고 어떤 것은 끓여서 식히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상의를 벗은 채 침상에 누워서 약향이 나는 따뜻한 천을 두 눈에 대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가 내 눈에 여러 약물을 시차를 두고 넣었다. 물처럼 맑은 것도 있었고, 피처럼 붉은 것도 있었다. 독물처럼 녹색의 액체도 있었고, 내 검강처럼 푸른 것도 있었다. 나는 마의를 완전히 믿었기에 마음 편히 눈을 맡겼다.

여러 약물을 눈에 주입한 후 마의가 침을 놓았다. 눈 주위는 물론이고 얼굴과 가슴까지 침을 빼곡히 놓았다.

“자, 이제 한숨 자게.”

저절로 눈이 감겼다. 천마호신공에게 마음으로 말했다. 너도 오늘만큼은 긴장 풀고 푹 자라고.

오랜만에 잘 잤다.

이렇게 푹 자본 적이 얼마 만인가 싶을 정도로 곤히 잤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얼굴과 몸에 놓았던 침은 이미 다 회수된 후였다.

마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내가 깨어나자 내 쪽으로 걸어왔다.

“기분이 어떤가?”

“좋습니다.”

“눈은?”

“더 좋습니다.”

정말 눈이 맑아졌다. 원래도 좋던 시력이 더 좋아졌고, 시야가 너무나 맑았다. 안개 속을 나온 것 같았는데, 과장을 조금 보태 지금까지 눈을 감고 살았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주위가 선명했다.

“따라오게.”

그와 함께 밀실을 나와 일 층으로 올라왔다. 우린 나란히 창가에 섰다. 해는 중천에 있었다.

“해를 쳐다봐보게.”

해를 정면으로 쳐다봤기에 눈이 부실만도 했는데, 하나도 부시지 않았다.

“어떤가?”

“눈이 부시지 않습니다.”

“저기 멀리 보게.”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을 거리에 있는 것들이 또렷이 보였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잘 보였다. 거기다 눈에 힘을 주자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까지 다 보였다.

“잘 보입니다. 저기 나뭇가지에 기어가는 개미까지 보입니다.”

내 말에 마의가 웃었다.

“농담 아닙니다.”

“알고 있네, 농담 아닌 것. 기뻐서 웃었다네.”

“아, 정말 대단합니다.”

“자, 다시 날 따라오게.”

이번에는 마의가 나를 지하 밀실에 마련된 캄캄한 방으로 데려갔다.

내력을 끌어올려야 희미하게 보였던 시야가, 내력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잘 보였다.

“잘 보입니다. 저기 놓인 약병도, 벽에 걸린 그림도, 다 잘 보입니다.”

“됐네, 시술은 완벽하게 성공했네. 자네 눈은 다시 태어났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안술을 원할 때만 해도 주목적이 풍천교주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 신안술의 효과에 대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신안술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이 상태를 표현할 말은 이것뿐이리라.

내 눈은 대성을 이루었다.

어두운 방 밖으로 나온 나는 마의에게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당황한 마의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왜 이러나?”

“어르신께서는 평생 한 번 쓸 수 있는 비술을 제게 쓰셨습니다. 이 은혜는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반드시 갚겠습니다.”

“고맙네. 자네가 교주가 되면 누굴 죽여야 할지 말해주겠네.”

마의가 내 손을 굳게 잡았고, 나도 힘을 주었다.

마의의 거처를 나서는데 사방에 보이는 것이 달랐다. 정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만 같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혈안정수도 그렇고, 신안술도 그렇고. 풍천교와 내 눈은 운명처럼 얽혀 있었구나. 어쨌든 고맙소, 풍천교주.’

그렇게 풍천교주는 의문의 감사 인사를 받았다.

* * *

무공에 있어 눈이 좋아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초식은 더 정교해졌고, 정교해진 만큼 강해졌다.

사실 이보다 더 큰 도움은 실전에서일 것이다. 이전에는 피할 수 없었던 공격을 피할 것이고, 볼 수 없는 기회를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쾌속보로 달릴 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중에 대성을 이루면 극한의 속도를 과연 내 시력이 받쳐줄까 걱정했는데, 이제 그 걱정은 사라졌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눈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나는 황천각 일은 서대룡에게 맡긴 후, 한동안 수련장에 틀어박혀서 무공과 몸이 새 눈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한동안 무공수련에 푹 빠져 있다가 오랜만에 이안을 찾아갔다.

“이안아, 놀자!”

이안은 무공수련에 열중이었다.

“안 돼요! 이십 번 반복해서 수련해야 해요.”

“뭔 초식 수련을 하루에 이십 번이나 해?”

“하루에는 육십 번이에요. 저녁 수련이 이십 번이지.”

“맙소사. 병난다, 병나.”

“이미 병났어요. 수련 안 하면 잠이 안 오는 병요.”

“오늘만 쉬자. 나랑 가서 술 마시면 잠 잘 올 거야.”

“다하고요.”

“몇 번 남았는데?”

“여덟 번요. 그렇게 방해하시면 더 오래 걸릴 거예요.”

나는 짐짓 입을 삐죽 내밀며 그녀가 무공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허리가 덜 돌아갔다.”

“왼쪽이 빈다.”

“이번에는 더 빠르게.”

그녀의 자세를 교정해주면서 나는 이안이 무공에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또다시 느꼈다. 그녀는 금방 이해하고 잘 배웠다.

나는 그녀의 초식을 두어 번 더 지켜보다가 오늘은 해줄 말이 없음을 느끼고 천마호신공 수련에 빠져들었다.

섭혼마존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수련했던 무공이 천마호신공이었다. 천마호신공은 익히면 익힐수록 느낌이 새롭다.

