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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회귀-101화 (101/214)

제101회 제 눈에만 보입니다.

청면은 백계상단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야영을 피할 수 없었다.

사냥해서 저녁거리를 만든다, 모닥불을 피운다, 이안은 이래저래 분주했는데, 결국 보다 못한 내가 나섰다.

“모닥불이 잘 타게 하려면 나무를 이렇게 세우는 거다.”

이안은 놀랍게도 한 번도 모닥불을 피워본 적이 없었다. 본교를 떠나 이렇게 멀리 나온 적이 처음이었으니까.

“자, 이번에는 고기를 손질하는 방법을 알려주마.”

나는 사냥해온 꿩과 토끼를 능숙한 솜씨로 손질했다.

“도련님, 정말 잘하시네요. 언제 다 배우셨어요?”

“나야 손재주가 있잖아?”

마차 바퀴에 기대앉은 극악소마는 말없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청면은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극악소마를 지켜주고 있었다.

나는 손질한 고기를 나뭇가지에 꽂아서 모닥불 위에 굽기 시작했다.

“타지 않게 잘 감시해. 자객은 놓쳐도 고기는 태우면 안 돼!”

“네!”

이안은 고기 굽는 것이 재미가 있는지 열심히 구웠다.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극악소마와 청면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을 그녀가 이런 순간이라도 좋은 추억이 되기를. 그녀의 첫 여행이었으니까.

고기를 다 굽자 나는 극악소마에게 권했다.

“같이 드시지요.”

“나는 됐습니다.”

“시장하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이안이 고기를 자른 후 소금과 양념을 발라서 종이에 싼 후 극악소마와 청면에게 각각 가져다주었다.

“뒀다가 나중에라도 드세요.”

그녀는 두 사람에게 고기를 건넨 후 돌아왔다.

극악소마를 무척이나 겁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챙길 것은 챙겨주는 그녀였다.

“그럼 우리 먼저 먹겠습니다.”

이안과 나는 고기를 잘라서 먹었다.

마을에 들렀을 때 사 온 술도 마셨다.

“저는 괜찮아요.”

한잔하라고 해도 이안은 극구 거절했다. 극악소마 앞에서 술주정을 부리는 일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가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극악소마가 불쑥 말했다.

“아무리 봐도 예쁘지 않은데, 도대체 어디가 예쁘다는 것이오?”

순간 이안이 움찔했다. 그 말만 들어도 이안은 나와 극악소마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무례한 말이었지만, 한편으론 나를 위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녀가 예쁘다고 말한 사실을 알려주는 셈이었으니까.

나는 대답 대신 저 멀리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저기, 삼십 장 밖 바위 아래에 족제비 보입니까?”

극악소마뿐만 아니라 이안과 청면까지 내가 가리킨 곳을 쳐다봤지만 캄캄한 어둠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믿기 어려우시면 확인해 보세요.”

극악소마가 청면에게 눈짓을 보냈다. 청면이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청면이 족제비를 한 마리 들고 돌아왔다.

극악소마는 깜짝 놀랐다.

“정말 저게 보였단 말입니까?”

“제 눈에는 소마님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입니다.”

물론 그래서라기보다 아버지에게 배운 기발출 수련이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알아차린 것이다.

“제 호위의 아름다움은 제 눈에만 보입니다.”

이안이 그런 말 말라고 고개를 빠르게 내저은 후에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극악소마가 비웃듯 말했다.

“사내대장부가 그런 부끄러운 말을 잘도 하십니다.”

“할 말은 해야죠. 부끄럽다고 안 하고, 이미 한 번 했다고 안 하고. 자꾸 하면 부담스러울까 봐 안 하고. 바빠서 안 하고. 없어 보일까 봐 안 하고.”

마지막 없어 보일까 봐란 말은 극악소마를 두고 한 말이었다. 가면 아래로 밥 먹는 것을 그는 없어 보인다고 표현했었으니까.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대장부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이안을 쳐다보았다. 모닥불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러워서인지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당당해라, 이안!

난 너 없었으면 시작도 못 했을 인생이다.

* * *

이틀 후, 마차는 백계상단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면서 극악소마가 내게 물었다.

“나를 어떻게 말릴지 고민은 끝났습니까?”

“답은 마차 안에도 없고, 제 머릿속에도 없었습니다. 답은 저 안에서 찾아야겠지요.”

나는 백계상단의 커다란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청면과 이안이 앞장서고 극악소마와 내가 그 뒤를 따랐다.

