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치사한 방법이 효과적이다.
나는 북천검가로 들어섰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사우종이 나를 일화검존에게 안내했다.
“어서 오십시오, 각주님.”
“사 무인, 잘 지내셨소?”
“걱정해 주신 덕분에 저는 잘 지냈습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섭혼마존을 이용해서 나를 밀어내려다 실패했음에도 그 억하심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오늘 청선을 미끼로, 그의 숨겨진 야망을 이용해서 그를 낚을 작정이다.
“어서 오게!”
일화검존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한결 맑은 느낌이었다.
“더 젊어지셨습니다.”
내 인사에 그녀는 나를 화단으로 이끌었다.
“이리 와서 이것 좀 보게.”
그녀가 가리킨 곳에 싹이 돋아 있었다.
“자네가 선물로 준 그 씨앗이네.”
“오! 벌써 자랐군요.”
“그래, 생명이 이렇게 신비하다네.”
우리 뒤에 서 있던 사우종의 기운이 더욱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이곳에 들어선 이후 내내 기를 발출해서 은밀히 그를 살피고 있었다.
처음 아버지에게 이 수법을 배웠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경지는 능숙해졌다. 상대의 존재나 외형을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감정까지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은밀히 검존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우종에게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해주시겠습니까? 그에게 몇 가지 정보를 흘려야 해서요.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일화검존이 사우종에게 술을 가져오게 했다. 공손히 대답하고 돌아서는 사우종의 감정은 더욱 흉포해졌다.
술을 마시지 않던 그녀가 술을 마시고, 오직 내게만 반말을 하고.
그의 감정변화로 볼 때 아마도 내게 일화검존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추측하건대 청선과의 관계 역시 정상적인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의 최후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으니까.
잠시 후 사우종이 술과 안주를 가져왔을 때, 나는 한 가지 정보를 흘렸다. 일화검존에게 말했지만, 사실 사우종이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현재 차기 섭혼마존은 일제자인 양도와 삼제자인 청선이 유력합니다.”
청선이 언급되자 사우종이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듣기로 양도가 더 유력하다고 들었네.”
“맞습니다. 한데 청선에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죠.”
“어떤 방법이 있나?”
일화검존이 나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왜 사우종을 두고 이런 대화를 하나 궁금했겠지만, 그녀는 전혀 표를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마침 풍천교주가 본교에 와 있지 않습니까? 풍천교주와 섭혼마존이 배운 무공의 뿌리가 같습니다. 따라서 풍천교주에게 무공을 전수받을 수만 있다면, 청선에게도 승산이 있습니다.”
“과연 풍천교주가 그녀를 받아줄까?”
“풍천교주는 받아줄 겁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예로부터 풍천교는 어떻게 해서든 중원으로 진출하고 싶어 하죠. 이런 상황에서 청선을 자신의 제자로 삼는다면, 중원에 남을 수 있는 빌미를 만드는 거니까요. 오히려 청선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왜인가?”
“섭혼마존이 평소 제자들 교육을 확실히 한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숙적인 풍천교주에 대해 좋은 말을 했을 리는 없겠지요.”
“그랬겠군.”
“결국 이대로라면 양도가 섭혼마존의 자리에 오를 겁니다. 청선은 아쉽게도 마존이 될 기회를 놓치게 되겠지요.”
여기까지가 사우종이 술과 안주를 두고 떠날 때까지 들은 내용이었다. 나는 빠르게 말했고, 그는 천천히 술과 안주를 탁자에 올렸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떠났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들어야 할 핵심은 다 들었으니까.
나는 사우종이 반드시 청선을 설득해서 풍천교주의 제자로 들어가게 할 것이라 믿었다. 야심에 찬 그가 자신의 정인이 섭혼마존이 될 기회를 놓칠 리 없었으니까.
그가 완전히 떠났음을 확인하자 일화검존이 비로소 물었다.
“왜 이런 부탁을 한 건가?”
“사우종은 청선과 사귀는 사이입니다. 혹시 아셨습니까?”
“사우종이? 나는 몰랐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본 각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우종은 야망이 큰 사람입니다. 배후에서 선배님을 휘두르려 할 수도 있는 자입니다.”
