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145화 (145/214)

제145회 지랄 맞아도 맛있을 것 같은데.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극락요희였다.

그녀가 연분홍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거기 잘생긴 아우님!”

나를 향한 그녀의 눈빛에 색기가 흘렀다.

“우리 아우님은 나와 함께 나가는 게 어때? 여긴 곧 험한 꼴이 펼쳐질 것 같은데.”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어쩌죠? 부인은 제 취향이 아닌데.”

“어머! 부인이라니? 나 그렇게 나이 많지 않아. 그냥 누님이라 불러.”

내가 극악소마에게 물었다.

“몇 살쯤 되었습니까?”

“족히 육십은 넘었을 겁니다.”

그러자 극락요희가 버럭 소리쳤다.

“닥쳐라! 이 못생긴 마귀 새끼야. 난 아직 스물여덟이다.”

그녀는 극악소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겁 없는 악녀였다.

“십 년 전에도 스물여덟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걸 기억해?”

“그때도 사십은 넘어 보였다.”

극악소마는 이런 말이 그녀를 가장 기분 나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분노한 극락요희의 몸에서 요사스러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오늘 드디어 그 가면 속 얼굴을 보게 되겠네. 마교에 기어들어 가지 않았으면 진작 넌 내 손에 죽었을 거야.”

대화만 들어도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혈로삼군 중 셋째가 오히려 극악소마 편을 들고 나섰다.

“저 노파의 요기는 날이 갈수록 요사스러워지는군요.”

그러자 옆에 있던 둘째가 말리는 척 극락요희를 조롱했다.

“아우야, 함부로 입을 놀렸다간 저 요물이 네 정기도 쪽쪽 빨아먹을 거다.”

극락요희가 굳은 얼굴로 그들을 돌아보자 이번에는 혈로삼군의 첫째가 입을 열었다.

“아우들 입방정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지나가던 개가 짖었다 생각하게.”

극락요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저 개새끼들은 어째 사람만 보면 저리 짖을까요?”

그래도 첫째와는 나름대로 친분이 있어 보였다. 딱 봐도 혈로삼군을 이끄는 사람은 차분한 성격의 첫째였다.

“다음에 나올 때는 입마개를 하고 나오겠네.”

그때, 셋째가 귓속말을 하는 시늉을 했다. 물론 목소리는 여전히 커서 모두에게 들렸다.

“만날 저리 두둔하는 걸 보면 큰형이 저 요물 년과 뜨거운 밤이라도 보낸 것 아니겠소?”

“그럼 형수님으로 모셔야지.”

첫째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극락요희에게 말했다.

“노망났다고 생각하시게.”

겉으로는 실없는 말이나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언제라도 출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파락호처럼 입을 놀리는 둘째와 셋째도 그 하나하나의 기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벌써 극락요희에게 갈기갈기 찢겼을 그들이었다.

나는 거미줄처럼 여러 기운을 발출해서 그들의 기도를 살폈다. 마치 먹잇감이 걸리면 거미줄이 진동하는 것처럼, 그들의 기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예민하게 감시했다.

그들은 여유로웠다. 자신들이 합공하면 극악소마는 가뿐히 죽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분위기였다. 오가는 농담이 그런 자신감을 반영했다.

그때 마지막에 들어왔던 염라신군이 입을 열었다.

“노망났으면 죽어야지.”

그는 목소리를 일부러 변조해서 마치 사신이 말하는 것처럼 음울하게 말했다.

그가 품에서 한 권의 책자를 꺼내 펼쳤다. 그가 가지고 다니는 살생명부였다.

“진작 팔열지옥으로 떨어졌어야 할 나쁜 놈들인데. 지금이라도 보내주마.”

그러자 혈로삼군의 막내와 둘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저 미친놈의 병증은 아직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요.”

“이놈아, 우리 이름을 쓸 것이 아니라 저기 가면 쓴 놈 이름을 적어야지.”

나는 그들이 서로를 잘 알고, 심지어 자주 만나는 관계임을 짐작하고는 극악소마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계십니까?

―이들은 악인곡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천마신교 내 극악소마가 머무르는 곳이 악인곡이다. 하지만 방금 극악소마가 말한 악인곡은 자신이 기거하는 곳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중원에 악인들이 모여 사는 진짜 악인곡이 있다.

