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회귀-151화 (151/214)

제151회 함께 있을 때 우린.

마을은 평범했다. 아니, 평범해 보였다.

행인과 장사하는 이들이 있고, 심지어 아이들이 뛰어다니기도 했다.

이 광경만 보고는 이곳이 ‘악인곡 마을’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냥 얼핏 봤을 때는 평범한 마을이지만 이곳을 오가는 이들의 시선과 눈치, 그리고 느낌은 평범하지 않았다.

은밀히 서로 눈빛이 오가는 것을 느꼈지만 우린 모른 척 길을 따라 걸었다.

“이곳 모두가 악인곡주를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는 자들이 많죠. 녹림(綠林)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랬기에 경공으로 달려서 들어가지 않았다.

우린 우리의 이동이 침입이나 공격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했다. 공격이라 판단되면 악인곡의 모든 악인이 나서게 된다. 좋든 싫든 나서서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키려 들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그저 낯선 방문객이 되어 걷고 있었다. 이 차이는 매우 큰 차이였는데 악인곡의 생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극악소마가 있기에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공터에 둘러앉아 십여 명의 남녀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뭐가 그리 즐겁고 좋은지 그들은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을 지나치던 그 순간.

그들이 벌떡 일어나 암기를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암기가 그들의 손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쉬이이이익.

콰콰콰콰콰!

그들보다 한발 먼저 혈천도마의 도기가 그들을 휩쓸었다. 이미 우린 그들이 암습하리란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

웃고 떠들고 놀고 있는 것까진 연기가 괜찮았는데, 우리가 지나갔음에도 그 누구도 눈길 하나 주지 않았던 것이다. 두세 명이라면 모를까 십여 명이 앉아 있는데 단 한 명도 보지 않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웠으니까.

“악인곡의 악인 대부분은 돈이라면 영혼도 파는 자들입니다. 아마 악인곡주는 우리가 오는 것을 대비해 현상금을 내걸었을 겁니다.”

극악소마의 설명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백만 냥은 걸어야 할 텐데요.”

그러자 취마가 말했다.

“당연히 한 사람당이겠지?”

그렇게 농담을 하며 걸어가는데 양쪽 숲에서 다시 암습자들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검존이 가볍게 날아올라서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면서 검기를 날렸다. 검이 그녀와 함께 돌면서 사방으로 검기를 뿌렸다.

달려든 자들이 검기에 잘리며 모두 절명해 쓰러졌는데 단 하나의 검기도 빗나가지 않았다.

검존이 다시 우아한 신법으로 걷고 있는 자리로 내려섰다.

우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까 하던 말을 계속하며 걸었다.

“악인곡주가 천하제일 거부도 아니고 한 사람당 백만 냥을 어찌 걸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자들만 몰려나오는 거겠지.”

취마가 말하는 순간 앞쪽 수풀에서 암기가 날아들었다.

우린 다들 가볍게 몸을 틀어서 피했다. 다섯 명 사이로 암기들이 빠져나갔다. 절대 못 피할 것처럼 매섭게 날아들었지만 다들 가볍게 움직여서 모두 피했다.

이번에는 취마가 움직였다. 그의 신형이 번쩍하더니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들어갔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암습자들을 어떻게 해치웠는지 한마디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돌아 나온 그가 술을 한잔 마시며 말했다.

“다들 한 잔 줬더니 마시고 잔다.”

취마가 싸우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이 모습만 봐도 무공만큼은 우습게 봐선 안 될 사람이다.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나루터였다.

“여기서부터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합니다.”

우린 그렇게 나루터에서 구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노는 제일 어린 제가 젓겠습니다.”

내가 노를 젓는 모습을 보더니 혈천도마가 말했다.

“배를 다루는 법은 언제 배웠나? 아주 익숙한데?”

“제가 못 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머지 세 마존들도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부끄럽게 왜들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그러니 제가… 더 잘 젓잖아요? 제가 또 주목받는 것을 좋아해서.”

내가 농담을 했지만 다들 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못 하는 것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일 것이다.

그렇게 배가 빠르게 물살을 헤쳤다.

잠시 강물을 쳐다보던 취마가 불쑥 혈천도마에게 말했다.

“이번에 적들에게 출수하시는 모습을 뵈니 선배님께서는 여전히 정정하십니다.”

갑자기 취마가 자신을 높여주자 혈천도마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야 술을 잘 안 마시니까.”

그러자 일화검존이 말했다.

“그럴 때는 그냥 고맙네, 한마디 하세요. 어찌 나이를 먹어도 심술은 줄지 않는지.”

