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회 눈 붓는다, 울지 마라.
이안은 깜짝 놀랐다.
그녀가 나를 만나 여러 번 놀랐지만 이렇게 놀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살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두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안아, 드디어 그날이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을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술은 언제 하나요?”
“지금.”
“정말 지금요? 그렇게 기다렸던 순간이 이렇게 불쑥 온다고요?”
“원래 운명을 바꿀 일은 갑자기 찾아오는 법이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다 운 같고, 우연 같고 그런 거지.”
“저 떨려요.”
“괜찮다. 넌 떨어도 돼. 나만 안 떨면 된다.”
내가 손을 덜덜 떨어서 침을 잘못 놓는 시늉을 했다.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장난친 거였지만 이안은 긴장하고 흥분해서 내가 장난을 치는지 마는지 멍한 모습이었다.
마음 같아선 시공이환술로 멋진 공간을 열어서 그곳에서 해주면 좋겠지만, 공간을 유지하는데 드는 내공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저기 침상에 누워라.”
이안은 시키는 대로 침상에 누웠다. 그녀는 몇 번이나 심호흡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까지만 해도 오늘 이렇게 신독정화술을 위해 눕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을 거다.
나는 정해진 혈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한 침, 한 침 사력을 다해 시침(施鍼)했다. 옆에서 보면 동네 의원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겠지만, 보는 것과는 달리 극상의 기술이 들어가 있었다.
침에 정해진 내력을 주입해야 했고, 때론 구결을 외우면서 침을 놓아야 했다. 단 한 번의 실수라도 있으면 시술은 실패이고, 그녀는 큰 내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침을 놓다가 틈틈이 그녀의 몸에 내력을 주입해서 날뛰는 기혈을 다스렸다.
그녀의 몸에서 열이 펄펄 났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밀려드는 고통에 끙끙대며 신음을 흘렸다.
“많이 아프지? 아픈 게 정상이다.”
그녀가 뭐라 이야기를 했다. 참을 수 있다는 말이었는데,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술이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중하게 시술했다.
그렇게 정해진 침을 다 놓고 나서 난 잠시 밖으로 나왔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을 다스렸다. 정말이지 심력 소모가 엄청난 일이었다.
침을 놓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모든 침을 회수한 후, 처음부터 다시 다른 순서로 침을 놓았다. 시술이 진행될수록 심력 소모는 더 커졌고 그녀가 겪는 고통도 커졌다.
“으으으윽!”
그녀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어지간히 잘 참고 무던한 그녀였지만, 이 고통만큼은 참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힘내라, 이안아.’
안타까웠지만 자신이 이겨내는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시침이 끝난 후 나는 사 온 통에 물을 받은 후 약초를 찧어서 물에 섞었다. 양 조절과 약초의 배합이 정확해야 한다.
그런 후에 다시 시침했다.
그녀에게도 마지막 고비였다.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안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다. 잘 참아라.”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냈다. 중간에 내력을 주입해서 그녀의 기혈을 어루만져 주며 어떻게든 고통을 줄여주려 애썼다.
‘참아라, 이안아.’
그렇게 세 번의 힘든 시침이 끝나고 나서야 그녀를 약물에 담갔다. 숨을 쉴 수 있게 긴 대롱을 목구멍에 연결해서 고정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났다. 부디 시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 * *
이안은 꿈을 꾸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
“공자님을 위해서 전신석화공을 익힐 수 있겠느냐?”
전신석화공이 뭐죠? 묻고 싶었지만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언제나 무서운 사부였으니까.
“네.”
“전신석화공을 익히면 부작용이 있다. 네 몸이 부을 거다.”
그녀는 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다.
“부기는 빠지지 않을 거다. 영원히.”
부기가 빠지지 않는다는 말 역시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영원히란 저 한마디가 가지는 무거운 의미가 얼마나 그녀 인생을 힘들게 할지도 알지 못했다. 그때는 고작 여덟 살에 불과했으니까.
