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128화 (128/214)

제128회 하나의 질문만 할 수 있다면.

장호는 서대룡에게 이끌려 풍류주점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 술자리 모임은 이 무인이 돌아오고 나서 가지기로 하지 않았소?”

“그랬지요.”

“한데 왜 마시자는 거요?”

그것도 아직 일과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꼭 가야 한다면서 자신을 잡아끌 듯 데려가는 것이다. 지금껏 없었던 일이었기에 장호는 순순히 서대룡의 뜻을 따랐다.

이안이 없어 술 모임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그전까지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처음 둘만의 그 어색하고 불편했던 자리는 마지막 날쯤 되어서는 제법 친근한 사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오늘 장 군주께 소개할 사람이 있어서요.”

“누군데요?”

“가보시면 압니다. 제게 중요한 사람이라서 꼭 소개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알겠소.”

장호는 왠지 서대룡의 표정에서 어떤 치기 어린 장난기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껏 만나면서 서대룡이 자신에게 장난을 친 적은 없기에, 오늘의 이 자리가 대체 어떤 자리인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풍류주점으로 들어섰다.

주인장 조춘배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아, 오랜만에 오셨군요. 두 분이 오실 줄 알았으면 자리를 비워둘 걸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항상 앉던 이 층 자리에 면사를 쓴 여인이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괜찮습니다.”

서대룡이 장호를 데리고 여인이 앉아 있는 이 층 자리로 올라갔다. 여인은 술과 간단한 안주를 시켜둔 채 앉아 있었는데, 면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자세히 알아볼 수 없었다.

서대룡이 그 앞에 앉자 장호는 비로소 소개해주겠다는 사람이 이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이공자가 언급하던 여인이 이 여인인가?’

서대룡이 좋아하는 후배에 대해 언급하며 놀리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한데 황천각 조사관이라면 면사를 쓴 채 자신을 만나지는 않을 텐데? 그것도 이렇게 소개받는 자리에서.

장호가 내심 궁금해하던 그때 면사 여인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장 군주님.”

물론, 그녀는 이안이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목소리를 변조해서 말했다.

그때였다.

장호가 이안을 알아보았다.

“이 무인?”

순간 이안은 물론이고 함께 있던 서대룡도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인 줄 아셨어요?”

이안의 물음에 장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나직이 말했다.

“저는 소리에 아주 민감합니다. 사람 목소리나 억양이 가지는 특징을 잘 기억하고 알아보죠. 그래서 자주 들었던 목소리는 아무리 변조해도 원래 목소리를 알아낼 수 있소.”

“아!”

이안과 서대룡이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제가 마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소리에 대한 민감함이 무공수련이나 실전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이건 처음으로 밝히는 내용입니다.”

어려서의 꿈이 화공이란 것도 서대룡 앞에서 처음 밝혔다.

장호는 처음 술자리 모임을 할 때만 해도, 이 자리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밝힐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검무극과 가까운 사람들이니, 친해 둬서 나쁠 것 없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이 두 사람 앞에서 온갖 이야기를 다 하고 있다.

이안이 면사를 벗었다.

“오랜만이에요, 장 군주님.”

“잘 돌아오셨소, 이 무인.”

장호는 반갑게 이안을 맞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대룡은 내심 감탄했다. 이안의 미모에도 장호는 그 어떤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자신은 세상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지 않았던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심지어 이안이 무안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까.

물론 이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장호가 예전 그대로 대해주자 더 편해 보였다.

“자, 오늘은 제가 다 쏩니다. 그러니 마음껏 시키세요!”

세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단연 오늘의 주인공은 이안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신독정화술을 받았는지, 여행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처음 본 혼례는 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서대룡과 장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쳐주었다.

그러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서대룡이 장호에게 물었다.

“장 군주님. 이 무인의 변화가 놀랍지 않습니까?”

“놀랍네요. 너무 아름다워지셨네요.”

“그것뿐입니까?”

