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78화 (78/214)

제78회 단체로 미친놈들이다.

장호는 원래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감히 건방지게 오른팔 자리 운운하는 족쇄 사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오늘 이 자리가 족쇄 사내 때문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온 것이 저 족쇄 남자 때문일지도 모르겠소.

그래서 이안과 서대룡에게 전음까지 보냈다.

이안은 용감하게 행동을 개시했고, 서대룡 역시 움직였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장호는 이곳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 계속될 전장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장호의 말에 족쇄 사내가 고개를 들어 장호를 응시했다. 장호의 얼굴에 난 커다란 상처가 꿈틀거렸다.

족쇄 사내가 장호에게 말했다.

“왜 오른팔에 집착하시오? 나 같으면 왼팔하면서 오른팔들 싸우는 것 구경하겠소.”

“나는 남들 싸움 즐기는 그런 취미는 없소. 오른팔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으니, 오른팔이 되려고 노력하겠소.”

“남자다우시오.”

“고맙소.”

그때까지 지켜보기만 하던 풍천교주가 족쇄 사내에게 전음을 보냈다.

-남자다우시오? 지랄한다. 자네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나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렇다. 나는 온갖 말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농담도 하고 너스레도 떠는 사람이다.

-젠장! 이 상황에서 그딴 말은 왜 하나?

-시작은 교주가 먼저 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한데 이것들이 지금 자네에게 몰려가서 뭐 하자는 수작인가?

-보면 모르겠나? 자기 수장을 위해서 다들 애쓰고 있잖아?

-비겁하다! 나는 혼자인데.

-평소에 뭐 했나? 교주 수하가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이공자가 더 수하들을 아끼는 그런 수장이다?

-만약 이공자에게 가더라도 이들과는 하등 상관없는 이유일 거다. 백 명이 몰려와서 이공자 칭찬을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럼 무슨 이유로 간다는 거냐?

하지만 족쇄 사내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풍천교주가 검무극에게 말했다.

“이공자는 좋은 수하들을 두었군.”

“좋은 수하야 교주님이 더 많으시겠지요.”

“아니네. 나는 외로운 사람이네. 저기 저 사람 빼고는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지.”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복이죠.”

“저 복이 오랫동안 내 곁을 지켜줬으면 좋겠네.”

검무극은 그렇다면 족쇄를 풀어줘야 하지 않느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족쇄를 언급하며 그를 밀어붙이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 내 술 한 잔 받게.”

풍천교주가 술을 따라주면서 내공을 함께 실었다. 술잔을 깨지 않고 내공을 싣는 것은 진정한 고수들만이 펼칠 수 있는 수법으로, 자신만큼의 내공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절대 술을 끝까지 받지 못할 것이다.

또르르륵.

하지만 술이 가득 따라질 때까지 검무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풍천교주는 내심 크게 놀랐다.

‘설마? 내 내공을 능가해? 그럴 리가!’

충격에 빠진 그에 비해 검무극의 표정은 온화했다. 그가 술을 받아서 마시고는 술잔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제 술 한 잔 받으시죠.”

풍천교주의 표정이 굳었다. 만약 검무극의 술잔을 받아내지 못하면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세상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좋네. 우리 승천하는 잠룡의 술을 받아보세.”

풍천교주가 술을 받았다.

이번 역시 떨어지는 술에 내공이 실렸다. 풍천교주는 애써 태연하게 술을 받았다. 충분히 버틸 만한 내공이었다.

“술맛이 아주 좋군.”

“오늘 취할 때까지 마셔보죠.”

“좋네.”

풍천교주가 의기양양하게 족쇄 사내에게 전음을 보냈다.

-봤나? 이공자의 내공이 실린 술을 받아내는 것? 별것 아니더군.

-이공자는 교주 체면을 살려준 거다. 내키지 않았을 텐데 굳이 내공까지 실어서 따른 것은, 교주는 내공을 실었는데 자신은 그냥 따르면 교주가 민망할까 봐 실은 거고. 그래서 내공을 다 담지도 않았고.

-…….

