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126화 (126/214)

제126회 생색 내가며 싸울 겁니다.

여인이 다가오자 서대룡은 당황했다.

“어어? 우리 쪽으로 오는데요?”

“봐, 맞잖아.”

“오라고 손짓했으니까 오는 거죠. 와서 그럴 겁니다. 절 왜 부르셨나요? 맞죠? 그럼 이렇게 대답하셔야겠네요. 여기 이 친구 놀려먹으려고 불렀소.”

여인이 가까이 올수록 서대룡의 눈이 풀리고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그녀는 면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더욱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서대룡의 눈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물론 그녀는 이안이었다. 그녀가 두 사람 앞에까지 와서 멈춰 섰다.

검무극이 이안에게 말했다.

“내가 같이 왔다고 했는데, 안 믿네.”

그러자 이안이 눈웃음을 치며 서대룡에게 말했다.

“서 조사관님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안이 원래의 목소리를 숨기고 변조해서 말했다.

여인이 자신을 알아보자 깜짝 놀란 서대룡은 검무극에게 전음부터 보냈다.

―절 어떻게 알죠?

―내가 말했으니까.

―어떻게요? 왜요? 이런 미인 알고 있다고 한 번도 말씀 안 하셨잖아요? 각주님 성격에 자랑 안 했을 리가 없는데! 심장도 좋고, 오른팔도 좋지만 내게는 가장 예쁜 얼굴이 있다!

서대룡이 바쁘게 내게 전음을 보내던 그때 이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각주님 오른팔이시라고요?”

순간 서대룡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솟구쳤다. 이 오른팔 자리야말로, 여러 사람이 노리는 그야말로 소중하고 대단한 자리가 아니겠는가?

“아이, 뭘 그런 것까지 다 말씀하셨대?”

쑥스러워하면서도 서대룡의 어깨는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이런 것도 말씀해 주셨는데요?”

“어떤 것요?”

“권력 지향형의 비정한 성격이지만 한 여인만을 사랑하는 상남자고, 다들 침묵할 때 홀로 손을 드는 반골이면서 평화주의자이시고 객잔에서 한 잔 술과 함께 인생을 바꿀 결정을 내린 분이시라고요?”

서대룡은 깜짝 놀랐다. 과거 자신이 농담처럼 하고 다녔던 말을 눈앞의 미녀가 그대로 읊은 것이다. 서대룡은 검무극을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 자세히도 소개하셨네요.”

“그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술 모임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런 말씀까지?”

서대룡은 당황했다. 이런 미녀가 자신에 대해 알아도 너무 자세히 알고 있었다.

‘각주님은 나에 대해서 왜 이렇게 자세히 말씀하셨지?’

그렇다고 기분 나쁘진 않았다.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미녀가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이 어찌 기분 나쁜 일이겠는가?

평소에 그는 자신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미인계를 쓴다면 절대 걸리지 않을 거라고. 마음이 중요하지 외모가 뭐가 중요할까, 그런 마음으로 살아오던 그였다. 주안술(朱顔術)로 나이를 속이고, 상대의 생기를 빨아먹는 것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무림이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눈앞의 여인을 보자, 정말 이런 여자가 작정하고 유혹하면 거부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 그녀였지만, 괜히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요즘은 술 모임 안 하시나요?”

“한 사람이 빠져서, 잠시 미뤄뒀습니다.”

뒤늦게 아차, 하며 서대룡이 검무극에게 물었다.

“아! 이 무인은요?”

“참 빨리도 물어본다.”

검무극이 이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못 볼 거다.”

순간 서대룡이 흠칫 놀랐다.

“왜요?”

“…….”

“설마? 무슨 일 있는 것 아니죠?”

“있으면?”

“왜 이러십니까? 재미없게. 다른 장난은 다쳐도 이런 장난은 치지 마세요. 저한테는 안 통해요.”

“장난 아니다. 이제 그 이안은 못 본다.”

서대룡이 검무극을 빤히 쳐다보다가 웃었다.

“이런 장난이 안 통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말씀드릴까요?”

“뭔데?”

“바로 각주님 때문이죠.”

“나? 내가 왜?”

“각주님하고 같이 나갔는데 이 무인에게 문제가 생겼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러다 문득 서대룡은 어딘가에 생각이 미쳤다.

“아, 생각해보니 각주님. 너무 하시네요.”

“또 뭐가?”

다음 말은 전음으로 날아들었다.

