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회 평생 주점에선 안 싸울 거냐?
“어떻게 오신 겁니까?”
내 물음에 아버지는 항상 하시는 말씀으로 대답했다.
“지나가다 들렀다.”
그럴 리가? 아버지는 마존들의 행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셨고, 내가 네 마존과 한자리에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오셨을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나오신 걸까? 어디서부터 보고 들으셨을까?
아버지와 많이 가까워졌지만 이런 민감한 질문을 서슴없이 할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으로 마존 넷과 자리를 가졌습니다.”
“어땠느냐?”
“아버지가 오시지 않으셨으면, 틀림없이 주점에서 나가자마자 아버지를 찾아뵈었을 겁니다. 앞으로 마존들은 어떻게 상대하고 다뤄야 하는지 여쭤보러 갔을 겁니다. 아, 답답할 때마다 아버지께 답을 구하는 것, 습관 되면 안 될 텐데요.”
진심 반, 아부 반의 내 하소연에 원래라면 그저 코웃음이나 치고 마셨을 텐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한 마디 해주셨다. 그것도 내 마음에 와닿는 말이었다.
“그런 걱정은 십 년쯤 후에 해도 된다.”
“앞으로 십 년까지는 받아주실 겁니까?”
아버지의 코웃음은 이 순간에 나왔다.
“이렇게 힘들지 몰랐더냐?”
“몰랐습니다.”
“기강을 잡겠다고 설레발을 치길래, 나는 다 아는 줄 알았지.”
“알았다면 그런 말 안 했을 겁니다. 밖에서 보는 모습이 다르고, 나를 대하는 모습이 다르고, 다른 사람과 얽히니 또 다르고.”
일부러 죽는소리를 더 했다. 내가 힘들어하면 할수록 더 좋아하실 아버지였으니까.
“맞습니다. 저는 약해빠졌습니다.”
“그나마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다.”
회귀하고 아버지와 사냥갈 때만 해도 지금과는 또 달랐으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조촐한 술상이 차려졌다.
아버지는 간단한 채소볶음에 풍류주점에서 제일 독한 술을 가져오게 했다. 조춘배는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실력을 다해 채소를 볶아왔을 거다.
“한잔하자.”
아버지와 술을 마셨다.
“크, 독합니다.”
“겁도 없이 취마와 술을 마시면서 이깟 독주를 겁내느냐?”
“사람 좋던데요?”
“사람 보는 눈이 그 모양인데 아직 살아있는 것이 용하구나.”
아버지에게 취마는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취마는 어떤 사람입니까?”
“웃고 즐기면서 상대를 농락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술병은 함부로 열지 않는 게 좋아.”
“어른들 말씀 틀리지 않다더니, 혈천도마도 취마를 음흉한 자라고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자기 음흉한 줄은 모르고.”
아버지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혈천도마를 보면 이걸로 좀 놀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게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취마와 단둘이 술을 마셔본 적이 있으십니까?”
“있다.”
“취마가 아버지에게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내게는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 말 많은 취마가요?”
그건 외외였다. 오히려 아버지 앞에서 더 말을 많이 하면서 너스레를 떨 것도 같은데.
“어차피 그래봤자 아버지를 농락하지 못한다 생각해서일까요?”
“모르지. 그 사람 속을 어찌 알겠느냐?”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네요.”
“원래 독이 든 것들이 화려한 법이지.”
괜히 취마에게 현혹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사람 속을 파고들려 하지 마라. 그냥 드러난 것으로만 판단해라. 그게 실수가 적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술을 비웠다. 다시 잔을 채우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형하고 술 마시면 무슨 말씀 나누십니까?”
“그건 왜 묻느냐?”
“그냥 궁금해서요. 형에게 제 약점을 다 가르쳐주시는 것 아닙니까?”
“누가 봐도 아는 약점인데,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느냐?”
“제 약점이 뭔데요?”
“딱 죽기 좋은 그 싸구려 감성.”
나는 기분 좋게 웃었다.
“저는 그걸 제 장점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즐겁고 재미있게 가보자. 어차피 가는 길 멀고 험한데. 협박하고 옭아매고 죽이고. 이러지 말고 재미있게 가보자.”
“우리 일에 재미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 재미 찾다가 죽는 거다.”
아버지, 저는 좀 찾아도 됩니다. 한순간도 화무기가 제 머릿속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화무기에게 또 죽는 모습이 떠올라 벌떡 일어나서 연무장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아버지도 이제 좀 즐겁고 유쾌하게 사십시오.”
“천마의 권위와 공포가 사라지면 저들은 같잖은 협의를 앞세워 우릴 치러 올 거다.”
문득 아버지는 아버지 대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무늬 잠옷에 속으면 안 될지도 모르겠다.