“그래도 할 테냐?”
“네.”
하지 않는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무서운 분위기 때문에 결정한 것만은 아니었다.
검무극 곁에 있고 싶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검무극이 좋았으니까.
정말 후회하지 않았느냐고?
꿈속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그녀는 깨진 동경 앞에 서 있었다. 깨진 동경 속 낯선 여자애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 뚱뚱해져서 이젠 나인지 너인지도 모를 여자애가 화를 내고 있었다.
‘왜 네가 화를 내고 있어? 난 너 때문에 이렇게 슬픈데.’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술에 취한 검무극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젠장!”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검무극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내가 형보다 못한 것이 뭐가 있다고!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은 저 말일 것이다. 교주님은 대공자를 더 신임하고 있었고, 후계자는 대공자가 될 거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고 있었다.
능력이 되면 누구라도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천마전의 발표 이후, 공공연히 검무극을 무시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를 무시하는 것이 대공자에게 잘 보이는 것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다들 검무극이 후계 싸움에서 져서 죽게 될 거라 여겼다.
오직 그녀만이 안다. 검무극이 얼마나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는지.
꽝!
검무극이 탁자를 내리쳤다. 부서진 탁자에서 술병이 떨어져서 깨어졌다.
그녀가 가서 술병을 치웠다.
힘내세요, 도련님.
언젠가부터 검무극은 자신에게 따뜻한 눈빛 한 번 보내지 않았다. 오직 후계자가 되느냐 마느냐에 모든 정신이 팔린 검무극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검무극이 좋았다.
꿈은 그녀를 또 다른 날로 데려갔다.
모든 게 바뀌기 시작한 운명의 그날로.
신마쟁투를 마치고 돌아온 검무극이 동경 앞에 서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검무극이 물었다.
―나 어때?
저렇게 따스한 눈빛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비무에 이기셔서 기분이 좋으신 거겠지?
―강호에서 제일 잘 생기셨습니다.
―재미없다.
―월봉 주는 사람의 질문은 언제나 답이 정해져 있는 법이죠.
이런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언제였던가?
동경 속 검무극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 순간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며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녀는 이곳이 신독정화술을 펼쳤던 그곳임을 알아차렸다.
‘신독정화술은 다 끝난 건가?’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의 느낌이 달랐다.
그때 그녀가 자신의 손을 보았다.
섬섬옥수의 하얗고 긴 손.
‘!’
그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이내 방망이질하듯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꿈속일지 몰라.’
제발 꿈이 아니기를!
애타는 마음으로 그녀가 다시 눈을 떴다. 그녀의 손은 곰처럼 컸던 예전의 그 손이 아니었다. 그냥 조그만 작아져도 좋겠다가 그녀의 꿈이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아름다운 섬섬옥수였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그녀가 천천히 이불을 걷었다. 낯선 다리였다. 하얗게 쭉 뻗은 두 다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결국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사람이 너무 좋으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는 것을 그녀는 처음 경험했다.
그녀가 침상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딛는 순간 다리가 거대하게 커지면서 꿈에서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새로운 인생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침상에서 내려온 그녀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동경 앞으로 갔다.
“아!”
동경 속에는 낯선 여인이 서 있었다. 낯설면서도 낯익었다. 어려서의 모습이 있었으니까. 얼마 만에 보는 진짜 자신의 모습인가?
얼굴은 예뻤고 몸매는 완벽했다.
어떻게 한 얼굴에 화려하면서도 순수함이 동시에 깃들 수가 있을까? 서글서글한 눈매는 지적으로 보였고,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도도함이 느껴졌다.
다른 표현은 필요 없었다. 한마디로 압도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는데, 의외로 눈물은 나지 않았다.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멍한 기분 탓이었다.
그때 침상 옆에 그녀를 위한 속옷과 하얀색 궁장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하며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님을 실감했다.
―누구 거예요? 엄청 날씬한 여자 건데요?
―선물할 사람이 있다.
