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141화 (141/214)

제141회 이번에는 제대로 된 선택을.

나는 아는 길을 골랐다.

회귀 전에도 나는 오른쪽 임무를 골랐고 오늘도 오른쪽 봉투를 골랐다.

지금은 어느 임무라도 해낼 수 있어!

이런 자신감을 표할 때가 아니다. 겸손하게 과거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였다.

봉투에는 종이가 한 장 들어있었는데 이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위마징벌(僞魔懲罰).

예전에 내게 내려졌던 그 명령이었다.

사마명이 전음을 보내 설명했다. 두 사람이 각기 서로의 임무를 모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무림에 천명회(天命會)라는 괴조직이 암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의 명을 받아 새로운 무림을 만들겠다는 기치를 들었지만, 그들은 사적인 이익을 꾀하는 자들이지요. 최근에는 본교 마존을 사칭하며 여러 사건을 일으켜서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공자께서는 그들 회주를 찾아내 척살하고 천명회를 없애십시오.

사실 회귀 전에 이 전음을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을 우습게 여겼다. 실력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본교의 마존들을 사칭하고 다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받아들인다. 감히 마존을 사칭한다는 것은 감당할 자신이 있거나 다른 계략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내가 임무를 받자 검무양이 나머지 봉투를 골랐다. 물론, 나는 저 봉투에 무슨 임무가 적혀 있는지 잘 안다.

사마명은 검무양에게도 전음으로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준 후, 우리 두 사람에게 말했다.

“임무는 혼자서 해결해야 합니다. 다만 두 분이 임무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본교의 통천각의 모든 정보망을 이용할 수 있으며 마군을 비롯한 본교의 마도사강(魔道四强), 그리고 팔마존 중 원하는 곳을 단 한 번 쓸 수 있습니다.”

혼자서 해결하되 놈들을 토벌할 때는 본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사마명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우물 안 개구리나 온실 속 화초가 본교를 이끌 수는 없는 법, 확실하게 해결하고 돌아오라!”

이 위험한 임무를 맡기면서 조심하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버지시다. 내가 웃으며 경직된 분위기를 풀었다.

“아버지는 우리 중에 누가 성공하고 왔으면 좋겠습니까?”

내 물음에 아버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한마디 하시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시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우릴 내려다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공평했다. 나에게도, 형에게도 사적인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회귀 전의 나는 지금 이 순간 아버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임무를 어떻게든 완수해야지, 오직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걱정 마세요. 무사히 해결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런 믿음을 눈빛으로 전했다. 이 역시 후계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나를 믿으면 믿을수록 후계자의 자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테니까.

아버지를 향했던 내 시선이 검무양을 향했다.

‘형, 예전처럼 잘하고 돌아와. 나도 잘하고 돌아올 테니. 아, 내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차갑게 쳐다보지는 말고.’

* * *

다음 날 아침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안이 찾아왔다.

“부르셨어요?”

“나 잠시 출교했다가 돌아올 거다.”

“어디 가시는데요?”

“밝힐 수는 없고.”

내가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이안은 천마전에서 내려온 명령을 수행하러 떠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올 때 맛있는 것 사다 주세요!”

“놀러 나가는 것 아니라고. 엄청 위험한 일 처리하러 가는 거다.”

“저 무공 수련 때문에 바빠서 먼저 가볼게요.”

“무시무시한 적들이 막 쏟아져 나온다고.”

“다녀오세요!”

그렇게 문 앞까지 달려갔던 이안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이렇게 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요? 저도 함께 가서 돕겠습니다.”

그녀는 장난치던 이안에서 자나 깨나 내 걱정인 이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혼자 해야 하는 일이야. 그리고 나도 장난이다. 걱정 안 해도 돼.”

“정말이죠?”

“괜한 걱정 말고 네 일이나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러잖아도 얼마 전에 청면님이 찾아왔어요.”

두 사람이 만나던 모습을 지켜봤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조장하겠대?”

“아뇨, 아직 생각 중이세요. 그냥 몇 가지 물어보고 가셨어요.”

“예감이 어때?”

“반반이에요. 사실 지금은 제발 와줬으면 하지만, 막상 진짜 오면 더 걱정될 것 같기도 해요. 저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거니까요.”