그녀에게 경고했지만 사우종이 그녀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말까지는 전하지 않았다.
“나도 대충 알고 있네.”
“혹여 선배님에게 해가 될까 사우종을 주시하던 중, 두 사람이 사귀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점을 이용할 일이 생겨 이런 부탁을 드린 겁니다.”
“그랬군. 말해줘서 고맙네.”
“제가 감사하지요. 마음으로 경계는 하시되 당분간은 사우종과 관련된 일을 평소처럼 처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겠네.”
이번에 도움을 준 고마움은 그녀가 가장 바라는 것으로 갚을 생각이었다.
“조만간에 비무 한번 하시죠.”
“기대하고 있겠네.”
솔직히 기대는 내가 하고 있었다. 신안술이 얼마나 실전에 도움일 될지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일단은 이번 일부터 처리하고 나서의 일이다.
그곳을 떠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마당에서 뒷짐을 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더는 이 모옥이 위선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 * *
오늘따라 사우종은 잠자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덕분에 청선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쾌락을 느꼈다.
땀투성이가 된 채 두 사람은 침상에 나란히 누웠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아니. 왜?”
“평소 같지 않아서.”
“그래서?”
“너무 좋았어.”
확실히 사우종은 평소와 달랐다. 그가 먼저 그녀를 안아주며 물었다.
“요즘 바쁘지?”
“내가 마존이 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어.”
“당신 생각은?”
“마존 자리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다만 사형을 이길 자신이 없어.”
“당신은 반드시 마존이 되어야 해.”
“왜?”
“당신 사형이 마존이 되면 당신을 살려두지 않을 거야.”
“사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방금 망설였지? 왜 망설인 줄 알아? 사형이 그런 사람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망설인 거야.”
“…….”
“차기 마존의 후계자로 언급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생사혈전을 펼쳐야만 내려올 수 있는 비무대 위에 섰어.”
사우종은 진심으로 바랐다. 청선이 마존의 자리에 오르기를.
그렇게만 된다면 섭혼마존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뒤에서 주무를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권력욕의 끝에는 여전히 삐뚤어진 욕망이 있었다.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언젠가는 검존을 내 여자로 만들 거다.’
청선은 벽에 붙은 일화검존의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우종의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떻게 하면 당신을 마존 자리에 올릴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어.”
“있어. 한 가지 방법이.”
“어떤 방법?”
“지금 풍천교주가 와 있잖아. 그에게 무공을 전수받으면 당신 사형을 이길 수 있어.”
“말도 안 돼! 무공이 그렇게 금방 늘지 않는다는 것, 당신도 잘 알잖아?”
“당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잖아? 게다가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닌 풍천교주야. 하나의 비기만 전수받아도 당신 사형쯤은 이길 수 있어.”
“풍천교주의 제자가 되면 다른 마존들이 날 싫어할 텐데?”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야. 일단 살고 생각해야지.”
사우종이 그녀에게 파고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알겠다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그는 쉬지 않았다.
* * *
“치사한 놈들! 정말 이렇게 치사한 놈들인 줄 상상도 못 했군.”
풍천교주는 화를 참지 못했다.
“자넨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족쇄 사내는 그저 말없이 음뢰종만 쳐다보고 있었다.
“말 좀 해보라고.”
“예상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떻게든 우릴 돌려보내려 할 것을요.”
“했지, 그래 했지. 한데 이런 더러운 수법을 쓸 줄은 몰랐지. 이게 말이 돼? 먹는 거로 장난을 쳐?”
조금 전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외원에서 대기 중인 수하들에게 제공되는 밥과 찬이 달라졌다고 한다. 양이 줄고 질도 떨어졌다. 질 좋은 고기는 비곗덩이로, 술은 싸구려로.
“누가 믿겠어? 천마신교에서 치사하게 먹는 거로 장난질을 한다는 걸. 차라리 독을 먹이라고 해!”
심지어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풍천교의 주력인 십대마인과 일백의 혈나군들이었다. 그들에게 부끄러워서라도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치사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죠. 그리고 정확히는 천마신교가 아니라 마불의 짓입니다. 이쪽 교주는 힘으로 쫓아내면 내지,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니죠.”
“그 쪼그만 놈이 이 정도까진 아닌데.”