―저런 미녀 만났다고 그새 우리 이 무인 내팽개쳐버리고. 같은 남자로서 이해는 한다지만, 그래도 이 무인에게 그러면 안 되죠. 평소에 이 무인이 얼마나 각주님 생각하는데요. 어디 있어요? 설마 오자마자 수련하라고 수련장에 보낸 건 아니죠? 아, 만약 그랬다면 각주님에게 실망할 겁니다.

―야, 나도 말 좀 하자.

―됐고. 이 무인 내놔요! 아뇨, 제가 직접 찾아갈 겁니다.

서대룡이 미소를 지으며 이안에게 물었다.

“혹시 풍채가 좀 있는 여협 못 보셨습니까?”

“아, 봤어요.”

서대룡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검무극에게 말했다.

―이런 장난 안 통합니다. 저 황천각 수석 입학이라고요. 그리고 이제 앞으로 색 각주라고 부를 겁니다.

―내가 뭘 했다고?

―이 무인 버리고 저 미녀 데려왔잖아요! 아, 정말 못 됐다. 갑자기 죄 없는 저 미녀분까지 밉게 보입니다.

서대룡이 이안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안의 숙소로 걸음을 옮기면서 내심 서대룡은 탄식했다.

‘아, 이름도 못 물어봤네. 하긴, 어차피 다시 볼 사람도 아니니.’

그때 이안이 뒤에서 말했다.

“그분 지금 수련장에 안 계세요.”

“네?”

자신이 지금 수련장부터 찾으러 간다는 것을 이 여인은 어떻게 알았을까?

서대룡이 놀라자 검무극은 더욱 놀랄 말을 꺼냈다.

“네가 지금까지 내게 전음 보낸 내용 그대로 다 전해줬다.”

서대룡이 깜짝 놀랐다.

―왜요?

―전음 말고 말로 해.

서대룡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왜요? 왜 저분에게 전음을 보내요? 아무리 미인이시라지만, 각주님 이런 분 아니셨잖아요? 정말 이상해지셨어요.”

그러자 이안이 말했다.

“저도 이상해졌죠?”

이건 또 무슨 이상한 말이지? 서대룡이 눈을 껌벅이던 그때, 이안이 품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냈다.

일전에 고월의 만년한철 족쇄를 녹여 만든 바로 그 비수였다.

그 비수를 보자마자 서대룡은 깜짝 놀라 검무극에게 따졌다.

“왜 저분이 비수를 가지고 계시는 겁니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검무극을 쳐다보던 서대룡이 흠칫 놀랐다.

“설마 이 무인 비수 뺏어서 이 소저에게 줬습니까? 아니죠? 저거 각주님 것이죠?”

“내 것은 여기 있는데? 저거 이안 거 맞아.”

검무극이 자기 비수를 꺼내서 보여주자 서대룡이 버럭 소리쳤다.

“정말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너무 하십니다!”

처음으로 서대룡은 검무극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검무극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가 웃기만 하자 서대룡은 더욱 화가 났다.

“대체 나가셔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여색에 미친 겁니까? 이 비수는 그날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나눠 가진 거잖습니까? 물론 각주님이 주신 거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에게 큰 의미를 지닌 비수 아닙니까? 그런데 이 무인 비수를 뺏어서 저 여인을 줬다고요? 다음 미녀에게는 누구 것 줄 겁니까? 자, 미리 드릴 테니 가져가십시오. 아니지, 이건 못 가져갑니다. 제 비수는 이 무인에게 줄 겁니다.”

“이안을 이렇게까지 위하는 줄 몰랐다.”

“제 속마음 다 말할 수 있는 친굽니다. 제 술친구라고요.”

그때 이안이 말했다.

“가요, 술 마시러.”

서대룡이 흠칫했다. 안 된다는 말이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내뱉은 거절.

“지금은 좀 곤란합니다.”

서대룡이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내 평생 못 볼 미녀가 술 마시자는 것을 거절하다니! 왜 하필 이런 상황에서 만나서. 아, 이렇게 박복한 인생이 다 있을까?’

하지만 그래도 이안이 먼저였다.

“지금은 버림받은 제 술친구부터 챙겨야 해서요. 그럼 이만.”

“고마워요, 이렇게까지 절 생각해 주셔서.”

서대룡이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이안을 쳐다보았다.

이안이 둘렀던 면사를 벗었다. 그 순간, 마치 얼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착각이 들었다.

드러난 아름다운 얼굴에 서대룡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표정을 굳혔다. 지금 눈앞의 미모에 감탄할 때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안 갑니다! 못 갑니다!”

“저 돌아오면 밤새 진탕 술 마시기로 약속했잖아요?”

“네?”