“네? 다른 뭔가가 필요합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너무 놀라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요. 이미 두 분이 먼저 만나셨고, 그래서 저 놀리시는 것 아닌가 의심까지 들었습니다.”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서대룡이 넌지시 목소리까지 낮춰가며 말했다.

“그럼 일부러 참을 필요 없습니다. 우리끼리인데.”

예쁘잖아요? 예쁘다고 말해주세요, 제발! 이런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 서대룡의 모습에 장호는 결국 웃고 말았다. 우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관계가 된 것이다.

“이 무인에게 폐가 될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의 외모에 어떤 의미도 두지 않소. 내 얼굴에 상처가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소. 이 얼굴로 누가 누굴 평하나 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고.”

진솔한 장호의 말에 서대룡도 평소 항상 생각하고 있던 바를 전했다.

“장 군주님 그 상처, 멋있습니다.”

“멋있기는요. 흉하지요.”

“아뇨, 멋있습니다. 정말. 제게 파십시오!”

그러자 장호가 망설이지 않고 비수를 뽑으려고 했다.

“똑같이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서대룡이 화들짝 놀라 그를 말렸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그러니 솔직히 말씀하세요. 흉하다고요.”

“사연이 있으니까 멋있는 거죠. 그 사연까지 사겠다는 겁니다.”

“대단한 사연은 없습니다. 적들과 싸우다 다친 건데요.”

“무인에겐 그게 대단한 사연이죠. 술 마시다 친구 비수에 상처 나고 싶진 않습니다.”

서대룡은 자신이 친구란 말을 썼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잔합시다.”

장호가 술잔을 들었다.

서대룡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그는 이 자리가 편했다. 마군들 앞에서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하다가, 이 자리에 오면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쉬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때 이안이 돌아왔다.

“제가 어디까지 말했죠?”

장호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 무인, 이 밤은 기니 처음부터 다시 해도 됩니다.”

* * *

그 시각 나는 일화검존을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취마는 내가 잘 알지.”

뜻밖에 일화검존이 그와 교분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술도 마시고 그러는데? 며칠 전에도 마셨고.”

“며칠 전에도 마셨다고요?”

“가끔 날 찾아와서 술을 마셔.”

언뜻 상상되지 않는 모습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권력을 쥐고 있는 팔마존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교류가 오가는 것은 당연했다.

“취마는 어떤 사람입니까?”

“같이 술 마시면 기분 좋은 사람.”

일화검존은 극악소마와 정반대로 평이 후했다.

“언제부터 친해지신 겁니까?”

“나도 모르겠네. 언제부터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그냥 술 마시다 친해졌어.”

“취마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수더분해.”

정말 그가 수더분한 사람이었다면, 극악소마가 그렇게 평했을 리가 없다. 다시 말해서 취마는 상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의미.

“마존이 수더분할 리가 있겠습니까? 발톱을 감추고 있는 거겠죠.”

“그럴지도 모르지. 한데 취마에 대해선 왜 물었나?”

“이번에 취마 쪽 사람이 사고를 쳤습니다. 황천각에서 잡아넣긴 했는데, 취마가 움직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그 핑계로 이공자가 움직이려는 것은 아니고?”

“역시 예리하시네요. 형과 저 사이에서 거취를 정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취마거든요.”

일화검존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거취를 정하지 않았는데? 나는 아직 이공자 편에 서겠다고 정하지 않았네.”

그녀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랬기에 나는 과장되게 그녀에게 말했다.

“아! 저는 제 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요?”

“물론 내가 우리 이공자 좋아하지. 솔직히 대공자와 비교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하나 친한 것은 사적인 부분이고, 후계자 문제는 공적인 부분 아니겠나?”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대공자를 선택하겠다는 말도 아니니, 섭섭하게 생각지 말게.”