참견은 했지만 부드러운 어조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오히려 더 꼬장꼬장하게 굴었겠지만, 이번에는 혈천도마가 한발 물러났다.

“고맙네.”

순순히 취마에게 고맙다고 말한 것이다.

“별말씀을요. 저는 느낀 대로 드린 말씀인데요.”

일화검존은 어쩐 일이냐는 표정으로 혈천도마를 쳐다보았다.

취마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노력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와 취마의 시선이 마주쳤다. 고마워, 형. 잘하고 있어.

습격은 계속되었다.

배가 강 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물속에서 암습자들이 튀어나오면서 암기를 날렸다.

이번에는 내가 노를 든 채 날아올라서 놈들을 후려쳤다.

후려치고, 그놈을 밟고 다시 다른 놈을 후려치고, 또 그놈을 밟고 후려치고.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극상승의 보법과 경공술이 합쳐진 수법이었다.

그렇게 뛰어오른 자들이 모두 노를 맞고 머리통이 터져 물속으로 떨어졌다. 물고기 비늘 복장을 갖춰 입은 그들은 황하 일대를 누볐던 황하수귀(黃河水鬼)들이었다. 지나가던 배를 약탈하고 선객들을 살육하던 그들은 결국 악인곡까지 쫓겨와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배로 내려서던 바로 그 순간.

꽝!

폭음과 함께 우리가 타고 있던 나룻배가 박살 났다.

나와 마존들이 모두 날아올랐다. 수귀들이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며 입에 문 대롱에서 독침을 날렸다.

픽픽픽픽픽픽픽!

하지만 그 독침에 맞아주는 마존은 아무도 없었다. 허공에서 몸을 움직여 암습을 모두 피했다. 이번에 나선 사람은 극악소마였다.

핑! 피잉! 핑! 핑!

혈앙지가 연속해서 발출되었다. 나는 처음 알았다. 극악소마의 지풍이 이렇게 연속해서 발출될 수도 있다는 것을.

독침을 쏜 자들이 죽은 물고기처럼 시체가 되어 둥둥 떠올랐다.

나와 마존들은 각자 부서진 배 조각에 올라섰다. 사람 팔뚝보다도 작은 조각에 올라섰음에도 가라앉지 않았다.

촤아아아아아아.

마존들을 태운 나무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멀리 뒤에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수귀들이 있었지만, 감히 우릴 공격하지 못했다. 내력을 발휘해 부서진 나무 조각을 타고 강을 건너는 수법만으로도, 전의를 상실하게 하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렇게 우린 순식간에 반대쪽 강가에 도착했다.

이름을 알아볼 수 있는 자들이 앞을 막아선 것은 그곳에서 백여 장 떨어진 곳이었다.

앞을 막아선 다섯 명의 무인이 펼치는 신법이 보통이 아니었다.

혈천도마가 그들을 알아보았다.

“중경오사(重慶五邪)!”

그들은 과거 중경 일대를 거점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던 자들이었다.

“세월이 지나 우릴 알아볼 사람이 드문데. 늙은이, 너는 누구냐?”

“나를 잊었군.”

“나를 아나?”

혈천도마는 그저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우릴 막아서는 걸 보면 늙으면 기억력만큼이나 판단력도 흐려지는 법이지.”

일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죽이려고 나섰는데 왠지 모를 찝찝함이 그를 자극했다. 분명 어디서 본 늙은이인데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죽여라!”

일사가 수하들에게 내린 명령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마존들에게 내려진 명령이 되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린 한 사람씩 상대했다.

극악소마가 혈앙지를 발출했다. 가까운 곳에서 발출된 혈앙지를 피하지 못하고 사사의 이마가 뚫리며 쓰러졌다. 일화검존의 검법이 이사의 목을 베었고, 내 창천식이 오사의 가슴을 눈 깜짝할 사이에 갈랐다. 취마의 혈루에 삼사의 머리통이 깨져 쓰러졌다.

남은 사람은 일사뿐이었다. 그들이 죽는 순간 그는 기억이 났다.

“아! 당신…… 당신이 왜 여길?”

그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한때 혈천도마도 강호를 진동시키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었는데, 세월이 지나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일사가 다급히 몸을 날려 달아나려 했지만, 혈천도마의 대도에 몸이 반 토막 났다.

나는 함께 싸우면서 한 가지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냥 무심하게 싸우는 듯 보였지만, 마존들은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한 수, 한 수 신중하게 사용했고 상대가 어떤 수법을 쓰는지도 안 보는 척 유심히 보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 신경 쓰는 상대는 악인곡의 악인이 아니라, 그들 서로였다. 그리고 가장 유심히 살피는 것은 역시 나의 움직임과 무공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실력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모든 것을 보여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실력을 줄이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의 수장이 될 사람이니까. 나를 믿고 따르게 해야 하니까.