“저예요. 이안.”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서대룡은 눈만 껌벅였다.

“장 군주님이랑 셋이서 가을에는 대천산에 단풍 구경 가서 마시고, 겨울에는 눈 맞으면서 마시기로 했잖아요?”

이안이 원래 자기 목소리를 내자 서대룡은 화들짝 놀랐다.

“목소리는 맞는데? 정말 이 무인이시라고요?”

“네, 저예요.”

“…… 아니잖아요?”

“어떻게 된 일인지 술 마시면서 장 군주님 계실 때, 다 말씀드릴게요.”

말하는 것이 이안이었기에 그제야 서대룡은 이안임을 알아차렸다.

“정말 이 무인이시군요!”

서대룡이 마지막 확인차 검무극을 쳐다보았다. 검무극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확인해 주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색 각주? 여색에 미쳐?”

“아아! 죄송합니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그에게 검무극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다. 잘했다. 자네 오늘 이안에게 점수 왕창 땄다.”

그러자 이안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술은 제가 끝까지 쏩니다.”

“으아아아! 좋습니다.”

이안이 검무극을 보며 말했다.

“우리 술 마시러 가도 되나요? 장 군주님도 모시고요.”

신독정화술이 얼마나 힘들었고, 여행이 얼마나 멋지고 재미있었는지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심정이 그녀의 얼굴에 다 드러나서 검무극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은 실컷 마셔라!”

이안과 서대룡의 신난 뒷모습을 지켜보던 검무극이 천마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 *

천마전은 변함이 없었다.

피의 길 너머에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나는 천천히 붉은 융단을 걸어 아버지가 계신 곳까지 걸어갔다.

아버지를 다시 보니 너무 기뻤다. 무뚝뚝한 저 표정과 눈빛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아버지,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아버지 못 뵙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난 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렸다.

“어디 전쟁이라도 치르고 돌아온 것 같구나.”

“큰 전쟁 치렀죠.”

“쓸데없이 사도맹 일에 끼어드니까 그랬지.”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비사인이 석관추의 손자보단 우리가 조종하기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원래라면 더 나은 사람이란 말이 정확했겠지만, 조종하기 낫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섣부른 평가를 아버지는 극히 싫어하셨고, 경계했으니까.

“우리에겐 석관추 손자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더 유리했을 거다.”

“왜 그렇습니까?”

“그놈이 훨씬 욕심이 많거든.”

“대신 무림이 더 혼란스럽지 않겠습니까?”

“그게 우리와 뭔 상관이더냐?”

저 말이 진심임을 나는 안다. 본교는 무림이 혼란할수록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해왔으니까.

아버지. 그렇다고 우리가 언제까지 피를 먹으면서 커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왜 곧장 돌아오지 않았느냐? 네 형이 마존들을 장악하는 것이 신경 쓰이지 않았느냐?”

“신경 쓰이죠.”

“한데 왜?”

“전 모든 마존을 내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왜?”

“그럼 형이 궁지에 몰릴 테니까요.”

“!”

“그러면 형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할 겁니다. 제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그런 선택을요. 후계자 다툼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제 대에서 멈추겠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아버지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숨구멍을 열어주겠다고? 정말 거기까지 생각한 거냐?”

“해야죠. 제가 싸워서 얻는 것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 생각하면, 그보다 더 깊고 멀리 생각해야죠. 이렇게 아버지께 생색도 내가면서 머리 써가면서 싸울 겁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나 역시 가만히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저도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뭐냐?”

“석관추나 그의 사부인 백망기가 움직였을 때 제 걱정을 조금이라도 하셨습니까?”

“안 했다.”

“왜 안 하신 겁니까? 저를 그만큼이나 믿으신 겁니까?”

“널 믿은 것이 아니다. 극악을 믿었지.”

“극악소마를 믿었다고요?”

“그래, 그가 네 옆에 있었다면 분명 할 만한 싸움이라 여겼기 때문일 거다. 극악의 판단을 믿었다.”

“앞으론 아들을 좀 믿어주십시오.”

“당시 널 기준으로 삼았다면 본교가 널 구하러 출진했어야지.”

“아! 전 언제쯤 신임받는 아들이 될까요?”

과장된 나의 말에 아버지는 여전히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내가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해도 아버지는 저 표정으로 날 보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하늘로 올라가는 날 보면서 말씀하시겠지. 신선들 믿지 마라!

“가서 쉬어라.”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돌아서 나오는데 뒤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잘 돌아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다른 어떤 말보다 아버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아버지를 향해 돌아서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계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렇게 천마전을 나온 후 아버지 다음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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