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103화 (103/214)

제103회 다들 사연 하나쯤은.

우리가 탄 마차가 도착한 곳은 귀주에서 가장 유명한 기루 천화루(千花樓)였다.

실제로 천 명의 기녀가 있어서 유명한 곳이 아니라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과연 천화루의 거대한 마당에는 수십 대의 고급스러운 마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귀주의 돈 많은 사람은 전부 이곳 천화루에 오면 만날 수 있다는 농담이 농담만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는 마차를 타고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다. 큰 기루답게 상당한 실력을 지닌 무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가장 깊숙한 내원을 지키는 이들은 고수의 반열에 든 이들이었다.

“여긴 놀러 온 겁니까? 일하러 온 겁니까?”

내 질문에 극악소마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기루에는 놀러 오는 것 아닙니까?”

“악인곡의 중요 거점에서 놀아도 됩니까?”

내 말에 극악소마가 깜짝 놀랐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매복한 무인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눈구멍 속 극악소마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 싶은 그였지만 놀라움은 계속 쌓이고 쌓여간다.

결국 극악소마는 사실을 인정했다.

“사람들 입은 술자리에서 가벼워지는 법이지요.”

이곳 천화루를 통해 극악소마는 중원의 여러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이곳은 악인곡의 외부 지단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돈 따라 정보의 질도 달라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극악소마는 습관적으로 웃었을 뿐, 그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거부들이나 무림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오는 곳이니 중요한 정보들이 많이 수집될 것이다. 그만큼 이곳이 극악소마에게는 중요한 곳. 대신 이 말은 해주었다.

“놀랄만한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일전에 본 대호 상단의 수입보다 이곳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더 많습니다.”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마차는 가장 깊숙한 건물 앞에 섰다.

마차가 한 대도 없는 거로 봐서 이곳은 일반 손님들을 맞는 곳이 아닌 듯 보였다.

극악소마가 내렸고, 나도 가면을 쓰고 뒤따라 내렸다.

화려하게 꾸며진 방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늘씬한 몸매의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화장이 짙어 정확한 나이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묘한 분위기가 있는 여인이었다.

“어서 오세요, 오라버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크게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극악소마가 오라버니라 불리는 역사적 자리에 있으니까요.”

여인은 조심스럽게 나를 보며 물었다.

“못 뵙던 분이시네요.”

눈치 빠른 그녀는 편하게 극악소마를 대하는 태도에 내 신분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했을 것이다.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그녀 앞에서 극악소마를 편하게 언급한 사람은.

그녀가 먼저 정중히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천화루를 책임지고 있는 여정이라고 합니다.”

천화루주 여정(呂情).

나는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천화루뿐만 아니라 중원 곳곳에 수십 개의 기루를 은밀히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의 꿈은 중원의 모든 남자를 지배하는 밤의 여제가 되는 것.

극악소마라는 위험천만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만 봐도, 그녀의 야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나는 가면을 머리 위로 올려 쓰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저는 검무극이라 합니다.”

천화루주는 깜짝 놀랐다. 이름만 듣고도 내가 누군지 알아본 것이다. 함께 온 극악소마 때문에 더 확신할 수 있었을 테고.

“정말 귀하신 분이 오셨네요.”

그녀가 그 자리에서 절을 올렸다. 나를 알아본 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알아보는 순간 이렇게 절을 올리는 것은 대단히 영민한 처세술이었다.

“오늘 보고 영영 사라질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후계 싸움에 지면 못 볼 거란 내 농담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대로 백 년 동안 이 무림을 지배하실 수도 있겠지요.”

극악소마가 기분 좋게 말했다.

“자, 술상 잘 차려주게. 그리고 오늘 특별히 우리 이공자에게 미색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려고 하니, 알아서 들이게.”

“네, 잠시 말씀 나누고 있으세요.”

그녀가 나가자 극악소마가 웃으면서 물었다.

“루주만 봐도 여기가 얼마나 미녀들이 많을지 기대되지 않습니까?”

“정말 기대됩니다.”

“정말요? 이공자는 여색을 밝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아닙니다. 저도 여자 좋아합니다. 여자 싫어하는 남자 어디겠습니까?”

“어디 한 번 봅시다.”

그러면서 극악소마는 문 앞에 청면과 함께 서 있는 이안을 쳐다보았다.

그의 의지가 느껴진다. 내 입에서 반드시 이안이 예쁘지 않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저 고약한 의지를.

‘쉽지 않을 거요.’

밥상이 먼저 차려졌다.

최고급 기루에서 최고 손님을 접대하는 상이었으니, 비싸고 귀한 요리들이 가득했다.

나는 극악소마에게 말했다.