악인곡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죄를 짓고 도망간 죄인들이 하나둘씩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는데, 늪과 독사, 독충이 버글거리는 지형에 온갖 함정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함부로 들어갔단 몇 걸음 들어가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설령 위험을 잘 넘겨서 안으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안에는 온갖 부류의 악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가르쳐주던 아이가 비수로 목을 찌르고, 마음씨 좋아 보이는 노파가 밥에 독을 타는 곳. 바로 그곳이 악인곡이었다.

무림맹에서 몇 차례 그곳을 토벌하려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악인들 숫자가 너무 많아서 번번이 큰 피해만 입고 돌아선 것이다.

그럼에도 악인곡이 하나의 세력이 되어 무림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들이 악인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들을 규합하려 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배신했다. 눈만 뜨면 서로 뺏고 싸우고 죽여서 하나의 세력으로 결집할 수 없었다.

그런 악인곡인데, 그곳에 있던 이들이 극악소마를 죽이려는 목적으로 뭉친 것이다. 평범한 악인도 아니고 이 정도 되는 인물들을 움직였다면, 이것만으로도 배후 인물은 정말 대단한 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작전은 뭡니까?

내 전음에 극악소마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다 쓸어 버리기죠.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저들의 계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거든요.

―물론 저겠죠?

―아뇨, 제가 함정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한 거죠.

저들이 극악소마의 심기를 제대로 건든 것이다.

감히 날 죽이기 위해 함정을 파? 그것도 은원전까지 이용해서?

극악소마는 지금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기분대로 처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에 기회만 보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혼자 앉아 있던 혈랑도가 벌떡 일어나더니 통보하듯 말했다.

“극악소마, 나와 생사결이다.”

그러자 곧장 염라신군이 나섰다.

“극악소마는 이미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내가 데려간다.”

그가 생사 명부를 펼치니 거기에 극악소마의 이름이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극락요희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극악소마를 탐냈다.

“지랄 맞아도 맛있을 것 같은데.”

혈로삼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것들이 죽이면 앞으로 잘난 척을 계속 들어줘야 할 겁니다. 우리가 앞장서죠.”

다들 극악소마와 싸우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그들에게 있어 극악소마를 죽인 일은 두고두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그 모습에 내가 극악소마에게 말했다.

“인기 많습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파 쪽에 가면 난리 납니다. 날 죽이겠다고 십 리는 줄 섭니다.”

그의 농담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연스럽게 악인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눈치로 볼 때 그들은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

혈랑도가 내게 물었다.

“애송이, 너는 누구냐?”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원래 자기만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남의 사주를 받아 사람을 죽이러 올 줄은 몰랐군요.”

정곡이 찔린 혈랑도가 차갑게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어떻게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가 오직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사람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검무극이오.”

“검무극?”

그러자 뒤에 혈로삼군 중 첫째가 나를 알아보았다.

“천마의 둘째 아들이군.”

지금껏 평온하던 그의 표정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젠장! 빌어먹을 놈! 천마 혈육이 있는 자리로 우릴 몰다니.”

그러자 둘째가 그의 말을 받았다.

“극악소마와 함께 온 줄 몰랐다고 잡아떼겠죠. 그렇다고 물러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난감하군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들 역시 반드시 극악소마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 같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감히 마존을 죽일 생각은 하지 못할 테니까.

반면 혈랑도는 내 신분을 알아도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네 아비를 믿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구나. 내가 네 아비를 두려워할 줄 아느냐?”

이 역시 그의 자존심이 발동한 결과였다. 오직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그였다. 하지만 이게 어찌 자존심이겠는가?

“지켜야 할 게 없는 사람은 두려울 게 없는 법이지요.”

내 말에 그의 기세가 고조되었다. 당장에라도 도를 뽑아 들 것 같은 상황에서, 나는 기세의 맥을 끊으며 극악소마 뒤쪽으로 물러났다.

혈랑도는 함부로 도를 뽑지는 않았다. 아직 내 진짜 실력을 모를 테니, 극악소마를 조심하는 것이리라.

내가 모두가 들으라고 대놓고 극악소마에게 물었다.

