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회 못생긴 주제에.
도박장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햇살이 비쳤고, 햇살 속에서 암기가 날아들었다.
쉭! 쉭! 쉭! 쉭!
흑마검으로 날아든 암기를 가볍게 쳐냈다. 신안술 덕분에 해를 직접 봐도 눈이 부시지 않았다.
암기를 던졌던 건너편 지붕 위 살수들의 머리통이 연속해서 박살 났다.
그들을 향해 내밀어진 극악소마의 손바닥.
그의 독문무공 마극광폭장(魔極狂暴掌)이 발출된 것이다.
내밀었던 그의 손바닥이 접히며 검지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순간.
손가락에서 빛처럼 지풍이 뻗어나갔다.
피잉! 퍽!
지붕 너머에서 이쪽으로 날아서 쇄도하려던 또 다른 살수의 가슴에 구멍이 뚫리며 떨어져 내렸다.
그의 또 다른 독문무공 혈앙지(血殃指)였다.
그는 저 손바닥과 저 손가락으로 마존의 자리에 올랐다.
극악이라는 별호가 붙은 것도 이 두 무공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적의 머리통이나 몸통이 퍽퍽 터져나가고 구멍이 뻥뻥 뚫리는 모습은 검에 찔리는 모습보다 훨씬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출교한 이후 그의 무공을 제대로 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나는 이 두 무공이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하면 그의 손끝에서는 지옥이 펼쳐졌다.
극악소마의 손가락이 천천히 나를 향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혈앙지를 발출하겠다는 긴장감이 손가락 끝에서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혈앙지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다음 순간!
피잉! 퍽!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혈앙지가 뒤쪽에서 쇄도하던 복면인의 이마를 꿰뚫었다.
나는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은 피하는 것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렇습니까?”
“피하려는 반사신경을 억눌러야 하는데 그건 실제로 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요. 이공자같은 고수라면 더욱 더요. 역시 섭혼마존은 이공자 당신이 죽였군요.”
번쩍.
이번에는 내 흑마검이 허공을 갈랐다. 내 검에서 날아간 한 줄기 검기가 극악소마의 얼굴을 스친 후, 이번에는 그의 등 뒤에서 달려들던 복면인의 몸통을 갈랐다.
“전 섭혼마존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물어보실 겁니까?”
“이젠 물어보지 않을 겁니다. 확실해졌으니까.”
또 다른 살수의 쇄도에 아니라고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내 검기와 혈앙지가 또 다른 살수의 몸을 꿰뚫었다.
“적들이 많습니다.”
“가시죠.”
나와 극악소마는 함께 걸어갔다. 이 순간 나는 내심 약간의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한바탕하고 싶은 열망이 어디 극악소마만 눌러두었겠는가?
풍신사보와 천마호신공, 그리고 십일성에 이른 비천검법. 나야말로 내 실력을 외부로 발산하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상대가 날 죽이려는 살수들이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공을 펼쳐도 될 것이다.
골목을 걸어가는데 네 명의 복면인들이 담을 넘어오며 우리 넷을 동시에 공격했다.
나를 찌르려던 놈보다 세 배는 더 빠른 움직임으로 베어버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극악소마나 청면이 싸우는 모습은 관심 없었다. 나는 오직 이안의 싸움만 보았다.
그녀는 나보다 속도가 느렸을 뿐, 나와 같은 방식으로 적을 상대했다. 피나는 수련에 혹시 있을지 모를 실수는 따라붙지 않았다.
날아든 검을 어깨 옆으로 스치듯 피하며 단칼에 그를 베어 올렸다.
츠각!
턱뼈까지 길게 잘리면서 살수가 그대로 쓰러졌다.
그녀는 당황하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잘하고 있다, 이안.
우린 골목길에서 마차가 세워져 있는 대로로 나왔다.
골목에서 있었던 암습을 전혀 모른다는 듯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하품하는 상점 주인, 그 앞에 물건을 정리하는 점원, 빗자루로 길을 쓸고 있는 노파, 그 앞을 뛰어가는 아이, 길가에 앉아 있는 노인, 그 건너편에선 중년의 행상이 가판을 들고 호객하고 있었고,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 층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악다구니를 치고 있는 여인과 아래에서 고개를 떨구고 서있는 남자까지.
일상의 평범한 순간이 한 장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우리도 자연스럽게 그림 속의 일부가 되던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알지 못할 위화감과 위기감이 솟구치며 천마호신공이 발동했다.
“조심!”
내가 경고하던 바로 그 순간, 공격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보았던 그들 모두가 살수였다.
쉭! 쉬익!