난 이곳에서도 가면을 착용했다. 극악소마와 함께 다니면서 가면을 쓰니 편한 점도 있었다. 혼자 쓰고 다니면 너무 눈에 띄겠지만, 셋이나 쓰고 다니니 원래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작자들인가보다 하는 것이다.

청면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집사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가면을 쓴 우릴 보면 깜짝 놀랄 만도 했는데, 그는 마치 우리가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상단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지요.”

그렇다면 연무장에 무인들이 수백 명 대기하고 있으려나 했는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기를 발출해서 주위를 살폈는데, 매복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어설프게 극악소마를 자극했다간 괜한 희생자만 낳았을 테니까.

남자는 우리를 대청으로 안내했다.

그곳에 아홉 사람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이곳의 수장이 먼저 인사했다.

“백계상단 상단주 서정태(徐政泰)요.”

“극악이다.”

극악소마는 더없이 차갑게 서정태를 대했다. 원래도 사파인을 좋아하지 않는 그였으니, 지금 눈앞의 서정태가 얼마나 못마땅하게 보이겠는가?

“신교의 마존을 뵙게 되어서 영광이오.”

반면 서정태는 정중했다. 차분하고 여유로운 그는 극악소마를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뒤에 늘어서 있는 여덟 고수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왜 다른 무인들이 없는지도 그들로 설명이 되었다.

여덟 고수는 모두 죽립을 눌러 쓴 채 얼굴을 가렸는데 애초에 불필요한 충돌을 막겠다는 듯, 그들은 자신의 신분을 알릴 수 있는 의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송곳니 사나운 입을 쩍 벌린 늑대가 그려져 있었다.

용도 찢어 죽이고, 호랑이도 찢어 죽인다는 사도맹의 사나운 늑대들.

그들은 바로 둘이 모이면 마존 하나를 상대한다는 사도맹의 절대고수인 사도십삼랑(邪道十三狼)이었다. 그 사도십삼랑이 자그마치 여덟이나 온 것이다.

극악소마는 그들을 알아봤음에도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한 소악심을 뿜어내 주위를 장악했다.

그 소악심이 서정태에게 영향을 미치자 상대도 그냥 있지 않았다.

여덟 고수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기도를 발출했다. 사기들은 순식간에 소악심을 밀어내며 서정태 앞에 벽을 세웠다. 그들의 사기는 거칠면서도 질서가 있었다. 얽히는 듯 얽히지 않으면서 서로를 보완하며 철옹성 같은 기세를 드러냈다.

자존심이 걸린 기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소악심으로 밀어붙였지만, 오히려 사기의 벽은 앞으로 밀고 나왔다. 아무리 극악소마라 하더라도 여덟 명의 사도십삼랑의 내공을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극악소마가 사도맹 무인에게 밀리는 것은 나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은밀히 마기를 발출했다.

내 웅혼한 내공이 소악심에 더해지자 양쪽의 힘겨루기는 팽팽한 대치를 이뤘다.

극악소마가 밀리지 않자 그들은 더욱 강한 내공으로 밀어붙였지만, 내가 무공을 더 끌어올리면서 오히려 안으로 한차례 밀어붙였다.

발끈한 그들이 내공을 더욱 끌어올리려던 그때.

여기서 더 나아가면 우리도 쉽지 않을 것이기에 극악소마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마기를 거뒀다.

잠시 이겼을 때 끝내버리는 것, 극악소마는 기 싸움에서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과연 여덟 고수에게서 짜증이 느껴졌다.

극악소마가 전음을 보냈다.

―이공자의 내공이 이렇게 심후한지 처음 알았습니다.

―소악심이 대단해서겠지요. 제 마기는 거들뿐이었습니다.

―두 번 거들다가는 저 이리 떼들이 꼬리를 흔들겠군요. 역시 섭혼마존을 죽인 것은 이공자였습니다.

―소마님, 저 말고 앞을 보십시오. 우리 적은 이쪽이 아니라 눈앞에 아홉이나 있습니다.

극악소마의 시선이 처음 인사를 꺼낸 상단주 서정태를 향했다.

“나를 기다린 것 같으니 그럼 내가 찾아온 이유도 알겠군. 말을 신중히 해야 할 거다.”

“마존께서 제 목숨을 원하신다면 기꺼이 드려야겠지만, 적어도 제 말씀부터 들어주십시오.”

“듣고 있으니 해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 상단은 앞으로 팔 년간 귀주에서 사업을 키울 작정입니다. 그리고 팔 년이 되는 해에 모든 사업을 접고 물러나겠습니다.”

이미 이 년이 지났고 앞으로 팔 년을 더한다면, 다시 말해서 사도맹은 지난 학살의 책임을 물어서 십 년간 귀주에서 사업을 펼쳐 돈을 벌겠다는 의미였다.