“이후의 일을 걱정하는 건 청면의 고민을 무시하는 거다. 얼핏 생각에 네가 그 사람을 책임져야 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고요?”

“그래, 청면도 심사숙고해서 오는 거다. 주판 열심히 두드려서 네게 오는 것이 더 이득이란 판단을 내렸으니까 오는 거지. 와서 아니다 싶으면 돌아갈 테고. 그러니 부담 갖지 마라.”

내 말에 이안이 씩 웃었다.

“강해져라, 이안. 그럼 네가 고민하는 열 가지 문제 중 아홉 가지는 저절로 해결될 거다.”

이안과 작별한 후 거처를 나섰다.

나가기 전에 마존들을 한 번씩 보고 갈 작정이었다. 굳이 챙길 필요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번에는 한 번씩 보고 나가고 싶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극악소마의 악인곡이었다.

항상 그 하얀 방에서 벽을 바라보던 그였는데, 오늘은 청면이 그의 부재를 알렸다.

“마존께서는 며칠 전에 출교하셨습니다.”

“어디 가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소?”

“제게도 밝히지 않고 나가셨습니다.”

“돌아오시면 제가 들렀다고 전해 주시오.”

“네, 그러겠습니다.”

돌아서 나오는데 청면이 내게 물었다.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말씀하시오.”

“갑자기 이런 질문 이상하게 여겨지시겠지만, 이공자에게 귀영대는 어떤 조직입니까?”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잘 알았기에 나는 솔직히 대답해주었다.

“미래에 나의 주력이 될 조직이오.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이끄는 조직이기도 하고. 아마 무림에서 가장 바쁜 조직이 될 거요. 극악소마님 밑에 있을 때가 좋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청면의 가면 속 눈이 웃음을 짓는 것이 보였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면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안을 위해 그에게 몇 마디 해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판단해서 결정을 내려야만, 후회조차 값진 후회가 될 테니까.

다음으로 일화검존에게 들렀다.

취마에게 지난 일을 듣고 나니 그녀의 인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혈천도마와 잘 이뤄졌으면 그녀는 지금보다 행복해졌을까?

“요즘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괜한 소리 마시게. 요즘 주름이 많이 늘어서 고민인데.”

그러면서도 일화검존은 오랜만의 외모 칭찬에 얼굴이 환해졌다.

“취마와 술 마셨다면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취마가 다녀갔네. 좋은 술이 들어왔다고 주고 갔네. 새삼스럽게 안 하던 짓을 하더군.”

“술 주면서 뭐라고 하던가요?”

“자네와 호형호제하게 됐다고 어찌나 자랑하고 좋아하던지.”

“그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와 호형호제하면 배분이 다 꼬이는데.”

“그럼 나와도 친구 하세.”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농담으로 드렸던 말씀이니까.”

취마는 호형호제를 자랑하러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내게 모든 걸 고백하고,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과연 취마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취마는 도마와 사이가 좋지 않은데, 괜찮겠나?”

“선배님이 도와주셔야죠.”

“어떻게?”

“마음이 안 내키시더라도 도마 어르신에 대해 좋은 말씀도 해주십시오. 압니다, 못마땅하신 것. 그래도 제 얼굴을 봐서 부탁드립니다.”

일화검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직 내 얼굴로도 도마에 대한 반감을 없앨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나아질 거라 기대한다. 취마가 혈천도마에 대해 헐뜯는 것을 중지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그녀 역시 도마에 대한 감정이 서서히 바뀔 수도 있을 테니까.

다음으론 취마에게 들렀다.

그런데 여빈이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취마님께서는 폐관 수련에 드셨습니다.”

갑작스러운 말이었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폐관 수련을요?”

“근래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주기를 좀 배출해야겠다면서요.”

“좋은 일이죠?”

“네, 제가 정말 바라던 일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이공자님.”

“별말씀을요. 저하고 술도 줄이고 술 마실 때 안주도 많이 먹기로 약속했으니, 여 무인께서 잘 챙겨 주십시오.”

“네, 그러겠습니다.”

예전부터 느꼈다. 이 여빈이 취마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 마음을 취마는 알고 있을까? 능구렁이처럼 알면서도 모른 척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마존들 중에는 혈천도마의 거처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어르신의 도가 더 매서워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수련 삼매경 중인 혈천도마였다.

