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회 강호는 잠들지 않는다.
마차는 어딘가를 향해 계속 달렸다.
나는 궁금했다. 과연 극악소마는 어디부터 먼저 갈까?
이번에 그가 출교해서 벌어진 큼직한 사건은 알고 있지만, 어딜 먼저 가고 누굴 만나고 하는 세세한 일들까지는 알고 있지 않다.
지난 이 년간 그의 심기를 건드린 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 누군가를 죽이러 가는 것일까?
아니면 기루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난잡한 연회를 펼칠까?
어쩌면 사람을 죽이고 기루로 갈지도 모르겠다.
그때 극악소마가 불쑥 물었다.
“저 호위는 왜 심장이 되었습니까?”
일개 호위에 관한 질문은 안 할 것 같은 사람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관심을 가졌다.
“제 호위는 살아있어서 심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럼 지금 이공자는 죽어 있습니까?”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가 살아있습니까?”
순간 뭐라 대답해야 할지 당혹해하는 극악소마에게 난 웃으며 덧붙였다.
“예쁘기도 하고요.”
“취향이 참 특이하군요.”
“제 눈에는 제일 예쁩니다.”
“교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 이공자 여자 보는 안목을 좀 높여 드려야겠군요.”
“아마 제가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서대룡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서 조사관, 극악소마와 여자 보는 눈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 상상이나 했나? 앞날은 이런 거다.
그때 마부석에서 청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을에서 식사하고 가겠습니다.”
여정 첫날부터 식사는 둘둘 따로 했다.
다른 객잔에서 하기도 했고, 극악소마가 방을 따로 잡아서 먹기도 했다.
오늘도 자연스럽게 이안과 둘이서 식사를 마치고 객잔에서 나오는데 저 길 끝에서 상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흑도 놈들이 보였다.
그냥 못 본 척 돌아서 마차 쪽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못 본 척 그냥 가시는군요.”
마침 건너편 객잔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극악소마였다.
“역시 후계자가 되기 위한 보여주기식의 정의였었나요?”
그의 조롱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좀 가식적인 면이 있습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사람이 이래야지요. 착한 척 머리 아픕니다.”
우린 마주 보며 웃었다.
마차를 향해 걸어가면서 극악소마가 물었다.
“이공자는 왜 그리 악을 미워합니까?”
“전 방금 악을 못 본 척하고 지나쳤습니다만.”
“저 한두 놈 어설프게 건드리고 떠나면 결국 저 사람들이 보복당할 거라서 그냥 가는 것 아닙니까?”
정확히 내 생각을 읽은 그였다. 손대려면 아예 싹 다 뿌리 뽑아야 한다.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고.
“이번 여행은 소마님의 세상을 구경하는 거니까요.”
“저런 놈들이 내 세상이란 말 같아서 언짢군요.”
“오해십니다.”
“그럼 오해는 풀고 가죠.”
그가 청면에게 눈짓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청면은 성큼성큼 흑도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앞서 우리 대화를 들었으니 이들의 수장까지 깨끗이 정리하고 올 것이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흑도가 들어서겠지만 말이다.
내가 이안에게 함께 가보라고 눈짓하자 그녀가 재빨리 움직였다.
“저도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이안이 청면 뒤를 따라갔다.
극악소마는 훌쩍 몸을 날려 마차 지붕에 앉았다.
“여기서 구경하면 딱이겠군요.”
나도 그의 옆으로 몸을 날려 나란히 앉았다.
“식사는 잘하셨습니까?”
“대충 먹었습니다.”
“여행하면서 보니 밥을 잘 드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먹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가면 때문입니까?”
살짝 기분 나쁜 기색이 스쳤다. 가면 이야기는 언제나 그를 흠칫하게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스스럼없이 가면 이야기를 꺼냈다.
저것을 벗기려면 신화가 된 가면을 현실로 끄집어내려야 한다.
“원래부터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가면 때문일 겁니다. 가면을 벗게 되면 제가 끝내주는 요리를 대접하겠습니다.”
극악소마가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눈구멍 속 눈빛에서 이런 감정을 읽었다.
대체 너는 뭐냐? 네 정체가 뭐길래 내 신경을 이렇게까지 거스르는 거냐?
그때 멀리서 비명이 들렸다.
우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저 멀리 이안과 청면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흑도 놈들을 야무지게 두들겨 팬 후에 그들을 앞장세워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극악소마가 말했다.
“이공자가 전에 말했죠? 악이 멋있는 유일한 경우는 다른 악을 제압했을 때뿐이라고. 어떻습니까? 지금 제가 멋있습니까?”
“멋있습니다.”
“그런데 제 기분은 왜 좋지 않을까요?”
“제 살 점 뜯기는 기분이라서 그렇겠지요.”
