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65화 (65/214)

제65회 거절하면 새외로 끌려갑니다.

일 때문에 마가촌 소지부에 갔다가 풍류주점에 들렀다.

언제나처럼 조춘배는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각주님.”

“출출해서 들렸소.”

“좋아하시는 것들로 맛있게 해서 올리겠습니다.”

주방으로 달려가려던 조춘배가 문득 돌아서서 물었다.

“각주님. 뭐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어보시오.”

“각주님이시라면 더 좋은 주점을 가셔도 될 텐데, 왜 항상 저희 주점을 찾아주시는지요?”

“그걸 아직도 모르겠소?”

“말씀해 주시지요.”

“술 맛있지, 요리 맛있지, 분위기 좋지, 말 안 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 알아서 척척 가져다주지, 주인장 잘 생겼지. 이유가 더 필요하오?”

“충분합니다. 맛있게 해서 올리겠습니다.”

활짝 웃으며 주방으로 달려가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는 모를 것이다. 내가 이곳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곳 마가촌이 바로 내가 세우려는 마도의 기초가 되는 곳임을.

지금 와 있는 풍천교주도, 팔마존들도, 여기 있는 조춘배와 이곳 주민들만큼 중요하지 않다. 이곳을 잊는 순간, 제아무리 잘 포장해봤자 내가 팔마존들과 다른 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잠시 후 조춘배가 요리를 가져왔을 그때였다.

밖에서 소란이 났다.

창가로 가서 내려다보니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고, 그 앞에 덩치 큰 남자가 화를 내고 있었다. 딱 봐도 술에 많이 취한 상태였다.

“왜 째려봐 새끼야.”

“안 째려봤습니다.”

“째려봤잖아.”

덩치는 망설이지 않고 손찌검을 했다.

“이 새끼가 어디서 거짓말을 해!”

두들겨 맞던 남자는 가족과 함께 가던 길이었다. 부인이 나서서 말렸다.

“그만 하세요!”

“비켜! 계집이 어디서 재수 없게!”

놈은 여인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거칠게 떠밀린 여인이 바닥에 쓰러졌고 예닐곱 살쯤 된 아이가 달려갔다.

“엄마!”

아빠와 엄마가 얻어맞자 아이는 너무 놀란 상태였다.

아이가 있음에도 덩치 사내는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울자 짜증을 냈다.

“안 그쳐 새끼야!”

아이에게까지 손찌검하려고 손을 번쩍 들던 순간.

퍽!

덩치가 뒤로 날아갔다.

쓰러져있던 남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덩치에게 한 방 먹인 것이다.

부인과 아이가 남자에게 달려갔다.

여인은 남편이 덩치를 쓰러뜨린 것에 놀랐다.

“당신이 어떻게?”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소.”

때린 남자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어서 가요.”

“그럽시다.”

가족들이 덩치를 피해 그곳을 떠나갔다.

그들이 떠나자 뒤늦게 덩치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이 새끼! 어디 갔어? 찾아내서 계집년이랑 애까지 싹 다 죽여버린다. 아까 그놈 누군지 아는 사람? 어서 말해!”

놈이 구경하던 사람의 멱살을 붙잡고 행패를 부렸다.

그때 이 층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이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그 말에 덩치가 소리 난 쪽을 올려다보았다.

“방금 지껄인 놈 누구냐?”

이 층 창가에서 손을 흔든 사람은 바로 나였다.

만취한 남자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급 무인 중에서 내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뒤에 있던 조춘배가 평소 저잣거리에서 온갖 행패를 부리던 놈이라고 속삭였다. 말해주지 않더라도 평소 놈의 행실이 어땠는지 알 수 있었다. 구경꾼 중에서 날 알아본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아무도 그에게 경고해주지 않고 있었으니까.

“눈이 마주쳤다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그 아비를 때릴 일이냐고.”

“새파란 새끼가 어디서 훈장질이냐? 그리고 이 새끼야, 나도 맞았어!”

그건 내가 한 일이다.

만약 내가 나서서 놈을 벌줬다면 아이는 평생 아빠와 엄마가 맞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허공섭물로 물건을 움직이듯, 남자의 몸을 움직여 한 방 날린 것이다. 아이에게 용감한 아버지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방 맞았다고 가족을 몰살해? 이게 그렇게까지 흘러갈 일이냐고?”