―속옷을 선물로 주시는 거면 엄청 가까운 분이신 것 같은데요?
―가깝지.
검무극이 가까운 사람을 위해 준비했다는 옷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속옷과 궁장을 입고 다시 동경 앞에 섰다. 아까보다 더 아름다웠다.
이 순간을 위해서 검무극이 옷을 사줬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자신을 위한 배려가 너무 기분 좋았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위한 검무극의 마음이 부작용을 고친 것보다 더 좋았다.
그녀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사람이 마당에서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이안이 천천히 그를 불렀다.
“도련님.”
그러자 검무극이 그녀를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검무극은 궁장을 입고 나온 그녀를 보았다. 순간 검무극의 눈이 커졌다.
신독정화술을 모두 마치고 그녀를 침상에 눕혔을 때 이미 그녀의 아름다운 변화를 보았다. 하지만 눈을 뜨고 자신 앞에 서 있는 그녀는 그때와는 또 달랐다. 너무 아름다워서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신독정화술은 성공했다. 축하한다, 이안.”
그녀의 눈에서 비로소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 붓는다, 오늘 같은 날은 울지 마라.”
“부어도 돼요. 한평생 붓고 살았는데요.”
“이젠 다르게 살아야지.”
“아뇨, 제 삶은 변하지 않았어요. 신독정화술을 해주시기 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똑같은 이안이에요.”
“그래, 내게도 똑같은 이안이다.”
이안이 달려가서 검무극에게 안겼다. 그녀는 검무극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말로 하면 그 고마움이 퇴색될 것 같았으니까.
“또 물어봐도 돼요?”
“뭘?”
“왜 이렇게 제게 잘해주시는 거죠?”
“묻지 마. 조만간에 또 해야 할 질문이니까.”
“네?”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검무극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자랑하러 가야지.”
“누굴요?”
“누구긴. 널 못생긴 심장이라고 놀린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부터지.”
검무극의 말에 이안이 활짝 웃었다.
* * *
이안과 길을 걸었다.
마치 물이 갈라지듯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모두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들도 쳐다보았다. 어린애도 보았고, 노인도 쳐다보았다. 승려도 보았고, 도사도 보았다. 짖고 있던 개도 울음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다 널 쳐다본다. 기분이 어떠냐?
―너무 부담스러워요.
―즐겨라.
―저렇게들 쳐다보는데 어떻게 즐겨요?
―저 시선을 즐겨. 아, 나도 저렇게 좀 봐주면 좋겠다.
―제발 가져가세요!
―익숙해지면 그런 말 안 할걸?
천화루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기녀 중에서는 소문난 미녀들도 있었지만 애초에 비교 불가였다. 같은 아름다움이지만 이안에게서는 고귀한 품격이 느껴졌다. 화장 하나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그렇게 우린 극악소마와 천화루주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극악소마는 천화루주의 무릎에 누워 있었다.
“다행히 아직 계셨군요.”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뭐가 그리 바쁘셨습니까?”
극악소마가 힐끗 나를 보다가 옆에 있던 이안을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극악소마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안의 미모는 이 말로 종결하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워 있던 극악소마조차 일으켜 세우는 미모.
“누굽니까?”
“제 새 심장입니다.”
“옛 심장은 어쩌고요?”
“버렸습니다.”
“혹시 그 못생긴 심장 죽였습니까?”
진심으로 묻는 말임을 알았기에 나는 웃었다.
“네, 제 손으로 죽였습니다.”
“죽이면 어떡합니까?”
“왜 그러십니까? 설마 못생긴 심장이 보고 싶으신 겁니까?”
“아뇨, 아직 마차 수리할 돈 다 안 갚았습니다.”
그 말에 이안이 활짝 웃었다. 그녀가 웃자 사방이 환하게 밝아지는 착각이 들었다.
그때 천화루주가 극악소마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젊었을 때보다 더 예쁘네요, 그죠?”
나는 다급히 극악소마를 쳐다보았다.
‘조심해! 함정이다, 소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