내 농담에도 극악소마가 웃었다. 그는 다시 앞서 했던 질문을 했다.
“악을 왜 그리 미워하십니까?”
두 번이나 물었으니 뭐라도 대답해야겠지. 나는 잠시 사이를 두고 그에게 말했다.
“길을 가면서 굳이 앞사람을 절벽으로 밀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가고 싶으면 걸음을 빨리해서 옆을 지나쳐 가면 되는데 말이죠. 걷다 지쳐서 쓰러진 사람 도와주란 말 안 합니다. 그냥 제 갈 길이나 가면 되는데 대체 왜 미냐는 거죠. 그런 놈들 보면 저도 밀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 밀어버리려고요.”
“그럼 저도 밀고 싶겠군요.”
눈구멍 속 두 눈이 차갑게 빛나고 있다.
소마, 당신은 살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행으로 밀었나?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러니 되도록 제 앞으로 걷지 마십시오.”
“그럼 이공자 뒤에 서야 하는데요?”
“그럼 나란히 걷죠. 서로가 언제라도 밀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와 바라는 관계다.
극악소마가 큰소리로 웃었다.
“좋습니다. 이공자라면 좋은 동행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잠시 후, 모든 정리를 마친 이안과 청면이 은은한 피 냄새를 풍기며 마차로 돌아왔다.
마차 지붕에 나란히 있는 우리를 올려다보는 이안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아무리 나를 믿어도 극악소마란 존재가 주는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마차가 출발했다.
그렇게 며칠을 달려 마차가 도착한 곳은 한 장원이었다.
마당에는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백색 가면을 쓰고 극악소마를 따라 내렸다. 우선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얼굴을 드러내도 될 것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존님.”
극악소마는 차가운 눈빛을 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남자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귀주의 거부 임호(林湖).
원래 이곳 귀주는 극악소마가 맡은 지역이었다.
팔마존들은 각 지역을 맡아서 사업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상단이나 표국, 철방, 기루나 주점 등 온갖 이권에 개입하거나 직접 운영했다. 당장 혈천도마만 해도 한가하게 책이나 읽는 것 같지만, 그 역시 책임지고 있는 지역이 있었다.
임호는 귀주를 대표하는 대호상단(大湖商團)의 상단주이자 극악소마를 적극 지지하는 인물이었다.
“살이 좀 빠진 것 같군.”
무뚝뚝한 한마디에 임호가 허리를 숙였다.
“근래 살이 좀 빠졌습니다. 알아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극악소마가 격려하듯 그의 어깨를 한 번 툭 두드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임호는 두려워하면서도 송구스러워했다.
그때 이안이 내게 전음을 보냈다.
―방금 어깨 툭 쳐주는 것 보셨어요? 뺨을 때리거나 어깨를 부수는 것이 아니고요? 전 다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만약 소문대로 극악소마가 미친 살귀에 불과했다면 팔마존에 속하지도 못했을 거다. 극악소마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다루는지 잘 봐둬라. 배울 점이든, 반면교사든, 분명 앞으로 귀영대를 운영하는 네게 도움이 될 거다.
―네, 도련님.
저 가면 속에 여러 얼굴들이 있다. 예전에 봤던 얼굴도 있을 거고, 지금의 나를 만나 새롭게 나오는 얼굴도 있을 것이다.
임호가 극악소마에게 물었다.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괜찮아. 우선 단주들부터 보지.”
“네,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임호는 나에 대해 일절 묻지 않았다.
함께 마차에서 내렸으니 일반 수하는 아니겠거니 짐작했겠지만, 감히 누군지 소개해 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 하나만 봐도 임호가 얼마나 극악소마를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임호가 배짱이 없거나 겁이 많은 사람이란 뜻은 아니다. 그는 마교와 손을 잡고 상단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상인들 사이에서 극악소마는 그일지도 모른다.
임호가 우릴 대청으로 안내했다.
안에는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이곳 귀주에서 크고 작은 상단을 운영하는 인물들이었다.
극악소마가 들어가자 그들이 일제히 엎드려 절을 올렸다.
“위대하신 마존을 뵙습니다.”
극악소마가 상석에 앉았다.
그러자 엎드려 있던 상단주 중 한 명이 일어나서 극악소마 앞으로 갔다.
그가 가져온 장부를 극악소마에게 정중히 올렸다. 소마가 방문하면 항상 해왔던 의식인 모양이다.
극악소마는 천천히 장부를 넘겨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극악소마가 장부를 볼 줄은 몰랐습니다.
―볼 줄 모른다.
―네?
―뒤에 서 있는 청면이 내용을 전음으로 알려주는 거다. 그는 악인곡에서 가장 머리가 좋고 셈이 가장 밝은 사람이지. 그를 오른팔로 두는 이유기도 하고.