“내려와! 네가 대신 뒈져야겠다.”

“그러잖아도 내려가려고 했지.”

내가 훌쩍 아래로 뛰어내리자 덩치는 그때를 노려 내게 주먹을 날렸다.

날아든 주먹을 살짝 피한 후, 놈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 꽈드드드득! 순식간에 팔이 빨래처럼 비틀렸다.

“으아아아악! 아파! 이 새끼. 너!”

미친놈처럼 달려드는 놈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반대쪽 팔까지 꺾어서 으스러뜨렸다.

“으아아아아악!”

놈은 아파 죽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만취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이미 기절했을 텐데, 그는 술기운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렇지?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 아니지? 눈이 마주쳤다고 사람을 때릴 일도 아니고, 한 방 맞았다고 가족을 몰살할 일도 아니고, 술 처먹고 지랄했다고 팔 병신이 될 일도 아니었지? 그러니까 대체 왜 그러느냐고. 아무 일 없어도 될 일인데.”

남자는 용서를 구하는 대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평생 남을 때리고 괴롭히며 살아온 인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번의 현명함도 발휘하지 못했다. 나중에 술 때문이었다고 후회하겠지.

“죽어!”

박치기하려고 몸을 날리는 놈의 단전마저 깨버리자 그제야 혼절했다.

나는 순찰하던 본교 무인들에게 남자를 황천각으로 이송하게 했다. 지금까지 저지른 죄를 다 밝혀서 최대한의 형량으로 뇌옥에 가둘 생각이었다.

비참한 모습에도 그를 아는 사람들은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마인이라고 악행을 저질러도 된다는 법은 본교 어디에도 없소. 앞으로도 본교 무인 중에 이런 자가 나오면 저기…….”

나는 주점 건너편 황천각 소지부를 가리켰다.

“저곳에 신고하시오!”

조춘배의 박수를 시작으로 모두 환호하며 박수쳤다. 과장 보태지 않고 마가촌에서 내 인기는 아버지를 능가했다.

조춘배가 와서 기쁜 얼굴로 말했다.

“오늘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나도 함께 얻어먹으면 안 되겠나?”

돌아보니 놀랍게도 풍천교주가 서 있었다.

내가 조춘배를 보며 말했다.

“거절하시면 새외로 끌려갑니다. 풍천교주시니까요.”

조춘배는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눈을 크게 떴다. 요즘 나로 인해 거물급 손님을 여럿 받아본 그였는데, 이제 풍천교주까지 손님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층 항상 앉는 자리에 풍천교주와 마주했다.

“아까 했던 말, 진심인가? 마인이라고 악행을 당연시해선 안 된다.”

“네.”

“천마신교의 소교주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틀에 박힌 것은 싫어서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역시 난 구식이었구먼.”

“젊은 사람들을 곁에 두십시오. 열린 마음으로요. 덕분에 혈천도마께서 요즘 젊어지셨습니다.”

“그런가? 하하하.”

나는 껄껄 웃는 풍천교주의 술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한데 소문이 틀렸나 봅니다.”

“무슨 소문?”

“교주님께서는 신물에서 한 발짝도 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외부에서 자주 뵙습니다.”

지난번에 찾아온 것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풍천교주는 자신의 원칙을 깨고 있었다.

“아마 풍천교의 교주보단 천마신교의 교주를 더 믿어서겠지?”

아버지를 믿기 때문이란 뜻이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일 것이다. 적어도 천마신교 내에서 자신의 신물이 도난당하게 두고 보지는 않을 거란 아버지에 대한 믿음 때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자, 드시지요.”

고급요리만 먹는 풍천교주에게 여기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생각보다 형식을 따지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맛이 괜찮군.”

“잘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술 대신 차를 마셨다. 풍천교주는 반주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식사 직후에는 항상 차를 마신다고 했다.

“시공이환술은 펼쳐보았나?”

“네.”

“처음에는 다들 실패하니 너무 개의치 말게.”

그는 내가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여겼다. 첫 시도는 아무리 빨라도 며칠은 걸린다 했으니,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의미는 당연히 실패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성공했습니다.”

“뭐?”

“공간이 멋지더군요. 앞으로 이 무공에 푹 빠져들 것 같습니다.”

풍천교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써 펼쳐냈단 말인가?”

“네.”

“펼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두 시진쯤 걸렸습니다.”