행상과 실랑이를 하던 남녀가 비수를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완벽한 합격술을 구사하며 남자는 왼쪽을, 여인은 나의 오른쪽을 노렸다. 내 눈에는 시퍼런 비수의 날에 진득한 극독이 발려 있는 것까지 보였다.
흑마검은 빠르고 정확하게 목표를 베었다.
남자의 어깨에서 가슴을 잘랐을 때, 여인의 비수가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이 빠른 움직임으로 볼 때 흑살의 살수 중에서도 가장 실력 좋은 살수가 틀림없었지만, 내 눈에는 그녀의 속눈썹이 떨리는 것까지 다 보였다.
흑마검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에게 날아드는 것을 느끼며 그녀의 속눈썹은 더욱 빠르게 떨렸다. 반응해야지 하는 순간, 서걱!
그녀의 허리를 베고 돌아섰을 때, 극악소마는 행상을 상대하고 있었다.
가판을 매고 있던 행상이 그에게 뿌린 것은 독가루였다.
극악소마가 손을 휘젓자 독가루는 그것을 날린 행상에게로 되돌아갔다. 독을 뒤집어쓴 행상은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 일과 동시에 이 층에서 암기를 날리던 여인은 혈앙지에 꿰뚫려 죽었고, 그 아래에서 검기를 날린 남자는 마극광폭장에 산산조각이 났다.
나 역시 이 상황을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인이 날렸던 암기를 사방으로 쳐내면서 동시에 사내가 날린 검기를 내 검기로 해소시켰다. 극악소마와 나는 완벽한 합격술을 펼친 셈이 되었다.
살수 중 아이는 이안에게 달려들었다.
‘베어라, 이안! 저자는 아이가 아니다!’
겉모습만 아이였지 그는 실제로는 나이 든 어른이었다.
다행히 이안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마음이 약하지 않았다.
몸을 비틀어 아이의 공격을 피한 후 침착하게 놈을 베어 넘기는 순간, 길가에 앉아 있던 노인은 어느새 달려들어 그녀의 얼굴에 비수를 찔러넣고 있었다. 스쳐도 죽는 독이 발린 비수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나는 지켜보기만 했다. 이안이 스스로 막아내기를 바라면서 나는 검기를 날리지 않았다.
푸욱!
노인의 비수가 허리를 뒤로 눕힌 이안의 눈동자 앞에 멈춰 있었다. 반면 이안의 검은 노인의 심장에 박혀 있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노인을 해치운 것이다. 뚱뚱해도 유연한 허리 덕분이었다.
내가 그녀보다 더 놀라긴 했지만, 돕지 않은 건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다. 수년의 수련보다 이 한 번의 경험이 그녀를 더욱 성장시켜 줄 테니까.
그녀가 둘을 처리하는 사이 청면은 상점 주인과 점원을 해치웠다. 그 과정에서 빗자루질하던 노파를 극악소마가 혈앙지로 죽이지 않았으면 청면은 그에게 죽었을 상황이었다.
청면이 평생을 극악소마에게 충성을 바쳤던 이유를 저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숨 한 번 내쉴 사이에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나와 극악소마의 실력이 워낙 뛰어났기에 무사히 넘어간 것이지, 서로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완벽한 합공으로 설계된 이들의 암습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이안은 얼굴이 상기된 채 탄식하듯 말했다.
“아, 애도 죽이고 노인도 죽였어요.”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그래도 그녀 마음을 풀어주었다.
“너보다 나이 많은 애고, 저자는 노인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이 죽였겠느냐?”
“한방에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고는 나는 가까운 상점으로 들어갔다.
원래 그곳에서 장사하던 상인이 구석에 혈도를 제압당한 채 쓰러져 있었다. 우리가 도박장에 들어가 있던 사이, 이 모든 살계를 꾸민 것이다.
그리고 살수들이 상인들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피 냄새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모두 살인멸구 당했을 것이다.
상인의 혈도와 아혈을 풀어주며 돌아서던 바로 그 순간.
쉭.
뒤에서 공격이 날아들었다.
서걱!
나는 벼락처럼 돌아서 방금 내가 혈도를 풀어준 남자의 목을 베었다. 너무나 빠른 내 반응에 경악하며 남자는 꼬꾸라졌다. 바깥의 살행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또 다른 살수였다.
이 암습은 정말 생각지 못한 것이었고, 위험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당했을 것이다.
진짜 상인은 더 안쪽에 있는 골방에 아혈과 마혈이 제압당한 채 쓰러져 있었다. 그를 풀어주고 상점을 나왔다.