사실 누구보다 먼저 풍천교주가 느꼈던 바였다. 몸으로 내공을 주고받았는데 어찌 그가 모르겠는가? 괜히 족쇄 사내에게 잘난 척하려다가 밑천을 드러낸 것이다.

-의기소침하지 마라. 교주가 이런 사람이란 것 잘 알고 있으니까.

-너 때문에 더 위축된다. 원래 이보다는 더 나은 사람인데 자꾸 실수하게 된다.

-그것도 이해한다.

검무극은 풍천교주가 족쇄 사내와 전음을 나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때 혈천도마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왜 망신을 주지 않았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겁니다.

-보여줄 기회가 있을 때, 보여줬어야지. 제대로 짓밟았어야지. 사람 마음은 생각보다 단순한 곳에서 움직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봤을 겁니다, 저 사람은.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닌가?

-어쩌면 그럴지도요.

다시 술자리가 계속되었다.

검무극은 풍천교주와 술을 마시며 차분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그를 공격하는 언행은 삼갔다. 그의 작전은 풍천교주를 공략하지 않는 것이었다.

검무극은 오늘 왜 이곳에 왔는지에 집중했다. 자신의 사람들을 족쇄 사내에게 보여주는 그 일에.

“서 조사관. 요즘 무공수련은 어떻게 되고 있나?”

“힘들지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혈천도마가 끼어들었다.

“힘들다고?”

“아뇨, 안 힘듭니다.”

“그래? 훈련량을 늘려야겠군.”

“아닙니다, 죽도록 힘듭니다.”

검무극이 웃으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르신 비위 맞추기가 우리 아버지 급소 맞추기만큼이나 힘들 거다.”

“사부님이 그만큼 힘들지는 않습니다.”

“또 사부라고 하는구나.”

혈천도마가 무뚝뚝하게 서대룡을 질책했다. 실수가 아니라는 듯, 서대룡은 당당하게 말했다.

“정식 제자로 삼아주시진 않았지만, 저는 스승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일 쫓아내시더라도, 영원히 사부님으로 기억할 겁니다.”

“누구 마음대로 기억하느냐?”

“아니 기억도 마음대로 못 하게 하십니까?”

검무극의 핀잔에 힘을 보탠 사람은 일화검존이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다.”

툭 내뱉은 그녀 말에 혈천도마는 발끈하지 않았다.

“날 제대로 알고나 하는 소린가?”

“똑똑히요. 저야말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두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신경전을 펼쳤다.

검무극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오늘 방문의 목적이었으니까. 너무 그대로 보여줘서 문제지만.

검무극이 말없이 그들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일화검존은 술잔을 만지작거렸고, 혈천도마는 곧바로 술잔을 비웠다.

풍천교주는 그런 모습을 다소 생소한 감정으로 쳐다보았다. 설마 자기 앞에서 마존들이 감정싸움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풍천교주가 족쇄 사내에게 전음을 보내 물었다.

-대체 뭐 하자는 수작인가? 무슨 의도지?

-저 두 사람이 사이가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었잖아?

-한데 내 앞에서 저렇게 감정을 드러내놓고 싸운다고? 저 능구렁이들이? 그럴 리가 없다. 저것들이 어떤 것들인데.

-교주 앞이라서가 아닐 거다.

-!

풍천교주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면서 검무극과 두 마존을 쳐다보았다.

마치 양쪽 날개라도 되는 듯 검무극을 사이에 두고 앉은 그들은 자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조차 풍천교주에게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외딴 바위섬에 홀로 서 있는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이대로는 안 돼!’

처음 이 자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정말 기세 좋게 검무극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대단한 반전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지만 현실은 기세에서 밀리고, 내공에서 밀리고, 도량에서 밀리고, 게다가 함께 온 놈들은 그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

여자는 갑자기 족쇄 사내에게 술을 권했고, 저 작고 음침한 놈은 나서서 맞장구를 쳤으며, 마군주는 어울리지 않게 오른팔 자리를 탐냈다. 그리고 지금 두 마존이 서로 감정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것들은 단체로 미친놈들이다.’