풍천교주가 깜짝 놀랐다.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헉’하고 짤막한 탄성까지 내뱉었다.

“정말인가?”

그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제 적성에 잘 맞는 무공인 듯합니다.”

“솔직히 믿지 못하겠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무공의 천재가 아니라면 그건…… 아니, 무공의 천재라도 두 시진은 불가능해!”

나는 더는 두 시진이라 주장하지 않고 차를 홀짝였다.

“정말인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보여줄 수 있겠나?”

예의상 이렇게 사람을 못 믿고 집요하게 파고들어선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심도 이해가 갔기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고맙네.”

속이 타는지 풍천교주가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마셨다.

나는 잠시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차분하게 물었다.

“한데 오늘은 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네.”

“말씀하시지요.”

“마불이 나를 새외로 돌려보내려 하고 있네.”

“이유는요?”

“자네 때문이지.”

“저 때문이라고요?”

“자네와 내가 손을 잡을까 봐 경계하고 있네. 그러니 내가 계속 있을 명분을 만들어주게.”

날 찾아온 것이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명분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알고 찾아온단 말인가? 이건 나와 가까워지기 위한 구실이다. 정말 그런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있다.

“그 대가로 뭘 주실 겁니까?”

“우리 사이에 야박하구먼.”

“아직 교주님과 제게 ‘사이’는 없죠. 거래는 한 번 있었습니다만.”

나는 빈틈을 주지 않았다.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여야 그와의 거래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시공이환술을 두 시진 만에 연 것을 알려준 것도 그 때문이다. 나를 믿어도 된다는 무한한 신뢰를 주기 위해서.

“뭘 원하나?”

“가져오신 신물 중에서 하나 선택해도 되겠습니까?”

순간 풍천교주의 표정이 굳었다.

“자네 미쳤나?”

나는 차분히 되묻듯 대답했다.

“마존이 죽은 이 혼잡한 상황에서 중원진출을 꾀하려는 교주님만큼은 아니겠지요.”

* * *

풍천교주와 함께 그의 거처로 들어갔다.

그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 예상대로 그는 나와 손을 잡으려는 것이다. 그의 소중한 신물까지 주면서. 이건 부탁의 대가가 아니라 선물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면서 나와 손을 잡으려는 것일까? 분명 그에게 어떤 심경변화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방에는 족쇄를 찬 남자가 음뢰종을 바라보며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혈안정수를 빼내 올 때, 그를 빼내 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잠깐 생각한 적이 있다. 이번 생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저 사람은 누굽니까?”

모른 척 풍천교주에게 물었을 때, 나는 보았다. 풍천교주가 그를 쳐다보는 눈빛을. 수하나 노예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남자 역시 풍천교주가 들어왔음에도 아무런 인사를 하지 않았다. 보통 돌아서 인사를 하기 마련인데.

나는 이들 사이가 일반적인 주종관계가 아님을 확신했다.

“음뢰종을 지키는 수하네.”

“그렇군요.”

풍천교주는 신물들을 쭉 둘러보며 나직이 말했다.

“신물 중에서 음뢰종과 혈불은 요구해선 안 되네.”

“네, 알겠습니다. 저 종이 그 유명한 풍천교의 음뢰종이군요.”

나는 처음 본 것처럼 음뢰종을 향해 걸어갔다.

회귀 전 인생에서 이 음뢰종을 가져오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종에 새겨진 악귀가 ‘또 너냐?’라며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보니 어떤가?”

“굉장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족쇄 사내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사실 음뢰종보다 이 사내에게 관심이 갔다. 그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핑계 삼아 이쪽에 다가온 것이었고.

그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슬쩍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치렁치렁 내려온 머리카락 사이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었고 눈빛은 맑았다.

남자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주 잠깐의 마주침이었지만 왠지 쉽게 잊기 힘든 눈빛이었다.

“자, 골라보게.”

“그러지요.”

나는 천천히 신물이 올려진 진열대를 살폈다. 물론 나는 여기 있는 신물들이 어떤 것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신물 중 한 가지를 골랐다.

“이걸 주십시오.”

순간 풍천교주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그때 나는 보았다.

풍천교주가 자신도 모르게 안 된다는 말을 하려는 바로 그 순간, 풍천교주가 흠칫하며 입을 닫는 모습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신물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을.

‘족쇄를 찬 남자가 풍천교주에게 전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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