“우리 심장은 와서 좀 먹게 해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두 분은 안 드실 테니.”

“그러시지요.”

문 앞에서 선 이안이 굳이 안 그래도 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나는 그녀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이안이 와서 내 옆에 앉으면 전음을 보냈다.

―도련님! 극악소마와 한 상에 앉아 밥이 넘어가겠냐고요!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너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렇긴 하지만요.

―죽어도 먹고 죽은 귀신이 되는 거다.

나는 젓가락을 들며 극악소마에게 말했다.

“자, 저희 먼저 먹겠습니다.”

이안 역시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이안은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맛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다 맛있을 수가 있죠?”

“여기 숙수 납치해 가자. 임 숙수 요즘 나이가 들었는지 간이 잘 안 맞더라.”

“임 숙수님 들으면 섭섭해하세요.”

“내 혀도 섭섭해.”

“참으세요! 그리고 요즘 만날 풍류주점에서 드시잖아요. 거기 주인장은 언제 버리실 거예요?”

“음식이 짜지기 시작하면?”

“도련님!”

극악소마와 청면은 우리의 격 없는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똑같은 수장과 수하인데 그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관계가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말없이 신뢰가 오가는 관계를 더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고 극악소마를 쳐다보았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극악소마가 먼저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드십시오.”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면 더 친해질 텐데요.”

“맛있는 걸 나누면 화가 나죠. 아마 우린 사이가 더 나빠질 겁니다.”

나는 웃었고 극악소마는 농담이 아니었다는 듯 웃지 않았다.

그때 천화루주가 들어왔다. 그녀를 뒤따라 네 명의 기녀들이 따라 들어왔다.

여인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마 이 네 여인이 천화루 사대미녀(四大美女)쯤 되지 않을까?

“천천히 보시고 마음에 드시는 여인을 고르시지요.”

천화루주의 말에 나는 즉각 대답했다.

“다 아름다우니 전부 앉으라고 하세요. 굳이 고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천화루주가 극악소마를 쳐다보았다. 극악소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여인들을 모두 앉게 했다.

“좋은 선택이셨어요.”

“모두가 승리하는 방법이죠.”

내 대답에 천화루주가 미소를 지었다.

옆에 앉은 여인이 술을 따라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께서 술을 따라주시니, 오늘 과음 좀 해야겠습니다.”

나는 여인들이 주는 술을 한 잔씩 다 받아서 마셨다.

“이안아, 너도 한 잔 마셔라.”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다. 천화루의 미녀분들에게 술을 받을 기회는 네 평생 오지 않을 거다.”

“네, 그럼 딱 한 잔만 받겠습니다.”

그녀와 가까이 있던 기녀가 술을 따라주었다. 이안은 조금만 마시고 다시 술잔을 내려놓았다.

나와 이안이 그녀들에게 예의를 갖춰 대하자, 자연 우릴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도 부드러웠다.

극악소마는 천화루주에게 몸을 기댄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기녀들과 질펀하게 놀기를 바랐기에 이 상황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잘 논다면서요?”

“잘 놀고 있습니다. 여기 이 여인은 이름이 주화인데 노래를 잘 부른답니다. 이따 한 곡 들어볼까 합니다.”

“술자리에서 군자처럼 굴면 쓰겠습니까? 먹이라도 갈게 할까요?”

내가 샌님처럼 굴자 극악소마는 괜히 잘 있는 이안을 끌어들였다. 그가 천화루주에게 말했다.

“이공자께서 저기 저 호위가 제일미녀라고 하셨는데, 우리 루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자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곧장 대답이 나왔다.

“맞는 것 같아요.”

“맞다고?”

그녀에게 기대있던 극악소마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네. 처음 봤을 때부터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천화루주가 이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에요. 살만 뺀다면요.”

과연 평생 수많은 여인을 봐 온 그녀는 살과 부기에 가려진 그녀의 미모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반면 극악소마는 깜짝 놀랐다.

내가 볼 줄 아는 것을 극악소마는 볼 줄 모른다는 말에, 그는 어떻게든 이안이 예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던 참이었다.

한데 천화루주가 이렇게 나오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천화루주는 정말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이안에게 물었다.

“정말 아름다운 분이신데 왜 이리 살을 찌웠나요?”

이안이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식탐이 많고 천성이 게을러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화루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 느끼고 있었다.

“저마다 말 못 할 사연이 하나쯤은 있겠지요?”

그러면서 천화루주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이안도 옅게 웃었다. 왠지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 같은 말에 이안은 위로받는 듯 보였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천화루주는 확실히 보통 여인이 아니다.

하긴 그러니까 극악소마에게 오라버니란 말을 하는 사이가 되었고, 밤의 여제가 되려는 야망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겠지.