나는 일일이 주변 집들을 돌며 그곳에 붙잡혀 있던 원래 주인들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그중 살수가 섞여 있을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들로 위장한 또 다른 살수는 검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내 검에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가게의 사람을 풀어주고 밖으로 나왔을 때, 또 다른 살수가 극악소마의 마극광폭장에 몸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극악소마가 지나가던 건물 앞 상자 속에 숨어 있던 살수였다.
이미 바깥이 다 정리되어 암살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도, 정해진 때가 되면 무조건 공격을 가하는 그들이었다.
철저히 훈련받았고, 자신이 죽는 줄 알면서도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며 공격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두려움이 배제된 살인도구로 키워진 자들이었다.
“마차를 가져오겠습니다.”
청면이 길 건너에 있는 마차를 가지러 걸어갔다.
극악소마가 내게 말했다.
“살수들에게 백만 냥의 청부금을 걸 정도면 그 배후란 놈도 보통 놈은 아니겠군요.”
“네, 본교로 따지면 마존 급의 신분은 되는 자일 겁니다. 지금은 꼬리를 밟히지 않으려고 외부의 칼을 이용하고 있지만, 몸통이 드러나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실력의 고수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습니다.”
극악소마의 두 눈이 호승심으로 빛났다. 팔마존 중 호전적인 면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였다.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는 더욱 불타오르는 남자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때였다.
쇄애애액! 서걱!
한줄기 검기가 마차의 객실 부분을 자르고 지나갔다.
검기를 날린 사람은 이안이었다. 마차 뒤쪽에 은신해 있던 살수가 마부석에 앉는 청면을 노리는 것을 감지하고, 이안이 검기를 날린 것이다.
비스듬히 잘려 나간 객실 안에서 살수가 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청면이 마차에서 내렸다. 자신의 기척을 완벽하게 감춘 살수였다 해도, 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청면이 이안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안 역시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잘했다, 이안. 청면 같은 사람에게 목숨 빚을 지게 한 것은 잘한 일이다.
흥분한 이안의 얼굴이 더욱 상기된 것을 보며 내가 슬쩍 장난스럽게 말했다.
“소마님의 마차를 부순 것은 네가 최초일 거다.”
내 말에 이안이 흠칫 놀라더니 황급히 극악소마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극악소마는 나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저 마차는 아주 비싼데.”
이안이 재빨리 대답했다.
“제가 보상하겠습니다.”
“어떻게?”
“제 월봉으로 같은 마차로 사겠습니다.”
“몇 년 치 월봉은 되어야 할 텐데?”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이안이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깎아주십시오!”
순간 극악소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여러 번 그를 웃겼지만, 지금 제일 크게 웃었다.
“못생긴 주제에 웃기는 재주는 있구나.”
대놓고 못생겼다고 말했지만 이안은 전혀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더 깎아주시면 더 웃겨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청면이 와서 나직하게 말했다.
“거기에 제 월봉도 보태겠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웃었다. 청면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절로 웃음이 났다.
그렇게 긴장을 풀고 난 후 극악소마는 청면에게 명령을 내렸다.
“할 수 있는 모든 비선망을 동원해서 흑살주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내도록.”
“네!”
그때 내가 청면에게 말했다.
“통천각 연락망을 이용하십시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사마 군사께서 분명 이해해 주실 겁니다.”
앞서 흑살에 관한 정보를 보내준 것도 통천각이었다. 내가 아는 사마 군사라면 이미 우리가 정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려뒀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안을 데려가십시오.”
“그러지요.”
목숨 빚과는 별개로 이번 기회에 제대로 여러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서였다.
“마차 부순 값은 해야지?”
“네, 다녀오겠습니다. 도련님.”
이안이 청면을 따라 그곳에서 떠나갔다.
나는 상인들에게 오늘 입은 피해를 계산해서 얼마간의 돈을 주고 돌아왔다.
“보여주기식 선심입니까?”
“선심은 맞는데, 보여주는 건 누구에게죠? 소마님에게요? 절대 통하지 않을 사람에게요?”
“저 상인들에게요. 아니면 자신에게나.”
나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히 말했다.
“그럴 지도요. 한데 보여주기식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저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보상을 받느냐 못 받느냐인데.”
“정말 착한 척 집요합니다.”
“이렇게 착한 척하고 살아도 제 검에는 오늘도 피가 가득 묻었습니다.”
극악소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서 부서진 마차에 매여 있던 말들을 풀었다.
“날씨도 좋은데 다음 마을까진 말 타고 가시죠?”
“좋습니다.”
내가 먼저 말에 올라탔고, 극악소마도 말에 올랐다. 남은 말을 각각 한 마리씩 끌면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도 달리지 않자 극악소마가 내게 물었다.
“너무 느긋한 것 아닙니까?”
난 창창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바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언제나 급한 건 실패한 쪽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