“더 강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미 강해졌어야지. 그래야 오늘 마존들과의 자리도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로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아버지와의 마지막 비무 이후, 다시 무공 성취를 이룬 상태였다. 지금 아버지와의 비무는 나의 무학에 큰 자극과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탁자 옆 공간에 섰다.
“여기서요?”
“평생 주점에서는 안 싸울 거냐?”
“그래서가 아니라. 이 좁은 곳에서 싸웠다간 다 부서질 텐데요?”
그러자 아버지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누가 하수들처럼 다 때려 부수며 싸우느냐? 뭐라도 하나 부수는 사람이 지는 거다.”
여기에 있는 물건들을 부수지 않으면서 싸우자는 뜻이었다.
나는 우리가 있던 자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 층보다 좁고 천장도 낮았다. 거기에 탁자와 의자들이 가득했다.
여기서 아버지와 비무를 한다고? 아무것도 부수지 않으면서? 정말이지 지금껏 했던 그 어떤 비무보다 어려운 비무가 될 것이다.
나는 일 층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온 뒤 사람들 다 내보내고 문을 닫았기 때문에 주점에는 조춘배뿐이었다.
“주인장, 잠시 주방에 들어가 있으시오.”
“네!”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마시오!”
“오늘 너무 많이 놀라서 더 놀랄 심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춘배가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갔다.
난 아버지와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마주 섰다.
“힘들다고 했느냐?”
“네.”
“약해서 그렇다.”
아버지가 기도를 발출하자 숨이 막혀왔다. 천마호신공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아버지의 기도는 태산처럼 무거웠고 늪처럼 갑갑했으며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아버지가 천천히 천마검을 뽑아 들었다.
“천마는 죽이고 싶을 때 죽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상대가 내 앞에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는 내가 살려줬기 때문이다.”
챙!
천마검과 흑마검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속도는 그대로였지만 검에 실린 힘은 절제되어 있었다.
챙!
허공에서 다시 한번 검끼리 부딪쳤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검에 실린 힘으로 말씀하고 계셨다.
이 힘이 기준이다.
마치 악기를 조율하듯, 정확히 이 힘으로만 싸우자고 말씀하고 계셨다.
이 싸움은 상대보다 약해서 지는 싸움이 아니다. 힘 조절에 실패하면 지는 싸움인 것이다.
챙!
조율은 딱 세 번뿐이었다.
챙챙챙챙챙챙챙!
천마검과 흑마검이 화려하게 격돌했다.
약속한 힘으로만 검을 휘둘렀다. 원래 각 초식마다 사용하던 힘이 있었으니, 그 힘을 무시하고 지금의 힘으로만 싸우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집중력과 심력 소모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이 순간 나는 실력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회귀 후 지금까지 모든 싸움은 제약을 뒀다.
실력을 이만큼만 보여줘야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식 없이 싸웠다. 내 실력을 보여도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하셨지만, 적어도 아버지는 믿습니다.
나는 마음껏 싸웠고, 자유롭게 싸웠다. 아버지였기에 가능한 싸움이었다.
싸우면 싸울수록 내 몸은 점차 빠르게 싸움에 적응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싸움의 수준을 올렸다.
이제 부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물을 건들지 않는 싸움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의 공격을 피해 탁자와 의자 사이를 오가면서 그것들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그야말로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우리의 격돌은 아름다웠다. 탁자와 의자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검선은 평생을 그림만 그렸던 화공이 그려내는 추억이었고, 술병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검 부딪치는 소리는 늙은 악공의 구슬픈 애환이었다. 그러다 종이가 찢어지기도 했고, 악기의 줄이 끊어지기도 했다.
갈수록 싸움은 격렬해졌고 제약은 커졌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는 벽에 걸린 등불마저 지키며 싸웠다. 검이 일으키는 바람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막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쉬이이익!
아버지의 검기가 날아들었다.
절제된 힘으로 발출된 검기였다. 여기에 내공이 제대로 실렸으면 이 한 수에 주점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내 흑마검에서도 검기가 날았다. 아버지처럼 절제된 내공이 깃든 나의 검기가 아버지의 검기를 허공에서 해소했다.
파아앙!
바람이 불어 등잔의 불이 꺼지려는 것을 내가 몸을 날려서 막았다. 위태롭게 흔들렸지만 꺼지지 않았다.
검기가 연속해서 날아들었다,
만약 하나라도 놓치면 검기는 뒤로 날아가면 벽을 부수게 된다. 그러면 검기를 날린 사람이 지는 거냐고? 아니다. 이 경우에는 검기를 놓치는 쪽이 지는 싸움이 되는 것이다.
나는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아버지와 싸웠다.
많은 소리가 있었다.
발소리, 바람 소리,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 검기가 발출되는 소리, 검기가 해소되는 소리,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 등불이 흔들리는 소리. 하나하나 무학의 정수가 깃든 소리들.