“자, 우리 같이 한잔합시다!”

내가 잔을 높이 들었고, 이안과 기녀들이 함께 건배했다.

술 마시고 놀다가 잠시 바람 쐬러 내원의 마당으로 나왔다.

확실히 영웅호걸은 될 수 없는 모양이다. 다른 것도 아닌 분 냄새에 머리가 아픈 걸 보면 말이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공자님.”

돌아보니 천화루주였다.

“혹 기녀들이 마음에 안 드시면 말씀하세요. 본루에는 기녀들이 많답니다.”

“괜찮습니다.”

“공자님은 참 점잖으세요.”

“극악소마님이 계신 자리에서 점잖아야죠. 저도 어디 혼자 놀러 가면 개차반입니다. 두 눈 뜨고 차마 못 봅니다.”

천화루주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호위분 때문은 아니고요?”

“제 호위 때문인 것 같습니까?”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서요.”

“표가 납니까?”

“네, 많이요.”

“들어가시면 제 호위에게 꼭 전해주십시오.”

우린 마주 보며 웃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제 호위가 원래 예뻤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셔서요.”

“어려서부터 사람을 잘 봤어요. 촉이 좋다고 하나요? 특히 여자를 보며 느낌이 왔죠. 저 여자는 화장을 이렇게 하면 아름다울 것 같다. 옷을 이렇게 입으면 예쁘겠다. 저 여자는 성격이 지랄 맞을 것 같다. 저 여자는 남자를 좋아할 것 같다. 이상하게 잘 맞췄지요. 귀신이 들렸다는 소릴 들을 정도였어요.”

“제 호위는 어땠나요?”

“아름다운 것도 아름다운 건데, 그보다 큰일을 하실 분 같았어요. 귀하게 되실 분 같았고요.”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그녀다.

“저는 어떻습니까?”

“저는 여자만 볼 줄 안답니다.”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그녀의 촉은 남자에게도 적용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함부로 촉을 남발했다가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기에, 그 재주를 여인에게 한정해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 들어가실까요?”

“가시죠.”

그녀가 먼저 앞장서 걸어가던 바로 그 순간.

쉬익.

은신을 풀고 나타난 복면인이 비수로 천화루주를 찔러갔다.

그녀는 비명조차 내지를 여유가 없었다.

긴박한 그 순간.

내가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른 한 수가 펼쳐졌다.

명왕보를 펼치며 쇄도한 나의 손에서 흑마검이 뽑혀 나왔다.

십일성에 이른 비천검법 제오식 쾌검식 창천식이 발출된 것이다.

촤아아아악.

그녀의 얼굴에 피가 확 흩뿌려졌다.

천화루주가 눈을 떴을 때 그녀를 죽이려던 복면인은 얼굴이 꿰뚫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복면인의 피를 뒤집어쓴 그녀가 놀라 돌아보았을 때, 내 검은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에서 검이 분열하고 있었다.

촤라라라락!

네 개의 검.

실제 검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검기였다. 흑마검 모양을 하고 있었기에 검이 네 개로 분열한 것처럼 보였다.

비천검법 제칠식 유천식(幽天式).

이 놀라운 장관에 천화루주의 입이 벌어졌다.

내 몸에서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기운이 은신한 적들을 모두 감지한 순간!

쏴아아아아아!

네 개의 검기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빛처럼 쏘아졌다.

그 찬란한 모습에 천화루주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탄성은 살이 찢기는 소리와 숨이 끊어지는 비명으로 이어졌다.

이어진 정적.

곧이어 검들이 관통한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푸아아아악!

은신해 있던 네 명의 복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기가 관통한 구멍에서 피를 뿜어내며 그들은 동시에 쓰러졌다.

꽝!

다음 순간 그곳에 내리꽂히듯 내려선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극악소마였다.

“어떻게 된 일인가?”

“루주님을 노린 암습이었습니다.”

내 말에 극악소마는 피를 뒤집어쓴 채 서 있는 천화루주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아닌 천화루주를 노렸다는 사실에 극악소마는 차갑게 웃었다.

맹수가 으르릉거리는 듯한 나직한 웃음소리.

그의 분노가 느껴진다. 조금 전까지 술자리에서 웃고 있던 그였기에 분노는 더 크게 느껴졌다.

언제나 그렇다. 가장 비겁하고 저열한 방식이 이렇게 효과가 큰 법이다.

극악소마는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조로 내게 말했다.

“이공자, 심장이 못생겼다는 것은 증명하지 못했으니, 이제 진짜 내 세상을 보시겠습니까?”

그래, 이러니까 혈사가 일어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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