“자네가 성장하면 할수록 적도 매서워질 거네.”

“정말 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수련하시는 겁니까? 형을 지지하는 마존들과 한판 붙으실 작정이십니까?”

“단지 후계자 싸움 때문만은 아니네.”

“그럼요?”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나? 용이 승천할 때는 비바람을 몰고 오는 법이라는 말.”

“그럼요. 어르신이 그러셨죠. 그 비바람에 내 사람들이 휩쓸려 날아가고 있다고.”

“맞네. 자네는 미꾸라지가 흙탕물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거라고 했지만, 그 평지풍파에 무림의 잠들어 있던 용들이 깨어날 거라 생각하네.”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자네가 보여준 것을 보면, 이것도 과소평가지. 나가서도 조심하게. 본교나 무림맹, 사도맹이 무림을 나눠서 장악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전체 무림인들에 비하면 아주 일부 숫자에 불과하네. 우리보다 강한 자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잊지 말게. 기인이사가 모래알처럼 많은 곳이 강호라는 것을.”

“항상 신중히 판단하고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잠깐.”

혈천도마가 방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열어보니 단약이 하나 들어 있었다.

“속공단(速功丹)이네. 혹시라도 급할 때 쓰게.”

속공단은 내공이 바닥났을 때 복용하면, 평소보다 두세 배 빠르게 내공을 회복시켜 주는 단약이었다.

그에 따른 부작용이 없기에 거금을 줘야만 구할 수 있었고, 그조차도 흔하지 않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껴뒀다가 어르신 쓰십시오.”

“늙은이 속공단까지 먹이면서 부려 먹을 작정인가? 자네나 가져가 쓰게.”

그가 속공단을 억지로 내 손에 쥐여주었다. 나에 대한 걱정과 속정이 느껴져 가슴이 울컥했다.

어르신, 걱정 마십시오. 조심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기왕 받는 것, 나는 분위기를 즐겁게 받았다.

“더 주실 것 없습니까? 들어가셔서 더 찾아보시지요.”

“없네! 이제 없어!”

“강하게 부정하시는 것 보니까, 있군요. 다음에 또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웃으며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혈천도마가 물었다.

“음흉한 놈과는 어떻게 되었나?”

“앞으로 호형호제하기로 했습니다.”

혈천도마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가 또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미꾸라지라면 결코 그 음흉한 놈과 호형호제할 수 없었을 거네.”

취마가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겠지만, 취마와 호형호제한 것이 대단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어르신 믿고 제 마음껏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늙은 몸으로 이 무거운 도를 휘두르고 있지 않나?”

혈천도마의 거처를 나온 후 교를 나섰다.

인적이 없는 곳에 이르자 나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쾌속보 때문에라도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좋아진 요즘이다.

하지만 달리다가도 쉴 때는 확실히 쉬었다. 이번 나의 행적은 모두 천마전에 보고되기 때문이다. 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것을 굳이 모두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쾌속보를 극한으로 발휘해서 달리다가 정해진 지점에 도착하면, 나머지 시간은 그곳에서 나머지 풍신사보를 연마했다.

암영보는 더욱 은밀해졌고 점멸보는 더욱 빨라졌으며, 명왕보는 더욱 흉포해졌다. 수련하고 또 수련하고. 모든 노력과 집중력을 발휘했다. 당분간 내 무공 목표는 무조건 풍신사보의 대성이었으니까.

통천각에서 보내준 자료에 따르면 천명회는 호남 일대에서 여러 사건을 일으켰다.

최근에 사건이 일어난 곳은 두 곳으로 영흥(永興)과 동구(洞口)였다.

예전에는 영흥으로 가서 사건을 파헤치며 천명회를 추적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영흥 쪽 사건은 천명회의 소행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천명회를 모방한 자들이 저지른 짓이었다.

그로 인해 과거의 난 시간을 많이 낭비했고, 뒤늦게 동구로 가서 그들의 흔적을 뒤쫓았다. 그 탓에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발견했어야 할 단서들을 놓쳤고, 결국 임무를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

동구에 도착한 나는 곧장 사건이 벌어졌던 월풍문(月風門)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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