언제나 그렇듯 나와 가장 깊이 교감한다. 마치 살아있는 무공을 익힌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긴, 이 정도로 깊이 교감하니 잠든 나를 깨우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천마호신공의 수련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눈을 떴을 때, 이안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 끝났어?”

“네. 이십 번 다 채웠어요.”

“가자, 술 마시러! 배고파 죽을 것 같아.”

“당연하죠. 꼬박 사흘을 굶으셨으니까요.”

“뭐? 사흘이라고?”

“네. 무려 사흘 동안 운기조식하셨어요.”

“내가?”

“절 찾아오신 것이 사흘 전이었어요. 무아지경에 빠져드신 것 같아서. 일부러 말도 걸지 않았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몇 시진은커녕 한 시진도 수련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 잤나 본데?”

“혹시 그러신가 해서 살폈는데, 주무시진 않았어요. 혼자서 뭐라 중얼거리기도 하셨고요.”

정말 무아지경에 빠졌었나 보다. 수련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잠깐만.”

나는 자리에 앉아서 한차례 천마호신공을 발휘했다. 이전보다 훨씬 원활하고 정확하게 진기가 운용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천마호신공에 큰 진전이 있었다. 그간 계속되었던 수련이 쌓여 있다가 이번 무아지경을 통해 경지의 상승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성과가 있으셨죠?”

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사하게 밥 사도 될 정도로.”

“축하드려요, 도련님.”

“고맙다. 네 덕분이다.”

“왜 제 덕분이죠?”

“네가 수련 끝까지 해야 한다고 고집부리지 않았으면 옆에 앉아서 무아지경에 빠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 그렇네요! 밥 사세요!”

“사야지, 먹고 싶은 것 다 사주마!”

서둘러 이안과 함께 수련장을 나섰다.

“너도 굶었지?”

“아뇨. 저는 밥 먹었어요.”

하지만 이안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있었다.

내가 굶은 채 운기조식을 하는데, 혼자서 밥을 먹을 그녀가 아니었다. 혹시 내 무아지경을 방해할까 봐 사흘간 수련도 멈추었을 것이다.

“미련곰탱이.”

“아니죠. 정말 미련곰탱이면 굶은 것을 들키지 않았겠죠. 전 이렇게 슬쩍 들키면서 제가 얼마나 충성스러운 수하인지 과시하잖아요? 오히려 점수를 딸 절호의 기회로 삼았죠.”

“여우다, 여우.”

“그럼요, 아직 숨겨둔 꼬리가 많답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었다.

“이렇게 도련님과 함께 걷는 것 오랜만이에요.”

“그렇구나.”

“좋네요, 역시.”

역시란 한마디 덧붙임이 사람 기분을 참 좋게 만들었다. 나도 좋다, 이안아.

이안과 함께 마가촌 풍류주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주님.”

반갑게 맞아주는 조춘배를 보니 그의 요리가 떠오르며 더욱 허기가 졌다.

“빨리 내주시게!”

“네, 경공으로 달려갑니다!”

술만 먼저 주고 조춘배가 주방으로 달려갔다.

우린 빈속에 술부터 한잔 마셨다.

“캬아! 죽인다.”

“으윽! 독해요. 저는 정말 죽겠어요.”

잠시 후 요리가 나오자 우린 딴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게걸스럽게 다 먹어 치웠다.

그렇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술과 함께 무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평소 궁금했던 것을 내게 다 물었고 나는 아는 대로 성심껏 대답했다.

내 비천검법은 십성 대성이 깨진 후 그 자리를 답보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시술받은 신안술이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대룡에게로 화제가 넘어갔다.

“참, 서 조사관은 잘 있죠?”

“잘 있겠지. 나도 요즘 수련한다고 통 못 봤다.”

“다들 바쁘네요.”

“모르긴 해도 잘할 거다. 일도, 수련도.”

“서 조사관이 도마 어르신과 잘 지내는 것 보면 신기해요.”

“잘 지내는지는 모르지. 만날 혼나서 매일 밤 베개가 젖을 수도 있어.”

이안이 재밌다며 깔깔 웃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은근히 도마 어르신이 좋은 분 같으세요.”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돼. 서 조사관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네게도 좋은 사람이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상대는 마존이다. 조심해.”

“네, 명심할게요.”

“언젠가는 네가 실력으로 이겨야 해.”

순간 이안이 흠칫했다.

“제가요?”

예전처럼 ‘제 실력으로 어떻게 마존을 이길 수가 있겠어요?’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비천검술을 전수받은 이상, 그런 말은 나나 아버지에 대한 실례이기 때문이다.

“노력할게요.”

“알지? 어설픈 실력이 제일 먼저 죽는다. 기왕 발을 디뎠으면 끝까지 가야 한다.”

“네!”

나는 술잔을 들었고 그녀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리고 비천검술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본격적으로 귀영대 수하들을 모으자. 조장급만 제대로 모으면 나머지는 쉬울 거야.”

“혹시 생각해 두신 사람들이 있나요?”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둘 정도는. 나중에 나와 가서 고용해야지.”

“누구죠?”

“지금 알면 괜히 놀라기만 할 거야. 때가 되면 알려줄게.”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벌써 제 심장이 막 뛰네요.”

“그럴 때는 술이라는 좋은 해결책이 있잖아?”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우리 기분만큼이나 경쾌했다.

“술도 더 시키고 안주도 더 시켜요.”

“아쉽지만 오늘은 그만 마셔야 할 것 같은데?”

내 시선을 따라 이안이 일 층을 내려다보았다.

주점으로 빠르게 들어온 서대룡이 이 층 우리 자리로 올라와서 앞으로 내가 요리해야 할 새로운 대상에 관해 보고했다.

“지금 막 풍천교주가 본교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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