―아, 그렇군요.
극악소마는 장부에 대해 묻는 것뿐만 아니라 상단주들 개인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아들 혼례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했고 또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슬픔으로 애도했다.
―이런 일도 청면이 다 알려주는 거군요.
―아니, 이건 보고 받은 것을 극악소마가 다 기억하고 있는 거다.
―정말요? 그걸 다 기억해서 저런 말을 한다고요? 극악소마가요?
지난 삶에서 나는 한 가지 깨달았던 것이 있었다.
진짜 악인들은 꼼꼼하다는 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는 말이지만 내가 경험했던 큰 악인들은 꼼꼼했다. 관찰력도 좋고, 기억력도 좋았다.
반면 내가 만났던 정파의 대협들은 꼼꼼하지 않았다. 잊기도 잘 잊었다. 그들은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면서 생기는 당연한 부주의로 여겼지만, 나는 거기에서 이미 악인들에게 밀렸다고 생각했다. 뜬구름 같은 명분은 손가락으로 세는 꼼꼼함을 이길 수 없다.
그러는 사이 극악소마는 각각의 상단주들과 짧은 면담을 마쳤다.
상단주들은 극악소마를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일상을 기억해서 언급해주는 것에 감격했다.
―해마다 가졌을 이 짧은 만남이 저 사람들을 십 년, 이십 년 옴짝달싹 못 하게 할 거다. 극악소마가 웃으며 가족의 안부를 물었는데, 어찌 감히 배신할 수 있겠느냐?
―무섭네요.
―그래, 이런 점이 무서운 점이지.
상단주들과 인사가 끝나자 임호가 대표로 나서서 보고했다.
“보셨다시피 최근 이 년 동안 저희 수입이 많이 줄었습니다. 이유는 백계상단(百戒商團)때문입니다.”
귀주에 새롭게 들어선 백계상단은 그 어떤 상단보다 빠르게 급성장했다. 그 배후에는 사도맹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이 일의 시작은 극악소마가 사도맹 무인을 학살한 사건 때문이었다.
천마신교는 그 일로 사도맹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거나 보상하지 않았다. 대신 극악소마를 금제하는 것으로 사도맹을 달랬다.
하지만 사도맹은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여겼다.
사도맹은 응징 차원에서 극악소마의 구역에 백계상단을 만들어서 그의 수입을 보란 듯이 뺏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천마에게 벌을 받고 있는 극악소마 입장에서는 싸움을 벌일 수 없기에 지난 이 년간 그들이 영역을 키워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소속 상단의 불만은 계속 커져만 왔던 것이고.
백계상단 문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극악소마는 그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제 본인이 직접 움직일 수 있게 되었으니, 너무 걱정 말게.”
그제야 상단주들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끝으로 극악소마는 회합을 끝냈다. 그는 이런 회합이 적들의 목표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모임은 은밀하고 짧게.
마차에 올라탄 극악소마가 청면에게 말했다.
“백계상단으로 간다.”
“네!”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극악소마에게 넌지시 말했다.
“상단주들에게 친절하시더군요. 극악소마가 아니라 다정소마인 줄 알았습니다.”
“제게 돈 벌어다 주는 사람들 아닙니까? 좋은 말 한마디만 하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들인데 왜 차갑게 대합니까?”
앞서 상인들의 돈이나 뺏고 행패를 부리던 흑도 놈들과는 비교가 되는 말이다. 진짜 악인은 이런 사람들이다. 웃으면서 상대를 옥죄는, 그래서 좋은 분위기에서 계속 당하게 만드는.
“이름부터 틀려먹었습니다. 일벌백계의 그 백계겠지요? 백계상단에 가서 내게 왜 극악이란 별호가 붙었는지 보여줄 생각입니다.”
내가 아무 반응도 없자 그가 다시 말했다.
“걱정 안 됩니까? 내가 싹 다 못 죽일 것 같습니까? 이제 막 금제가 풀렸는데 설마 죽이겠어? 그런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지금 소마님 화가 많이 나셨다는 것 느끼고 있습니다. 벌써 마차 안 공기가 다릅니다.”
“한데 왜 안 말리십니까? 백계상단에서 사고가 터지면 책임은 이공자가 져야 하는데요?”
“소마님, 제발 마차를 멈춰주십시오. 화 푸시고 다른 곳으로 가시지요.”
“싫습니다.”
“이럴 줄 알아서요. 그래서 계속 고민 중이었습니다. 어떻게 말려야 할지.”
“고민 많이 하셔야 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극악소마는 마차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가 들으라고 짐짓 한숨을 내쉬었지만, 마차 밖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더없이 차분했다. 밤은 깊었지만, 강호는 잠들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