“십 년이나 내 피와 살을 뜯어 먹겠다?”

“마존께서 죽인 이들은 이미 피와 살이 썩어 백골이 되었습니다.”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지만, 극악소마는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비단 여덟 명의 사도십삼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 처리에 있어서만은 그는 경솔한 사람이 아니었다. 출교 후 자신의 욕망을 발출하는 것이 아니라 곧장 상단주들부터 만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윽고 극악소마가 서정태에게 말했다.

“그대도 조직에 속한 몸이니 좋다. 나도 양보하지.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딱 일 년이다. 일 년 후에도 귀주에서 어슬렁거리며 장사를 하고 있다면 그땐 백골이 된 친구들을 보러 가고 싶다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노골적인 협박에도 서정태는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일 년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입니다.”

“그럼 무인 대 무인으로 한 판 붙어서 결정하든지. 겁나면 다 같이 덤벼도 된다.”

극악소마는 알고 있었다. 사도십삼랑 역시 자존심이 있는 자들이라서 한꺼번에 덤비지는 않는다는 것을.

서정태는 생각에 잠긴 듯 보였지만 나는 신안술로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뒤쪽 여덟 고수 중 한 명과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때 극악소마도 내게 전음을 보냈다.

―실망하셨겠군요. 한바탕 붙었어야 했는데.

―실망이라니요? 소마님이 사도맹 사람들과 협상하는 모습을 직접 본다? 이건 평생에 없을 경험입니다. 저들과 치고받고 싸우는 것보다 이 모습이 백 배는 더 박진감 넘치는 모습입니다. 지금 보이는 이 세상이 시시하다면, 원래 세상은 잠든 세상일 겁니다.

전음으로 극악소마가 웃었다. 전음으로 들리는 극악소마의 웃음은 처음이었는데, 또 다른 느낌으로 들렸다.

―저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시겠습니까?

―다 죽여버리고 한 십 년 갇혀 지내야겠지요. 셋을 맡으세요, 제가 넷을 맡겠습니다. 청면과 못생긴 심장이 남은 하나를 맡게 하죠.

나도 전음으로 웃었다. 물론 싸우자는 말은 농담이었는데, 그 농담이 우스운 것이 아니라 그가 이안을 못생긴 심장으로 부르는 것이 우스워서였다. 은근히 뒤끝 있는 그다.

그때 서정태가 단호히 말했다.

“절대 불가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불필요한 감정싸움은 여기까지. 이제 내가 나서야 할 순간이다.

“불가능하다고 결정을 내린 분께 직접 듣고 싶군요.”

지금껏 잠자코 있던 내가 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그대는 누구신데 이 중요한 자리에 나서는 거요?”

서정태의 물음에 내 시선이 뒤쪽에 서 있는 남자 중 한 사람을 향했다.

“암중 수장 노릇은 그만하시고 이제 나서서 상황 정리합시다.”

내가 말한 사람은 여덟 명의 무인 중 가운데 서 있는 남자였다.

“극악소마님 성격은 잘 아실 테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이런 곳에서 사도맹의 후계자가 싸움에 휩쓸려서 죽어도?”

내 말에 극악소마는 물론이고 이안과 청면까지 깜짝 놀랐다.

차앙!

지목된 남자를 제외한 일곱 명이 일제히 검을 뽑으며 진을 갖췄다. 남자를 보호하는 검진이었다.

과연 절세고수들답게 엄청난 기세를 드러냈다. 앞서 사기의 벽을 세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렬한 기운이었다. 본교로 따지면 거의 마존 넷이 남자를 보호하는 형세였으니까.

검진 가운데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죽립을 벗었다.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젊은 남자였다. 장호의 그것이 멋있는 상처라면, 이 남자의 상처는 흉측했다.

베이고 뭉개지고 일그러지고.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섬뜩해지는 외모를 지녔고, 분위기나 기운 역시 어둡고 무거웠다. 그 사이에서 빛나는 차가운 눈빛.

“그대는 어떻게 나를 알아본 거요?”

그는 성대까지 다쳤었는지 목소리에서는 못으로 쇠 긁는 소리가 났다.

그는 바로 사도맹주의 공식 후계자 비사인(費司寅)이었다. 사도십삼랑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기에 자신을 알아본 것은 기밀이 누설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신 누구요?”

비사인의 차가운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그대가 죽어도 문제지만 내가 죽어도 문제인 사람이오.”

내가 가면을 머리 위로 올려 쓰며 말했다.

“처음 뵙겠소. 난 천마의 둘째 아들 검무극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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