“이번 일의 배후는 이 자들을 동원할 정도의 인물이죠?”

“보시다시피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직접 나서지 않고 이들을 보낸 겁니까?”

“아마…… 이공자 때문일 겁니다.”

“저 때문이라고요?”

“이들 중 누군가가 이공자를 죽이기를 바랄 겁니다. 그럼 이공자를 죽인 책임은 그자에게 넘어가겠지요.”

“아주 비겁한 놈이군요.”

내가 악인들을 보며 말했다.

“자, 누가 먼저 이 비겁한 의도에 넘어가 줄 겁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리 악인곡이라도 천마란 이름이 주는 두려움이 있었다. 아버지가 정말 열받으면 악인곡도 쳐버릴 수 있었으니까. 지금껏 놔둔 이유는 그곳이 무림맹에 더 큰 부담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악인들끼리 전음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티격태격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듯 보이지만, 그들은 강호에서 닳고 닳은 악인들이었다. 목숨이 걸린 일을 처리했기에 그들은 매우 신중했다. 그 숱한 악행에도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기도 하다.

잠시 후, 극락요희가 요사스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나섰다.

“아우님, 정말 아우님은 나와 나가야겠네. 귀한 분이 이런 추잡스러운 악인들과 뒤엉켜서 될 일인가?”

그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나를 죽이려고 마음먹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멀리 있는 천마보다 가까이 있는 배후 인물이 더 두려웠던 모양이다.

극락요희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동생, 우리 나갈까?”

부채에서 선홍빛 기운이 흘러나오던 그 순간, 요기 가득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그녀가 나에게 섭혼술을 사용한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인의 내공을 갈취한 그녀의 섭혼술이었다.

내 눈동자에 선홍색 빛이 서리는 그 순간, 극락요희가 극악소마에게 소리쳤다.

“움직이면 이공자는 죽어!”

극악소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경고하지 않았어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섭혼마존을 내가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극락요희의 섭혼술이라고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는가? 그렇게 나를 믿고 있었을 테니까.

내가 섭혼술에 완전히 빠져들어 이지를 상실했다고 여기자 극락요희는 내게로 다가와서 손바닥을 내 단전에 가져다 대었다.

“우리 아우님의 싱싱한 내공 맛 좀 볼까?”

후우우우우웅!

단전에서 내력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극락요희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천마의 정기를 빨아먹는 것이 평생 내 소원이었다! 그 혈육을 먹으니 이제 소원의 반은 이룬 셈이지.”

극락요희의 표정이 희로애락을 담으며 시시각각 변했다. 극악소마도, 장내의 다른 악인들도 모두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혈로삼군의 막내가 극악소마를 향해 입을 놀렸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너희 천마의 혈육이 당하는데도 구경만 하는구나.”

그러자 극악소마가 차분히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 뒷일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우린 악인곡에 숨어버리면 그만이다. 너희 시체는 불태워서 버리면 우리 소행인지 누구도 모를 거다. 설령 밝혀지더라도 너희 마교가 과연 그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악인곡을 칠까?”

셋째의 대답에 극악소마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극락요희가 내공을 갈취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털썩.

극락요희가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깜짝 놀란 혈로삼군의 첫째가 그녀를 살폈다.

“할망구, 왜 그래?”

그녀를 살피던 첫째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죽었다! 내공이 고갈돼서 죽었다!”

그때 내가 눈을 번쩍 떴다.

“아, 배부르다! 지랄 맞아도 아주 맛있네요.”

그녀의 내공을 모두 내가 역으로 흡수한 것이다.

일부러 당해주는 척했지만 내게 사술은 통하지 않는다. 특히 섭혼술류는 절대 통하지 않았다.

최근에 무학에 심득이 있었던 데다가 혈안정수와 천마호신공, 천맥강화술까지 더해졌으니 그녀가 내 몸에서 내공을 가져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결국 극락요희는 평생 남자들 갈취하던 수법을 역으로 당하며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나는 그녀에게서 얻은 내공을 단전에 갈무리하며 한층 더 깊어진 눈빛으로 염라신군에게 말했다.

“뭘 그리 보고 있소? 명부에 우리 누님 이름 적지 않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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