이번에는 독연을 쓰는 자들이 공격을 해왔다.

은신해있던 몇 놈이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독연을 뿌렸다.

혈천도마와 일화검존이 동시에 나서며 소맷자락을 휘두르자 날아들던 독연기가 그것을 뿌린 자들에게 날아갔다.

그러자 그들이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뿜어내며 고통스럽게 쓰러졌다.

이곳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혈천도마와 일화검존이 합을 맞춰 적을 상대했다. 그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로를 향한 눈빛은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있다.

“이제 저 들판만 지나가면 악인곡주의 거처가 나옵니다.”

악인곡주의 거처를 백여 장 남기고 한쪽에서 창을 든 악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선두에 선 거대한 덩치의 남자는 기둥처럼 큰 창을 들고 있었다.

그는 한 자루의 창으로 무림에서 악명을 날리던 거력귀창(巨力鬼槍)이었다. 사파 고수였던 그는 창법에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는데, 무림맹 지단을 공격한 죄로 무림공적으로 몰려서 사라졌던 인물인데 이곳 악인곡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반대쪽에서도 수십 명의 악인이 등장했다. 검은 무복과 복면으로 눈만 내놓은 그들은 살수들이었다. 그들을 이끄는 자는 은월(隱月)이었다. 한때 최고 실력의 살수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었는데, 이곳에서 살수 조직을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방향에서 등장한 자들은 아랫도리 속옷만 입은 자들이었다. 넋이 나간 눈빛으로 서 있는 그들은 약물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겉모습에 방심했다간 그들에게 온몸이 뜯겨 죽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무공이 고강했고 도검에 찔려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이 작정하고 미친놈들처럼 달려들면 그 기세를 감당할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여인들로만 이뤄진 무리도 모습을 드러냈고 사냥꾼 복장을 한 자들도 모습을 드러냈고 거지 무리도 있었다.

등장한 이들은 악인곡주의 명령을 받는 자들이 아니라, 각자 자기 세력을 갖추고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싸우면서 악인곡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했다.

악인곡주의 수족들이 죽자 자기 자리가 위험하다고 여긴 것 또한 이 자들 때문이었다.

우릴 향한 살기와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지만, 마존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피 묻은 가면을 쓴 극악소마는 도도하게 팔짱은 낀 채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 여유가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다른 마존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도히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수백의 악인들이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혈천도마가 앞으로 나서며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덤비려면 다 한꺼번에 덤벼라.”

구우우우우웅!

늘어뜨린 멸천대도에 도강이 서렸다.

그의 강기는 피처럼 붉었다. 나는 그의 도강을 처음 보았는데, 피처럼 붉은빛이어서인지 정말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마존들이 각자의 기도를 발출했다. 일화검존의 백화검에도 검강이 서렸다. 그녀의 검강은 하얀 백색이었다. 그녀와 너무 잘 어울리는 색의 검강이었다.

우리 다섯의 기세가 사방으로 뻗쳐 나가자 악인들이 무언의 기운에 밀려나듯 더 뒷걸음질을 쳤다.

만약 내가 혼자 왔거나 극악소마와 둘이 왔다면 우린 이들 모두와 싸워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 마존과 함께 오니 감히 우리에게 덤벼들 자가 없었다.

수백 명이 모여들었지만, 그들은 감히 덤비지 못하고 멀리서 쳐다보기만 했다. 함께 있을 때 우린 거칠 것이 없었다.

그들은 끝내 덤비지 못했다. 우리 기세도 기세지만, 우리가 향하는 곳이 악인곡주의 거처임을 알고는 굳이 싸우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욕심은 이제 더 큰 것을 향했다.

우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길의 끝에 악인곡주가 사는 장원이 있었다.

정문 현판에 동악상조(同惡相助)라고 적혀 있었다. 악인도 악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 돕는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받았을 테니, 나름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내 말에 극악소마가 마극광폭장으로 현판을 박살 냈다. 현판이 붙은 자리가 통째로 날아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시에 다른 마존이 동시에 장력을 발출했다. 정문과 앞쪽 담장이 가루가 되며 무너져내렸다.

“혼자 왔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넷이나 함께 왔는데…….”

극악소마가 앞장서 걸어가며 덧붙여 말했다.

“준비한다고 대비가 된다면 우린 마존 자리를 내려놓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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