풍천교주는 온갖 고민에 빠졌다. 마음 같아선 상을 엎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 새끼들아! 다 안 꺼져? 내가 누군지 알고 떼로 몰려와서 지랄들이냐! 새외무림과 전쟁 한 번 해볼 테냐? 덤빌 테면 다 덤벼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차라리 그런 배포라도 있었다면, 이런 순간이 오진 않았을 텐데.

풍천교주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검무극에게 술을 따라주며 기분 좋게 말했다.

“자네가 차기 천마가 되게끔 본교가 아낌없이 지원하겠네.”

“감사합니다. 저 역시 풍천교의 중원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이번에 자네 도움으로 내 제자가 마존이 되었네. 자넨 그에 대해서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았지만, 나는 자네에게 보상해줘야겠네.”

풍천교주는 더는 신물이 아깝지 않다는 모습을 보였다. 족쇄 사내 앞에서 자신이 변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이다. 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려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속 좁고 욕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고르게.”

“정말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실 겁니까?”

“그렇네. 이 방에 있는 것이라면 뭐든 주겠네.”

모두 검무극을 쳐다보며 무엇을 고를지 기대했다.

이윽고 검무극이 풍천교주에게 말했다. 그 자리의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 족쇄를 주십시오.”

족쇄를 원한다는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중 풍천교주의 놀람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예상된 놀람이었다.

그랬기에 더 분노했다.

‘감히 내가 오른팔이라고 했는데도 이따위 요구를 해?’

풍천교주가 싸늘한 눈빛으로 단호히 말했다.

“저 사람은 절대 줄 수 없네.”

하지만 그는 검무극의 요구를 오해했다.

“사람을 달란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족쇄를 달라고 했습니다.”

풍천교주는 깜짝 놀랐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족쇄는 뭐에 쓰려고?”

“말 안 듣는 사람 있으면 묶어 두려고요.”

농담처럼 말하면서 서대룡을 쳐다보았다.

서대룡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족쇄는 말 잘 듣는 사람에게 묶어두는 겁니다. 저처럼 말 안 듣는 사람을 묶으면 안 된다고요! 큰일은 그때 나는 겁니다.”

그는 장난처럼 한 말이었는데, 풍천교주는 흠칫 동요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그때 검무극이 풍천교주에게 족쇄를 원한 원래의 목적을 밝혔다.

“저 만년한철을 녹여 더 값진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만한 보물은 신물 중에서도 찾기 어렵겠죠.”

어차피 또 다른 족쇄로 남자를 묶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요구는 상징적인 요구였다. 나는 그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 저 족쇄를 주십시오.”

풍천교주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럴 때 족쇄 사내가 뭐라 전음을 보내 주면 좋겠지만.

‘제 족쇄를 풀어주는 일인데 전음을 보낼 리가 없지.’

그때 족쇄 사내가 전음을 보냈다.

-거절해라.

-뭐?

-교주를 위해서는 받아들여선 안 될 요구다.

-왜 내게 알려주는 거냐?

-공평하게 해달라면서?

풍천교주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무극이 족쇄를 달라고 할 줄도, 족쇄 사내가 전음을 보낼 줄도 몰랐다.

‘다들 나보다 똑똑하니, 내 머리로는 따라갈 수가 없구나.’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 큰 차이로 자신을 절망케 했다.

풍천교주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의식했다.

“약속은 지켜야지.”

자존심이나 체면 때문이 아니었다. 이때 풀어줘야 족쇄 사내가 더 멋있게 볼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풍천교주가 목걸이에 달린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서 남자의 족쇄를 풀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음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족쇄를 풀었고, 남자는 지켜보기만 했다.

철그렁.

풍천교주가 내 앞에 족쇄와 열쇠를 가져와서 내려놓았다.

“가지게.”

“감사합니다.”

족쇄 사내는 같은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검무극이 족쇄 사내에게 물었다.

“혹 이걸 녹인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모두의 놀란 시선이 검무극에게 집중되었다.

설마 만년한철 녹인 것을 족쇄 사내에게 되돌려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풍천교주가 현기증을 느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것들을 상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술상을 뒤집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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