나는 반드시 이 비무를 복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러 외울 필요는 없었다. 모든 초식은 완벽했고 상황은 절박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수들의 연속이었기에 이 싸움은 두고두고 내 배움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렇게 비무가 끝나고 우린 동시에 검을 거뒀다. 천마검과 흑마검이 동시에 검집에 들어가며 철컥,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의자 하나 넘어지지 않았다. 벽에 작은 상처 하나 없었다.
“비겼습니다!”
“아니, 네가 졌다.”
아버지가 와서 내 앞쪽 탁자에 놓인 젓가락 통을 들어 보였다. 꽂혀 있던 젓가락 끝이 잘려 나가 있었다.
“아, 제 검기가 스친 자국이군요. 이건 또 언제 보셨대?”
나는 아버지가 계시던 탁자의 젓가락 통을 살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졌습니다!”
졌지만 진 승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내 실력에 진정 놀라고 감탄하고 있었다.
“너와 극악이 백망기를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짐작은 했다. 네게 큰 성취가 있었음을.”
그것이 이 정도일 줄은 모르셨으리라.
아버지는 분명 나에게 큰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길을 물었다. 내 무공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이제부터 풍신사보 수련에만 전념해라.”
아버지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이 결론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풍신사보 수련을 멈췄다.”
“왜 멈추셨습니까?”
깜짝 놀란 나에게 아버지는 솔직히 말씀하셨다.
“벽을 만났다.”
“아버지가 한계에 부딪혔으면 저는 영원히 넘지 못하겠군요.”
잠시 나를 쳐다보던 아버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못 넘어도 너는 대성을 이룰 수 있다.”
“무슨 뜻입니까?”
“구화마공 때문에 생긴 벽이다. 구화마공을 먼저 익힌 상태에서는 풍신사보의 대성을 이룰 수 없었다.”
“아!”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무공에도 상성이 존재한다. 애초에 맞지 않는 무공이 있는가 하면, 무엇을 먼저 배우는가에 따라서 대성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구화마공을 익히기 전에 대성을 이루지 못하면, 배운 이후에는 영원히 이룰 수 없을 거다.”
“꼭 그 전에 대성을 이루겠습니다.”
풍신사보가 대성을 이루면 십이 성을 이룬 비천검법과 합쳐져서 또 다른 성취를 보이게 될 것이다. 나중에 구화마공과 합쳐졌을 때는 더 큰 효과를 보일 것이고.
잠시 나를 응시하던 아버지가 물었다.
“아직도 힘드냐?”
“가르침을 주신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아직도 유쾌한 천마가 될 생각이냐?”
“웃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잠시 나를 응시하던 아버지가 말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일 층을 다 내려가셨을 때 무심하게 툭 내뱉듯 말씀하셨다.
“시간 되면 바둑이나 두러 오너라.”
계산대 아래 숨어 있던 조춘배가 허리가 접히도록 인사를 한 후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안 부서졌으니 걱정마시오.”
내가 추구하는 마도는 세상 모든 주점 주인장들이 제일 좋아할 마도 아니겠소?
조춘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렇게 긴 하루가 끝나네요.”
* * *
조춘배의 하루는 끝났지만, 나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나는 혈천도마를 찾아갔다. 그는 창가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화난 마음에 도를 휘두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차분했다.
“오늘은 무공수련 안 하시네요.”
“왜 왔나?”
“어르신 뵙고 싶어서 왔죠.”
아까 주점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가져온 것을 건넸다. 그 일을 이야기하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게 뭔가?”
“보약입니다.”
“보약?”
혈천도마가 깜짝 놀랐다.
“처음 뵈었을 때보다 더 마르셨습니다. 입맛도 돋우고 몸도 보양해주는 약입니다. 마의 졸라서 얻어온 거니 약효는 믿으셔도 됩니다.”
혈천도마는 당황했다. 전에 피독주를 생일선물로 주었을 때보다 더 당황했다.
“교주나 가져다드리게.”
“제가 독 탔다고 의심하며 눈앞에서 저보고 다 먹으라고 하실 분입니다.”
내 농담 아닌 농담에 혈천도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거 사실 아버지께서 드시는 건데 마의 졸라 얻어온 겁니다. 아시잖아요? 우리 아버지 몸 엄청나게 챙기시는 거.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시고 드십시오.”
그렇게 걸어서 나오는데 뒤에서 혈천도마가 물었다.
“내게 왜 이렇게 잘하는 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게 잘해주시니까 저도 잘하는 거죠. 이렇게 잘해드리면 다른 마존들 셋보다 더 도움이 되실 분이라 생각하니까 잘해드리는 거죠. 저도 얼마나 이기적이고 계산적인데요. 그럼 주무세요. 약 꼭 챙겨 드시고요. 서 조사관 통해 확인할 겁니다!”
깊어진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할 수 있을 때 해야죠, 지금 생각났을 때 안 하면 다음은 없는 법이니까요.
비로소 나의 긴 하루도 끝났다. 뒤늦게 취기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