“저는 검존님께 절대 섭섭해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예전에 검존님을 만났을 때, 제가 드린 말씀 기억나십니까? 선배님께서 도마 어르신보다 제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란 것을 증명하라고 떼 아닌 떼를 썼었지요.”

일화검존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 기억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이제 선배님 차례입니다. 네가 대공자보다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 것을 증명해라! 이렇게 말씀하실 차례죠.”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만 해도, 그녀가 나를 호의로 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때 제가 말씀드렸죠. 꿈이니, 이상이니, 충성이니…… 그런 것들로 수하나 후배들의 마음을 공짜로 얻으려는 사람들, 경멸한다고요. 선배님의 마음 역시 그런 것으로 얻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가능한 선배님이 원하시는 것을 들어드리면서, 동시에 제가 천마의 자질이 된다는 것을 보여드려야겠지요.”

내 말에 일화검존의 얼굴에 감탄한 기색이 스쳤다.

“역시! 내가 비무 친구를 잘 뒀군.”

이 순간 비무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것에 비무도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여전히 강해지고 싶은 열망이 있다.

“다시 비무할 그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 *

일화검존을 만난 후 거처로 돌아왔다.

함께 지내던 고월은 집에 없었다. 그는 통천각과 같은 정보조직을 만들라는 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교를 떠난 후였다.

그가 보내온 수 통의 전서가 거처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준 돈으로 중원 곳곳을 돌며 조직망을 만들고 있다는 보고였다.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걱정시키는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듯, 풍천교주와 함께 나간 것이다. 둘이서 티격태격하며 이번 일을 함께 진행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밤에 이안이 잠시 들렀다.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단 많이 취하진 않았다.

“어찌나 수다를 떨었는지 술이 다 깨버렸어요.”

“좋았냐?”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라더니, 두 사람에게 실컷 떠들고 나니 여행이 완성된 느낌이에요.”

임독양맥 타통 때문인지, 아니면 이번에 깨달은 바가 있는지, 그녀는 교를 떠나기 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느낌을 준다.

“이번에 여행하면서 결심한 바가 있었어요.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기왕 말을 꺼냈으니 말씀드릴게요. 절 향한 관심이 지나친 것에 기분 좋기도 했지만,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그리고 이 부담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제가 진정으로 강해지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이안은 다시 매섭게 수련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노력하니, 결국 뭘 이뤄도 이룰 거라 믿는다.

“그렇다고 수련장에 틀어박히지만은 않을 거예요. 혈천도마님처럼 책도 많이 읽고 사람도 만나고. 무공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저란 사람이 강해질 거예요. 그래야 청면과 서진, 두 사람을 제 조장으로 삼을 수 있겠죠? 그 사람들이 단지 무공만 강하다고 제게 오진 않을 테니까요.”

나는 그녀가 진짜 고수가 될 거라 믿는다. 노력의 방향이 진짜 고수가 되는 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공은 재능과 노력이 중요하다. 어떤 무공인가가 중요하고 사부가 누군가가 중요하다. 실전 경험도 중요하다.

하지만 극한을 향해 달려가던 무공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그녀는 나처럼 깨닫게 될 것이다.

무학의 끝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냐의 싸움이라는 것을.

나는 마존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과정도 강해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귀령자의 혼인을 말려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 또한 강해지는 과정이었다고 여긴다.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무의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럼 저 가볼게요. 술은 다 깼는데,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네요.”

돌아서 나가려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안아.”

“네.”

“만약에 네가 취마와 술을 마시게 됐어.”

“갑자기 취마존과요?”

“주정뱅이 세계에서는 너도 한가락 하잖아?”

“그야 그렇죠.”

“취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데 질문은 딱 하나만 할 수 있어. 그럼 뭘 질문할 거야?”

이안이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한 가지를 생각해냈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정말 많은 술을 마셨을 거예요. 그렇다면 전 이걸 묻겠어요.”

마치 취마가 앞에 있다는 듯 이안이 물었다.

“당신은 언제 누구와 마셨던 술이 가장 맛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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