“상황이 그를 밀어붙인 거죠. 교주님을 설득하는 것이 그의 일입니다. 어떻게든 교주님을 돌려보내야 다른 마존들에게 체면이 설 테니까요.”
“이건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건 자신의 체면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천마신교가 자신을 홀대하는 모습을 수하들에게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교주에게 따지러 가야겠다.”
“가서는 뭐라고 하시려고요? 밥 내놓으라고 할 겁니까?”
“해야지, 당연히 해야지. 네 빌어먹을 수하 놈이 내 수하 밥 다 훔쳐 갔다고 소리쳐야지. 세상에 이렇게 치사한 짓은 처음 봤다고 천마전 바닥을 뒹굴면서 일러바쳐야지.”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물론 풍천교주는 그러지 못했다. 분노의 화살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대체 이공자 이 허풍쟁이는 뭐 하고 있는 건가? 자기가 방법을 찾아오겠다면서?”
“느긋하게 기다리십시오.”
“지금 느긋할 수 없으니 하는 말이지.”
“교주를 존경하는 사람은 굶어도 존경할 테고, 교주를 싫어하는 사람은 세 끼 모두 진수성찬을 먹여도 싫어할 겁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생각처럼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네. 날 존경하는 사람은 ‘이렇게 존경하는데도 날 굶겨?’ 하면서 섭섭해할 테고, 날 싫어하는 사람은 ‘이 한심한 놈이 이런 꼴 당할 줄 알았다’며 다른 사람들을 이간질할 거네.”
“그 모든 풍파를 버티는 사람만 남겨서 쓰십시오.”
“젠장! 망할!”
그때 밖에서 청선이 찾아왔다고 기별했다.
풍천교주가 놀란 얼굴로 족쇄 사내를 쳐다보았다.
족쇄 사내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안으로 들어온 청선이 정중히 예를 올렸다.
“존경하옵는 새외지존을 뵙습니다. 저는 서환진의 청선이라 합니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네. 서환진 제일의 귀술사라고?”
“과분하신 말씀입니다. 미리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네. 이제라도 와주니 고맙네.”
“언젠가 돌아가신 사부님께 들었습니다. 제가 배운 무공의 뿌리는 혈교에 있다고요.”
“맞네, 그런 의미에서 우린 동문이라 할 수 있지. 그래, 마존에게 무공은 모두 전수받았는가?”
“아쉽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를 제자로 거둬주십시오!”
풍천교주가 족쇄 사내를 쳐다보며 전음을 보냈다.
―이공자는 미친놈이다.
―이래섭니다. 우리가 끝까지 이공자여야 하는 이유가요.
―젠장! 내 신물 받으러 올 것 생각하니 벌써 속이 불편해서 체할 것만 같네.
―이참에 그 좁은 속 좀 키웁시다.
―닥쳐!
속으론 이런 대화가 오갔지만 풍천교주의 표정은 더없이 근엄했다.
“새외 마공이 중원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내가 진정 바라는 바네. 다만 자네 교주가 우리의 이 귀한 연을 허락할지 모르겠군.”
“본교에는 사제지간을 맺는 것과 관련해서 어떤 제약도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서환진이 강해지는 일이니 교주님도 반대하진 않으실 겁니다.”
“자네는 괜찮나? 자네의 사형이 이 일을 문제 삼을 텐데.”
“가르쳐주십시오. 사형을 이길 방법을.”
풍천교주가 나직이 그녀에게 말했다.
“자네 사형이 죽일 수도 있네.”
그러자 청선이 고개를 들어 풍천교주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의 눈빛은 남자에게 휘둘리는 수동적인 여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사우종과 몸을 섞던 순진한 그녀와 지금 이 자리의 그녀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사우종은 알지 못했다.
잠자리에서 고분고분한 모습은 극히 그녀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은 애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그녀의 지독한 자기애(自己愛)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신이 가지지 못한다면 파괴해버리는 지독한 여인임을 알지 못했다. 사우종은 아무것도 몰랐다.
청선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죽을 수는 없잖아요?”
그녀의 눈빛에서 악녀들만이 낼 수 있는 원색의 광기를 읽은 풍천교주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차기 섭혼마존이 기대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